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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슈라이버의 마지막 훈장[시리즈] SOG 전설, 제리 슈라이버의 훈장 · 제리 슈라이버의 첫 훈장 · 제리 슈라이버의 두 번째 훈장 · 제리 슈라이버의 세 번째 훈장 · 제리 슈라이버의 네 번째 훈장 · 제리 슈라이버의 다섯 번째 훈장 ·gall.dcinside.com



존 플라스터 전 소령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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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독"은 명운이 다할 때까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수십 개의 비밀 임무를 수행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SOG에서 "매드독" 슈라이버보다 더 훌륭하거나 유명한 정찰대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1960년대 후반 포트 브래그의 대원 중 그 누구도 "S-O-G"라는 일급비밀의 문자에 대해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모두 라디오 하노이에서 전설적인 연구관찰단 그린베레 정찰 팀 리더인 제리 슈라이버 중사를 "미친개"라고 불렀다는 것을 들어보았다.


SOG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무전 응답을 한 사람으로, 제리 슈라이버는 월맹군이 그의 소규모 팀을 포위하자 상급자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무전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니, 딱 좋은 곳으로 놈들이 들어왔어. 내부에서 포위하겠다."


완전히 무장된 매드독은 소드 오프 샷건이나 기관단총, 권총, 칼, 수류탄 등이 늘어선 걸어 다니는 무기고였다.


빌리 그린우드 일등상사는 "그는 람보처럼 생겼습니다."라고 떠올렸다.


금발에 키가 크고 마른 슈라이버의 얼굴에는 움푹 들어간 푸른 눈 주위로 조각 같은 이목구비가 있었다.


SOG 대위 빌 오루크는"눈에는 영혼도, 감정도 없었다"고 떠올렸다.


"그냥 안구라는 기관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1969년 초까지 슈라이버는 SOG에서 3년 연속으로 극비 첩보 수집 팀을 이끌고 캄보디아 적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저승사자를 수십번씩 따돌렸다.


그러나 슈라이버가 모르는 하노이 및 워싱턴 정부 최고위층에서 그의 통제를 벗어난 세력이 그의 명운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었다.


전략적 상황


1969년 초, 캄보디아 항구 시아누크빌의 부두는 몇 주마다 학 리 운송회사의 트럭 대열로 화물을 하역하는 동유럽 선박으로 붐볐다.


표면적으로는 중국 사업가가 소유하고 있지만 학 리 회사의 실운영자는 월맹의 찐 삿(정찰) 정보국이었다.


비밀 화물인 로켓, 소화기 탄약, 박격포탄은 빽빽한 밀림을 지나 월남 국경에서 불과 3마일 떨어진 캄퐁참 성으로 밤새 트럭으로 옮겨졌다.


캄퐁참은 미군이 피쉬후크라는 별명을 지었으며 이곳에는 20만명의 3개 완편 사단과 공산군이 쓸 막대한 양의 물자가 있었다.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왕자는 이러한 중립 위반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의 다섯 번째 부인인 모니크와 장모, 이복형제들은 비밀리에 토지권과 정치 권한을 월맹군에 팔고 있었으며 다른 중개인 또한 월맹군에게 수천 톤의 쌀을 팔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시아누크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존슨 행정부는 수천 명의 미군이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공산군에 의해 사망하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보았고 이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부인했다.


그리고 1969년 2월~3월 걸프전 사망자보다 더 많은 미군이 매주 죽어 나갔고, 월맹군은 공격 후 빠르게 "중립국"인 캄보디아로 도망쳤다.


SOG의 캄보디아 첩보는 다른 정보들과 함께, 1969년 2월 24일 아침 브뤼셀 공항에 있던 에어포스원에서 헨리 키신저가 연구한 일급비밀 지도에 나타났다.


키신저와 함께 군사 보좌관인 알렉산더 헤이그 대령과 대통령 대변인이자 백악관 비서실장인 H.R. "밥" 할데만이 앉아 있었다.


새 행정부로 전환되는 동안 닉슨은 키신저에게 캄보디아 증강에 대처하고 하노이의 "싸움과 대화" 전략에 대응하는 방법을 결정하도록 요청했다.


닉슨이 NATO 북대서양 위원회에서 연설하는 동안 에어포스원에 있던 사람들은 미국의 은밀한 대응을 위한 세부 사항을 마련했다.


바로 캄보디아의 가장 외딴곳을 향한 비밀 폭격이었고 시아누크 왕자가 항의하지 않는 한 폭격 자체가 인정되지 않을 것이었다.


에어포스원이 브뤼셀을 떠날 때 키신저는 닉슨에게 이를 브리핑 했으며, 닉슨은 계획을 승인했지만 실행을 연기하기로 했다.


