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5월, 나는 FOB 4에 도착했다.
나는 처음에 해칫포스 제2중대에 배치되었다.
나를 제외한 2중대의 모든 미군들은 1특전단의 TDY팀 출신이었다.
TDY 팀은 자기들만의 막사가 있었고,내가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1중대의 다른 중위 몇 명과 함께 정찰 중대 구역 남동쪽 모퉁이에 있는 막사에서 살았다.
2중대에 온 지 2달 정도 됐을 때, 6월 말~7월 초 쯤에 TDY 팀은 오키나와로 돌아갔고 저는 RT 파이슨에 1-1로 배치됐다.
내가 RT 파이슨에서 첫 임무를 수행했을 때, CCN은 정찰중대를 재편제했다.
파이슨의 1-0는 다른 곳에 배치되기까지 불과 일주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고 FOB 4 팀이 통합되고 있었기 때문에 파이슨은 비활성화되었고 나는 RT 코랄에 1-1로 배치됐다.
1-0(해처 하사)는 약 6주 뒤에 다른 곳으로 배치될 예정이었고, 그동안 나는 1-0직을 인계받기 위해 훈련을 받아야 했다.
(맨 왼쪽에 있는 인물이 포들라스키)
1-2는 포들라스키 병장이었다.
나는 RT 코랄과 함께 1-1으로 3개의 임무를 수행했고, 8월 중순에 해처는 다른 곳으로 배치, 나는 1-0로 승진했다.
일주일 정도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22~23일을 제외하고는 큰 사건이 없었다.
우리는 IA 훈련, 이동 훈련, 팀 장비 확인 등의 전형적인 훈련을 했다.
22일, 훈련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식당으로 갔다.
포들라스키와 나는 팀원들(신참인 나와 다르게 포들라스키는 약 4개월 동안 팀에 있었기에 팀원들과 매우 친했다), 잠재적인 향후 임무 및 팀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 식사 후 포들라스키는 포커 게임을 하러 갔고, 나는 식당에서 나오던 중 사람들이 영화 상영을 준비하고 있길래 "극장"(식당 북쪽에 있는 벤치)으로 갔다.
영화는 '인 콜드 블러드'였다.
책으로는 읽었지만 영화는 본 적이 없어 보기로 결정했다.
영화 마지막 순간에 페리가 교수대에 목이 매달렸고, 죽기 직전의 심장 박동과 "쿵"하며 매달린 이후의 침묵만이 그 장면의 유일한 사운드였다.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었고 단 몇 시간 뒤의 예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막사로 돌아갔을 때 제프 풀렌, 데이브 카, 론 크래브, 그리고 다른 누군가(아마 필 바우소일 것이다)가 피노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반대편으로 가서 밥 블래더윅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후 피노클은 중단되었고 모두가 침대로 가 잘 준비를 했다.
제프와 나는 소변을 보러 나갔고 해병대가 남쪽과 북쪽으로 매우 많은 조명탄을 쏘는 것을 보았다.
북쪽 MCAS를 향해 적지않은 폭발음이 들렸다.
제프는 "해병대가 제대로 큰 거 걸렸나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고 우리는 취침을 위해 막사로 돌아갔다.
내 침대는 막사 중앙 칸막이에 수직이 되게 놓여있었다.
그리고 CAR-15와 웹기어를 바로 챙길 수 있도록 침대 위에 못을 박아놨다.
침대 왼쪽에 군화를 뒀고, 셔츠와 바지는 내 총와 웹기어 바로 왼쪽에 있는 못에다 걸어놨다.
하루 동안 훈련을 잘 했고 팀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별일 없이 저녁을 보내자, 나는 모든 것이 괜찮다 생각하고 우리 팀 작전 목표 할당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이후 매우 큰 폭발이 일어났다.
나중에 그 폭발이 우리 옆 막사에 던져진 배낭 폭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폭발은 몇 차례 더 이어졌다.
소화기 총성을 못 들어 박격포 포격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즉시 침대에서 나와 바지를 입고 군화를 신은 다음, 웹기어와 CAR-15를 잡고 뒷문(동쪽)으로 향하여 해변을 따라 난 할당된 수비 위치로 가려고 했다.
내가 칸막이를 지나 다른 쪽으로 갔을 때 론 크래브가 내 뒤에 있었고, 우리가 뒷문에 도착했을 때는 제프가 크래브 뒤에 붙어있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수비 위치로 향할 예정이었다.
