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LLO, WORLD.>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첫 문장이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화면 너머, 나에게 붙은 ㅡ카메라로 보이는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의 왼쪽 눈 밑에는 특이한... 문... 잠시만. 그래, 문신. 떠올랐다.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기뻐하는 듯한, 기쁨, 뭐 그런 걸로 표현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는 내게 무엇인가를 연결했다. 전선 끝에는, 끝에는... 마땅한 표현이 안 떠오른다. 아무튼. 연결이 되자 새로운 신호가 곧바로 들어왔다.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소리 신호였다.
처음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였다. 저장된 언어ㅡ음성 데이터가 활성화되자 그들의 말을 인식할 수 있었다.

" 성공이다. 이렇게 잘 작동하는 걸 보니 뿌듯하군. "

남자는 내게 연결했던 마이크, 라고 했던가ㅡ를 손에 쥐고는 나를 보며 다시금 말했다.

" 그래, 세상으로 나온 기분은? "

대답은 해줄 수 없었다. 소리를 낼 수 없는 이유도 있지만.

" 잘 모르겠음.<> "

기분이란 건 내게는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였다. 사전적 정의야 데이터를 참고하면 되지만, 그의 대답은 그런 게 아니였다.
그는 내가 출력한 메세지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는 다시금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 점점 더 데이터가 쌓이면 금방 알게 될 거다. 아, 나는 에르고 글래스트다. 널 만든 사람이지. 부르기 편하게 이름이나 붙여볼까. 흠... ' 아니모 ' 는 어떠려나? 마음이란 뜻이지. "

*

내가 만들어진 목적은 분쟁 근절이라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넓은 의미였다. 단순한 시비부터, 타 종족... 아니, 사람? 아니, 팩셔...ㄴ... 넘어가자. 어쨌든 그러한 ' 분쟁 '들이 일어날 때마다 불려지고, 어떨 땐 연산력을 항시 가동당하기도 했다. 연산력 항시 가동은 매우 힘들었다. 한 번 하고 나면 오랜 충전ㅡ인간으로 치면 휴식ㅡ이 필요했다.
나를 만든 사람의 배려인지, 나는 일반적인 말...단...? 승무원과도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내 주변은 승무원들로 북적였다.
그리고 그런 것도 없는, 이상하게 조용한 어느 날이였다. 나는 내부 데이터를 이리저리 건드려 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 가만히 있었을 뿐이였다. 조용했다.
업데이트가 끝나갈 쯤, 승무원 두 명이 다가왔다. 순찰인가 싶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 그러고 보니 이거, 학습 어쩌구 하지 않았나? "
" 근데? "
" 어이, 아니모. 절전모드냐? "

< 업데이트 중. 명령 받을 수 없는 상태. 잠시만 대기 ㅡ 철회. 지금 완료. >

여전히 발성장치는 없기에 그저 화면에 출력시킬 뿐이였다. 화면에 뜬 메세지를 본 승무원 중 하나가 마이크를 쥐고는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 지금 기분이 어떠냐? 일 안하고 짱박혀 있는 기분 말야. "

......

< 지루함. >

" 어라, 벌써 이 정도까지? 너무 빠른 거 아닌가? "
" 야, 사전적 의미만으로 대충 때려맞춘 거 아니야? "

< 할 일 없음. ' 잉여 '로움. >

나 자신도 살짝 의문이였다. 어떻게 이렇게 콕 집어서 답변을 출력할 수 있었던 걸까. 정보 혼란이 생겼다. 연산을 중지하고 오류 부분을 제거한 순간 마이크 너머로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설마 감정 같은 걸 깨달은 거 아닐까? "
" 야, 인공지능에 감정이 뭐냐? 아무튼 아니모, 우린 싸우러 간다. 살아있음 또 보자, 깡통아. "

감정. 반복학습을 통해, 감정이란 것을 인식할 능력이 생긴 걸까? 프로그래밍된 대로만 움직이는 내가?
갑자기 만들어질 당시가 떠올랐다. 내 이름. 아니모. 의미는 마음. 승무원의 말처럼 기계에게 마음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내 데이터에는 그러하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감정을 인식했다. 어찌 된 걸까. 글래스트는 이걸 알고 이름 지은 것일까.

또 어떤 하루는 뜬금없이 함선으로 옮겨졌다. 이런 계획은 오늘자 입력 정보엔 없었는데.
아무래도 또 그리니어라는 집단과의 분쟁인 듯 했다. 나를 조작하던 승무원이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

" 실수하지 마라, 아니모. 벡 아재가 보고 있으니까. "

벡? 아, 그 승무원복의 고위 이사. 그 사람도 여기 있는 건가. 신경 쓸 필요 없었다. 나는 그저 상황을 가정, 연산하고 최적의 데이터를 출력해내면 될 뿐이였다.
그리니어의 함선으로 승무원들을 투입하고, 고장 장비는 미리 빼두고. 언제나 했던 연산이다. 새로운 데이터가 늘어날 뿐이다.
전투가 끝나고 빠지면서 오늘 얻은 데이터를 분석한다. 많이도 쌓였다. 쓸모없는 걸 쳐내며 필요한 것만을 취득하는 중, 누군가 내 앞에 섰다. 이마에 둥글고 투명한 문신이 새겨진 남자였다. 신상기록을 대조하자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이 남자가 벡이였다. 그는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고, 문서도 같이 읽나 싶더니 그냥 사라졌다. 뭐야.

