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1월에 러시아 제국군에 소위로 입대한 바실레프스키 - 훗날의 붉은군대 총참모장 - 는 

2월부터 5월까지 장교로서 훈련을 받았다.

훈련 과정은 제식에는 온힘을 쏟으면서도, 참호와 철조망, 기관총이 가득한 전장에서의 생존법이나

장갑차와 항공기를 상대로 대처하는 법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서로 다른 병과들 간에 어떻게 협력하여 작전을 펼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바실레프스키는 속으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병사들을 다룰 때만큼은 프로이센놈들의 군율을 본받아야 하며

병사들이 "적의 총알보다도 부사관의 빠따를 더 무서워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쳤을 뿐이었다. 


바실레프스키 소위는 1915년 가을, 러시아 제국군 제 409보병연대에 배치되었다.

소위는 전선에서 적군인 오스트리아 제 7군의 참호에 비해 아군의 참호가 원시적이고 불편하며, 전투에도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야영을 할 때도 러시아군은 담요도 없이 외투 하나만 걸치고 그대로 노숙해야 했다.


바실레프스키가 배치된 연대는 전원이 노획한 오스트리아군의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기관총은 대대당 단 2정에 불과했다.

포병대는 구경을 가릴 것 없이 모든 곡사포와 중포의 탄약이 바닥난 상태였다.

겨울 동안 휴식을 취하고 훈련을 받은 연대는 브루실로프 대공세에 참전하기 위해 전선으로 돌아왔다.

병사들이고 장교들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독일군이 아니라 오헝군을 상대한다는 소식에 기뻐했으며,

포탄이 폭발할 때 그것이 독일군이 아닌 오스트리아군의 포탄임을 알 수 있는 핑크빛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kodef 세계 전쟁사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