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생체 터미네이터 이정.


전투에 참전했다면 몸에 훈장 대신 화살과 포에 맞은 상처와 성에 떨어져 생긴 멍 자국으로 드러내며 폭풍 같은 군 생활 5년차의 군바리는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기염까지 토해내며 생애 네 번째 직책으로 익도신군 만호가 된다.


만호가 되어 지휘하는 부대 규모도 커지고 한 번 죽을 뻔한 경험에 조심도 한 건지 한동안 이정의 열전 내용은 좀 심심하다. 한동안 어지 쳐맞는 기록이 없다는 거.


갠적으로 이번 편은 좀 심심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


그래도 이정의 이야기인만큼 몽골군 본대의 진군을 따라가면서 애기를 계속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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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이 이제야 6년차에 대대장급에서 사단장급이 된 이정은 본대를 따라 한수漢水를 타고 남하했다.


곧 한수와 장강이 교차하는 한구漢口에까지 도달한 몽골군.


그들 앞의 한양군漢陽軍과 악주鄂州만 어찌 털어버린다면 장강 돌파가 코앞이었다.


이에 양양성 포위전 때 딱 한 건의 보급만 성공한 이후 몽골군에게 승리 적립만 해줬던 연강제치부사 겸 회서제치사 하귀는 이번에도 메다닥 달려와 몽골군을 가로막았다.


이곳을 몽골군이 돌파하면 그대로 장강을 타고 수도 임안 북쪽까지 신속하게 진격할 수 있는 상황!


하귀는 있는 병력 없는 병력 다 끌어 모아 존나 많은 병력으로 알뜰살뜰하게 그냥 보이는 곳마다 다 쳐박고 우주방어를 하니, 기록상 이들의 함대 척수가 1만 척에 이르렀다.


한구에서 저거를 정면돌파를 하기에는 각이 안 서자, 일단 몽골군은 한구에 머무르면서 주변을 정찰하기 시작한다.


이 정찰에는 이정도 했는데, 만호장인 이정은 천호장인 마복馬福과 같이 한구로 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장강을 통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바쁘게 메다닥 달려와 이를 상부에 보고하는 이정과 마복.


한편 바얀은 처음에는 정직하게 한구에 꼴아박아 점령해서 장강 넘어가려던 것을 하귀가 우주방어를 하니 짱구를 굴리며 어찌 돌파할지 두뇌 풀가동 중이었는데, 아주가 바얀에게 이정과 마복이 보고한 방안으로 가자고 했다.


거 쉬뻘 한수 물살도 쎄고 송군도 존내리 박혀 있는데 이번에도 우회 ㄱ?


바얀은 콜 때렸다.



근데 이정 열전에선 이정과 마복이 그 우회로 알아냈다고 되어 있는데, 본기나 바얀, 아주의 열전에서는 그냥 마복의 건의로 된 거 보면 이정 아래에 천호장으로 마복이 발견해서 보고한 거 아닐까 싶네.


여튼 몽골군은 실행에 옮길 군바리들에겐 불행하게도, 영주성과 비슷한 방법으로 우회를 한다.


한구의 제방을 열어젖혀서 이번에도 배를 끌고 가 윤하구淪河口로 진입, 호수를 가로지르고 나서 사무구沙蕪口를 통해 장강으로 진입했다.


물론 거따가도 하귀가 알뜰살뜰히 병력을 박아뒀었지만, 몽골군이 폐이크 쳐서 병력 빼내 다른데 보강시키게 한 뒤에 기병대로 일단 존나 빠르게 선빵 치고 차지해서 몽골군은 우르르 우회했다.




통수 씨게 맞은 하귀는 어 씨벌 하면서 이번에도 몽골군에게 디펜스로 앞길을 가로막는다.


그야말로 숫자가 있기에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배를 쭉 늘어뜨려 장강 전체를 막아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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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을 횡으로 가로막은 송군을 보면서 몽골군은 머리를 긁적이며 저걸 또 어찌 돌파할지 짱구를 굴려야 했다.


일단 사무보沙蕪堡는 조졌으니 다음 양라보陽邏堡에 항복 권유를 하는데, 이전 사양보나 신성과 달리 투항자가 한 명도 없자 공격에 나선다.