이후 3주 동안 닉슨은 하노이에 두 번의 경고를 보냈다.


"파리 회의 테이블에서 평화를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 병사들에게 더 큰 피해를 발생시키는 공격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닉슨의 두 번째 경고 다음 날, 월맹군 캄보디아를 통해 밀수한 122mm 로켓으로 사이공을 폭격했다.


3일 후, 닉슨은 첫 캄보디아 피쉬후크 비밀 폭격을 위해 B-52를 출격시켰고 이는 73회의 2차 폭발로 이어졌다.


SOG 특수 임무


프놈펜이나 하노이에서 나온 소리는 하나도 없었고 여기에는 적절한 모순이 있었다.


4년 동안 월맹은 캄보디아에서의 존재를 부인했으며 이제 미국 폭탄이 그들에게 떨어졌다 한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닉슨은 하노이의 협상가들이 파리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며 B-52 추가 폭격을 중단했지만 회담은 무의미하게 계속되었다.


미국도 "대화하고 싸울"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닉슨은 두 번째 B-52 비밀 폭격을 승인했고, 이번에는 엘스워스 벙커 대사의 승인 아래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장군이 제안한 목표로 실행됐다.


바로 COSVN(Central Office for South Vietnam), 대 월남 중앙 사령부, 전체 전쟁을 지휘한다고 주장하는 거의 소문 같은 베트콩 본부였다.


월맹군 전향자는 캄보디아 메못 남동쪽으로 14마일 떨어진 COSVN 시설을 표시했고 월남 국경에서 불과 1마일 떨어진 피쉬후크 지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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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VN 공격은 4월 24일에 시작되기로 했다.


다가오는 B-52 폭격을 알게 된 MACV 합참 필립 데이비드슨 준장은 COSVN에 폭격만 하는 대신 SOG 습격 부대가 폭격이 멈추는 즉시 적 본부를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슨은 SOG 사령관 스티브 카바노 대령에게 연락했고, 카바노 대령은 임무에 동의하고 부온마투옷 CCS 그린베레 주도의 몽타냐드 중대에게 특별 임무의 준비를 명령했다.


이때 CCS에서는 살아있는 정찰의 전설인 "매드독" 슈라이버와 빌 오루크 대위에게 역사적인 COSVN 습격 명령이 떨어졌다.


오루크가 중대 규모의 기습 부대를 지휘하게 되었지만 슈라이버도 중대장인 오루크와 똑같은 수준의 영향을 미쳤고, 지난 8개월간 함께 정찰하며 이어간 협력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제리 슈라이버, 신화 속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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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S에 "매드독" 슈라이버를 따라올 군인은 한 명도 없었다.


SOG 지원을 위해 휴이를 조종한 미 공군 명예 훈장 수훈자 짐 플레밍은 슈라이버가 "고독한 전사이자 반사회적이며 일에 사로잡힌 최고의 팀, 항상 훈련하고 지속해서 훈련하는 사람"임을 알아봤다.


슈라이버는 같은 옷을 입고 며칠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으며 기지를 돌아다녔다.


장전된 소총을 안고 잤으며 클럽에서 맥주 한 상자를 사서 혼자 구석으로 가서 모두 마시곤 했다.


은성, 동성 5개, 군인훈장을 받았지만 그 28세의 그린베레는 훈장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에 몽타냐드에게 관심이 있었고, 그들에게 모든 사비를 썼고, 식량, 옷 등 기부가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모아서 몽타냐드 마을에 나눠줬다.


몽타냐드 막사에 살았던 CCS의 유일한 미군이었다.


오루크는 "슈라이버는 몽타냐드에게 있어서 거의 숭배의 대상이었다."라고 떠올렸다.


슈라이버의 가장 가까운 동료는 그가 클라우스라는 이름을 붙인 대만에서 데려온 저먼 셰퍼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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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클라우스는 일부 정찰대원이 맥주를 먹인 탓에 클럽 바닥에 똥을 쌌다.


정찰대원들은 클라우스를 잡고 그곳에 얼굴을 문지르며 밖으로 내쫓았다.


슈라이버가 도착하자 맥주를 마시고 파란색 벨벳 스모킹 재킷과 더비햇을 벗더니 .38구경 리볼버를 테이블 위에 놓은 다음 바지를 벗고 바닥에 싸기 시작했다.


"여기에 내 대가리를 문지르고 싶은 새끼 있으면 당장 여기로 와라."


모두가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클라우스에게 맥주를 먹인 한 대원은 정찰 중대 중대장에게 저 짓거리를 막아 달라고 요청했다.


