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들어 야가다를 하더라도 5년차 해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부쩍 커지고 있다. 그래서, 슬슬 다가오는 지원서 시즌에 다시 한 번 읽어보려는 의도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좀 되라는 의도로 내가 5년차 고민하는 이유를 좀 남겨본다. 맨날 장난으로 '에이 씻팔 그냥 5년차 하겠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그런 마음이 들긴 하니까.

1. 조직이 조직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

요새 좋아하는 '결전태세'라는 말처럼, 군대라는 조직은 전투만을 생각해야 하는데, 내가 짧은 군생활동안 봐온 이 조직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매일/매월 반복하는 의미없는 행정작업과 업무들, 아무 쓸모짝에도 없는 비효율적인 각종 통제, 항상 잔업에 치여서 정작 본인의 진짜 임무에는 소홀한 참모들, 본인이 막노동꾼인지 전투원인지 헷갈려 하는 부사관과 용사들.

넓은 마음으로 다 그렇다 치자. 모든 군대가 똑같다고 치자고. 그래도 최소한, 최소한 훈련에 임하는 모습은 군대다워야 하잖아. 그것마저도 못하면 어쩌자는 거야.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 부분에서 제일 전역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아니? 나 말고도 내가 친하게 지내는 선후배 동기 모두 다 내보내고 싶을 정도다.

현역들 생각해 봐. 본인이 군복 처음 입은 그 날부터 지금까지 전투훈련 다운 전투훈련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지. 10여 쪽이 넘어가는 무의미한 통제계획 없이, 탄피받이 없이, 교탄이나 교보재의 제약 없이, 시간의 제약 없이, 장소의 제약 없이, 상급부대의 불필요한 통제 없이, 훈련하던 말던 처 울려대는 업무전화 없이, 훈련이 끝나고 밀려있을 잔업의 걱정 없이 훈련에만, 반복숙달에만 매진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고. 있다면 정만 부럽다만, 나는 없다.

안타깝게도,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전술 지식을 나는 필드에서 실험해본 적이 몇 번 없다. 그래서 이게 맞는 지식인지도 모르겠다. 꼬우면 내가 자유시간 내서 연습하라고? 내가 내 자유시간에 전투기술을 갈고닦아야 한다면, 이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가 뭐지?

조직이 스스로 뭘 해야해는지 전혀 모른다. 그러니까 결전태세랍시고 무슨 결전태세 말씀자료나 뽑아다가 육군수첩에 처박으라는 개씹소리만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총에 안전고리를 처 걸고 쏘는 병신짓이 용납되는 거다. 세열수류탄을 한 번도 못 던져본 놈이 장교랍시고 돌아다닐 수 있는 거다. 전투원들이 스코프를 핸드가드에 처박아도, 전투부대 중사급들이 SUT를 처음 들어봐도, 에너미 컨택 하면 한 개 조가 대응사격하고 나머지는 튀겠다는 소리를 해도 그러려니 하는 거다. 중국군 패턴을 입고 쌩쑈를 해도 아무도 모르는 거다. 공수부대가 연 1~2번 강하해도, 특수부대 이름 달고 사격량이 연 500발이 안 되어도, 별 개좆같은 차력쇼 준비로 3달을 내리 날려먹어도 상관이 없는 거다. 애초에 전투하는 조직이 아니니까. 그러면 이해가 된다.

위탁 갔다온 똑똑이 분들, MDO니 ADO니 읊으면 뭐해요? 말단 창끝부대는 기본적인 사격과 기동이 안되는데요.

2. 본질을 생각하는 사람은 손가락질 당한다.

조직 자체가 뭘 해야하는지 모르다 보니, 조직 구성원들도 뭘 해야할지 모른다. 이건 이 사람들 잘못이 아니다. 박봉이고 서러운 게 군인인 줄 알면서도 이 직업에 발 들인 멋있는 놈들 데려다가 바보 병신 만들어 놓은 이 조직 자체가 문제다.