비록 양라보를 지키던 도통 왕달王達이 죽기는 하나 3일 동안 버티는 양라보!


이에 아주가 또 다시 작전을 내고 바얀이 받아들이면서 장강 돌파를 위한 작전을 펼친다.


먼저, 아릭카야阿裏海牙가 이끄는 군대로 무기보武磯堡를 공격해 하귀 등 송군의 이목을 꾀어낸다.


다음, 아주가 직접 휘하 20명의 만호장 중 4명을 데리고 기병 3천의 4개 익군翼軍을 뽑아, 은밀히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청산기靑山磯로 우회해 몰래 장강을 도하한다.


마지막, 아주가 장강을 도하하면 바얀이 지시를 내려 모든 몽골군이 총공세를 개시해 장강을 돌파한다!


당시 전선의 형호행성측 남바 완 투 쓰리가 모두 협동하여 펼치는 작계.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 즉 아주가 맡은 우회 후 도하에 데리고 가는 4명의 만호장 중 하나로서 이정은 뽑…히지 않고,


아릭카야 밑에서 무기보에 대한 공격을 맡는다.


뭐 어때, 옛 상관 장홍범도 아릭카야 지시 받으며 무기보 공격을 하는데 짬찌 이정이 별 수 있나.


몽골군은 무기보에 대한 공격을 펼친다.


이제 만호장이 된 이정은 번성, 양양성, 사양보, 신성에 이어 벌써 5번째로 성채에 대한 공성전을 펼친다. 이제 보니 이 새끼 초기 군 생활 커리어가 공성전으로 도배되어 있네.


무기보의 사면이 물로 차 있다고 되어 있는데, 아마 해자나 혹은 제방으로 사방을 가로막고 있던 듯하다.


사면이 물로 가로 막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정은 그냥 터뜨렸다.


둑을 터뜨리면서 이정 등등등 수많은 만호장이 아릭카야 밑에 무기보에 대한 공격을 펼치며 어그로를 한데 가득 모으고, 하귀도 거따가 지원군 쳐박는 사이에 아주는 우회기동해 혈전을 펼치며 장강 도강에 성공!


아주가 빠릿하게 도강 성공을 바얀에게 정하자 바얀은 총공격 지시를 때리면서 몽골군은 일제히 장강을 건넜고, 아주의 별동대가 장강 도하했다는 소식에 멘탈이 터졌던 하귀는 버틸 수가 없자 빤스RUN을 쳐버린다.


결국 3일 버티던 양라보도, 당일 공격받던 무기보도 함락되고 그곳의 수십만 송군이 장강에 퐁당퐁당 돌 던지듯이 빠져 뒤져 새빨갛게 잉크칠하면서 몽골군의 장강 돌파 성공!


몽골군은 잠시 뒤로 빽해서 후방에 남겨두었던 악주랑 한양군의 항복도 받아낸다. 바얀은 악주랑 한양에 아릭카야랑 4만 군대를 배치하고는 1275년부터 장강을 타고 동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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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은 아주.


아주는 수군 등을 이끌면서 장강을 타고 존내 빠르게 진격해가며 항복을 받아내는데, 이정도 그 밑에서 싕나게 전진했다.


결국 남송의 권력 짱먹은 가사도賈似道가 나서서 몽골군을 막아선다. 가사도는 강화협상으로 시간을 벌려고 했다. 그러자 몽골군 윗선 조정에서는 협상하는 동안 공격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오지만….


바얀은 아주 등과 논의해서 그냥 공격하기로 결정.


정가주丁家洲에 가로막던 13만 송군을 대포로 포격 땅땅 때리고 기병대로 강 양안을 제압하면서, 송군측에 송군이 쳐발렸다고 병사들이 소리 지르며 돌아다니게 해 혼란스럽게 만들고, 아주가 직접 배 타고 미리 준비해둔 함대가 딱 좋은 바람이 불자 발진시켰다.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대던 송군을 향해 몽골군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이 함대에는 이정도 있었다.


끼요옷!!


그렇게 송군은 개박살 났다.


여기서 이정은 딱히 부상을 안 입었던 것인지 배 20척을 노획했다고만 되어 있다. 재미없게도. 같은 장홍범 휘하 익도신군 천호장이던 유국걸도 정가주 전투 이후 공을 인정받아 만호장 뱃지를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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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은 그대로 전진 또 전진해 건강부建康府에 도착한다.


