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당시 라오스에서는 8년 동안 수많은 비밀 작전이 행해졌다. 가장 큰 쾌거를 이룬 작전 중 하나가 45년 전 라오스 남부 볼라웬 고원 남쪽에서 이뤄졌다. 그린베레의 유진 맥칼리 대위가 이끄는 그린베레 대원 15명과 120명의 몽타냐드들은 적지 한가운데에서 4일간의 임무를 수행했다. 테일윈드 작전은 볼라웬 고원에서 진행 중이던 CIA의 작전을 지원하는 임무였다. 월맹군의 이목을 끌어 건틀릿 작전에 집중되던 적의 압박을 해소 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MACV SOG의 주도로 이루어진 그린베레의 비밀 작전 중 가장 큰 정보적 쾌거를 달성했다
테일윈드 작전은 SOG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작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테일윈드 작전만의 특수성과 일반적인 SOG의 작전 영역을 훨씬 넘어서 수행되었기 때문이다. SOG 역사상 라오스 가장 깊이 침투했고, 맥칼리의 공격적인 리더십과 공군의 스카이레이더, F-4 팬텀, AC-119 스팅어, C-130E 스펙터, FAC, 해병대 코브라 건쉽, CH-53D 대형수송 헬기의 끊임없는 주야간 공중 지원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맥칼리는 SOFREP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해 볼라웬 고원에서 CIA의 작전은 월맹군에게 참담한 꼴을 당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CIA는 월맹군에 의한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작전지 남쪽으로 해칫포스의 중대 규모 작전을 SOG 사령부에 요청했다.국방부 보고에 따르면 CIA의 건틀릿 작전은 1970년 9월 3일 라오스 남부에서 적의 병참선을 공격하여 고원 동쪽 가장자리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5000여명의 비정규군이 투입됐다.
(작전 당일, 헬기에 탑승하는 그린베레와 해칫포스들)
CIA가 SOG의 지원을 구하게 된 이 작전의 발단은 1970년 론 놀과 시소와트 시릭 마탁이 캄보디아 수상 노로돔 시아누크를 실각시킨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월맹군 지도자들은 캄보디아 보급품과 인력을 월남으로 더 많이 가져오기 위해 일반적인 SOG 작전 지대보다 서쪽에 있는 라오스 볼라웬 고원을 확보하기를 원했다. 일반적으로 라오스에서의 SOG 작전은 월남 국경에서 서쪽으로 20km까지로 제한됐다. 하지만 테일윈드 작전은 그 한계선을 넘어 서쪽으로 40km 더 깊이 들어갈 예정이었고 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라오스 대사와 주월미군 사령관인 크레이튼 에이브람스의 공식 승인이 필요했다.
콘툼에 있는 SOG CCC 극비시설의 B중대 지휘관 맥칼리는 1970년 9월 4일, 작전 장교로부터 소식을 받았다. "제가 기억하기로 그 작전 장교가 우리에게 특수임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SOG 사상 가장 라오스 깊숙이 들어가고 프레리 파이어(라오스 작전시 SOG 코드명) 지대에서 그 어느 때보다 큰 임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그 장교는 탄약과 폭발물을 많이 챙겨라 말했고 그때 저는 SOG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에이브람스와 라오스 대사가 작전 승인을 내릴 것이란걸 알았습니다" 얼마 안 가 그는 작전의 모든 승인이 진행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작전 장교는 더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제공했다. 월맹군에게 대혼란을 제공하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들의 주목을 끌어라는 것이었다. 7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전 RT 플로리다 팀장이었던 맥칼리는 그린베레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운영하는 소대~중대 규모 작전 부대인 해칫포스로 부대로 전근을 갔다. "해칫포스에선, 국경을 넘어 작전하고 큰일 났다 싶으면 미군 전술 항공 지원 팀에게 구조되는게 일상이었죠."라고 말했다. 이어서 "당해 초, 라오스에서 있었던 하프백 작전에서 H-34 헬기 두 대, 그린베레 메딕 빌 보일을 잃었습니다. 월맹군이 우리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을 퍼부었기에 큰 피해를 입었죠. 