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8월 23일, 다낭 FOB 4, SOG 기지를 향한 월맹군 공병의 공격이 발생했다.
공격 중에 17명의 그린베레 대원이 사망했는데, 이는 특수부대 역사상 가장 많은 그린베레 사망한 사례이다.
공산군은 1년 이상 공격을 계획했다.
그들은 자정 직후에 FOB 4를 공격했고, 그때는 진급을 앞두고 100명 이상의 그린베레 대원이 기지에 몰리는 때였다.
또한 전날에 FOB 사령관 6명 모두와 정보장교, 작전장교들의 월례 SOG 참모 회의가 열렸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낭 공군기지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SOG C&C 대원들은 FOB 4로 옮겨져 본부 사무실 밖에서 작전을 펼쳤다.
1968년 8월, SOG의 비밀 전쟁은 4년 차를 맞이했다.
SOG 지휘부는 공산군이 SOG와 기지에 얼마나 깊숙이 숨어들었는지 알 수 없었고, 이는 다낭 남부에 위치한, 서쪽으로는 1번 고속도로와 동쪽으로는 남중국해가 있는, 마블 마운틴 중앙에 위치한 FOB 4도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북쪽에는 포로수용소, 그린베레 C팀 기지 및 기타 군부대가 있었다.
(1970년 FOB 4)
또한 당시 SOG 지휘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CIA가 3개의 개별 줄루/플래시 경고 메시지를 보냈고 공격 며칠 전, FOB 4 통신 본부에서 전신 타자기에 의해 수신되었다.
세 개의 메시지에는 두 단어만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메시지를 받은 세 명의 그린베레 통신병 중 두 명인 플로리다의 빌 바클리와 텍사스의 진 퓨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공격 임박.
바클리, 퓨 및 그날 밤 지옥에서 살아남은 다른 그린베레 생존 대원들에 따르면 세 메시지가 두 명의 고위 장교에게 무시당했다고 한다.
퓨는 최근 SOFREP 인터뷰 중 말했다.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겁니다. 월요일 밤(8월 19일), 우리는 사이공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현 위치에 대한 지상 공격이 임박했다는 것을 뜻하는 플래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잭 워렌 대령(FOB 4 기지 사령관)의 방으로 달려가 깨워서 소식을 전했습니다. 몇 분 후, 그는 TOC(전술 작전 본부)에 도착했고, 그곳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이 통지에 긴급성을 부여하지 않았고, 기지에 비상이 걸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날 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클리의 말에 따르면:
"통신 본부에 자기가 왜 어떤 공격도 걱정하지 않는지를 말해준 소령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CIA가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플래시 메시지를 일축했습니다.
1. 마블 마운틴 남부 마을은 미군에게 우호적이다.
무슨 소리인지 원...
사실과 조금 다른 것도 아니고 완전히 틀린 사실이었습니다.
마을은 베트콩 동조자, 베트콩 및 월맹군 공병뿐이었습니다.
2. FOB 4 남쪽과 마블 마운틴, 마을 동쪽에 배치된 해병대 제3 상륙장갑차 부대와 싸우지 않고서는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는 월맹군 공병의 침투 능력을 과소평가 수준이 아니라 아예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
3. (농담으로 말한 것이지만) 베트콩한테는 해군이 없다.
공격 당일 밤, 공병들은 현지 선박을 가지고 남중국해 북쪽으로 침투하여 FOB 4를 공격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하기 위해 우리 기지 북쪽의 포로수용소를 공격했습니다."
두 번째 메시지: "공격 임박"
1968년 8월 20일 화요일, "우리는 CIA로부터 기지를 향한 공격이 임박했다는 또 다른 줄루/플래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라고 퓨는 말했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저는 대니 웨스트 상사에게 이를 전했습니다. 대니는 워렌 대령에게 이 두 번째 메시지를 전했고요. 이번에도 시간은 약 2230이었습니다. 워렌 대령이 TOC에서 돌아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웨스트는 돌아와 자기 책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에도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1970년 이후 FOB 4의 사진. 습격 당시 기지는 이렇게 잘 되어있지 않았다. 정찰팀 구역은 오른쪽 상단에 있으며, 동서로 향하는 긴 건물 오른쪽에는 현지군 막사가 있다. 그린베레 정찰팀 건물은 오른쪽에 있는 작은 건물이다.)
여기에 바클리가 덧붙였다.
