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에서 4명의 전우들과 함께 찍은 팻 왓킨스, 가운데에 있는 인물이 왓킨스이다)
종종 최악의 전투 중에 영웅이 백마를 타고 등장하는 법이다.
그리고 종종 조용하고 겸손한 영웅들이 해군 앰뷸런스를 타고 전투의 폭풍 속으로 뛰어들어 적 공병과 싸우며 미군과 현지 병사들의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1968년 8월 22일 자정, HM3 헨리 발렌티노 산토는 MAAG 16 동쪽, 1번 고속도로 건너편에 있는 NSA 해군 병원에서 12시간의 근무를 마쳤다.
당시 다낭 NSA 해군병원은 월남에서 가장 큰 후송 시설이었고, 산토의 말에 따르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전쟁의 절정기인 1968년 말까지 13,500명 이상의 사상자가 시설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해군 의무병으로서 산토의 1순위 임무는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치료를 하고, 환자들의 외과 치료를 준비하며, 현장에서 환자 후송 및 부상 우선순위를 분류하는 것이었다.
지친 산토와 동료 병사들은 시원한 맥주를 들고 태연히 남중국해를 바라보는 동부 벙커를 향해 걸어갔다.
산토는 SOFREP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남쪽에서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MAAG 16이 매일 밤 박격포와 로켓 공격을 당하는 건 익숙했지만 이번은 달랐습니다. 우리는 마블 마운틴 아래에 그린베레 기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우리가 아는 전부였습니다. 저도 한두 번 거기에 있었는데, 클럽 주크박스에 "Spooky"와 "Brown-Eyed Girl"이라는 노래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FOB 4에서의 사태는 갑작스럽고 끔찍했다.
벙커 위로 녹색 예광탄(적 화기)과 빨간색 예광탄(미군 화기)이 날아오자, 산토와 그의 술 친구는 재빨리 벙커에서 빠져나왔다.
갑자기 구급차가 나타났고 운전병이 산토에게 소리쳤다.
"발, 지금 빨리 가야 해."
1968년 발렌타인 데이에 막 스무 살이 된 산토는 무기고로 달려가 M-16, 탄띠(밴돌리어), 조끼, 헬멧, 어깨걸이 권총집을 챙겼다.
운전병이 기지 북서쪽 코너에 있는 FOB 4 게이트에 차를 세웠다.
"그때, 우리는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운전병이 '저희는 의료진입니다. 명령을 받고 배치된 겁니다. 열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곧장 진료소로 차를 몰고 갔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직 의료진은 사상자를 찾고 있었고, 모터 풀로 향했다.
1분도 안 되어서 구급차로 총격이 날아왔고, 산토와 운전병은 월맹군 공병과 총격전을 벌였다.
“제 M-16을 장전했습니다. 그 위치에 있던 적은 이미 여러 그린베레 대원들의 합동 노력으로 진압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영웅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생명을 구하고, 그 과정에서 내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해 거기에 있었을 뿐이었죠.”
그린베레 대원들은 계속 모터 풀로 향했고, 들것을 옮기던 대원과 산토는 따로 움직이기로 했다.
들것을 옮기던 대원은 해군 구급차에 두 명의 그린베레와 함께 탔고, 산토는 들것을 옮길 수 있게 만들어진 육군 지프 뒤에 올라탔다.
두 명의 그린베레가 앞에 있었고 중무장한 현지 대원 둘이 후드에 타고 있었다.
지옥으로 달려들다
그린베레 운전병은 사상자를 찾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FOB 4 위험지대로 향했다.
그리고 적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적을 제거했고 지프에 다시 탑승한 뒤, 부상당한 미군과 현지 대원을 발견했다.
산토가 말했다.
"우리는 부상자들을 찾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지혈하고 진료소로 다시 데려갔고, 그곳에선 그린베레 의무병들이 범람한 사상자들 속에서 부상 우선순위 정도를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산토는 다시 적의 공격을 받고 참호로 보이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잊지 못할 겁니다. 한 사람은 초록 베레모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흰색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저것 좀 봐, 신참이 들어왔구만.' 그런 다음 그들은 다시 M-60 기관총을 발사했습니다. 한 발도 빗맞히지를 않았죠.”
많은 부상자를 돌보면서 끊임없이 위험한 상황이 순식간에 펼쳐진 그 이른 아침의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었기에 산토는 1968년 8월 23일 아침의 기억이 대부분이 흐릿했고 오늘날까지도 그렇다고 말한다.
"일일이 우리가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냥 일할 뿐이었죠."
돌이켜 보면 몇 가지 파괴 공작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운 시점, 산토는 어깨 위에 총상을 입은 그린베레 병장을 치료하고 있었다.
웃통을 벗은 병장의 뒤에 산토가 있었고, 그때 어둠 속에서 엄청난 폭발이 발생했다.
적이 기지 전체에 프로판을 공급하는 LPG 탱크를 폭파시켰다.
"100야드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열 때문에 병장의 가슴과 피부에 1도~2도 화상이 발생했습니다."
산토의 얼굴은 "아침에 즉석 선탠을 한 것"처럼 되었고 그의 콧수염, 눈썹 및 머리카락이 약간 그을렸다.
“그 병장에 대해 정말로 놀랐던 점은, 그가 제게 요청한 것은 전투에 복귀할 수 있도록 처치를 해달라 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는 적군이 자신의 기지를 공격했다는 사실에 여전히 화가 난 상태였습니다.”