그것 때문에 테일윈드 작전 중에는 월맹군이 우리 위치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계속 움직였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맥칼리가 B중대 소대장, 분대장, 메딕 마이크 로즈, 모리스 아데어 상사를 데리고 CCC 시설에서 브리핑하는 동안, 테일윈드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줄 지원부대로 작전 명령이 전달되었다. 먼저, 라오스에 있는 목표지점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다. 월남 공군의 제219 특수작전비행대의 시코르스키 H-34 헬기나 육군 휴이는 136명의 분견대를 투입 및 퇴출시키는데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SOG는 마블 마운틴 항공기지에서 월남에서 가장 큰 수송헬기를 운영하는 해병대의 HMH-463로 방향을 틀었다. 55명의 병력을 수송할 수 있게 설계된 3대의 시 스탤리온이 136명의 해칫포스 병력 전체를 목표 지역에 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형헬기를 이용하는 것이 타당했다
예년에 HMH-463의 해병대 파일럿과 승무원들은 국경 너머의 SOG 작전에서 두려움 없이 작전을 잘 수행했지만 동시에 전투 병력과 보급품을 라오스로 공수하는 순간 항상 적의 포화에 헬기가 노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맥칼리는 "해병대 파일럿과 승무원들이 SOG 임무에서 추가적인 모험과 위험을 감당 해야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라오스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꺼렸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테일윈드 작전의 독특한 측면에 대해 듣자 참여하기를 원했다
래리 그로아 병장은 다낭에서 이 작전 명령이 내려졌을 때 HMH-463의 도어거너와 정비병을 맡고 있었다. "우리 임무 중 가장 위험하고 흥미로운 임무는 72번 임무(SOG 지원) 출격이었습니다."라고 그로아는 말했다. "우리는 그걸 펜스 넘어가기라고 불렀고 개인적으로 이게 제가 해병대에 지원하게 된 이유인데 적과 맞서는 특수 임무를 수행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험을 찾고 있었고 그러한 행동이 있는 곳에 있고 싶었습니다."
해병대 파일럿들은 라오스 깊숙이 72번 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로아와 같은 도어거너들은 여분의 탄약을 챙기고 후방 램프에 스팅어(후방 램프에 설치하는 M60 또는 50구경 기관총)를 달 준비를 했다. 해병대는 5대의 CH-53D를 테일윈드 작전에 투입시켰다. "작전 중에 생기는 비밀스러운 그런 것은 저희 알 바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헬기 출격 준비를 시키고 총을 관리하고 또 다른 72번 임무를 준비할 뿐입니다." 그로아는 또한 50구경을 M60으로 모두 교체했다. 기동성에서 좀 더 편해지고 격추된다 해도 50구경과 달리 그걸 들고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마블 마운틴 항공 기지 HMH-463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HML-367의 스카페이스 파일럿들은 테일윈드 작전 명령을 보다 극적인 방식으로 전달 받았다. 당시 중위였던 코브라 헬기 파일럿인 조 드리스콜에 의하면 "당직 운전병이 와서 새벽 2~3시쯤에 우리 방에 와서 작전을 10일간 작전할테니 오전 5시까지 장비들 챙기고 준비하라고 했습니다.”라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드디어 하노이에 폭격하러 가나 싶었습니다."
드리스콜과 동료 조종사들은 초기 모델인 AH-1G 코브라 건쉽을 조종했으며, 한 명은 앞좌석에, 다른 한 명은 뒤에 앉았다. 휴이 헬기의 친척인 코브라는 공격 전용으로 설계되었다. 드리스콜의 코브라는 19발의 2.75 로켓포드 2개, 7발의 로켓포드 2개, 1분에 6,000발을 발사하는 7.62mm 미니건 1개, 유탄발사기를 가지고 있었다.
초기 버전의 코브라가 완전히 무장되고 연료를 충분히 급유 받았을 때, 헬기의 스키드는 충분한 양력을 얻을 때까지 짧게 활주로를 질질 끌곤 했다. 하지만, 일단 공중에 뜨면, 그들은 정밀한 공습으로 적과 싸웠다. 스카페이스와 다른 해병대 헬기 부대는 월남에서 몇 년 동안 비밀 전쟁에 참여했으며, 보통 푸바이 FOB 1, 케산 FOB 3, 다낭 FOB 4로 파견되어 정찰팀과 해칫포스를 지원했다.
"마침내 콘툼에 도착했을 때 우리 명령과 극적으로 다른 측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능한 한 사진을 많이 찍어두라는 것이었죠."라고 드리스콜이 말했다. 소풍 갔을 때 어머니들이 자주 할법할 소리였다. SOG 극비 임무에서 허용된 유일한 사진은 정보 수집과 지상에서 찍은 보고서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예상했던 것과는 정말 달랐습니다."