이후 몽골군은 건강부 인근을 점령하면서 근거지를 확고히 하다가, 3월에 공격을 잠시 정지한다.


쿠빌라이가 국신사國信使 염희현廉希賢과 엄충범嚴忠範 등이 남송의 임안으로 보낸다고 그런 건데, 얘네들 사신으로 가다가 엄충범은 송군에게 살해당하고 염희현은 임안으로 끌려가 고문받다 뒈짖함.


4월 남송이 사과하면서 사신 보내자 바얀은 남송 사신이랑 같이 장우張羽를 사신으로 보내니까 이놈도 송군에게 뒈짖.


도대체 무슨 짓거리인가 이해 안 되는 사신 살해사건(시리즈물)이 이어진 뒤, 4월이 되자 쿠빌라이는 아주에게 회동淮東의 양주揚州를 공격할 것을 지시한다.


아주는 진주真州를 공격하는데, 이정도 여기에 따라간 것 같다.


이정은 진주로 가는데 송군이 강길을 차단했다. 이정이 나서 배 200여척을 태워버리고 제방을 지키던 송군을 쳐죽였다. 부상 입은 기록은 역시 없다. 재미없게.


한편으로 하귀는 장강 돌파 허용 이후 정가주 전투에도 끼어들어 가사도랑 같이 싸우다가 또 빤스RUN 쳤었는데, 완전히 싸움을 포기한 것이 아닌지 임안을 지원하려고 기웃기웃한 모양이다.


그 소식은 몽골군에도 전해졌고 이정은 여러 차례 요격에 나서 격파했다.


하귀는 정가주 전투 이후 여주廬州에 짜져 있다가 몽골군의 공격으로 초호焦湖에서 패배하고 몽골군에게 앙망문을 쓰면서 서로 싸우면 손해니까 나는 짜져 있다가 황제가 항복하면 따라 항복할테니 노 따찌 미 선언을 한다.


이정네 열전에서 하귀를 격퇴한 일이 언제인지 안 나와 있고, 원사에도 하귀의 앙망도 시기가 안 나와 있어서 선후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하귀는 이정 등등의 몽골군에게 발린 이후 계속 짜져 있는다.


바얀은 쿠빌라이가 불러 잠시 수도 쪽으로 가면서 몽골군은 제자리를 지키던 중에 남송군은 7월 장세걸張世傑의 지휘 아래 역습에 나서 초산焦山에서 함대 1만 척으로 두둥탁 했다가 아주의 화공에 쳐발리는데, 이정의 열전에서 관련 내용이 없는 것을 보면 이정은 이 빅-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별다른 공을 세우지 못한 것 같다.


반면 유국걸은 초산에서 공을 세워서 쿠빌라이가 퍄퍄 하면서 바아투르 칭호를 주는데, 여서 니가 2번재로 따봉이다하면서 유2바아투르라고 불렀다.


그 이후 유국걸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항상 유2바아투르라고 불리며 콩라인 박제당한다.




이정은 그 동안 어디 거시기가 긁고 있었는지 아님 뭘 했는지 어쩌면 그 시간 동안에 하귀랑 놀았는지 모르겠고, 바얀은 회동도원수淮東都元帥라는 따까리 거느리고 회동쪽 방어선 뚫고 와서 10월 진강부鎭江府에서 총공세 명령을 하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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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은 크게 형호, 강서, 회동, 강절 방면으로 나뉘어 공세를 펼친다. 형호랑 강서 방면은 임안 지원을 차단하기 위한 견제타(다 점령함)고, 회동은 아주가 마킹하고, 강절 방면이 임안으로 향하는 임안의 본대.


사천도 몽골군이 공격하고 있긴 한데 거긴 다른 전선이 어떻든 항상 자기네끼리 지지고 볶는 몽골군과 남송군의 자강두천 배틀이므로 넘어가고.


강절 방면도 바얀은 자신이 지휘하는 중앙군이랑 좌우익으로 나뉘어 수도 임안을 목표로 진격하는데, 이정은 중앙군에 속했다.


강절 방면 몽골 중앙군은 곧 상주常州에 도착했다.


여기서 몽골군은 졸라리 빡친다.