밤 중 언젠가, 그는 동료 대원 한 명을 잡동사니로 만든 들것에 싣고 이동하던 두 명의 그린베레 부상병과 마주쳤다.
“두 대원 모두 부상을 입었고 둘 다 충분히 후송될 수 있을 수준의 부상이었지만 둘 다 떠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부상당한 전우를 지프에 태우고 더 많은 부상당한 전우를 찾기 위해 떠났습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었다.
“두 명의 그린베레 부상병이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병사를 치료하고 있던 걸 도운 게 기억납니다. 머리에 생긴 부상을 치료한 후 진료소로 가서, 전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니요, 우리는 기지를 탈환할 때까지 여기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20세 꼬마였고, 월남에 온 지 두 달밖에 안 됐지만, 전투로 단련된 그린베레와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43년 동안의 미스터리
이후, 8월 23일 아침, 산토는 사상자들이 가득한 구급차를 타고 다낭에 있는 NSA 해군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36시간 내내 깨어 있는 상태로 부상당한 미군과 현지 군을 치료하고 있었고, 맞아가며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했다.
산토는 6인치 너비의 벤치를 발견하고 그곳에 누워 깊은 잠에 빠졌다.
"얼굴에 물이 부어지며 잠에서 깼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했죠. '이봐, 일어나. 할 일이 아직 산더미라고.' 헬기가 해병대 추가 사상자를 데리고 온 것이었죠. FOB 4 부상자들뿐만 아니라 해병대 부상자들의 부상 우선순위 분류를 위해 바로 일하러 갔습니다.”
이후 산토는 일상 업무로 돌아가 분류, 수술 준비, 치열한 LZ 속 부상병 후송, 남중국해에서 UDT 요원과 함께 해군 선박 습격 발생 후 수면으로 떠 오르지 못 한 시신을 수습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산토는 대학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주 코스타 메이사 소방국에서 31년 동안 근무하다 주 소방국장이 됐고, 현재는 전국의 다양한 소방기관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0년 또는 2011년경, 산토는 "NVA Through the Wire"라는 제목의 1994년 3월 자 솔져 오브 포춘지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를 읽기 전까지는 그저 그린베레 기지가 있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FOB 4, 일급 기밀 임무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기사를 여러 번 읽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날 밤 얼마나 많은 그린베레가 살아남았는가? 지금까지 있나?' 하는 것들 말이죠."
산토는 인터넷으로 몇 가지 조사를 했고 라스베이거스에서 SOA가 연례 모임을 개최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SOA는 SOG 임무를 수행한 그린베레 대원 출신들이 만들었고, 8년 동안 월맹,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작전을 수행한 그린베레, 씰, 포스 리콘, 공군 구조대, 그리고 지원을 맡아준 육군 해병대 공군 비행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2011년, 산토는 올리언스 호텔/카지노에서 열린 제35회 SOA 연례 모임을 위해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의 집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차를 몰고 갔다.
몇몇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FOB 4에서 온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몇 분 만에 1968년 FOB 4 있던 몇 명의 그린베레를 만났고, 산토는 1968년 8월 23일 습격 당시 누가 있었는지 물었다.
“기대됐습니다, 영웅이나 그런 칭호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요. 거기 있던 분께 말했습니다, 제가 그날 밤 그곳에 있었다고요.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더군요. '거기에 해군은 없었습니다.'라고요.”
(팻 왓킨스 하사)
그러나 몇 분 후 왓킨스, 로버트 J. '스파이더' 파크스, 조 '피그펜' 콘론을 소개받았다.
파크스를 제외한 모두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끔찍한 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산토는 그가 도움을 준 것을 기억하지만 결국 이름이나 행방을 알지 못했던 일부 그린베레 대원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다음 머리에 상처를 입은 병장을 언급했다.
머리에 부상을 입은 대원을 치료하던 그린베레 부상병 2명을 도왔다는 얘기를 꺼내자, 왓킨스는 산토가 로버트 L. 스컬리 중사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준 그 사람이라 말했다.
의무병인 스컬리는 부상병을 치료하던 중 수류탄에 중상을 입었다.
왓킨스는 말했다.
“저는 산토를 기억합니다. 산토와 다른 해군 병사들은 유니폼 위에 헬멧, 조끼, 부츠를 착용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죠. 폭발과 총성이 시작되었을 때, 대부분은 침대에서 바로 나왔기에 옷을 입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알다시피, 발렌티노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은 야전 병원이 우리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의미했죠. 그날 밤 그들이 얼마나 많은 그린베레와 현지 군을 구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헨리 발렌티노 "발" 산토)
“한 가지 확실한 건, 총격이 시작되면 사적인 경쟁 같은 건 모두 끝납니다. 우린 모두 공동의 적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잔인하고 치밀하게 계획된 공산군의 공격에 맞섰습니다.”
콘론이 덧붙였다.
“그날 밤은 광란 그 자체였고 초현실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 해군 병사들이 우리를 도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발렌티노와 이야기를 나눈 후 모든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발렌티노는 그날 밤 자기 막사에서 잠을 잘 수 있었지만 그린베레 대원들을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배짱이 없으면 못 하는 일입니다.”
이에 산토가 말했다.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저는 그날 밤 제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날 밤은 제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많은 경험 중 하나였습니다. 8월 23일 일출 이후, 수로를 따라 위치한 적에 의해 점거된 벙커를 공격하며 FOB 4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했습니다. 벙커가 진압되고 적이 사살되자, 우린 사상자를 인근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분류 구역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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