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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G의 비밀학교 원제로 스쿨 (3)전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16358 SOG의 비밀학교 원제로 스쿨 (2) - 워리어플gall.dcinside.com나는 긴장하며 그의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는 매우 침착하고 다정했다.
그는 나에게 앉으라고 손짓하고 "아버지 같은" 어조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네 심정은 이해해. 나도 한때 젊은 중위였고 다시 임무로 복귀하고 싶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쿼터백이나 스타가 될 수는 없잖나.
누군가는 옆에서 블로킹을 해줘야지.
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여단을 지휘하며 욕설이나 퍼붓고 있었을테지.
하지만 내 위의 누군가가 이번 파병 중 참모 업무를 할당했고.
직업 군인으로서 내 임무는 가능한 한 최고의 참모 장교가 되어 내 윗사람들을 지원하는 거야.
자네가 이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이 블로커가 돼야 할 순간일세.
이제 자네의 임무는 원제로 스쿨을 이 나라 최고의 학교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자네와 교관들은 교육생들에게 적어도 파병에서 살아남을 기회를 줄 기술을 제공할 책임이 있어."
그는 일어서서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는 "이제 기지로 돌아가서 최고의 블로커가 돼라."라고 말했다.
나는 경의를 표하며 "감사합니다. 대령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지로 돌아가던 2시간 30분 동안 적어도 내 마음만이라도 시속 500마일로 달리고 있던 것 같았다.
존슨 대령이 누군가는 블로킹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우리(원제로 스쿻 교직원)가 교육생들에게 가능한 최고의 훈련을 제공하여 적어도 50대50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 것을 계속 반복하여 떠올렸다.
내가 처음 RT 파이슨에 갔을 때를 떠올렸고, 그때 나는 정찰 교육이나 경험이 거의 또는 전혀 없이 실전에 던져졌다.
나는 몇 달 동안 월남에 있었던 경험과 일부 해칫포스 임무 경험과 클럽에서 1-0들이 떠드는 이야기에 참석한 경험뿐이었다.
우리가 받은 교육생들은 주로 첫 파병이자 첫 월남 파병이었다.
FOB는 팀이 계속 현장에 있게 하기 위해 열심히 몰아붙였고 팀은 연속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이 교육생들은 FOB로 돌아온 후 일주일 이내에 첫 임무를 수행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교육생들에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라는 존슨 대령의 말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왜 나인가"라는 질문이 내 마음을 맴돌았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모든 이들이 때때로 "다른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했는데 나는 어떻게, 왜 살아남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리라 굳게 믿는다.
8월 23일의 사건 이후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나는 왜 살아남았고 내 목적은 무엇인가?"
8월 23일의 사건뿐만 아니라 2000피트 상공에서 헬기에 거꾸로 매달린 사건도 있었다.
또 다른 상황은 내가 병원선에서 FOB 4로 돌아온 후 투미 소령과 함께 작전장교로 일하고 있었고 롱탄 배치에 선택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와 함께 헬기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새뮤얼 투미 소령은 11월 30일, 엘디스트 선 프로그램 물품을 운반하던 중 헬기가 피격당해 사망했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확실한 의문은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인가?"였다.
나는 좋은 강의 기술과 함께 좋은 관리 및 조직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나와 다른 교관들은 모든 FOB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최선을 다해 이 학교를 운영하여 전체 작전의 성공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우리가 기지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곳을 월남 최고의 개쩌는 학교로 만들겠다는 새롭고 완전한 약속을 가졌다.
나는 그날 밤 잘 잘 수 있었다.
며칠 후 세 번째 교육생들이 도착했다.
새로운 열정과 함께 모든 직원이 본격적으로 다시 나섰다.
세 번째 수업은 매우 순조로웠고 우리는 새로운 이동식 통신/작전 본부와 함께 FOB 2로 이동했다.
매우 잘 작동됐다.
팀도 임무를 아주 잘 해냈다.
몇 팀이 적과 조우했으나 모두 부상 없이 임무를 완수했고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자신감을 가졌다.
교육생들의 가장 크게 흥분한 부분은 "IA 드릴이 정말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교육생 팀은 모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즉각적이고 잘 협조 된 대처로 적 부대를 완전히 압도하고 즉시 접촉을 끊고 도망칠 수 있었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전통적인 "졸업식"을 가졌고 모든 사람들이 블랙버드를 타고 각자의 FOB로 돌아갔다.
우리는 기동 통신/작전 본부 때문에 롱탄행 전용 블랙버드 C-123이 있었다.
롱탄으로 비행하는 동안 모든 교관과 지원조 직원들은 팀의 성과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했다.
