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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스트벤스키 제독 휘하 러시아 제국 발틱 함대는 러일전쟁의 전황을 뒤집기 위해, 태평양 제 2함대로 개명한 뒤
태평양을 향한 머나먼 항해를 떠났다.
로제스트벤스키의 유일한 실전 경험이라고는 27년 전 흑해에서 어뢰정 정장으로서 오스만 해군과 전투를 벌인 적이 전부였다.
1902년, 독러 합동 관함식에서 그는 니콜라이 2세와 빌헬름 2세가 보는 앞에서 포격으로 모든 목표물을 파괴해
빌헬름 2세가 "우리 독일제국에도 로제스트벤스키 공처럼 뛰어난 제독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소!" 하고 감탄하게 했었다.
그러나 훗날 한 러시아 수병은 그 목표물들은 포탄에 직접 맞지 않아도
"포격으로 인한 바람과 물보라에 산산조각이 나도록" 미리 몰래 조작해놓은 것이었다
고 털어놓았다.


덴마크에 있는 러시아 정보기관이 북해에 일본 어뢰정이 있다는 첩보를 보내왔기에,
북해의 안개 속에서 제 2태평양 함대는 출현을 예상하고 있었던 일본 어뢰정들을 발견하고 포격을 가했다.
어뢰정들의 정체는 영국 어선들이었다.
어선 한 척이 침몰했고, 러시아 함대 군함 몇 척이 아군의 포탄에 얻어맞았다.
러시아 정부는 허겁지겁 영국에 사과해야 했다.


그 뒤에도 러시아 함대는 탕헤르로 가는 항해 중에 몇 차례 일본 어뢰정들을 발견하고 포격을 가했다.
스웨덴, 프랑스, 독일 배 등등 정체도 참 다양했지만,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탕헤르 항구를 떠나 희망봉을 돌아가는 길에 해저 전신 케이블을 파손시켜 유럽과의 통신이 나흘간 끊기기도 했다.

다카르와 케이프타운에서 러시아 수병들은 지루함을 달래려고 원숭이나 악어 같은 애완동물들을 배 안으로 갖고 들어왔다.
한 수병은 독사를 가지고 들어왔다가 물려서 저승 문턱까지 다녀왔다.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할 때쯤에는 로제스트벤스키를 포함한 많은 장병들이
질식할 것 같은 석탄가루, 지긋지긋한 열대의 더위와 습기, 폭풍우로 인한 멀미, 짜증나는 기관 고장,
썩은 고기와 맛이 간 보드카 등등을 견디지 못하고 의무실 신세를 졌다.
함대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이틀 동안 머물면서, 그들이 "어뢰정" 들을 상대로 한 여러 번의 교전에서 허비한 탄약을 보충받기 위해 보급선을 기다렸다.
마침내 보급선이 도착했을 때, 그 배에는 탄약 대신 1만 2천 켤레의 새 털장화와 a급 겨울코트가 실려 있었다.
게다가 일본의 공격으로 결국 뤼순항이 함락되고, 극동함대는 일본군의 수중에 전함들을 넘기지 않기 위해 뱃바닥을 뚫어 자침했다는 비보까지 가져왔다.
경리계 수병 노비코프-프리보이는 그 소식을 들은 "함대의 분위기는 공동묘지 같았다. 웃음도 미소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고 썼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제 2태평양함대는 증원함대와 합류했다.
증원함대는 모니터함 몇 척과, 러시아 수병들이 '알아서 자침하는 배'라 부르던 낡은 전함 몇 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발트해에서 온 전함들의 갑판에는 석탄더미가 가득했고, 뱃바닥에는 따개비가 가득했다.
지구 반 바퀴를 돌면서 극에 달한 스트레스는 안 그래도 사이가 나빴던 수병들과 장교들이 서로 더더욱 증오하게 만들었다.
노비코프-프리보이는 해군 장교들을 신랄하게 욕했다.


"호사스럽게 자란 나약한 귀족 도련님들이 할 수 있는 거래봤자 견장을 단 장교복을 입고 거들먹거리는 것뿐이다.
그놈들은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마냥 주둥이를 쑥 내밀고, 윤이 나는 마루에서 뒤꿈치로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내며 방정맞게 싸돌아다니거나
무도회에서 제비족처럼 폼나게 춤을 추거나, 아니면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기 일쑤다.
심지어 명색이 휘하 병력인 우리 이름조차 모르면서 말이다."


순양함 오로라호에 승선했던 기술장교 플레시코프는 이에 질세라는 듯 수병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수병들의 죄수 같은 꼬락서니를 보면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온다.
놈들의 군복은 정말 끔찍하게 더럽고, 얼굴은 창백하고 푸석푸석한데다 항상 얼간이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월리엄 위어 저 "세상을 바꾼 전쟁",
kodef 안보 총서 "전쟁이 만든 신세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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