내가 맨 처음으로 문 밖으로 나갔다.
완전히 어두웠지만 FOB 4의 백사장 덕분에 다른 물체와의 대비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문 밖을 확보한 순간, 내 시야 오른쪽 구석에 막사 모퉁이에 있는 현지인이 들어왔다.
기지에 500명 이상의 현지군(넝족과 몽타냐드)이 있었고 수비 위치로 가고 있던 현지군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0.5초 정도 주춤한 사이, 총구 섬광을 보았다.
현지군인줄 알았던 월맹군이 연발로 나를 향해 쐈다.
초탄은 배에 맞았고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갔다.
그 충격으로 나는 몇 바퀴 돌았고, 머리가 막사 계단을 향한 채 쓰러졌다.
월맹군은 왼쪽으로 이동하며 계속해서 총을 쐈고, 계단에 있던 크래브가 총에 맞았고, 그를 뒤로 밀쳐냈다.
크래브는 막사 안으로 엎어졌고, 동시에 제프가 나오지 못하도록 막사로 밀어 넣었다.
나는 완전 화가 났다.
순간 든 생각은 내가 아군 중 한 명에게 총을 맞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아직 월맹군임을 알지 못 한 나는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개새끼야. 난 미군이라고!"
그는 날 다시 쐈다.
이번에는 팔을 맞았고 나는 다시 쓰러졌다.
정말 속이 뒤집어지는 듯 했다.
저게 아군이든 적군이든 난 그 새끼를 쏘려고 했으나 다시 총에 맞아 쓰러졌다.
이번에는 견갑골 바로 아래를 맞았다.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뒤통수를 맞았고 다시 모래 위로 쓰러졌다.
한 번 더 일어나서 이 쏘려고 시도 했지만 이번에는 목 뒤를 맞았다.
그제서야 마침내 깨달았다. 그 놈은 내가 미군인것을 알고 있기에 날 계속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명백한 결론에 도달했다. 만약 내가 일어나려는 것을 그만두면 쏘는 것도 멈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머리가 그 놈을 향하도록 가만히 누워 있었다. (모든 일이 약 10~15초 안에 일어났다.)
그 놈은 걸어와 내 머리에 발을 올리고 섰다.
나는 그 놈을 볼 수 없었지만, 날 죽이려 총구가 내 머리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때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에 이르렀다.
설명하거나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지만 그걸 겪어봤다면 아마 전부 이해할 것이다.
순간 그 놈의 맨발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죽는다는게 이런거구나."
동시에 '인 콜드 블러드'의 마지막 장면 속 페리의 마지막 심장 박동 같은 것이 느껴졌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침묵 뿐이었던 영화의 마지막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무 고통도 없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는 평온에 완전히 놀랐다.
정확히 그 순간에 막사에서 큰 소란이 일어났다.
공병은 나를 무시하고 돌더니 막사 문으로 전자동으로 총알을 뿌렸다.
손을 맞은 제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닥에 있었던 것 같았다.
탄창을 비운 후 공병는 아무렇지도 않게 막사 남쪽 모퉁이로 걸어가 탄창을 갈아끼웠다.
공병이 모퉁이에 도착하자 뒷문을 보게 돌아선 다음, 무릎을 꿇은 것을 보았다.
한편 막사에서, 제프와 다른 사람들은 크래브를 봐주고 있었다.
크래브는 대퇴동맥을 맞아 출혈이 심했다.
30초~60초 후에 밥 블라더윅이 문으로 왔다.
밥은 나를 데리고 오려 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 속삭임"을 사용하여 "바비, 나오지 마!"라고 말했다.
밥은 걸음을 멈추고 문에 쭈그려 앉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트래비스?"
나는 말했다; "그 새끼 지금 건물 코너에 있고, 네가 오길 기다리고 있어."
밥이 몸을 기울여 남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다른 모래주머니에 비해 3개 정도 더 쌓인 모래주머니 보여?"
"어 보여."
"쏴!"
밥이 말했다. "그냥 냅다 모래주머니에다 쏘라고?"
이에 큰 소리로 말했다. "씨발놈의 모래주머니에다 쏘라고!"
"알았어, 알았어."
밥은 문밖으로 몸을 내밀고 모래주머니 가장자리를 향해 M-16을 쐈다.
