삐슝빠슝~~


심심하면 포에 맞고 화살에 맞고도 살아 있는 군바리가 있다??


하도 어디 쳐맞고 부상 입어서 아마 상처가 신체의 일부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은 놈이 있어 소개할까 한다.


이정李庭.


이게 그놈의 이름이다.




이정이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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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시대, 카안 울루스 이른바 원나라의 군바리로 한국사 배울 때 고려하면 늘 얼굴 들이미는 세조 쿠빌라이 카안과 그 후임인 성종 테무르 카안 시대 활약한 놈이다.


이정은 금金 출신, 즉 골-든 금나라 사람이다.


이름만 보면 이 놈 한족이겠네 싶지만 이건 성씨 갈아치운 거고


원래 성씨는 포찰蒲察.


딱 봐도 삘 오겠지만 한반도 북쪽 만주 동네에서 고려랑 조선이랑 징글징글한 연을 맺는 여진女眞 출신이다.


선조가 중원으로 이주한 놈이 아닐까 싶지만 얘 열전에선 금나라 말기에 중원으로 이주하고 나서야 성씨를 바꾸었다고 되어 있다.


즉 네츄럴본 여진족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얘가 태어나서 젊은 적에 무얼하고 살았는지는 열전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걍 몇 번 이사 다녔다 정도.


아마 시대가 몽골제국에 끼요옷 휘릭휘리릭 하는 때만 아니었다면 얘는 그냥 동네 말박이로 뒤지거나 중원으로 이주해서 한족 세탁해 뒤지거나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긴다.


입대.


1269년, 이정의 이름이 군적軍籍에 올라간다.


다행히 말단 짬찌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재무材武가 있다는 이유로 그는 장교로 들어가 쏘가리…가 아니라, 대대장 정도인 천호장이 된다. 쏘가리가 아니라 대가리라고 해야 하나.




여튼,


권감군權管軍 천호千戶.


이것이 이정의 첫 직책이다.




이정은 곧바로 전장에 투입되었다. 불쌍해라.


투입된 곳은 당시의 핫 플레이스였던 양양襄陽과 번성樊城.


음력 1268년 9월 도원수道元帥 아주阿術와 유정劉整이 지휘하는 10만 몽골군이 양양성을 에워싸면서 지루한 포위전이 한창 이어가던 곳이었다.


아주와 유정은 번갈아 가며 양양성 인근의 송군을 쓱싹 제초하며 정리하고, 나중에는 좌승상左丞相 사천택 등도 투입되어 원수부를 해체하고 하남행성河南行省을 설치하며 포위망을 강화했었다.


양양성의 자체적인 포위망 허물기가 실패하고, 양양성이 계속 위협받는 것을 좌시할 수만은 없던 송宋 조정이 파견한 지원군이 마침내 양양성 인근으로 접근하고 있을 때,


이정이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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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온 것은 연강제치부사沿江制置副使 하귀夏貴찡.


함선의 척수는 3천.


음력 1269년 7월 봄, 포위된지 슬 1년이 가까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겨울에 쪼글아들었던 한수위 수위가 올라가던 때를 노려 하귀는 몽골군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양양성에 보급을 성공한다.


하지만 성에는 안 들어가고 쫄아서 메다닥 빠져나가려고 함.


몽골이 수군이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 적어도 일정 규모의 몽골 수군이 포위망에 배치되어 있었다.


당장 열전만 확인해도 수군 만호萬戶 해여즙解汝楫이 있는데, 얜 아예 애비 해성解誠 때부터 몽골 수군으로 활동하던 물 좀 먹은 놈이고


장희張禧라고 1267년에 수군水軍 총관總管이 되어 병사 2천 5백을 받고 물놀이 훈련을 시켜다가 1268년에 투입된 놈도 있다.


이외에도 쬐끔 더 있음.


하지만 하귀가 보급에 성공한 것을 보면 포위했다고 방심하거나 아님 아직 남송 수군을 능가하지 못하거나 둘 다거나 아님 둘 다 아니고 다른 섬씽이거나 한 모양이다.