한편 다낭 북부 비행장에서 A-1 스카이레이더를 조종하는 SPAD 조종사들도 테일윈드 작전을 위한 명령을 받았다. 그 단발 엔진 전투기는 적에게 대혼란과 죽음을 선사한다는 점 때문에 미군 지상군들의 사랑을 받았고 공산군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게다가 2차대전 당시 더글라스의 독특한 설계를 통해 스카이레이더는 어떤 항공기보다 더 오랫동안 목표물 상공에 머물 수 있었고, 폭탄, 집속탄, 2.75인치 로켓, 20mm 발칸, 그리고 2대의 미니건을 쓸 수 있었다
1969년 11월 15일. 공군이 스카이레이더를 재편성하여 제56 특수작전비행단, 12대의 스카이레이더와 12명의 파일럿 그리고 후안 우루티아 상사를 필두로 한 정비 인원들은 거대한 비행장이 있는 다낭으로 보내졌다. 이들은 오퍼레이션 로케이션 알파(OLA)라고 불리고는 했지만 수많은 흑색작전에서 CAS를 통해 정찰팀과 해칫포스를 구했다
멜빈 스완슨 중령은 테일윈드 작전 명령이 떨어졌을 때 비행단 지휘관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작전 명령이 떨어졌을 때 우리는 딱히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수년 동안 지원했던 SOG 임무처럼 그냥 하던대로 했죠. 2대의 A-1을 무장하여 SOG와 수색 구조 임무를 위해 출격할 준비를 했죠. 우리는 SOG 팀을 구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고 SOG의 임무가 곧 우리의 주요 임무고 SAR 임무를 차순위로 둘 정도였죠. SOG가 부르면 우리는 바로 행동합니다."
콘툼 CCC로 돌아가서, 맥칼리는 소대장과 분대장에게 탄약과 수류탄, C-4를 가득챙기고 물과 식량을 줄여라 전했다. "우리가 발견할 적의 은신처와 구조물을 폭파시킬 것이기 때문에 병과를 가리지 않고 모든 팀원들에게 최소한 1파운드의 C-4를 가지고 다니게 했습니다. 그리고 C-4는 항상 LZ를 확보하는데 좋죠"
메딕 마이크 로즈는 중대 규모의 의료 지원을 위해 충분한 용품과 붕대를 휴대하기 위해서 그의 체크리스트를 검토했다. 그는 각 그린베레 팀원들이 적어도 한 개의 모르핀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도록 했다. 또한 몇가지 크기의 붕대와 적어도 한 개의 링거를 챙기도록 했다. 그는 모르핀 15개, 아트로핀 5개(항상 이걸 들고 다녔는데 심지어 캠프에서도 벌레와 뱀 때문에 들고 다녔다), 붕대, 의료용 테이프, 고무 튜브와 NATO 수술 키트 몇 개를 더 챙겼다. 로즈는 그의 몽타냐르 의료진인 코흐와 함께 일했는데 "그는 충성스럽고 용감한 군인이자 의료인으로 내가 다니는 것과 비슷한 양의 물품을 가지고 다녔다."고 로즈가 말했다. 그리고 많은 젊은 병사들처럼 로즈는 그가 전투 중에 입을 부상에 대해 1분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악기상과 CCC 북쪽 닥토 기지를 향한 로켓 공격에 의한 몇 차례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1970년 9월 11일 마침내 모든 무대가 마련됐다. 그리고 이것은 라오스에 도착하자마자 3명의 몽타냐르를 부상입히고 16명의 대원이 33개의 퍼플하트 훈장을 수훈하게 만들 작전이 될 예정이었다
(1970년 9월 11일, 헬기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몽타냐드들)
7일간 이어진 기상 지연 그리고 콘툼과 닥토에 있는 MACV SOG 기지를 향한 적의 로켓 공격이라는 악재 속에서 그린베레의 유진 맥칼리 대위는 콘툼 CCC에 주둔하고 있던 15명의 그린베레 대원과 120명 몽타냐드들에게 이동 명령을 내렸다
맥칼리는 일반적인 SOG의 작전 지대를 넘어서는 임무를 맡은 B중대 해칫포스의 지휘관이었다. 이 작전은 1970년 9월 11일, 볼라웬 고원 이남으로 갈 계획이었고 SOG 역사상 라오스 가장 깊숙이 침투할 예정이었다. 국방부 보고에 따르면 CIA의 건틀릿 작전은 1970년 9월 3일, 5000여명의 비정규군과 함께 시작됐으나 월맹군이 이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 공격을 감행해 수렁에 빠졌다. B중대의 임무는 CIA의 작전을 향한 압박을 제거하기 위해 "라오스에서 관심을 끄는 것"이라고 맥칼리는 최근 SOFREP 인터뷰에서 말했다
