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과 호북성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백련교 봉기가 진압된 지 9년이 지난 1813년, 이번에는 백련교의 한 갈래인 천리교가
북방 지역에서 봉기했다. 이 봉기가 특별한 점은 황제를 직접 공격 대상으로 노렸다는 사실이었다.
이번 봉기의 지도자는 하남성의 이문성과 북경 남쪽 교외의 임청이었다.
이들은 "천리교 입회비로 근기전 100문을 납부하는 사람은 땅 100무를 얻을 수 있다."는 색다른 교리를 내세워
북경, 직례, 하남, 산동, 섬서 성 등 각지에서 신도들을 널리 모집했다.
수많은 농민, 유랑자, 하인, 마부, 몰락한 팔기군과 심지어 황실의 환관들까지도 천리교에 가입했다.
조직이 규모를 갖추자 이문성과 임청은 하남과 북경에서 동시에 거사하기로 하고,
대담하게도 북경에서 황궁을 직접 공격해 황제를 시해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하남에서 거사 직전에 비밀이 누설됐다.
이문성은 계획을 앞당겨 실행하기로 하고, '대명천순 이진주'라는 기치를 내세워 하남성 일부를 점거했다.
기세가 한떄 엄청났지만 결국 진압군에게 섬멸당해, 이문성은 분신자살하고 봉기군 2만이 몰살당했다.
북경에서는 "밀가루 가격이 낮아지려면 임청이 황위에 올라야 하리" 라는 민요의 주인공이었던 임청이
100명의 신도들을 이끌고, 천리교에 입교한 환관의 안내에 따라 자금성의 동화문과 서화문에서 침투해 궁성에까지 난입했다.
그러나 융종문 앞에서 황실 금위군의 반격에 전멸하고, 임청은 체포됐다.
호기심이 동한 가정제가 대체 왜 자신을 죽이려 했는지 궁금해 직접 임청을 심문했지만, 죽을 때까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 왕중추 저 "중국사 재발견" 에서
밀가루 가격 인하는 ㅇㅈㄸㅇ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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