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이념이 순전히 프로파간다에 불과했다면, 제3제국은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지 않았으리라. 국가사회주의 프로파간다의 핵심적 특징은 이념으로부터 나온 요구들을 곧바로 실천하여 손에 잡히고 느낄 수 있는 현실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세상이 정말로 변했다. 그 '위대한 시절'에는 괴츠 알리가 표현하듯이 저 "영구적 비상 상황"에서는, 새롭게 출발하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느낌이 단지 신문을 통해 보도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새로운 프레임을 정착시켰다. 당시 민족 동지였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는 이러한 포섭과 배제 과정이 심리 사회적 매력을 발산하고 정서적 구속력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제3제국이 적어도 스탈린그라드 침공까지는 '호시절'이었다고 입을 모으는데 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타자들에 대한 배제와 박해와 약탈은 그 자체로 확실하게 인식되지 않았다. 왜나하면 타자들은 정의상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배타적으로 다루는 일도 민족 공동체 내부의 도덕성과 사회성은 전혀 손상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3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회고적 설문 조사에 따르면, 1928년 이전 출생한 사람의 거의 4분의 3이 자기 주변에서 정치적 이유로 공권력과 갈등을 빚거나 체포되거나 취조를 받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한번도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이 설문 조사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불법 라디오 방송을 들어 보았거나 히틀러에 대한 농담을 했거나 나치에 대한 비판적 언급을 했다고 응답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연구에서 나온 또 다른 특이한 결과는, 설문 문항에 따라 비율은 다소 달라지지만 응답자의 대략 3분의 1에서 2분의 1 정도가 국가사회주의를 신봉했다거나 히틀러에게 찬탄했다거나 국가사회주의 이상을 자신도 품었다고 뒤늦게 고백한 것이다. 알렌스바흐 연구소의 1985년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1945년 최소한 15세였던 응답자들 중 58%가 국가사회주의를 신봉했다고, 50%가 국가사회주의가 자신의 이상을 구현했다고, 41%가 총통에게 찬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결과는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나치 체제에 대한 동의도 높았다는 사실이다. 교육을 많이 받으면 비인도적인 태도를 덜 가질 것이라는 일반적 선입견과는 동떨어진 결과였다. 교육 수준이 높으면 히틀러가 표방한 세계에 대한 동의도 높았다. 그리고 이 연구에서도 응답자들이 히틀러의 정책 중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실업률과 범죄율을 낮추고 고속도로를 건설한 것이었다. 제3제국이 무너진 후 거의 반세기가 지난 후의 조사였는데도 응답자의 4분의 1은 당시 지배적이던 공동체 감정을 높이 평가했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나치 체제에 대한 동의와 신뢰를 가진 것이 그리 불가사의한 일은 아니다. 물론 독일의 첫번째 '경제기적'이었던 1934년 이후 경제 성장은 탄탄한 거시 경제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상당 정도 부채와 약탈을 통해 재원을 조달했다. 그렇지만 경제 성장은 새로운 출발과 승리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오늘날까지도 당대 증인들의 인터뷰에서 이를 읽어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삶의 감정 깊숙이 파고든 사회적 혁신도 있었다. 1938년 노동자의 3분의 1이 '카데에프 휴가 여행'에 참가했는데. 그때까지 여행은, 특히 해외여행은 부유층의 특권이었다. 한스 디터 세퍼는 이렇게 쓴다.
"제3제국의 사회적 신분 상승이 그저 상징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오랫동안 간과해왔다. 그룬베르거는 나치 정권에서 전쟁이 없던 처음 6년간 신분 상승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마지막 6년 동안보다 두배나 많았음을 보여주었다. 공공 기관과 민간 기업은 노동 계급 출신 100만명을 흡수했다."
1938년까지 대량 실업이 진정되었고 1939년에는 오히려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져서 외국인 노동자 20만을 불러들일 지경이었다. 때문에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국가사회주의 이전보다 형편이 나아졌다고 느꼈다. 그리고 대량 실업 극복같은 사회적 약속이 실제로 실현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 기간 동안 경제적 측면에서 나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 체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생긴 것이다.
이처럼 참여적 배제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스케치해보는 것만으로도 그 체제에 대한 만족과 동의가 1941년까지 끊임없이 높아졌떤 일을 설명하는 데 충분할 것이다. 체제에 대한 동의가 높아졌던 또 다른 이유는 외교적 '성과'와 히틀러의 '경제 기적'이었다.(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매우 위태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이런 일들 덕에 민족 동지들은 이 사회가 자기에게 많은 이득을 준다고 느꼈다.
나치의 병사들, 죙케 나이젤, 하랄트 벨처
왜 인권을 부정할거면 히틀러도 찬양하질 그러냐?
오스트리아 체코만 먹고끝냈으면 하는 상상딸치기좋음 ㅅㄱ
ㄴ파시스트 인증 제대로 해줘서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