우선 상주는 몽골에 항복했다가 통수치고 다시 남송편에 돌아간 곳이다.


반란을 존내게 존내게 싫어하는 몽골 특성상 이런 새끼들은 다 모가지를 따야했다.


다만 쿠빌라이의 말도 있고 해서 바얀은 니들 항복해라, 안 건들일게, 이미 한 번 통수 쳐서 우리가 다 쳐죽일까봐 불안한 마음 이 형도 다 알아 짜샤, 그런 일 없고 형이 다 용서해줄테니까 좋게 말할 때 항복해.


라고 말해도 상주성은 ㅗㅗ 조까를 외쳤다.


결국 항복 안 하니까 빡침 게이지가 상승하는 몽골군.


근데 여기서 몽골군의 빡침 게이자 더욱 더 수직상승한다.


일단 상주성이 격렬하게 저항했다. 수비군 입장에서야 당연한 거긴 한데 공성하는 놈들 입장에선 성벽 뒤에 숨어서 저항하는 놈들 꼴아박하니까 존나 빡친다.


게다가 몽골군의 피해도 컸다. 상주가 공격을 받자 지원군으로 온 송군은 결국 다 뒤졌지만 그 대가로 몽골군도 적어도 7~8천이 전사해서 몽골군의 빡침 패러미터가 박살나버렸다.


이전까지 몽골군은 남송과의 전쟁에서 쿠빌라이의 명도 있고 해서 군바리들은 다 쳐죽여도 일반 민간인들은 거의 건들지 않았지만,


이번 일에는 바얀이


"선 넘네"


하고는 그딴 거 없었다.


걍 성밖 주민들 강제 동원해서 공성전에 갈아버렸고, 성이 함락되자 상주성 내부의 모든 사람에 대한 학살 지시가 떨어졌다. 학살로 인해 상주성 내부의 생존자는 3~5명만 남는다.


이정이 이 전투에 대해서 오전鏖戰, 즉 격전, 큰 전투, 사상자가 많이 낸 전투를 벌여서 북문을 점령하고 성 내부로 진입했다고 되어 있다. 그 이후는 열전은 침묵하지만, 바얀의 지시를 따라 성 내부의 주민을 도륙 내는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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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랬을 것이다.




상주성 이후로 바얀의 중앙군은 상주 함락과 학살의 여파 때문인지 가는 곳마다 다 항복 때려서 특기할 만한 전투도 없고, 좌우익과 임안 코앞에서 합류하자 임안은 항복을 때린다.


임안을 잡수한 바얀은 이정 등에게 임안 내성을 지키도록 했다. 임안의 여러 보물 등등등 물자를 싹싹 챙기고 나서는 이정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니, 탕구타이唐兀台랑 같이 항복한 송 공제恭帝 등을 데리고 수도 대도大都로 가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열전에서는 해당 내용이 안 나오지만 남송측 인물인 강재姜才의 열전에 보면 이정은 항복한 남송 황제를 데리고 가던 도중 송군과의 교전이 있던 것 같다.


뭐냐 하면, 아주에 의해 양주성에 갇혀 있던 양주 도통 강재 등 회동제치사淮東制置使 칭구들이 황제가 회동을 지나쳐 대도로 간다고 하는 것에 4만 군대를 동원해 구출하려는 것!


개인적으로 도대체 몽골 이 친구들은 아직 다 제압도 못한 회동을 거쳐서 남송 황제 데리고 가려던 이유도 궁금하고, 또 회동의 남송들도 양주성이 포위된 상태에서 어찌 몰래 4만 군대를 동원해서 습격했는지 궁금하긴 하다.


어지간히 몽골 애들이 급히 보내려고 했고 회동쪽 몽골 전력이 존내 많은 게 아니라 포위망에 틈이 있다고 보면 될지 말지.


쨌든 강재의 열전 내용을 보면 강재는 4만을 데리고 공제를 호위하던 몽골군을 기습해 삼시三時를 싸웠다. 아마 몽골 호위대는 수적 열세였던 것 같은데 삼시라면 아마도 새벽 세 시를 가리키는 것 같으니 어두운 새벽에 존내게 싸운 모양이다.