하귀가 다시 한수 타고 메다닥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해여즙 등 몽골 수군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위치는 녹문산鹿門山 서쪽.


집결해 요격하려던 몽골 수군의 규모도 만만치 않았는지 두 함대 간의 대치는 일주일 간 이어졌다.


당시 보기장교, 즉 지상군으로서 하는 건 꼬추를 만지거나 손가락 빨던 것 밖에 없던 이정은 갑자기 자진해서 나섰다.


저도 껴도 될까염??


자청해서 싸우겠다는 것이 기특했던 건지 뭔지 이 건의는 받아들여져 이정은 수군 만호 해여즙이랑 같이 하귀의 함대랑 싸웠고


하귀의 비장裨將 왕기王玘와 원승元勝의 모가지를 이쁘게 커팅한다.


이 전투로 하귀는 빠져나가긴 하나 2천 명이 전사하고 배 50척이 노획당하는 피해를 입은 채 빤스RUN한다.


방면군 사령부인 하남행성측에서는 이정의 모가지 짜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는지 그의 직책을 바꿔준다.


익도신군益都新軍 천호千戶.


이정의 두 번째 군바리로서의 직책이었다.




똑같은 천호장이지만 맡는 부대가 달랐다.


익도신군이 무엇이냐. 원사에서는 이런 평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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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한勇悍하여 난제難制하다.


용한, 날래고 사납기에 난제, 다루기 어렵다.


잘 싸우고 그런데 승질 더러운 새끼들이었나보다.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이놈들 모두 반란군 출신이다.


오늘날 산동 반도 방면인 익도를 근거지로 하던 한인세후 이단李壇은 쿠빌라이 즉위 초기에 남송과 연계해 반란을 일으켰었는데, 그 잔당을 몽골의 즈언통대로 모가지 안 짜르고 대신 모아다가 부대를 만든 것이 요놈들인 것.


때문에 잘 싸우지만 통제가 어렵자 특별히 요놈들을 장홍범張弘範의 지휘 아래 맡겼다고 열전에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 이정도 마찬가지로 그 떄문에 익도신군 천호장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익도 신군이 전장에 투입된 것은 1269년 중의 일.


이후로 소소히 남송 수군의 접근을 격퇴하던 몽골군.


군바리들 쉬는 날을 못 보는 지휘관 종특으로 익도신군 만호장이었던 장홍범은 하남행성측에 건의를 넣어 작업을 따냈다.


포위망 서쪽인 만산에 축성 작업!


물론 그쪽에 왕래가 이어지고 있다는 타당한 이유로 진행되는 거긴 한데, 그런 건 아랫것들 입장에선 알 게 뭐야.


장홍범은 군바리 애들 천 명 데리고서 만산으로 올라가 보루를 쌓았다.


군바리들 작업 불쌍해라.


아마 짬찌인 이정도 그 작업에 동참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헛짜헛짜 축성 공구리 작업을 끝낸 군바리들.


이 작업은 1270년에 끝났는데, 중간에 서하 황족 출신의 이항李恆이 지휘하는 익도신군 만호가 추가로 투입되어 같이 공구리 작업을 했다.


이른바 만산보를 완성하자 장홍범은 애들 풀어주려고 천호장 유국걸劉國傑 등 100명만 남기고 활쏘기 대회나 펼쳤다.


유국걸의 열전에서는 땔깜 구하려고 나갔다는 거 보면 땔감도 구할 겸 활쏘기 대회도 한듯.


그런데 그때!


포위망 강화를 꼽게만 보던 양양성의 수장 여문환呂文煥이 이 때를 노렸어! 를 외치며 병사를 동원에 만산보로 어택땅을 때린다.


원사 본기 기준으로는 병력 1만, 선박 100척이고 이정네 열전에는 1만 5천으로 나온다.


유국걸은 시발시발을 외치며 100의 병력으로 버티기에 나섰고


장홍범과 이정 등은 급히 메다닥 달려가 송군을 막으려고 갔다.