"워렌 대령은 부하들을 믿었습니다. 이번에는 베트콩/월맹군 능력과 전술에 대해 한심할 정도로 무지한 소령을 믿었을 뿐이었죠. 그는 정찰대원들로부터 존경받았지만 그와 같은 수준으로 대원들을 존중하지는 않았습니다. 슬프게도 저는 단지 그저 일병에 불과했고 그 양반은 소령이었습니다."
8월 22일 밤, 바클리는 FOB 4 신참이었고 여전히 기지와 통신 본부의 일상에 적응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정 근무가 시작되기 2시간 전에 도착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플래시 경고 메시지를 22시 30분에 받았습니다.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도, 당시 가장 우선순위가 높았던 CIA의 플래시/줄루 메시지였으며 '공격 임박'이라는 두 단어만 있었습니다."
그 당시 바클리는 통신 본부에서 근무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전에 두 개의 플래시 메시지에 대한 소령의 반응을 기억했다.
"저는 기지에 온 지 며칠밖에 안 되었고, 일병이었지만 상식적으로 이 경고가 심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본을 워렌 대령 앞으로 직접 가져갔습니다. 어떠한 일이라도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바클리는 통신 본부에서 백사장을 통해 장교의 숙소까지 직접 걸어가 워렌의 문을 두드렸다.
워렌이 문을 열자 바클리는 방해해서 미안하다며 사과로 시작했다.
그리고 바클리는 워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여 긴급함을 설명했다.
"완전히 당혹스럽게도 대령은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걱정마, 소령이 처리했으니까.' 저는 충격을 받았고 다시 통신 본부로 걸어갔습니다."
(1968년 8월~1970년 8월 SOG 사령관, 스티브 카바노 (전) 대령)
바클리는 일상처럼 통신 메시지 처리 업무로 돌아갔고, 피곤함에 지친 퓨는 막사로 돌아갔다.
퓨는 정찰 팀 임무를 기다리며 구석에 있던 방에서 잠들었다.
바클리와 퓨는 FOB 4를 가로질러 이동하던 중 월맹군 공병이 현지 대원 식당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적 공병은 이미 공격을 위한 최종 계획을 검토하고 있었다.
왜 인제야 이 이야기를 하는데?
44년 넘도록 바클리와 퓨는 이 세 메시지에 대한 정보를 홀로 묵혀두고 있었다.
통신 본부에서 아무도, 공격 후 몇 달이 지나서도 메시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클리는 "솔직히 오랫동안 비밀을 마음속에 간직해 두었습니다. 그 소령, 워렌 대령, 웨스트 외에 메시지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퓨가 말했다. "저도 빌과 같은 배에 탔습니다."
"워렌 대령과 웨스트는 사망했습니다. 그 소령이 살아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고요. 저는 그날 밤 지옥에서 살아남은 것이 기뻤습니다. 반면에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FOB 4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그의 오판에 언짢아야 할 사람이 여럿 있을 겁니다. 제가 그 메시지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SOG에서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들과 연락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메시지의 존재를 같이 증명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TOC의 누군가는 공격 후 해당 메시지를 파괴해야 했을 겁니다. 저는 그들을 다시는 보지 못했고 그날 밤 이후로 아무도 메시지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 SOG 기념품 수집가이자 SOG 정찰팀 역사가인 제이슨 하디는 퓨와 바클리에게 플래시 메시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볼 것을 제안했다.
"제이슨이 2년 전 SOAR(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특수작전협회 연례 모임)에서 진과 만나게 해주고 나서야 우리 둘 다 제이슨 앞에서 메시지에 관한 것을 일관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1968년부터 서로를 알고 지내온 두 명의 SOG 정찰병에게 있어서 초현실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그 이야기를 SOFREP에 공유하기로 동의했다.
SOG의 8년 역사 동안 4명의 사령관이 사이공에 있었다.
1968년 8월 초, SOG 대령 잭 싱글롭은 지휘권을 스티븐 카바노 대령에게 넘겼다.
싱글롭의 특수전 경력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전에 OSS에서 근무했고 2차 대전 중에 낙하산으로 적진 뒤에 침투해 프랑스 레지스탕스와 함께 싸웠다.
또 한국 전쟁에서도 특수 작전을 수행했으며 2년 동안 매우 존경받는 SOG 사령관이었다.
SOFREP과의 인터뷰 중, 싱글롭은 8월 23일에 다른 곳 배정됐고 FOB 4로 전송된 CIA 플래시 메시지에 대한 보고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카바노는 태평양 전선에서 제11 공수 사단이 되는, 제511 낙하산 보병 연대에서 복무한 매우 존경받는 장교였다.
