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정찰 중 개울을 건너는 RT 뉴햄프셔)
SOG 팀은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만 품고 계획없이 돌아다니기 위해 라오스나 캄보디아로 보내진 것이 아니다.
각 SOG 작전은 공식적으로 보고되고, 철저하게 연구되고, 신중하게 계획되었으며, 1-0가 지역 지휘통제(C&C) 사령관에게 다시 보고한 다음 1-0가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리허설 및 훈련을 거쳤다.
임무 준비에는 정보 보고서와 항공 사진 연구를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7일이 걸렸다.
목표 지역 상공을 비행하며 육안 정찰을 하고.
레펠링이나 도청과 같이 팀이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 훈련.
실사격 훈련.
식량, 탄약, 장비의 준비.
모든 팀원의 장비 점검.
마지막으로 헬기에 탑승하기 전 무기 시험 사격이 있다.
할당된 임무에 관계없이 1-0에게 6km 정사각형 목표지대가 주어졌고, 이 4마일 정사각형은 미 공군의 "폭격 금지선(No bomb line, NBL)"이었으며 팀장의 승인 없이는 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다.
이러한 각 "격자"에는 줄리엣-9와 같은 SOG 영숫자 지정자가 있는데, 이는 한 자리 숫자인 경우 라오스 목표를 의미하는 반면, 캄보디아 목표는 마이크-피프티-포와 같은 두 자리 숫자였다.
그 "격자" 안에서 1-0는 지역이나 지점을 정찰하고, 강이나 도로를 감시하고, 적의 전화선을 도청하고, B-52 폭격을 평가하고, 지뢰와 센서를 설치하거나, 포로 생포를 시도 등의 임무가 행해졌다.
지역 및 지점 정찰
(대 항공 위장을 한 채 호치민 트레일을 따라 월남으로 이동하는 월맹군 대대)
SOG에게 가장 자주 할당된 임무는 지역 정찰이었고 이 임무에서는 적의 활동, 장비 및 시설을 찾기 위해 설정된 구역을 탐색했다.
SOG 본부나 요청 기관이 해당 지역에 무엇이 있는지 거의 모르거나 이전에 감지한 적의 존재가 더 이상 없는가 확인하기 위해 실시됐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점 정찰에서는 팀이 다른 출처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1m² 정도의 매우 구체적인 좌표를 조사해야 했다.
실망스러운 부분은 팀이 출처를 거의 듣지 못했고 종종 그곳에서 무엇을 찾는 걸 원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찰팀이 생포될 수 있다는 우려로 항상 보안을 중시하는 정보 브리핑 담당자는 팀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정보 외에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아마도 미 육군 보안국의 무전 방향 탐지 장치가 그곳에서 적 송신기가 있거나 도청을 통해 새로운 병참 시설이 건설되고 있다 생각했기 때문에 지점 정찰 목표가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U-2 정찰기가 궤도 차량을 촬영했지만 분석가들은 그것이 탱크인지 불도저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SOG 팀에 보내는 것이 해결책이었다.
매시간 현장에서 시간이 생길때마다 정찰팀원들은 보고 들은 내용을 메모했으며 임무 후 보고를 위해 끝없는 세부 사항을 기록했다.
겉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세부 사항은 사이공에 보내는 플래시 메시지부터 B-52 폭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일부 정찰 작전은 후속 임무로 이어졌다. 전화선을 찾으면 도청이 시작될 수 있고, 탄약 비축물을 발견하면 해칫포스의 레이드로 이어질 수 있다.
종종 1-0는 단순히 월맹군 위치를 기록하는 대신 FAC에게 알려 전투기나 폭격기를 배치하도록 했다.
1968년까지 라오스의 정찰팀은 정기적으로 적 시설과 병력 증강에 대한 공습을 요청했지만, 캄보디아에서는 1970년까지 전술 공습이 승인되지 않았다.
도로 및 강 감시
일반적으로 적군이 점령한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가장 삼엄한 순찰 구역은 호송 경로의 양쪽을 따라 1km 떨어진 구역이었다.
보초와 순찰대가 이 지역을 가득 채웠을 뿐만 아니라 40명으로 구성된 월맹군 소대와 100명으로 구성된 중대가 길가를 휩쓸며 SOG 정찰팀을 찾아댔다.
그 두꺼운 경계를 뚫고 제자리에 머무르는 데는 더 많은 기술과 행운이 필요했다. 고속도로를 목표로 한 팀 중 절반도 안되는 팀만이 도로가 보이는 곳에 도달했으며 적의 보안이 너무 촘촘했다.
정찰대원이 어떻게든 그 모든 경계를 우회하고 정글을 기어가 주요 도로 옆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적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전신의 털을 치켜세울 만큼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유일한 생명줄은 침묵과 위장뿐이다.