체력 좋고 사격 점수 좋으면 그게 좋은 전투원이라고 믿는 사람이 대다수다. 전투 잘하는 놈보다 행정, 일처리 빠릿하고 성격 싹싹한 그런 놈이 부서에 들어오기를 원한다. 회사와 뭐가 다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본질을 생각하면 이단이 된다. 전투에 뭐가 필요할지 고민하고 행동에 옮기면 별난 사람이 된다. 보급된 방탄복이 작전 투입도 못 할 정도의 쓰레기라는 걸 깨닫고 자기 돈 줘서 방탄복을 사는 사람은 규정 위반자이자 부대의 골칫거리가 된다. 아무도 안 가르쳐준 SUT를 배우기 위해서 돈을 내고 주말에 왕복 6시간을 운전해 사설 전술교육에 참가하는 사람은 '밀덕'이 된다.

밀덕 취급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 사람이 못하는 걸 찾아서 '지 일이나 잘 하지, 체력도 안 좋으면서'라고 험담하는 사람도 봤다. 잘 생각해봐라. 이 상황이 얼마나 웃긴지를. 애초에 군대 안에서 밀덕 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 자체도 코미디다.

3. 그렇다고 고칠 생각은 없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 인식이고, 문제 인식의 시작은 소통이다. 위아래 소통 안 되는 거야 전 세계 모든 군대의 문제지만, 여기는 좀 심하다.

내 글 어딘가에 보면, 상급부대가 불가능한 과제를 주면 말단제대에서 가라를 쳐서 성공했다고 보고하고, 그럼 상급부대는 그게 되는 줄 안다는 내용이 있다. 완전군장 상태에서, 대항군 풀어둔 산악으로 당야 8~10km 침투거리를 주던 모 훈련. 어떻게 했는지 모르게 TOT를 전부 맞춘 작전팀, 그걸 보고 작전 성공이라고 좋아하던 누군가..나도 내가 허언증이어서 구라치는 거였으면 좋겠다. 근데 아니다. 이런 문화가 부서나 계급을 불문하고 진짜 존나 만연하다.

당연히 상급자들은 모른다. 문화상 상급자한테 싫은 소리를 못 하기 때문이다. 이거 안 된다고, 못 한다고 하면 분위기가 존나 험악해진다. 오히려 사실을 숨기는 게, 상급자가 정확한 상황을 모르도록 속이는 게 상급자를 바보 병신 만드는 거라는 사실은 모른다.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걸수도 있다. 왜? 그 상황만 모면하면 되니까.

그런 이유로, KCTC에서 개처발리고 샤우팅쳤다던 지휘관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평소에는 잘만 됐다며, 다 할 줄 안다며? 씨발, 여기 오니까 갑자기 왜 이러는데, 지금까지 나한테 뭘 보고한건데,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문제점을 파악하는데 성공해도, 고치기 싫으면 안 고친다. 나는 곧 다른 보직으로 가니까, 지금 상황만 넘기면 되니까. 전역했음에도 군대에 신경써주시는 고마운 선배님들 덕분에 곪아터진 군대 문제가 공론화되고 있다는 걸 다들 알 거다. 근데 이 글러먹은 분들은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다. 그 궁리가 눈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분노를 다른 정부부처로 돌리거나, '추진' '검토' 같은 단어로 순진한 애들 속여먹을 생각만 하거나, 선동이라고 아가리만 턴다. 아가리를 털거면 좀 제대로 잘 털던지, 당장 급한 불만 끄려는 속이 훤히 보여서 존나 아니꼬운 거다. 아가리를 확 씨바...

4. 선배들에게서 비전을 찾을 수 없다

조직을 끌어가는 선배들을 보면 막막하다. 저 모습이 내 미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면 암울해질 따름이다. 전투지휘관이면서 배불뚝이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고집있게 밀어붙이는 놈들, 본인이 모르는 주제에 관해 끊임없이 큰소리치는 새끼들,  다른 기관이나 민간인에게는 한없이 고개 숙이면서 만만한 부하들에게만 엄한 사람들, 중국군 무늬를 입고 있는 우리 장병 옆에서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웃고 있는 사람, 하사 월급이 뭐? 얼마라고?? 진짜로, 저렇게 되고 싶지가 않다.

  저 사람들도 초급장교일 땐 '군대가 바뀌어야한다'라고  생각했겠지, 라고 상상하면 더 우울해진다. 저 사람은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싶고, 나도 결국엔 올라가다 보면 저렇게 될까 싶은 생각만 든다. 물론 계급 고하를 떠나 내가 존경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계급 고하를 떠나 머리를 깨고싶은 사람이 더 많아서 문제지.