그런데 송군이 넘나 많아따.


장홍범의 보좌관들은 시발시발시발 하면서


쟤네들 쪽수도 우리에 비해 많은데 성에 들어가 지키죠??


장홍범은 조까를 외쳤다.


"만호장은 제군들에게 실망했다."를 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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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여깄냐, 시발 적이 왔는데 안 싸워? 빠진다고 아가리 터는 새끼는 뒤진다.


만호장이면 사단장급인데 투스타가 저딴 말 했다고 해봐라 시발.


설마 하던 E 선언과 함께 장홍범은 갑옷 챙겨 입고 말 타고 가서 송군과 대치했다.


이때 장홍범은 이정을 최전방에 두고 나머지는 다 이정 뒤쪽에 놓았다.


아마 장홍범에게도 이정이 겁대가리가 없거나 혹은 모가지를 잘 짜른다거나 하는 이미지였나보다. 어쩌면 남들 성에 지키자고 할 때 혼자 그 소리 안 한 놈일 수도 있고.


장홍범은 자신은 직할로 기병 이백을 두고서 북 치면 전진하고 안 치면 꼼짝도 마라 선포.


송군이 공격하면서 교전이 벌어진다.




가장 최선봉에 세운 만큼 이정은 치열하게 싸웠다.


열전 표현대로라면 혼자 말 타고 가 싸웠다는데 이건 좀 과장의 여지가 있을 것 같고, 여튼 말 타고 송군과 치열하게 교전하는 이정.


창으로 송군 배떼지가 꽂고 내장 꿰어 2명을 죽였는데, 창이 톡 하고 부러지고 말았다. 평소 관리 잘 안 했나보다. 빠졌네.


이정이 헛 시발 하려던 찰나 이미 송군 기병이 내달려 이정을 노린다.


이대로 이정은 어버버…하지는 않고, 곧바로 창을 휘리릭 거꾸로 쥐고서


회격回擊! (*열전 원문의 표현임)


다가오던 1명을 낙마시키고 뒤로 빠져나온다.


이정은 상처를 두 군데 입었지만 대충 배그하듯이 붕대 둘둘둘 싸매고 후열에 있던 군바리의 창을 "빼앗고[奪]" 끼요옷을 외치며 송군에게 돌진했다.


지금으로 치면 군바리가 총 빼앗긴 건데 대대장급이 총 뺏어가서 뭐라 찍소리도 못할 군바리가 불쌍해라.


송군은 열심히 돌격해 몽골군을 두들기지만 몽골군은 꿈쩍도 않았고, 송군도 지쳐 기세가 약해지자


장홍범은 "각 왔다" 하고서 그제서야 북을 치도록 지시했다.


신호가 떨어지자 이정이나 나머지 장수들이나 모두 끼요옷~! 외치며 돌격!


송군은 그렇게 궤주해따.




이때 송군의 피해는 유국걸 열전을 보면 4천. 1만 혹 1만 5천 중에 4천이 뒤진거니 존나 큰 피해를 입은 거다.


위에 보면 원사 본기에 송군이 함선 동원했다고 해놓고 이정이 겪은 전투는 지상전 뿐인데


앞서 말한 이항이 어선 동원해서 각 재던 송군을 매복으로 엿먹였다는 거 보면 배탄 송군은 이항이 마킹한 모양이다.




그렇게 1270년 봄, 이정은 정식으로 재차 익도신군 천호로 제수되면서 칭호도 하나 받는다.


발도아拔都兒, 즉 바아투르, 용사라는 의미의 몽골어 칭호를 얻은 것이다.


어지간히 겁대가리 없이 잘 싸운 모양이다.




위에 보면 심심하면 화살 같은거 쳐맞고 부상 입는다고 해놓고 지금껏 부상 2개 외에는 멀쩡한 이정인데,


이제부터 본격적이다.


존나 맞기 시작한다.