도로 감시 임무는 팀이 정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위험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일단 발각되면 SOG 대원들은 월맹군이 신속히 대량의 증원군을 부르는 동안 경계선을 벗어나 싸워야 했다.
강 감시도 마찬가지로 위험하여서, 팀은 발각된 경우에 탈출하기에는 너무 넓거나 깊은 수로에 갇힐 수 있는 전술적 불리함을 감수해야 했다.
일부 도로 감시 팀은 철수할 때 트럭용 지뢰를 남겨두는 추가 임무를 맡았다.
일반적으로 지뢰는 진흙탕 웅덩이에 묻거나 강 여울에다 수중에 숨겨서 영리하게 배치했다. 의심을 가라앉히는 한 가지 비결은 타이어 조각을 들고 다니다 지뢰를 묻은 땅에다 조각을 눌러 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당시 이용한 차량용 지뢰)
대부분의 팀은 지뢰가 작동했는지 여부를 알지 못했지만 두 명의 1-0들, 올리버 하트윅 하사와 데이비드 글리머는 월맹군 트럭이 새로 매설한 지뢰를 밟는 순간에 근처에 있어 이에 만족했다.
대인 지뢰도 매설했지만 SOG 대원들은 팀이 해당 지역으로 돌아올 때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969년까지 각 대인 지뢰에는 자폭 수단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SOG 정책이었고 대부분의 경우 지뢰 아래에 묻은 림펫 마인 키트의 산 지연 유리 앰플과 뇌관 덕분에 1~2주 안에 자폭했다.
(SOG에서 지뢰 자폭용으로 이용한 림펫 마인 키트)
도청
도청의 군사적 사용은 전신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1862년 프레데릭버그 캠페인 동안 남부군 병사들은 연합 전신선을 도청했지만 모스 부호 신호의 품질을 저하시켰기 때문에 북부군은 조잡한 도청을 감지할 수 있었다.
100년 동안 별로 변한 것이 없었고 SOG도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월맹군 전화 교환원은 SOG 팀이 회선에 접속할 때 멀티미터 바늘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최첨단 음성 인식 카세트 레코더에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초기 SOG 도청은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앨리게이터 클립이 포함된 원시적인 업무였다.
(초기형 도청 장치)
최신 도청 키트는 이론적으로 식별 가능한 양의 전류 변화가 없는 미세한 와이어를 선에 삽입했다.
(후기형 도청 장치)
그러나 그것도 종종 감지되었다.
SOG 팀원들은 도청장치를 설치할 때마다 수명을 단축시키는 꼴이었다.
결국 CIA는 SOG에 MS-1 도청 장치를 공급했는데, 이 장치는 2차 세계대전 후반부터 영국 비밀정보국이 사용했던 유도 원리를 채용했다.
탭은 SOG의 이전 녹음 장치와 크기와 모양이 동일했다. 차이점은 도청 자체에 있었다.
두 개의 고무 코팅 패드가 와이어 위로 접히면 전기장으로부터 기록 가능한 순수한 신호를 수집했다.
(인덕션 방식의 도청 장치)
MS-1은 전화선을 관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압 차이가 없었고 MS-1는 전자적으로 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자적으로 도청장치의 존재를 손상시키지 않더라도 전화 네트워크는 일반적으로 연대 또는 사단을 상대로 했기에 이러한 작업은 위험했다.
"우리가 했던 가장 위험한 일은 도청 임무였습닏다."라고 리차드 그로스 중사는 말했다.
브라이언 스톡데일 하사는 "전선에 거의 붙어있어야 했는데, 너무 노출되어 있고, 트레일에 너무 가까운 상태에서 정지 상태로 있어야 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암호화된 메시지를 확인, 비교, 분석 및 통합하여 암호화를 통해 비밀을 찾아낸다.
월맹 통신병은 적절한 무전 절차를 따르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지만 유선 통신은 보안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므로 부주의한 잡담이 조장되었다.
하노이 최고 사령부는 SOG의 도청 위협을 잘 이해했으며 기사를 통해 월맹군에게 "우리의 전화 메시지를 듣고 있는 적군을 경계하라"고 촉구했으며 "비밀 대화를 교환하려면 전화가 아닌 비밀 코드를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OG의 첫 번째 도청 장치는 1966년 중반 RT 콜로라도의 테드 브레이든 병장, 짐 헤트릭, J.D. 바스와 함께 DMZ 근처에 설치되었고 월맹군 대화가 담긴 7개의 카세트를 공개했는데, 그중 하나를 분석가들이 처음에 월맹군 국방장관 보응우옌잡이 48시간 후에 방문할 것이라는 발표로 오해했고, MACV 본부와 7공군이 서둘러 B-52로 폭격 했으나 결국 메시지에서 보응우옌잡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누구든지 일단 B-52의 비행에 쓸러나간 것은 분명했다.