5. 직업적 메리트가 단 하나도 없다.

솔직히 이건 개인적으로 중요성 낮다. 월급 적고 이사 많이 다니는 거 알고 군대 들어왔다. 왜 군인들 복지 잘 못 챙겨주는지도 안다. 대기업 월급 필요 없다. 적어도 부업이나 뭐 투자, 도박 이딴 잡생각 안 들게, 적어도 먹고 살게만, 가끔씩 휴가철에 가족끼리 놀러 다니고 쇼핑할 정도만 해 주면 만족한다. 진짜 '적당히'만을 바란다. 중위 풀초과 포함 실수령 300만 나오면 제정단 방향으로 절한다. 금전도 복지지만, 나는 북한군 만나서 우리 애들 개죽음 안 당하게, 잘 싸우도록 훈련시켜 주는 게 군인으로서 제일 좋은 복지라고 생각한다. (이것조차도 안 해주지만)

근데 그 적당히 챙겨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보다. 훈련 때도 전투식량 값까지 다 빼앗아 가고, 식당은 철거하다 만 건물이고, 초과는 1시간 밥 시간이라고 떼어가고, 당직비는 1만원? 당직 같이 서는 하사한테 미안해서 자지 말라고도 못 하겠다. 나도 작년까지는 안 자다가 지금은 그냥 잔다. 좆까라. 돈 준 만큼 일한다는 간단한 원칙이 너무 오래 무시돼왔다. 젊음은 돈 주고 못 산다며, 왜 젊은이는 헐값에 사려고 하냐?

실수령 170~180 받던 시절(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무슨 동문회 회관 짓겠다고 얼마 기부하라는 문자가 왔던 적이 있다. 번호 차단했다. 선배랍시고 후배들 복지를 위해 싸워주지도 못하면서 돈을 떼가겠다고? 처 돌았나..






이런 이유로, 내가 장기 하라고 진지하게 추천하는 사람은 딱 두 가지 종류다. 존나 병신이어서 이 짓 아니면 굶어죽기 딱 좋아 보이거나, 너무 엘리트라서 얘가 고통받을 걸 알면서도 조직을 위해 남아주었으면 하거나.

나는 뭘 했냐고? 니가 이 조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건 뭐냐고? 미안하다. 없다. 나도 폐급이라 깝깝해하고 직접 당하다가 시간 다 갔다. 쏘가리새끼가 축구 족구 아예 안 한다고, 전술교육 받겠답시고 점프뛰려 한다고, 살로몬 신고 다닌다고, 멀티캠 장비 쓴다고 욕먹다가 시간 날렸다. 다이아가 아가리 털어서 바뀔 조직이었으면 진작 바뀌었겠지. 다 필요없고 내가 제일 문제다. 나도 나름 년차 좀 있는데, 전투기술 숙련은 커녕 이제 이론만 겨우 이해해간다. 씨~발. 이런 개폐급새끼가 군대 문제점 지적한다는 것도 사실 웃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가 뭐냐면,  본질을 추구하는 사람이 남아있어서다. 꽤 오래 전에 같이 술 먹었던, 전술 얘기 하다가 울먹울먹하던 그런 사람 떠올리면 못 나가겠다. 진짜 존경하는 선후배 동기들 악착같이 버티는 거 보면 죄짓는 기분도 든다.

바뀌고 있다는 신호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홀로 말단에서 노력하시던 분들이 위로 올라가고 있고, 체계가 개선되고 있으며, 결과물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어디고 누군지 말은 못한다만, 알 사람들은 알 거다. 대충 뭐 말하는지. 미약하지만서도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전을 보여준 팀도 있다. 예전에 모 팀이 훈련하는 걸 볼 기회가 있었다. 그 팀 하는 모습에서 육군의 미래를 봤다. 거기서 커리어 좆까고 한 10년 근무해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고민이 된다. 절이 좆같은 폐급 중은 절을 떠나야할까, 절에 남아서 주지스님이 되길 기다려야 하나.

존나 복잡하다, 가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