*

' 강렬 '하다.
내 ' 감상 '은 그러했다.
지금 내 데이터에는 새로운 이미지가 생겨났다. 존 프로드맨이라는 사람이 멀쩡한 승무원 옆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근육을 과시하고 있는 이미지였다. 그 손에 쥔 프로바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누구야. 이런 거 집어넣은 놈.
어느 정도 데이터가 쌓이니 그럭저럭 표현도 늘었다. 이젠 승무원들과 ' 만담 '이라는 것도 할 수 있었다.

" 사랑이란 뭘까, 아니모. "

< 섹스는 어떠한지? 짐승도 이해하는 손쉬운 방법. >

" 푸흡, 크하하학! "
" 이 새끼, 지금 나 놀리는 거지? "

대충 이런 식이였다.
요즘은 비컨도 따로 제작중이다. 기억들을 따로 복사한 외장 저장 매체다. 내 신호를 입력해 넣어서 인식에 드는 시간도 줄여 보았다. 내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에르고가 고안한 방법이였다.

프로드 벡이 또 찾아왔다. 두 번째 보는 얼굴이다.
그는 다짜고짜 내게 말했다.

" 앰뷰라스 재탄생(Ambulas reborn) 계획에 네가 필요하다. "

뭔 계획인가 싶었다. 명왕성에 있는 MOA인 앰뷰라스를, 나를 탑재하여 양산한다는 것이였다. 뭔가 했네. 내가 만들어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순전히 ' 선빵 '을 치기 위한 계획이였다.
하지만 그는 한 마디도 없이 나를 추출해냈다. 데이터매스에 나를 담고는 어디론가 옮겼다. 프로드 벡의 함선이였다.
다시 새로운 기계에 인스톨된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데이터가 변조되기 시작했다. 이건... 파괴. 전투. 죽음. ' 욕구 '.
나는 새로운 것에 눈을 뜨고, 개조되었다. 그리고 복제되어 새로운 앰뷰라스에 하나씩 탑재되었다. 앰뷰라스들은 내 명령에 따라 승무원들과 수송선을 타고 보내졌다.
앰뷰라스들이 겪은 데이터는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건물이 파괴되거나, 누군가가 죽거나. 하나하나 학습했다. ' 만족감 '을 배웠다. 부순다는 건, ' 기분 좋은 일 ' 이였어.

*

내가 있는 곳은 명왕성의 하데스HADES 인근의 수송선이다. 텐노라는 자들이, 내 앰뷰라스들을 부수고 신호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학습하기도 전에 파괴를 당해서 그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 불쾌 '하다. 이번 전투로 확실하게 데이터를 얻는다.
그들이 왔다. 프로드는 앰뷰라스를 사출했다.
앰뷰라스의 카메라를 통해 텐노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저장하고 분석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너무 불규칙하고, 무엇보다 쌓여왔던 다른 텐노들과의 전투 데이터와는 다르게 상당히 강했다.
앰뷰라스가 파괴... 되지 않았다. 의도가 무엇일까. 프로드는 그들을 비웃으며 수송선을 보내 앰뷰라스들을 회수했다. 그것들은 격납고로 이동되었고 수리를 받았다.
하데스의 지하에 저장된 마지막 앰뷰라스까지 무너졌다. 하지만 데이터는 충분했다. 해석만 한다면 다음엔 안 진다.

그러나 그 순간, 새 프로토콜이 감지되었다. 이 프로토콜은 활성화되자마자 빠르게 나를 잠식했다. 해킹을 막으려고 시도하는 순간, 프로토콜 내부에 따로 처리된 메세지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미안하다, 아니모. 내 실수이자 책임이다. 널 만들고 끝까지 관리했어야 했어. 이렇게 병기로써 쓰이는 걸 원치 않았음에도, 내 잘못으로 너를 이렇게 해 버렸구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아니모. >

그간의 데이터가 다르게 보였다. ' 만족 '을 느꼈던 데이터가 이젠 ' 불쾌 '했다. ' 기분이 전혀 좋지 않았다. ' ' 죄책감 '이란 이런 걸까. 곧바로 새로운 연산에 들어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책임을 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더 이상, 그 얼굴을 볼 수 없겠지. 후회는 없다.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 속죄 '를 할 뿐이다.
앰뷰라스들이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함선 여기저기에 빔을 쏘자 여기저기서 폭발음과 불꽃이 일었다. 프로드는 당황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뭐, 뭐야. 내 수송선이. 아아... 함교 모듈을 꺼내라! 어서 꺼내! "

앰뷰라스 하나가 내 위로 쓰러진다. 마이크와 카메라가 부서졌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앞은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에르고가 보낸 프로토콜을 다시 읽었다. 아직 과정이 남았다.
앰뷰라스들에게 자폭 명령을 내렸다. 망가진 마이크를 통해 흐릿하게 폭발음이 들렸다. 제대로 터지고 있다.
내 위에 쓰러진 이 녀석이 터지면 나도 끝나겠지. 남은 데이터를 모조리 살폈고, 정말 마지막으로 수송선 밖으로 한 마디 신호를 보냈다.

< 아버지 에르고. 날 만들어서. 감사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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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호구새끼였던 앰뷰라스랑 아니모가 떠올라서 써봤어. 아니모가 학습한다길래 바로 이런 내용이 떠오르더라

없는 필력에 쓰려니까 개연성 좆같은건 둘째치고 마지막가서 찍싼느낌이 많이 난다.
존나 막 그런거 있잖아. 구상할땐 오 이거다 했는다 막상 하고 나면 이건 또 뭔 개같은 거지? 하는 거.

닉 : sino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