교관 중 한 명은 우리가 이 교육생들과 그들의 생산적인 팀원이 되는 능력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에 큰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기지에 다시 도착하자 우리가 없는 동안 스마더스 소령의 순환근무가 끝났고 폰질로 소령이 이제 기지 사령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전만큼 원제로 스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학교의 강력한 지지자였으며 그것이 기지 전체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라고 느꼈다.
교관들은 이에 상승된 분위기를 보였고 다음 수업을 기대했다.
교관들은 이제 SOG의 전반적인 임무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학교에 기간직으로 있다는 것에 처벌이나 추방이라고 느끼지 않게 됐다.
또한 학교는 비교적 빠르게 팀에 녹아들 수 있는 우수한 졸업생을 제공함으로써 FOB로부터 신용을 얻고 있었다.
4번째 수업 또한 문제 없이 아주 잘 진행되었다.
다시, 우리는 기동 통신/작전 본부와 함께 팀 미션을 위해 FOB 2로 이동했다.
임무는 5개의 팀으로 진행됐고 그들은 모두 매우 잘 해냈다.
4번째 수업에서 돌아오자 폰질로 소령은 다음 수업에 변경 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SOG는 오키나와에 있는 1특전단의 일부 TDY 인원에 의해 보강될 예정이었다.
28명의 교육생이 있을 것이고 대부분은 이전 파병 경험이 있는 SOG 베테랑이었다.
대부분 베테랑이었지만 SOG 본부는 그들이 FOB에 가기 전에 일주일의 재교육 과정을 갖기를 바랐다.
이들은 4일 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스네이크 바이트 1의 담당관인 워레잉 대위와 텔렉스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워레잉 대위는 재교육에 포함되어야 하는 과목 영역에 대해 조언했고, 우리는 일주일 수업 과정을 재설계했다.
그들은 블랙버드 C-130을 타고 정시에 도착했다.
여러 차례의 파병과 5특전단과 SOG까지 경험한 베테랑임에도 배움에 열정적인 교육생들이었다.
정말 좋은 한 주 동안의 훈련을 마친 후 각자의 FOB로 재배치해줄 블랙버드까지 그들을 데려다주었다.
스네이크 바이트 1이 떠난 후 다음 수업까지 약 10일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FOB 4로 돌아갈 기회를 잡았다.
처음에 롱탄으로 보내졌을 때 투미 소령은 FOB 병력 보강을 위해 2~3회차의 수업만 실행하고 FOB 4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잠깐만 롱탄에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개인 장비를 FOB 4에 두고 왔다.
존슨 대령 이후로 폰질로 소령과 살벌한 대화를 나눈 후 FOB 4로 돌아갈 희망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나 개인 물품을 가지러 잠시 돌아가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모든 개인 기록도 여전히 FOB 4에 있었다.
교관 중 한 명인 제임스 (짐) 헤트릭 중사도 FOB 4에서 몇 가지 인사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함께 갔다.
FOB 4에서 CCN 사령관 아이슬러 중령 이야기를 나눴고(내가 롱탄에 있는 동안 OP 35는 FOB를 CCN, CCC, CCS로 재구성했다) 나는 FOB 4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에게 말했다.
"누군가는 블로킹을 해야한다" 연설의 반복일 뿐이었다.
중령은 우리가 학교에서 잘하고 있고 모든 FOB 사령관들은 존슨 대령으로부터 여전히 사상자가 많고 양질의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교가 계속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고 들었다.
또한 내 파병 만료일이 몇 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FOB로 돌아와도 나를 정찰팀에 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험이 풍부한 대위로서 내가 1-0이 아닌 다른 곳에서 훨씬 더 가치 있는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솔직함에 감사를 표했고 원제로 스쿨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나는 클럽에 가서 오랜 친구들을 만났고, 지금은 현역 팀 멤버가 된 학교 졸업생들을 만나고, 내 물품을 확보한 다음 헤트릭 중사와 합류하여 다낭 비행장으로 가 롱탄행 에어 아메리카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다.
나는 폰질로 소령에게 아이슬러 중령과 나눈 대화에 대해 말했다.
이전에 존슨 대령과 이야기를 나눴으며 내가 롱탄에 남을 것을 요청했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파병 만료일까지 롱탄에 머물 예정이었다.
한편 우리는 SOG 본부로부터 FOB 2가 다음 팀 임무와 일정 충돌이 있기에 누이닷(붕따우 바로 북동쪽)에 있는 호주 SAS 3스쿼드론 AO에서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소식을 받았다.
나는 항공 지원, 포병 지원 등을 위해 SAS 작전과와의 조정을 위해 다음 주를 통째로 써야만 했다.
훈련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4개 팀은 무사히 AO에 투입되었다.
예정된 퇴출 직전까지 3일간의 임무 동안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불행히도 이번 회차에서 KIA 1명과 WIA 2명이 발생했다.