9월 11일 아침, 미 해병대 마블 마운틴 항공 기지의 HMH-463 소속의 강력한 쌍발엔진을 가진 시코르스키 CH-53D 헬리콥터 4대가 CCC 건물 밖에 착륙하여 136명의 부대원들을 실었다. SOG 부대원들은 미군이 소유한 가장 큰 수송헬기를 타고 해병대 항공단과 함께 SOG 정규 작전 지역에서 25km 떨어진 라오스 깊숙한 곳까지 도달했다. 4대 중 1대 정도가 격추 당했을 때를 대비해 5번째 CH-53D 헬기도 나와 SAR(수색 및 구조) 역할로 뒤를 이었다
6대의 미 해병 HML-367의 코브라(콜사인:스카페이스)의 호위를 받으며 헬기는 목표지점으로 향하기 전, 닥토에서 연료를 보급하기 위해 북쪽으로 향했다. 급유를 받은 후 그들은 북쪽으로 비행하여 한동안 국경과 평행하게 비행한 후 목표지점인 서쪽을 향해 왼쪽으로 꺾었다. 소규모 편대가 서쪽으로 이동하며 CH-53D가 도착하려고 하자 LZ를 확보하기 위해 소규모 척후조가 투입됐다. B중대 모리스 아데어 일등상사, 윌리엄 슈어러 하사, 데이비드 영 병장이 적과의 조우 없이 LZ를 확보했다. 그리고 즉시 코비라는 코드네임의 FAC 항공기가 F-4 팬텀의 폭격을 유도했고 바로 A-1 스카이레이더와 스카페이스 건쉽이 그 뒤를 이었다
A-1 편대를 지휘하던 공군 멜 스완슨 중령은 LZ에 대해 "대부분의 SOG LZ와 비슷했습니다. SPAD(A-1)을 위한 여러 나날 중 하루였고 늘 하던 듯이 우리가 LZ 준비하고 코비가 유도하는 대로 화력을 지원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도착한 순간부터 반격이 매우 심해졌습니다."라고 스카페이스(코브라) 파일럿 조 드리스콜이 SOFREP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리가 1차 공습을 가하던 중 여러 발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SOG들이 투입되고 있었을 때 쯤 스카페이스 파일럿 시드 베이커 중위와 나는 적의 화망 수준에 놀랐죠. 거기에다 우리는 로켓포드가 피격 당했고 테일붐에 총알 구멍이 났으며 설상가상으로 무전기도 피격 당했습니다. 코브라 편대가 마지막 공습을 날리던 때 우리는 SOP(표준 작전 절차)를 따랐습니다. 편대 대형을 유지하며 우리를 향해 사격하는 적을 감시하라는 거죠." 그들은 더 이상 무전을 할 수 없었기에 드리스콜과 베이커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사격을 하지 않고 그저 주위를 선회했다. "그때 적들은 우리가 무전기를 잃었다는걸 몰랐죠. 그리고 한가지만 더 말하자면 스탤리온은 주목을 끄는 표적이었습니다."라고 드리스콜은 말했다. "우리는 적어도 움직이고 있었지만 CH-53은 고정 표적이죠. 그래서 그들은 들어가자마자 병력을 내려주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죠."
CH-53D는 큰 표적이었다. 맥칼리는 모든 CH-53D들이 목표로 가던 중 적 지상 공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비행 중 그렇게 많은 지상 공격을 받아본 적은 없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깡통에 BB탄 총을 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들이 들은건 BB탄이 아니라 실탄이었지만. B중대가 헬기를 빠져나왔을 때 4명의 몽타냐드가 적 총격에 부상을 입었다. 이 중 한 명은 기지로 후송되던 중 사망했다. 그린베레 메딕 게리 마이클 로즈 병장은 "참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모두 헬기에서 나와 땅을 밟으려고 발에 치이는 것들을 넘어서 나왔는데 알고보니 모두 부상병이었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SOG 임무 절차에서는 적의 공격을 받아 정찰팀이나 해칫포스 부상자가 발생한 경우 임무 투입을 취소한다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임무가 아니었다. B중대는 헬기에서 나오고 라오스 땅에 도착했다. 그 시각 현지 기준으로 오후가 좀 지나서였다.