이정과 탕구타이 등 호위대는 아 시바 이건 좀 아닌데;; 했는지 결국 송 황제를 데리고 RUN했고 강재는 뒤쫓지만 잡지 못하고 양주를 포위하던 아주가 야밤에 5대기 비상 때려 꿀잠 자던 군바리들 기상시키고 쫓아오니까 씁 쩔 수 없지 하고 양주성으로 복귀한다.




어찌어찌 항복한 남송의 공제를 무사히 대도로 배달한 쿠팡맨 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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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는 이정의 고생을 치하하고 금, 의복을 하사하면서 연회에서 특별히 좌익의 제왕들 아래 그리고 다른 잡것들보다는 상석에 앉혀준다.


존내 높은 대우.


아마 이리둥절했을 이정에게 쿠빌라이는 이거 유정이 살아 있을 적에도 이런 대우 받은 적 없다이? 이거 다 니가 공 있고 이쁘고 하니까 이래주는 거니까 존내 충성 또 충성해라 ㅎㅎ


하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이정에게 임무를 전달한다.


니 강남에 공 고생했제? 마, 이젠 서북으로 가야 쓰겠다. 그시기, 울 할부지 칭기스칸이 정한 것을 어긴 반란군 노무 쉐리들이 설치고 있어서, 니가 정리해라.


그리하여 이정은 군 생활 중 다섯 번째 직책을 받게 된다.


한군도원수漢軍都元帥.


이정의 관등은 정4품 명위장군에서 몇 계단 건너뛰어 종2품 진국상장군鎮國上將軍으로 포풍승진한다.


이정은 대호부大虎符를 받았다. 대부虎符는 범 모양의 병부로 미리 쪼개서 따로 보관하다가 병력 동원할 때 합쳐서 중앙에 지시한 게 맞는지 확인하는 용도니, 병력 동원을 할 권한을 얻은 것이다.


게다가 이정의 아들내미 대춘大椿이에게 이정의 기존 만호직을 세습하게 했다.


파격적인 대우.


그렇다.


이정은 황제인 쿠빌라이 카안에게 눈도장 찍혔고, 쿠빌라이는 이정이 쓸 만하고 여겼는지 포풍승진시켜주면서 북방의 초원 전선에 투입한 것이다.


이정은 같은 해 7월에 출정을 나간다. 이정의 따까리 이승경李承慶 등도 교초, 말, 갑옷과 병기, 의복들을 지급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드넓은 고비 사막을 넘어서 드넓은 초원 속 이전 몽골제국의 수도이자 지금도 초원의 중심지인 카라코룸哈剌和林으로 북상했다.




왜 이정이 초원으로 향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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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간단했다. 반란이 일어났다.


쿠빌라이는 지들끼리 지지고 볶는 중앙아시아를 제압하기 위해 아들내미 북평왕北平王 노무칸那木罕을 알말릭에 주둔시켰었다. 쿠빌라이는 지속적으로 노무칸에게 갑옷 등의 병기, 가축 등 식량을 공급했고 노무칸은 중앙아시아에 우세를 보이며 주둔했다.


그 밑에 반란이 터지기 전까지.


노무칸의 밑에서는 아릭부케의 아들과 아릭부케와 쿠빌라이의 계승분쟁 당시 아릭부케 편을 들었던 뭉케의 아들들이 있었다. 시리기, 요부쿠르, 멜릭테무르, 툭테무르 등.


쿠빌라이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이들은 모의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노무칸을 사로잡아 조치 울루스의 뭉케테무르에게 택배 붙이고 노무칸을 보좌하던 중서우승상 안톤安童을 카이두에게 배달 보낸다.


중앙아시아에 우세를 보이며 카이두 등에게 압박을 하던 카안군이 그대로 공중분해!


반란의 주도자가 된 시리기는 여러 서방의 제왕들을 끌어들이는데, 문제는 조치 울루스의 뭉케 테무르랑 우구데이 울루스의 카이두는 시리기랑 손절했다.


응 우린 안 껴들음 ㅅㄱ링


반란군은 쒸뻘; 했지만 어찌 되었건 진격해 가로막던 놈들 조지면서 몽골 초원으로 향했다.


카라코룸으로 간 이정은 사르반의 군대와 크게 싸워 패배시켰다. 역시 부상 기록은 아쉽게도 없다.