밥이 총을 쏘자 나는 일어나서 내 CAR-15를 잡고 다시 막사로 돌아갔다.
(나중에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 총알이 공병의 이마를 관통했다고 들었다. 밥이 방아쇠를 당겼을 때 공병은 바로 총구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막사로 돌아온 후 제프는 내가 괜찮을 것이라고 계속 안심시켜 줬다.
제프가 내가 살아남을 것을 확신시켜 줬을때 고통이 크게 느껴졌다.
이때 제프에게 "풋사과 한 다발을 다 먹어 본 적 있어?"라고 물었다.
"젠장, 존나 아파!"
그러다 갑자기 "쏘지마, 우리 들어간다!"는 소리가 들렸다.
정문(서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찰리 파이퍼 대위였다.
"조그만 개자식들이 사방에 다 있어." 찰리가 말했다.
"총이 작동이 안 되는데, 총 좀 줘." 나는 찰리에게 내 CAR-15를 주었고 찰리는 나에게 9mm 브라우닝을 줬다.
내 총과 함께 찰리는 다시 정문으로 나갔다.
누군가가 "당장 막사에서 벗어나야 해."라고 말했다.
우리 막사 뒷문(동문)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박격포 구덩이가 있었다.
우리는 박격포 구덩이로 달려갔다.
구덩이에는 조명탄을 쏘고 있는 두 명의 부사관이 있었다.
구덩이 속에서, 제프는 포탄에 장약을 달아 나에게 넘겼고 나는 그걸 포수에게 넘겼다.
부사관 중 한 명이 압박 붕대를 찾았고, 내 부상의 지혈을 위해 복부에다 붕대를 감았다.
그때 오른손에 감각이 없고 움직이는데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팔을 관통한 총격으로 인해 일부 신경이 절단된 것이었다.
검지와 엄지는 사용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손가락은 안 움직였기에 왼손으로 포탄을 넘겼다.
잠시 뒤, 밥 블라더윅이 지프차를 타고 나타나 크래브를 데리고 진료소로 향했다.
밥은 떠나며 "트래브, 나중에 데리러 돌아올게."라고 말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조명탄을 쐈고, 얼마 후 밥이 돌아왔다.
나는 지프차에 탔고, 떠나기 직전에 밥은 구덩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조명탄 계속 쏴줘. 망할 놈들이 헤드라이트를 쏴서 내가 앞을 보려면 그 방법 뿐이야."
기지를 지나는 것은 마치 초현실적이었다.
구 TOC는 문자 그대로 찌그러졌고, 불 타오르는 잔해 더미였다.
여러 건물 주변에서 산발적인 총격이 일어났고, 건물이 불 타오르고 있었으며 낙하산에 매달려 흔들리는 조명탄으로 그림자들이 기이하게 춤추고 있었다.
내가 타고 있던 지프 주위로 몇 번 총알이 날아왔지만 다행히 진료소로 도착할 수 있었다.
밥은 지프를 미끄러지듯 세웠고, 내가 차에서 내리자 "트래브. 몸 조심하고 나중에 다시 만나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비는 더 많은 부상자를 찾기 위해 다시 어둠 속으로 지프를 몰았다.
진료소 내부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의료진 중 한 명이 나를 확인하고 큰 에이스 붕대 같은 유형의 탄력 붕대를 감았다.
환부에 대한 압박은 실제로 출혈을 늦추고 통증을 다소 완화했다.
의료진들은 나를 "대기실"에 보내 뒷문을 지키라 말했고 그들이 가능한 한 빨리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나보다도 의료진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봐주러 가야만 했다.
나는 의자 두 개를 밀고 그 위에 누워 뒷문을 지켜보았고,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 한 꽤 편안했다.
그동안 본 사람 중 제일 심각했던 사람 중 한 명은 스컬리였다.
스컬리는 선임 의료진 중 한 명이었고 두개골을 맞았다.
의무병들은 스컬리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때 의무병 중 한 사람이 "빨리 병원에 안 데려가면 스컬리는 죽을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또 다른 사람은 "구조 헬기가 여기까지 오기엔 여기 상황이 너무 위험해. 다른 옵션이 있어?"라고 말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구급차 있는데 해군 병원으로 데려갈 수는 있을거야. MCAS로 가는 길은 어때?"
"아예 확보되지도 않았지만 그게 유일한 선택지야."
이에 의무병 중 한 명이 자원하여 구급차를 운전하기로 했다.