제11 공수 사단은 레이테와 필리핀에서의 치열한 전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카바노는 두 번의 전투 강하에서 살아남았으며 한 개 이상의 퍼플하트를 받았다.
현재 93세인 카바노에게 SOFREP이 CIA의 경고 메시지에 관해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FOB 4에서 공격 이전에 3차례의 CIA 플래시 경고에 대해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저는 사령부에 처음 왔고 공격이 발생했을 때가 겨우 적응했을 시점이었습니다. 확실히 SF 역사상 가장 어두운 날 중 하나였죠."
8월 초에 사이공에 온 후, 카바노는 가족이 새 집에 정착하는 것을 돕고 SOG 작전 지원처를 방문하기 위해 필리핀으로 가기 전, 모든 FOB, 병참 중대 및 여러 주요 헬기 지원 사령부를 방문했다.
"저는 테러가 발생하기 이틀 전에 필리핀에 있었습니다. 제가 월남으로 돌아오자, 원사가 활주로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블 마운틴이 공격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제가 공격에 대해 처음 들었던 것입니다."라고 카바노가 말했다.
그는 즉시 다낭으로 날아가 브리핑을 받고 월맹군 공병이 FOB 4에 가한 대학살과 피해를 직접 보았다.
카바노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때 저를 가장 화나게 했던 것은 기지 뒤 남쪽에 있는 산이었습니다. 공격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 후에 월맹군/베트콩 네트워크와 산에 숨겨둔 다른 전쟁 물자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에도 참전했던 워렌 대령은 공격 전에 FOB 4 남쪽에 배치된 해병대를 매우 신뢰한다고 카바노에게 말했다.
"그날 밤, 공병들은 주요 목표인 FOB 4를 공격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해병대와 일절 얽히지도 않고 말이죠."
스파이크 팀 래틀러
또한 바클리와 퓨는 알지 못한 사실로, 스파이크 팀 래틀러는 마블 마운틴에 올라가 관측 및 청음 초소를 설치하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당시 부팀장인 래리 "갬블러" 트림블이 말했다.
트림블은 최근 SOFREP과의 인터뷰 중 "한동안 산에 팀이 없었기 때문에 첩보가 곧 일어날 일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라 말했다.
"저격수가 해당 지역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베트콩 또는 월맹군의 움직임을 관측하기 위해 OP를 설정했습니다."
트림블, 에드 에임스와 7명의 넝족이 ST 래틀러를 구성했다.
8월 21일 수요일, ST 래틀러는 마블 마운틴 남부의 작은 마을을 지나 산에 올라갔다.
작은 암붕 앞에 매우 가파른 지역이 있었고 팀은 두 곳에서 로프를 사용하여 정상에 도착했다.
ST 래틀러 대원들은 그 암붕에서 FOB 4, 남중국해, 해병대 기지, 일련의 5개 봉우리 속 작은 산에 위치한 작은 해병대 진지 두 곳을 볼 수 있었다.
(1968년 8월 23일 이전 ST 래틀러, 앞줄 왼쪽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이 래리 트림블)
다음날, 트림블은 암붕 꼭대기에 설정한 경계선 산악 지역 주변으로 4인 순찰을 돌았다.
산 전체에서 절 두 곳, 여러 개의 동굴, 오솔길을 찾았고 동굴로 내부로 통하는 오솔길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4시간 후 소규모 팀은 경계선으로 돌아왔다.
"적의 활동을 보지 못했고 적이 산에 있었다는 징후도 보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산에 적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팀은 주변을 확인하고 FOB 4 및 마블 마운틴의 작은 봉우리에 주둔하고 있는 몇몇 해병과 함께 통신 체크를 하며 남은 하루 동안 휴식을 취했다.
해병대는 진지 중 한 곳에 106mm 무반동총을 배치했다.
CIA가 FOB4로 3개의 플래시 메시지를 보낸 것에 대해 SOFREP이 전한 내용에 트림블은 놀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충격적인데요. 정말 놀랐습니다. 이전에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자체가 없었습니다. 충격이 말로 표현이 안 되는데 누가 말했다고요?"
바클리와 퓨의 인터뷰에 대해 알게 된 트림블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1968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47년 동안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을 알고, 그들을 믿고, 그들이 메시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지만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를 않는군요. 우리는 FOB 4로 매일 정기적인 통신 체크를 했습니다. 아무도 공격이 임박했다고 말하지 않았죠. 우리가 그걸 알았더라면 더 많은 탄약, 더 많은 조명탄, 더 많은 크레모아, 수류탄을 가지고 산에 올랐을 겁니다. 젠장, 충격적이네요."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