이정의 전장은 곧 하서河西, 즉 감숙 방면으로 옮겨졌다. 이정은 반란군 노무 쉐리를 때려잡고 추격하다가 고비 사막에 이르자 퇴각하는 등 활약을 한다. 이번에도 부상 기록이 없다.


이 반란에 쿠빌라이는 다양한 군대를 투입하며 대응했다. 투입된 킵차크군은 지나가다가 응창應昌에 반란이 터지고 툭테무르가 지원하려고 오자 이를 막았고, 좌익의 오투하五投下도 투입되었다. 남송 정벌의 총사령관이던 바얀도 직접 나섰고, 몽골내 고려군도 투입되었다. 홍다구洪茶丘도 이 반란 진압 과정에 공을 세운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자 시리기와 툭테무르는 카라코룸 북쪽 오르콘 강에서 바얀과 결전을 벌인다. 이정도 여기에 있던 것 같다. 시리기랑 툭테무르랑 싸웠다니까.


바얀은 종일 대치하다가 적이 느슨해지기를 기다려 군대를 둘로 나누어 공격했다. 아마 양익 포위한 듯?


시리기와 툭테무르 등의 반란군은 작살났고 이들은 빤스RUN친다.


이정은 카라코룸 서쪽 타미르 강을 넘어서 반란군 노무 쉐리들 잔당들을 때려잡았다가 쿠빌라이가 있는 수도로 복귀한다.


이후 이정과 똑같은 테크 밟아서 진국상장군에 오르고 한군도원수가 된 유국걸도 투입되어서 툭테무르를 족치는 등 반란군은 두들겨 맞고 짜져서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운다. 툭테무르는 시리기에 의해 처형되고 시리기는 사르반에게 붙잡혀 사르반이 쿠빌라이에 투항하면서 같이 딸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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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7년 복귀한 이정은 참 잘했어요 도장을 쾅 받으면서 교초 15,000관貫, 이정네 거주지에 저택 하나에 관장官莊, 즉 국유 장원과 활과 화살 등 암튼 존내 많은 선물을 쿠빌라이에게 하사받으면서 복건행성중서성福建行中書省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임명된다.


직위는 복건도福建道 선위사宣慰使로 바뀌는데 쿠빌라이가 콜 하자 메다닥 올라가 숙위宿衛를 했다.


즉 근위대 일을 했다는 건데, 몽골 애들 입장에서 이 일을 했다는 건 뭐다?? 측근 다 되었다 이거다~,


1278년 3월이 되면 가만히 있기는 심심했는지 이정은 남송 망명정부로 계속 몽골에 항전하던 장세걸을 토벌하겠다고 자청했는데, 열전에도 해당 내용이 없고 본기에도 안 나와 있어서 쿠빌라이가 그래라 했는데 결국 투입된 건지 못한 건지 투입되었는데 한 게 없는 건지 투입되었지만 기록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


1280년이 되면 이정은 또 승진한다. 정2품 표기위장군驃騎衛上將軍에 오르고 중서좌승中書左丞에 임명된 것.


한 번 뒤졌다가 부활한 이정은 기록만 보면 별다른 부상도 없이 승승장구하면서 출세를 거듭했다.


열전에는 없지만 강재의 송 공제 구출 시도에 좀 험한 꼴 본 것 같지만 살아 있으니 넘어가고, 쿠빌라이가 눈도장 찍더니만 그대로 포풍승진해서 북방 반란군 말박이도 때려잡고 고위직도 맡게 되었다.


지금껏 이정은 10년이 넘는 군 생활 중 커다란 실패는 없었다. 생명의 위기는 겪을 뻔은 하지만 계속 승리하고, 성공하고, 승진하며 앞길 탄탄한 출세가도를 달렸다. 빠르게, 가파르게.


어쩌면 그는 자신은 절대 지지 않는 창창한 인생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그림자가 드리밀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계속 그래 왔으니까. 그러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까.


그러나 모름지기 인생을 살다 보면 꽃길만 계속되지는 않고 불 붙더니만 한순간에 불꽃길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가파르게 수직상승했던 만큼, 이정에게도 인생의 굴곡이 들이닥친다.


매우 좋지 않은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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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년.


이정은 몽골의 2차 일본 원정을 맡을 지휘관 중 하나로 선정된다.


그리고, 이정이 포함된 강남군江南軍은 일본을 향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