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chives Podcast ep.4 中, 21:03초부터
..네, 아시다시피, 그것 [종군기자 파견 프로그램] 은 대략 2013년부터 서서히 망해갔지만 전쟁의 첫 10년 동안 만큼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개전 단계에서 지시한 매우 확장적인 프로그램이었는데, 기본적으로 미군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미국 대중의 기자들에게 최대한의 투명성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었습니다. 종군기자가 군부대에 파견을 갈 때, 저희가 서명하는 계약이 있었습니다.
저흰 검열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미군은 타국군과 달리 기자가 기사를 보도하거나 그런 걸 하기 전에 읽으려 하거나 읽을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영국군은 기자가 출판하기 전에 항상 당신의 기사를 읽으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엔 꽤 끔찍한 검열이었습니다—2차 세계 대전 시절같은 느낌의 검열이었죠.
미군은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종군기자 파견 프로그램에서는 기자가 파견을 간 군부대에서 군인이 사망했다면—제가 있었을 때도 몇 번 발생했던 일입니다—그의 가족에게 통보되기 전에 그 군인의 이름을 발표하지 말 것과 같이 매우 상식적인 것에 대한 규칙만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런 규칙에 문제를 제기하진 않죠.
SIGINT와 HUMINT에 대해 기사를 쓰지 않는 것과 같은 다른 규칙들도 있습니다.
그다음에 제일 답답했던 건 '태스크 포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 것' 이었는데, '그 태스크 포스(the Task Force)' 는 JSOC 태스크 포스를 의미했죠.
그리고 그건 [이라크] 전쟁에서 종군기자들은 정규군에 파견을 갔기 때문에 대반란전 (counterinsurgency) 을 취재하면서 아예 볼 수 없었거나 허용된 시야 바깥에서만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부분이었습니다.
저희는 이들의 힌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모술에 있다가 어느 날 아침 기병 소대와 함께 자동차 폭탄 테러 현장에 나갔을 때 [그 힌트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저희는 스트라이커 장갑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모두가 '와씨, 저건 델타 포스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레인저였죠.
저는 델타가 당시 모술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저 주변에서 그들의 힌트를 볼 수 있었을 뿐입니다.
-웨슬리 모건, 2007년부터 이라크 •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취재한 국가 안보 저널리스트이자 책 'The Hardest Place' 의 저자
*첨언을 하자면, 모건이 이라크에 취재를 간 시기로 추정되는 2000년대 후반의 모술은 이라크 북부를 담당하는 JSOC 태스크 포스인 '태스크 포스 노스' 의 주요 작전 지역이었다.
태스크 포스 노스는 레인저 1개 대대와 작은 규모의 델타 포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2007년부대 태스크 포스 노스의 지휘관은 레인저 대대 지휘관이 맡았다. (예: 현 CENTCOM 사령관인 에릭 쿠릴라는 2/75 지휘관 시절에 태스크 포스 노스의 지휘를 맡았음)
저당시 태스크 포스 노스의 타격 부대는 레인저 2개 소대와 델타 1개 트룹으로 구성되었는데, 델타 트룹은 모술과 시리아 국경 사이의 신자르 사막에서 헬리콥터 강습이나 차량 차단 (vehicle interdiction) 에 집중한 반면 레인저는 도심 지역에서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타고 지상 타격에 집중했기 때문에, 모술에서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타고 가는 부대를 보았다면 아마 레인저였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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