1970년 말, SOG의 극도로 위험한 도청 임무는 "국방부 특수 중계기"라는 표지 이름의 정교한 장치로 대체되었다. 작은 나무와 비슷하게 도색된 길이 10피트, 직경 3인치의 삐죽거리는 것이 박힌 튜브였다.
적 전화선 근처에 공중 투하되었으며 회선의 자기장에서 바로 대화를 "읽고" 녹음 내용을 미니테이프 기계에 기록한 다음 지나가는 미국 항공기로 버스트 전송을 했다.
폭격 피해 평가
1965년 말 라오스의 월맹군 표적을 타격하기 위해 실시한, 전쟁의 첫 B-52 폭격은 캄득의 SOG 샤이닝 브라스 정찰 작전의 결과였다.
1년 후 SOG 작전 기획자들은 라오스의 "아크 라이트" 폭격 직후 SOG 팀을 투입하여 결과를 평가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BDA(폭격 피해 평가)라고 불리는 이러한 특수 정찰 작전은 정찰팀을 적군이 많이 존재하는 지역에 배치하기 때문에 도청보다 훨씬 더 위험했지만 공습으로 분노가 유발된 적과 맞서야 한다는 추가 요소가 있었다.
SOG의 첫 명예훈장 사건을 촉발시킨 것도 폭격 후 BDA 임무 중 월맹군의 반격으로 발생했다.
부록 1: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20128
부록: SOG의 첫 명예훈장본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18486 SOG의 정찰 임무 - 워리어플랫폼 마이너 갤러리gall.dcinside.comSOG 정찰팀은 또한 소위 캄보디아 비밀 폭격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수행했으며, 둘 다 목표를 찾아내고 폭격 후 BDA를 수행했다.
전략 폭격기의 공격 후 BDA 팀을 목표물에 직접 투입하는 것은 전례가 없었고 2차 세계 대전이나 한국 전쟁에서도 시도되지 않았다.
B-52 폭격의 먼지가 가라앉자마자 미군 주도의 SOG 팀이 수백, 수천 명의 잘 무장된 적군 병사들 사이에 바로 착륙했다.
그러나 BDA는 SOG 지상 임무 중 가장 지속적으로 일관성이 없는 임무가 되었다. 팀이 아무것도 찾지 못하거나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절반 정도의 SOG BDA 팀이 지하 대피소에서 돌아오는 월맹군과 조우했고 정찰팀은 총격과 함께 탈출해야 했다
(BDA 임무 중인 팀을 구출하기 위해 투입된 헬기들)
나머지 절반은 폭탄이 텅 빈 정글에만 떨어졌지만 이러한 공격조차도 나무를 제거하여 호치민 트레일의 도로를 노출시키는 데 유용했다.
비콘 및 센서 설치
오늘날의 GPS 위성이 나오기 이전까지는 별 방법이 없었기에 SOG 정찰팀은 정밀하게 센서와 전자 폭탄 비콘을 직접 설치했다.
SOG 팀은 신발상자 크기의 트랜스폰더를 미리 정해진 지점에 정확히 설치함으로써 미국 B-52가 전자적으로 폭탄을 조준하여 최대한의 정확도를 달성할 수 있도록 했다.
손으로 정확하게 배치하는 것은 자기 트럭 감지 센서의 경우에도 큰 가치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SOG 팀이 분석가가 요청한 정확한 지점에서 적진 뒤편의 고속도로를 따라 트럭 감지 센서를 설치하고 송신기가 야간에 이동 중인 트럭 신호를 전송하는 것을 보면 마치 정보 장교가 원격 제어로 해당 도로를 감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장치에서 엄청난 가치의 정보가 흘러나온 것은 이 장치가 경이로운 전자 장치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린베레가 이끄는 팀이 장치를 탐지되지 않은 채 정확한 지점에 배치하고 잘 숨겼기 때문이다.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비슷한 수준의 큰 가치를 지닌 것은 SOG 팀이 적군 비축물 속에 숨긴 부비트랩 탄약과 SOG 팀이 유통시킨 월맹에서 온 가짜 편지나 위조 지폐와 같은 "흑색" 심리전 물건들이었다.
포로 생포
가장 많은 독창성과 대담함이 요구되는 SOG 임무는 적 포로를 생포하는 것이었다.
새로 생포한 포로만큼 유용한 정보원이 없기 때문에 성공적인 생포팀에게는 보상과 찬사가 굴러왔다.
포로를 잡는 것은 SOG 블랙버드를 타고 대만으로 무료 휴가를 가는 것을 의미했고, 미군 한 명당 100달러의 보너스를 받았고, 각 넝족 및 몽타냐드에게는 새 세이코 시계와 현금을 제공했다.