월남전에서의 한 가지 진리는 공산군은 자기 마음대로 싸운다는 것이다. 맥칼리와 B중대의 나머지 131명의 대원들은 정글 속 수목선을 따라 자리를 잡고 주위를 경계했지만 "완전한 침묵"뿐이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항공기는 철수했고 우리는 지상에 있는데 적도 없고 소음도 새도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맥칼리는 지체할 시간이 없어 중대를 북서쪽 방향으로 이동시켰다. 그때 중대원들은 또 놀라운 것을 목격했다. LZ에서부터 400m도 채 안 되는 지점에서 중대 척후조가 오두막을 관측했다고 보고했다. 제1소대는 그 지역을 수색하기 위해 2개 분대를 배치했다. 그들은 적의 탄약고를 발견했고, 무려 20개의 벙커가 500m에 걸쳐 초목과 정글 캐노피 아래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경계선을 구축한 후 B중대 병력은 탄약고에서 발견한 것들을 정리하고 샘플을 확보하는 동안 폭발물 전문가인 버나드 브라이트 중사와 SP5 크레이그 슈미트는 사진을 찍고 무기와 탄약 확인 후 13.5분 지연 퓨즈와 함께 폭발물을 두 개의 대형 구조물에 설치했고 코비가 멀리서도 식별 할 수 있도록 백린 수류탄을 각 폭발물에 부착해 공습을 유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월맹군의 전화가 울리다
B중대가 그 은닉처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맥칼리는 그의 군생활 28년 중 가장 독특한 경험을 겪었다. 그와 몇몇 그린베레 대원이 지도를 보고 있는 동안 전화가 울렸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라오스 최심부에서 전화가 울렸으니까요."라고 맥칼리는 말했다. "그 때 대원 중 하나가 그린베레 대원으로서 전화를 받아 말했죠. '여보쇼. 제5 특전단입니다. 뭘 도와드릴까요?' 대충 그런 뉘앙스의 말이었죠. 전화기 너머에 있는 월맹군들 반응이 상상이 가나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납니다."
그 대원들이 전화를 받고 낄낄 웃는 동안 다른 대원들은 벙커에 들어있는 인상적인 물건들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140mm 로켓 500발, B-40로켓 300발, 82mm 박격포탄 300발, 23mm 대공포탄 2000발, 소화기 탄약 12000발 그리고 이륜차 40대가 있었다
이후로 B중대는 계속 북쪽으로 이동했다. 제1소대는 오솔길을 발견했고 길을 건너 북쪽으로 이동하던 중 아데어와 제2소대 분대장 마이크 헤이건은 오솔길에서 소수의 월맹군 병사들을 발견했고 그들에게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월맹군의 7.62mm 탄 하나가 헤이건의 방독면을 뚫고 그의 다리를 명중시켰고 버나드 브라이트도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이에 대해 "그 탄은 진짜로 그 친구의 머리칼을 반으로 갈라서 지나갔습니다."라고 맥칼리가 말했다. "화망 때문에 더 이상 더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 다행히 월맹군은 전투 중 그 자리에서 도망쳤고 덕분에 B중대는 계속 북쪽으로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들이 행군할 때, 그들은 월맹군 벙커에서 두 차례의 큰 폭발음을 들었다. 브라이트와 슈미트가 폭발물에 부착한 백린수류탄은 커다란 깃털 같은 백색 연기를 뿜어냈다. 코비가 공습을 유도하기 위해 쉽게 포착하기 위해 준비한 연기말이다. 2차 폭발은 거의 5시간 넘게 이어지겠지라고 맥칼리가 말했다
B중대는 그 후 월맹군 중대와 만났고 교전이 거의 한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해칫포스는 스카페이스 코브라와 A-1 스카이레이더를 불러 CAS 유도를 했고 놀란 월맹군을 상대로 능숙한 분대 전술을 구사해 이들을 몰아냈다
해가 지자 맥칼리와 척후병들은 RON(Remain Over Night, 밤동안 안 들키고 지내는 것)으로 설정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 맥칼리는 "우린 통신 확인을 위해 잠시 멈췄는데 적들이 B-40 로켓 하나를 우리 지휘 초소 쪽으로 발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로즈는 "우리는 한 가지 작은 면에서 운이 좋았습니다. 로켓은 대나무 숲에 부딪히기 전까지 우리 모두를 지나쳐 날아갔고 덕분에 로켓이 폭발할 때 전방을 향한 에너지가 다 대나무 쪽으로 가서 로켓이 일반적으로 터졌을 때 만큼의 파편 피해를 받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 로켓 폭발이 발생한지 45년이 지난 뒤, 로즈는 한가지 인상적인 느낌을 겪었다고 말했다. “다 기억하지는 못 하지만 갑자기 제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는건 확실했습니다. 어느 순간 공중에 떠 있는 동안 하늘을 보니 참 새파랗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때 다시 땅으로 쿵하고 떨어졌죠.”