대위는 웃으며 그 대원을 바라보았다.


정찰대원 프랭크 벅하트는 "그는 눈을 반쯤 뜬 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라고 떠올렸다.


"그가 나를 그렇게 볼 때마다 나는 얼어붙을 것 같았다."


슈라이버는 항상 남달랐다.


1960년대 초, 리치 라이언이 독일에 제7군 장거리 정찰 중대에서 그와 함께 복무하던 시절, 슈라이버의 친구들은 그가 장의사처럼 생겼다며 그를 "디거"라고 불렀다.


슈라이버의 LRRP 동기들은 농담으로 마호가니 조각상을 숭배하는 "마호가니트"라는 종교를 만들었다.


라이언은 이렇게 회상했다.


"빈 침대에 슈라이버를 눕히고 시트로 덮은 다음 모서리에 양초를 놓고 '마--호-- 가-- 니--' 거리며 성가(?)를 부리며 돌아다녔습니다. 신입들이 무서워했죠."


명예훈장 수훈자인 플레밍은 슈라이버가 "앞으로 모르는 사람과 술집에 들어가 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확신시켜 줬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숲에서 슈라이버 보다 더 나은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루크는 "슈라이버는 말 할 수 있는 개를 데리고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을 듣고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본 어떤 인간보다도 숲에서 더 활발했죠."


오루크는 캄보디아 국경에서 중대를 지휘하는 동안 슈라이버와 옛 몽타냐드 동료가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던 때를 회상했다.


"슈라이버는 갑자기 똑바로 일어섰고, 서로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더니 다시 나무에 등을 기댔습니다. 이것을 보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하고요. 그리고 갑자기 이 새들이 날아갔고, 나노초 후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탕탕!'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산탄총이었죠. 그들은 바로 그게 무엇인지 확인했고 내가 새들이 날아는 것을 보기도 전에 긴장을 풀었습니다."


슈라이버는 한때 DMZ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SOG CCN으로 갔고 그곳에서 짐 스토터 대위는 투입 직전에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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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온 몸에 권총을 꽂아 두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5~6개의 .38 구경 리볼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토터는 "슈라이버 중사, CAR-15나 M-16 같은 건 어때? DMZ가 만만한 곳이 아니란 걸 알잖아." 라며 슈라이버에게 물었다.


하지만 매드독은 "아니요, 장총 쓰면 더 힘들어질 겁니다. 게다가 그게 필요한 시점이 된다면 어떻게 됐든 곤경에 처했다는 뜻이겠죠."


슈라이버는 작전 후 쉬지 않고 다른 팀과 함께 작전에 투입됐다.


CCS 동료 대원인 데일 리비는 "그는 작전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게 슈라이버의 인생에서 전부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슈라이버는 모두에게 휴식을 떠나겠다며 약속했지만 플레이 제렝 특수부대 기지에 몰래 들어가 리치 라이언의 A팀과 함께 현장에 나갔다.


1968년, 미국에서 짧은 휴가를 보내는 동안 동료 그린베레 대원 래리 화이트는 슈라이버와 어울려 다녔는데, 슈라이버의 진정한 관심사는 .444 구경 마를린 레버 액션 소총을 찾는 것이었다.


강력한 마를린 소총 하나를 구입한 슈라이버는 SOG로 다시 보내 캄보디아에서 들고 다니며 "대 벙커" 용도로 들고 다녔으며 이는 아마 전쟁에서 사용된 유일한 레버액션 소총일 것이다.


진짜 제리 슈라이버


당신이 "매드독"의 절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그에 대한 이미지는 완벽한 용맹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슈라이버는 SOG 동료 대원인 새미 헤르난데즈에게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나쁜 상황을 너무 많이 겪었고 곧 끔찍한 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했습니다." 명예 훈장 수훈자 프레드 자비토스키는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그만두고 싶다고 제리가 그랬습니다. 나는 '그만두고 싶다고, 더 이상 뛰고 싶지 않다고 사람들에게 말해지 그래''라고 말했다. 제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지만 결코 말하지 않고 계속 작전을 이어 나갔습니다."


제5특전단 부사령관인 찰리 노튼 중령은 SOG 정찰대원 사상자가 급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매드독"과 같은 사람들의 삶이 계속해서 죽음 앞에 놓여 있는 것에 대해 걱정하게 되었다.


노튼은 5특전단 사령관에게 가서 이렇게 촉구했다.


"그쪽에서 요구하는 망할 증원에 승인하지 말고 다시 검토해주십시오. 사람들 죽어 나갈 가능성이 아주 아주 높단 말입니다."