팀의 주 임무가 무엇이든, 2차 목표는 항상 기회가 생기면 적군 포로를 잡는 것이었다.
SOG가 라오스 작전을 시작한지 첫해인 1966년에 정찰팀은 12명의 포로를 생포했다.
결과는 1967년에 10명의 월맹군을 생포했지만, 늘어닌 월맹군 경비대가 그 자치를 입증하듯이 1968년 라오스 확보량이 1명으로 떨어졌다.
1969년에는 월맹군 포로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지만, 1970년에는 3명으로 늘어났다.
캄보디아에서는 SOG 팀이 1967년부터 1970년 동안 18명의 포로를 생포했다.
이는 63개월 동안 강력하게 방어된 월맹군 후방 지역에서 총 44명의 월맹군을 생포했으며 1개월 반마다 한 명 씩 데려왔음을 의미했다. 이는 생포가 위험한 지역에서 SOG 팀원보다 많은 병력에 대한 접촉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그리고 팀이 포로를 잡으면, 포로는 팀의 속도를 늦췄고, 적군은 동료가 잡혔다는 것을 알고 더욱 거세게 추격했다.
포로 생포 전술은 본질적으로 세 가지로 요약된다.
신중한 사격으로 무력화, 폭발물로 무력화, 육체적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총격은 대상을 무력화하지만 죽이지는 않는 것이기 때문에 까다로웠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팀은 SOG에서 가장 약한 위력을 지닌 .22구경 하이스탠다드 HD 소음 권총을 선호했다.
소음기가 장착된 기관단총도 사용되었다.
여러 팀이 마취총을 테스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위험한 동물을 마취할 때 수의사가 깨닫는 것만 배웠다. 빨리 무력화될 만큼 투여 양이 많으면 죽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더 적은 양을 투여하면 너무 느리게 작용하여 여전히 위협이 됐다는 것이다.
(마취총 사격을 시험하는 대원)
SOG 대원들은 저용량 다트에 맞은 월맹군을 총으로 쏘거나 더 강한 마취제로 사망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진정제 다트가 실패하자 SOG는 경찰이 사용하는 치명적이지 않은 스프레이인 메이스를 테스트했다.
그러나 정찰대원들은 메이스를 서로에게 테스트하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한 공격성으로 옆에 있는 월맹군이 죽게 하는 것만으로는 항복을 보장할 수 없었다.
순간적인 우위를 이용하여 항복할 수밖에 없도록 붙잡아야 했다.
캄보디아의 피시후크에서는 RT 픽 1-0 에버렛 코퍼와 1-2 데이비드 잭의 엄호 아래 1-1 밥 그레이엄이 홀로 있는 적 병사를 붙잡은 적이 있었다.
뭔가 멋진 일을 할 시간은 없었다. 그레이엄은 달려가 적병의 미간을 주먹으로 때렸다.
정보 장교들은 나중에 그레이엄에게 "좋은 생포였다"라고 말했다.
종종 팀은 폭발물 매복을 위해 폭발물을 사용했다.
이론적으로 폭발은 목표 대상을 넘어뜨리고 그의 손에서 AK를 떨어뜨리게 만드는데다 일시적으로 감각을 잃게 만들 것이었다.
팀은 조심스럽게 배치된 폭발물과 크레모아를 조합하여 복잡한 폭발물 매복을 발전시켰다. 크레모아의 살상반경이 겹쳐지면 한 명을 제외하고 모든 월맹군을 죽이거나 무력화하고 생포 대상은 산 채로 던져져 생포될 것이었다.
리허설을 통해 이러한 폭발물 매복 공격은 60초 이내에 트레일을 따라 배치될 수 있었다.
SOG의 가장 정교한 폭발물 매복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로켓 연료 연구 중에 발견된 액체 폭발물인 아스트로라이트가 사용되었다.
아스트로라이트는 그 자리에서 결합된 두 개의 플라스틱 병에 들어 있었고, 그것에 젖은 모든 것을 폭발시켰고 말 그대로 땅이 잠재적 포로의 발 아래에서 폭발했다.
아스트로라이트든 재래식 폭발물이든, 폭발물 매복은 항상 연기가 걷힐 때까지 무엇을 발견할지 알 수 없는 랜덤 상자였다.
(폭발물 매복 리허설)
부록 2: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20130
부록: 애쉬트레이 작전본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18486 SOG의 정찰 임무 - 워리어플랫폼 마이너 갤러리(gall.dcinside.com부록 3: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20131&page=1
부록: 랄프 로드의 포로 생포 시도본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18486 SOG의 정찰 임무 - 워리어플랫폼 마이너 갤러리(gall.dcins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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