시기는 안 나와 있지만 이정은 송군과 교전해서 빤스RUN치는 송군을 추격하는데, 이놈이 브레이크를 안 밟고 양양성 성문까지 갔다가 왼쪽 허벅지에 화살 푹 맞고서 그제야 멈추고 돌아왔다.


별 일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얘가 브레이크 없는 노빠꾸라는 것을 보여주는 전조가 아닐까 싶다.




바로 몇 년 뒤를 넘겨서 1272년 가을.


양양성은 여전히 포위되어 있고, 하귀의 첫 보급  외에는 송군의 구원 시도는 줄줄이 실패했다.


유일하게 송군이 우세인 부문인 수군도, 몽골이 1270년 유정 → 아주 → (역참) → 조정이라는 체계로 건의 넣고 체택되어서 수군 7만 양성, 함선 5천 건조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한 이후로 10만 수군이 대패하는 등 절망적인 상황.


1272년 3월에 몽골군은 번성 외성을 공격했다.




익도신군은 빠지지 않고 한수를 건너다가 번성의 외성에 대한 공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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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정은 유국걸이랑 나란히 부상을 입는다.


이정은 공성 도중에 포砲에 이마랑 양손이 모두 부상을 입는다. 부상 삼종세트인 것만 모자라 아예 이마 상처 입었다면 머리 맞았다는 건데 용케 안 뒤진듯.


그렇지만 이정은 계속 싸워 토성을 점령했고,


끼요옷!


양양성 동쪽 보루로 갔더니 또 어깨가 포砲에 맞지만


끼요오옷!!


뒤지지 않고 빠지지도 않고 일자성을 점령한다.


이정과 똑같이 천호장인 유국걸도 여기서는 아예 화약무기에 허벅지가 부상입지만 끝까지 싸워 외성을 점령한다.


유국골 얘도 여진족 출신으로 오고륜烏古倫씨였다가 나중에 중원으로 이주해 유씨로 고쳤다는 걸 보면, 이정과 같은 과였던듯.


힘겹게 번성 외성을 점령한 몽골군이지만 번성 함락까지는 한 해를 더 기다려야 했다.




번성 외성 점령 이후로 이정은 한 건 하나 또 해내는데, 얘가 피지컬만 믿는 돌대가리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문환 밑에 총관管者 반산왕胖山王이라고 이름 특이한 놈이 있는데 애가 사납고 날래다고 평을 받았는데, 이정이 매복 후 유인으로 사로잡았다는 것.


이 일로 이정은 패자牌子인 금부金符를 수여받는다.




이후로 송군은 결사대를 던져서 양양성에 대한 보급을 딱 한 번 더 성공하지만 결사대는 전멸했고, 해를 넘어서 1273년 초에 몽골군은 번성을 마무리짓기 위한 공격을 펼친다.


이번에도 끼요옷 나서는 이정.


그가 맡은 임무는 해자를 땔나무, 꼴과 흙더미로 메꾸는 것.


번성의 수비대가 퍼붓는 화살비랑 돌비를 밑에 부하들이랑 같이 땅을 메꿔서 평탄화하는 나라시 작업을 하고, 자기네가 메꾼 해자를 지나 이정은 운제雲梯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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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제의 사다리를 타고 성벽으로 올라가는 이정!


끼요옷!


는 돌이 비처럼 쏟아지는 와중에 이정은 또 포砲에 맞고 추락해서 성벽 아래로 쿵 충돌한다.


성벽 아래 떨어졌으니 좀 아프겠다.


하지만 이정은 번뜩 정신 차리고서 상처를 싸매고 운제게 도로 올라탄다.


끼요오옷!!


사다리를 타고 성벽에 올라간 이정은, 또 공격을 받고 성벽 아래에 떨어진다.


다시 벌떡 일어나 상처를 싸맨 이정은 운제에 (이하 생략) 성벽 아래로 떨어진다.


끼요오오오옷!!!


또 (생략) 떨어진다.


그렇게 운제 탑승-추락을 4번이나 반복한 이정은 용케 뒤지지 않고 송군을 존나 쳐죽여댔고, 번성은 그렇게 수비대 2천의 목숨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유국걸도 상처 여러 곳 입으며 혈전을 벌이긴 했는데 이정과 비교하면 ㅎ.