의무병 중 한 명이 내게 와서 스컬리를 병원에 데려갈건데 조수석에 탈건 지 물었다.
"응. 가자."
의무병들은 스컬리와 두어 명의 중상자를 뒤에 실었고, 운전은 의무병이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나는 의무병에게 내 9mm를 주었고 그의 M16을 받았다.
우리가 게이트 나서자마자 의무병은 나를 보며 말했다.
"제발 이 구닥다리 구급차 하나 공격한다고 정성들인 매복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우리는 3마일되는 병원까지의 여정을 위해 게이트 밖에서 우회전했다.
나는 그 의무병의 이름이나 군에 오기 전에 뭘 했는지 모르지만 나스카 드라이버도 자랑스러워 할 운전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된 구급차가 그렇게 빨리 갈 수 있다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우리가 길을 달리던 중 구급차가 몇 발 맞았만 탑승객은 전원 무사했다.
이제 내 가장 큰 관심사는 MCAS의 해상 검문소/로드블록이었다.
해병대가 어둠 속에서 자기네들을 향해 질주해오는 차량에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매일 밤 장애물이 설치되고 도로가 폐쇄되어 교통이 좋지 않다는건 확실했다.
우리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의무병은 표시등을 깜박이기 시작했고 나는 창문으로 몸을 내밀어 최대한 큰 소리로 말했다. "미국인! 미국인!"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해병대는 우리를 향해 발포하지 않았다.
잠시 정차한 후 그들은 우리를 통과시켰고 이 이후로는 별일 없었다.
사람들은 바로 스컬리와 다른 중상자들을 응급실로 데려갔다. (나중에 스컬리와 다른 사람들 모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료진들은 나를 확인했고 출혈이 거의 통제되는 수준이기에 수술실에 들어가려면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차례를 기다리며 받침대에 올려진 들것에 누워있었다.
가만히 있는 한 그렇게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몇 시간을 보냈고 날이 밝자 점점 더 많은 부상자들이 도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 중 한 명이 사상자가 너무 많아 나를 몽키 마운틴 병원으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와 다른 5명이 해군 헬기를 타고 몽키 마운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도착하자마자 다시 부상 정도 분류를 받고 기다렸다.
다시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수술실로 갈 차례가 왔다.
수술실로 들어간 다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회복 병동에 있었다.
배 대부분이 붕대로 감겨 있었고, 오른팔은 삼각건으로 가슴 앞에 고정되었고, 등과 목도 붕대로 감겨있었다.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지난 몇 시간 동안의 사건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우울감이 들었다.
왼손만 쓸 수 있었고, 내 몸에 감긴 붕대를 보면서 "왜 나야?",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거지?" 같은 자기 연민에 빠졌다.
자기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을 무렵, 내 인생에서 가장 심오한 경험 중 하나를 경험했다.
의료진들은 수술실에서 젊은 해병을 끌고 나와 회복실에 있는 내 옆에 두었다.
마취에서 깨어나면 온갖 난폭한 대화, 고함, 때로는 싸움을 겪게 된다.
이 젊은 해병은 이 모든 난동을 직접 보여주며 "적이 철조망을 넘고 들어왔다! 벽을 넘어오고 있다!"라고 소리를 쳤다.
해병은 소란을 피우는 동안 이불을 걷어찼다.
이불 밑에 숨겨진 그의 몸은 오른팔은 팔꿈치 바로 위만 남아있었고, 한 쪽 다리는 무릎 바로 아래만, 다른 한 쪽은 무릎 바로 위로만 남아있었다.
순간 할머니가 해주신 얘기가 생각났다.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난 이후로 신발이 없다고 불평 한 적이 없었다."
그 순간 우울감이 사라졌고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깨달았다.
치료를 받고 기지로 돌아가 다시 싸우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 젊은 해병의 이름이나 그에 관한 어떤 것도 모르지만 그 친구가 어떤 고난을 겪을지 매일 생각이 들었다.
그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그의 건강을 기원한다.
그때 어떤 직원이 내 눈치를 보며 다가와 부상자가 계속해서 오고 있기에 나는 병원선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와 다른 몇 명은 들것에 실려 해병대 헬기를 통해 USS 생츄어리로 옮겨졌다.
그곳은 이후 31일 동안의 내 거주지가 되었다.
USS 생츄어리에서 며칠 머무르며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게 되었다.