"로즈는 그날 우리에게 인간이 뭐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라고 맥칼리는 말했다. "그는 즉시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CP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부상 정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사실 로즈 그 친구도 발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왜 그렇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파편이 그의 정글화를 완전히 뚫고 그의 발을 크게 베어버렸습니다. 그 상태에서 그가 뭘 어떻게 했냐고요? 에이스 붕대를 꺼내서 발에 감고 자기 CAR-15를 목발 삼아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죠."
가장 심각한 부상자는 월남군 중위였다. 파편이 그의 오른쪽 허벅지를 뼈까지 거의 절단낸데다 여러 파편상도 있었다. 맥칼리는 "로즈가 부상병들을 봐주는 동안 우리들은 멈춰서 잠시 휴식을 취했죠"라고 말했다. 로즈가 부상자들을 봐주는 동안 맥칼리는 테일윈드 작전 동안 공중 지휘를 맡은 2대의 EC-130 항공기 중 한 대와 무전 교신이 닿았고 그 항공기는 정기적으로 지상 SOG, 해칫포스에게 통신 중계 임무를 수행하고 코비에게 공군 전력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했다. EC-130의 주간 암호명은 힐즈버러였고 야간 암호명은 문빔이었다
맥칼리의 계획은 밤 중에 계속 움직이는 것이었고, B중대가 적과 접촉할 경우 그린베레 대원들은 적을 공격할지 우회할지 아니면 고정익 항공기 건쉽을 불러 지상군을 궤멸시킬지 결정하게 되었다. 1970년까지 C-47 건쉽은 "퍼프 더 매직 드래곤", 또는 "스푸키"로 불렸고 3가지 새로운 건쉽으로 대체됐다. 더 많은 무기, 센서, 전방 적외선 탐지 시스템, 더 많은 탄약과 야간 조명탄을 장착할 수 있게 적재량이 더 큰 AC-119G "플라잉 박스카"라고도 불리는 "쉐도우", J-58 제트 엔진 2기를 장착해 속도와 수송 능력을 향상시킨 AC-119K "스팅어", 그리고 4대의 엔진과 4대의 미니건, 20mm 개틀링포와 플레어를 탑재한 AC-130이다. 맥칼리, 아데어와 B중대 그린베레 대원 몇몇은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 사이즈의 트랜스폰더를 가지고 다녔고 이 트랜스폰더는 전자 신호를 방출해 건쉽이 적 위치에 정확한 사격을 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리고 로즈는 마침내 두꺼운 대나무 장대로 받쳐진 고무 판초와 6피트 길이 밧줄로 두 개의 들것을 엮었다. 그들은 이제 심각한 부상을 입은 현지 부대를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 로즈가 맥칼리에게 다 됐다고 했을 때 B중대는 한 밤 중에 이동한다는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월맹군이 우리를 한 곳에 몰아서 박살내도록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동함으로써 그들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죠. 몇 번인가 우리는 월맹군을 만났고 교전을 치루고 이동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만약 더 큰 부대를 만난다면 우리는 건쉽을 부를 수도 있었죠. 우리 머리 위에 계속 조명탄 담당 항공기가 있었으니까요."
B중대는 이어서 서쪽, 라오스 더 깊이 진군했고 B중대의 그린베레와 몽타냐드가 더 서쪽으로 갈수록 그들은 CIA의 캐터펄트 작전(건틀릿 작전의 일부)을 공격하는 월맹군 부대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쪽으로 돌린다는 그들의 목표에 점점 더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진군하는건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벽 동안에만 16명의 미군 중 9명이 부상당했고 로즈와 현지 의무병인 코흐는 어두운 정글을 통해 이동하는 동안에도 밤새도록 부상자들을 위해 지칠 줄도 모르고 계속 돌봐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후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18044
전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18013 SOG 최대의 성공, 테일윈드 작전 (1) - 워리
gall.dcinside.com
전화 받는게 ㅈㄴ 웃기네 ㅋㅋㅋ
울리면 메시지라도 남겨주는 것이 예의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