1273년 초 봄.


양양성도 버티다 못해 결국 항복한다.




이정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 받아 금부보다 더 급이 높은 금호부金虎符를 차고, 관군管軍 총관總管이라는 세 번째 직책을 받는다.


일단 관료의 품계를 보면 만호랑 총관이 동급인 만큼, 1269년 군 생활을 시작해 딱히 특별한 연줄도 없던 배경에서 총관까지 단 것이다.


앞으로 이정은 더더욱 포풍승진할 것이고, 그것보다 더 많은 부상을 입게 된다.




음력 1274년 9월.


쿠빌라이 아래 첫 관직 생활을 최고위직인 중서좌승상中書左丞相으로 스타트 뛴 역대급 낙하산 바얀伯顏을 총사령관으로, 양양성 포위 중 몽골군 도원수이던 평장정사平章政事 아주를 부사령관으로 하는 20만 몽골군이 남송 수돌르 목표로 진군한다.


그런데 처음 맞닥뜨린 영주郢州가 새로 성도 쌓고 지랄발광 다하며 방어를 강화해서 정면에서 뚫기엔 쪼매 거시기하자 몽골군은 우회기동을 택한다.


황가만黃家灣이라는 곳을 통해 등호藤湖를 가서 우회해 다시 한수로 진입한다는 것.


수백 척의 함대가 배치되어 엄중히 지키던 황가만보黃家灣堡를 바얀은 이정과 유국걸을 홱 던져 투입하고, 점령한다.


아쉽게도 맨 먼저 성에 오른 것은 유국걸인 것 같지만 여튼 둘은 우회로를 마련하자 이정과 유국걸은 우회기동을 실시한다.


황가만 동쪽으로 배를 끌고 가서 등호라는 호수로 들어가면 한수 타고 내려가는 것이 가능한데,


여서 "배를 끌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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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으로 배를 끌고 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정 등등 수많은 군바리들의 애환이 담긴 배 끌고 밀기 작업으로 20만 대군이 영주성을 무시하고 우회해 한수를 타고 남하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은 분명 이걸 두고 하는 말이 분명하다.




몽골군의 진로 앞을 가로막는 성이 두 개 있으니, 사양보沙洋堡 신성新城.


사양보는 몽골군이 최소 포좌砲座 12개 깔고 포격 퍼부어 금즙金汁을 통해 성울 불태워 함락하고, 신성도 항복을 자꾸 거부하자 공성을 벌인다.


바얀은 총관인 이정 등에게 외보外堡를 점령하라고 지시한다.


끼요오옷!!


이번에도 존나 열심히 싸우는 이정.


빠지지 않고 출석 도장 찍듯이 왼쪽 옆구리에 포砲를 맞고도 외보를 점령하는데, 또 맞아버렸다.


근데 성벽 바깥 쪽에 있을 때 맞았던 것인지 성 아래로 추락.


끼욧?


하던 차에 이번에도 쉬지 않고 화살이 날아와 이정의 가슴을 관통해버린다.


거의 죽기 직전이 된 이정. 연달에 포에 맞고 성벽 아래 떨어지고 가슴에는 화살이 관통해 있고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


애가 잘 싸우다가 갑자기 성벽 아래 떨어져 뒤저버리는 상황이 오자 바얀은 이정을 위한 응급조치를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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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의 배를


반갈죽해 자르고


그 사이로 이정을 집어넣었다.




한참이 지났다.


포에 두 방 맞고 가슴이 화살이 관통당해서 이것을 빼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한참 동안 못 깨어났으니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




이었는데,




되살아났다[蘇].




소생한 이정을 보고 주위에서 부랄을 탁 쳤는지 이정의 무관 관등이 정4품 명위장군明威將軍으로 오르고 익도신군 만호 자리 하나를 꿰차게 된다.




이정 대다내!




앞으로 이정이 거칠 코스


장강

임안

초원

일본

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