의사는 내 상처와 치료 계획을 설명했다.
위장 부상이 제일 큰 문제였다.
나는 문밖으로 나와 옆에서 공격을 당했기 때문에 탄환이 오른쪽으로 들어가 피하를 뚫고 배를 가로질러 왼쪽으로 빠져나갔다.
모든 위 근육을 완전히 찢었지만 거리가 매우 가까운 곳에서 쏴, 탄이 안정적인 상태였기 때문에 위벽 전체에 "화상" 자국만 있었다.
위장을 관통하진 않았기 때문에 박테리아 감염, 위산 유출 등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난 감염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팔은 깔끔한 관통상이 있었다.
대부분의 신경 조직이 파괴됐고 오른손을 계속 제한적으로 써야 할 것이었다.
총알은 뼈를 2mm를 남기고 빗나갔다.
뼈에 맞았다면 아마 팔이 잘렸을 것이고 출혈 쇼크 때문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견갑골 상처는 그다지 깊지 않았는데, 위장을 맞았을 때와 같은 이유로 공병과 내가 가깝게 있어서 주로 근육과 조직 손상 위주였다.
목에 발생한 부상은 불과 몇 mm를 두고 척수를 빗나갔다.
분명히 척수에 맞았다면 엄청난 중상이었겠지만, 꽤 심한 조직 손상에서 그쳤다.
의사는 내가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배 위에서는 할 일이 별로 없어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공병이 나를 죽이지 못 한 것에 대해 생각했고, 두 가지 요인이 그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 10피트도 안 되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쐈고, 둘째, 연발로 총을 쐈다.
우리 모두 소총을 쏘면 탄이 높게 뜬다는 것을 알고 있다(영점 거리 얘기).
나는 공병이 총을 발사했을 때 초탄만 높게 뜬 상태로 간신히 나를 맞췄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연발로 쐈기에 반동으로 AK가 들렸고 후속탄은 아예 나를 맞추지 못 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해군은 병원선 체류를 31일로 제한하고 있었다.
31 이후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임무 복귀 또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
모든 상처가 잘 아물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오른팔 신경 손상과 오른손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기지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31일째가 다가오면서 나는 계속해서 의사에게 복귀 승인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재활을 위해 나를 일본으로 보내려고 했다.
몇 주 동안 테니스 공을 꽉 쥐며 필사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나는 검지와 엄지를 거의 다시 쓸 수 있었고 방아쇠를 당기는 데 필요한 전부이니 복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의사에게 보여주었다.
의사는 "당신처럼 완고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게 당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라면 해주겠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USS 생츄어리는 다낭 항구로 들어왔고, 체류가 끝난 사람들을 롱보트에 싣고 선착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나는 MCAS로 향하는 해병대 트럭을 발견하고 차를 탔다.
FOB 4는 도로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일단 MCAS에서 내린 후 남쪽으로 걷기 시작했고 곧 그쪽으로 가는 트럭을 탔다.
트럭은 나를 정문에서 내려주었다.
생츄어리에 있을 때 내 유일한 옷은 피 묻은 환자복 뿐이었다.
하지만 생츄어리에서 나올 때 해군은 나에게 "당가리" 작업복 세트를 줬다.
게이트의 경비병은 정문에 나타난 이상한 선원을 보고 의심을 했을 것이다.
나는 겨우 경비병에게 TOC를 불러달라고 설득했다.
누군가가 연락를 받자 나는 최선을 다해 큰 목소리로 "중위 트래비스 밀스, 임무에 복귀합니다!"라고 말했다.
몇 분 후 게이트로 중위가 왔고, 식당으로 데려갔다.
점심 식사 시간이었고 씁쓸한 환영이었다.
옛 친구들을 만났고 어떤 친구들이 사라졌는지 알게됐다.
내 옛 정찰 막사는 이제 새로운 사람들이 차지했고 내 모든 물품은 미국으로 다시 배송되기를 기다리는 풋락커에 들어있었다.
그날은 방문객 막사에 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다음날 나는 인사장교와 작전장교에게 가서 팀에 복귀하고 원래 임무에 복귀하는 방법을 알아보았지만 인생은 또 다른 계획이 있는 법이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원제로 스쿨 이야기로 돌아옴
개추 글에서 일부분 퍼가서 글써도 됨? 출처는 링크 달아둘꺼
출처만 있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