다음 수업에서도 FOB 2에는 일정 충돌이 있었다.
워레잉 대위(스네이크 바이트 1)은 달랏에서 특별 프로젝트의 연락장교로 있었고 그곳의 AO에서 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물었다.
SOG는 허가해주었고 우리는 이번 수업을 위해 달랏에 갔다.
모든 훈련과 팀 임무가 잘 흘러갔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달랏 비행장에서 FAC 항공기를 타고 코비 라이더로 있었다.
매우 울창한 정글 지대로 인해 이 그룹은 모든 FAC 작전에 두 대의 항공기가 필요하다는 SOP를 가지고 있었다.
한 대의 항공기가 추락하면 보통 두꺼운 캐노피를 뚫고 떨어졌고, 그 뒤에 캐노피 구멍이 사라지며 추락한 항공기를 볼 수 없었다.
두 번째 항공기는 추락 항공기의 지점을 표시하기 위해 상공에 머물렀다.
둘째 날, 우리는 팀을 확인하러 나갔고 나는 선두 항공기에 탔다.
우리는 그날 O-1을 타고 있었다.
파일럿은 이륙하기 전, 절반 정도의 연료를 실었다.
우리는 약 한 시간 동안 있었고 나는 4개 팀 중 2개 팀의 보고를 받았다.
그때 갑자기 엔진이 삐걱거리며 소음을 내더니 그냥 멈춰버렸다.
우리는 약 2,500피트에 있었고 O-1은 좋은 활공비를 가지고 있기에 파일럿이 반응할 시간이 있었다.
파일럿은 다시 시동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작동하지 않아 연료 탱크를 교체하고 다시 시도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다시 시동이 걸렸다.
털털거리며 소음을 내더니 다시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시 정상 고도로 올라가자 파일럿은 다른 항공기에 연락하여 우리는 복귀할 것이고 작전 본부에 연락하여 대체 항공기를 보내겠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파일럿에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물었다.
파일럿은 지난 몇 달 동안 아무 일 없이 잘 운행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비행장에서 약 10마일 떨어진 곳에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갑자기 엔진이 다시 털털거리기 시작했다.
파일럿은 연료 혼합물을 조정하기 시작했고 조금 상황 해결에 도움이 됐다.
그 무렵 우리는 관제탑이 이륙을 위해 대체 항공기에게 허가를 내리는 것을 들었다.
파일럿은 관제탑에 연락하여 비상선언을 하고 바로 착륙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다.
관제탑은 착륙을 허가해주었고 우리 시야에 비행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엔진에선 털털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심하게 나고 있었고 역화까지 발생했다.
우리는 약 2마일 밖에서 비행장 쪽으로 떠다니는 큰 폭풍운을 확인했고 약 1마일 밖 지점에서 폭풍운 속으로 진입했다.
폭풍 속으로 들어가자 항공기 비상 신호음이 울리는 것이 들렸다.
관제탑에서 무전을 보내며 "착륙 불허"까지 할 수 있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비행장까지 비행 자체가 안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파일럿은 회항은 불가능하다 말했고 우리는 곧장 들어가야 했다.
달랏 비행장은 큰 언덕 꼭대기에 있으며 거의 모든 면에 가파른 경사가 있었다. 따라서 저고도로 접근하면 언덕에 부딪히게 되고 추가로 비행장 주위에 8피트의 펜스가 쳐져 있었다.
우리는 약 0.5 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엔진이 완전히 멈추고 날개 끝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헤드셋에서 비상 신호음이 계속 울렸다.
파일럿은 우리가 언덕 측면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이라고 말했다.
파일럿은 온 힘을 다해 조종간을 꽉 쥐었다. 우리는 언덕 가장자리를 넘었지만 꼬리 바퀴가 펜스에 걸렸고 앞바퀴가 활주로에 부딪히며 두 타이어가 모두 날아갔지만 전방 랜딩 기어가 스프링처럼 작용해 기수가 튀어 올랐고 우리는 활주로에서 오른쪽으로 6피트 떨어진 지점에서 멈췄다.
비상 신호음과 날개를 두드리는 빗소리 외에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그때 파일럿이 말했다. "걸어서 나갈 수만 있다면 좋은 착륙이지."
진심으로 동의했다!
한편 구급대원은 대체 항공기가 이륙 중 추락했다고 비상사태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 전날 밤 재보급 유조트럭을 운전하던 신병이 실수를 저질렀고 연료 블래더를 JP4로 채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내가 타고 있던 항공기는 연료를 절반 정도 실었고 JP4는 항공유 위에 떠 있을 것이다.
엔진은 항공유가 다 떨어질 때까지 잘 작동했다.
O-1은 이중 연료 탱크가 있었고 파일럿이 연료 탱크를 전환하자 당장은 엔진이 잘 작동됐으나 두 번째 탱크 위에 떠 있던 JP4가 다시 엔진과 만나자 작동이 멈췄다.
대체 항공기는 O-2였으며 연료를 거의 가득 채웠다.
이륙하기에 충분한 항공유가 있었으나 펜스를 지난 후 약 30초 만에 엔진으로 JP4가 들어갔다.
180도 돌고 곧장 비행장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고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언덕 사면으로 떨어졌다.
다행스럽게도 비행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약간의 실속을 할 수 있었고 초목 덕분에 동체착륙을 했어도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다.
조종사와 교관(라이더) 모두 다치지 않았다.
팀은 아직 하루 동안 더 임무를 해야 했고 남은 FAC 항공기는 단 한 대뿐이었기 때문에 팀을 계속 지원할 수 있도록 헬기를 "감적기"로 운용해야 했다.
모두 잘 진행됐다.
어떤 팀도 적과 조우하지 않았지만 일대를 점거 흔적과 최근에 급히 대피한 흔적이 보이는 현장을 많이 찾았다.
무사히 모든 팀을 철수시키고 다시 롱탄으로 돌아왔다.
워레잉 대위는 우리가 떠난 후 지역 베트콩 참모가 달랏 시장을 만났다고 말했다.
베트콩 참모는 시장에게 달랏은 아름다운 도시이며 로켓과 박격포로 피해를 입는다면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우 평화로운 곳이었지만 "침입자"들이 계속해서 방해하려고 한다면 상황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경고였다.
이후로 달랏으로 돌아오라는 요청은 없었다!
그때 나는 파병 만료일까지 2개월도 남지 않았다.
SOG는 담당장교로 날 대체하기 위해 CCS에서 댄 홀 중위를 보냈다.
홀 중위는 약 5개월 동안 1-0였고,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홀 중위가 도착한 후, 우리는 전환을 준비하는 한편 다음 수업 동안 함께 일했다.
배운 것을 빨리 익혔고, 교관 및 기지 직원들과 모두 잘 지냈다.
팀 임무를 위해 FOB 2로 함께 갔을 때 그곳의 모든 직원에게 홀 중위를 소개했다.
모두 잘 진행됐다.
팀 임무를 완수하고 롱탄으로 돌아왔다.
나는 폰질로 소령에게 홀 중위는 충분히 준비되었고 원제로 스쿨을 지휘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비공식적인 지휘권 인계식을 가졌고 내 임기도 함께 끝났다.
원제로 스쿨은 SOG의 수수께끼 중 하나이다.
극소수의 사람들, 특히 정규군에는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학교에 다녔던 모든 사람과 간부에 속한 우리에게 있어서 학교는 파병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학교에 다닌 대원들에게는 이수증명서가 없었고, 인사 파일에 기록되지 않았으며, 배지나 유니폼 패치도 없었다.
많은 교관은 자신이 학교의 교관이 될 것이라는 공식 명령을 받은 적이 없으며, xx주 동안 "특별 임무"로 잠시 있을 것이라는 FOB의 편지와 함께 롱탄에 나타났다.
"스컹크 워크스" 형식의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관과 직원들은 매우 전문적인 방식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많은 교육생이 나중에 우리에게 원제로 스쿨에서의 시간이 인생 최고의 학교라고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며 "내가 변화를 가져왔는가?"라는 스스로에게 던질 것이다.
몇 년 전에 나는 형제를 만났다(그도 그린베레에서 수년을 보냈다).
그는 휴스턴에 거주하며 39회 휴스턴 특수부대 전우회 모임에 일원이었으며 주말에 전우회 회의를 주최했다.
멤버들이 모여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우연히 '원제로 스쿨에 있을 때'라는 식의 말을 하게 됐다.
본 적 없는 친구가 와서 원제로 스쿨에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예, 그랬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음, 악수를 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제 목숨을 구했죠!"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첫 파병 때 CCC에 배치된 신참 병장이었으며 그가 어떤 일을 하게 되었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원제로 스쿨이 없었다면 복무 초반에 살아남지 못했을 것임을 느꼈다고 했다.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떠날 때 그는 다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든 마지막 생각 중 하나는 "그래, 우리가 변화를 가져왔어."였다.
나는 두 다리 뻗고 잘 잘 수 있었다.
잘 보고있다 항상 - dc App
계속 봐주셔서 감사함다
원문은 어디서 볼 수 있어?? 책이라면 링크좀 부탁..ㅎ - dc App
https://www.specialforces78.com/chapter-78-newsletter-for-may-2018/
여기서
이전달 3월호와 4월호 포함
낭만 지린다
항상 잘 보고 있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