그러나 사령관은 SOG가 우선순위가 높은 임무를 수행하려면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노튼이 날카롭게 말했다.


"당신이 하고 있는 건 사형 집행 영장에 사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5특전단은 몇 가지 증원을 거절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가장 경험이 많은 정찰대원의 증원이 거부된 적은 없다.


절대로.


슈라이버는 팀 동료 오루크의 중대에 합류하기 위해 정찰 중대를 떠나며 절반뿐인 성공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매드독은 정찰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몰랐습니다."라고 정찰팀 리더인 소니 프랭크스가 말했다.


그리고 이제 COSVN 습격은 마지막 작전으로 제격이었다.


슈라이버는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 COSVN의 호구로 돌격하고 나서야 마침내 그만둘 수 있었다.


COSVN의 입 속으로


1969년 4월 24일 아침, B-52가 괌에서 고공비행으로 날아오는 동안 SOG 급습 중대는 COSVN의 비밀 은신처에서 남동쪽으로 불과 20마일 떨어진 월남 콴로이 비행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은 단 5대의 휴이만 비행할 수 있었고, 이는 2개 소대만 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폭격기는 지연될 수 없었기 때문에 월터 마르칸텔 중위의 1소대와 그래그 해리건 중위의 2소대가 COSVN을 습격하는 동안 밥 킬레브루 중위의 3소대는 콴로이에서 대기해야 했다.


오루크 대위와 "매드독"은 이 상황이 딱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화력 지원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B-52가 COSVN에 수천 개의 폭탄을 투하하려 했고 고도로 기밀화된 캄보디아 교전 규칙은 전술 항공 지원을 금지했다.


국무부는 SOG 팀을 잃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고, 미 공군 F-4 팬텀이 이 "중립" 지역을 폭격했다는 문서 증거를 남겨 두었다.


숨길 수 없는 네이팜탄 자국이나 집속탄 폭탄 꼬리 날개에 대해서는 걱정하면서도 지평선에 펼쳐진 B-52 폭탄 구덩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이한 논리였다.


SOG 사령관 카바노 대령은 모순적이며 "어리석다"고 생각했지만 규칙을 변경할 수는 없었다.


습격 부대가 휴이에 탑승하고 엔진에 시동이 걸린 와중에도 B-52 비행운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오루크 대위는 선두 헬기에 탑승하고 슈라이버는 마지막 기체에 탑승하여 각각 끝에 있는 휴이에 타게 되었다.


10분짜리 비행을 위해 헬기가 이륙했고 B-52는 진입을 위해 최종적으로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몇 분 후 선두 헬기는 기계적 문제로 인해 돌아가야 했다.


오루크는 다른 대원들의 무사 귀환을 바랄 뿐이었다.


습격을 위해 함께 온 두 번째 기체의 작전 장교인 폴 케이힐 대위에게 지휘권이 전달되었다.


부대원들은 무너져 내리는 나무 사이로 먼지가 하늘을 향해 간헐천처럼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 먼지가 가라 앉자 바이올린 모양의 공터가 형성되었고 휴이는 트레일로 내려와 사람들이 뛰어 내릴 수 있을 정도로 호버링하다 대원들이 모두 하차하자 떠났다.


그런 다음 사방에서 총성이 생겼고 끔찍한 화망이 땅을 스치며 폭탄 구덩이에 뛰어들지 않았거나 쓰러진 나무 뒤로 구르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덮쳤다.


LZ 뒷편에서"매드독"은 그의 왼쪽 전방에 있는 기관총 벙커에 발이 묶여 있다고 무전을 보냈고 압박 해소를 위해 누구라도 사격이 가능한가 물었다.


살인적인 화망 아래 폭탄 구덩이에 갇힌 케이힐 대위, 마르칸텔 중위와 메딕 어니스트 제이미슨 병장은 그들도 발이 묶여 있다고 무전을 보냈다.


그리고 제이미슨은 부상자를 구하기 위해 돌진했으나 곧 화망이 그를 베었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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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슈라이버의 부하들을 묶어둔 기관총 벙커와 교전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이 슈라이버에게 달려 있었다.


쾌활한 몽타냐드들은 슈라이버를 바라보았고 그의 반쯤 웃는 쓴 미소와 함께 모두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일어서서 돌격했다. 슈라이버는 예전의 모습으로 총소리 방향으로 달려갔고 양쪽에는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몽타냐드들이 있었다.


모두 날아오는 총알을 뚫고 슈라이버의 숙적인 COSVN가 있는 수목선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매드독" 슈라이버를 다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싸움은 계속됐다


LZ의 다른 쪽 끝에서, 케이힐 대위가 있던 구덩이에서 불과 몇 야드 떨어진 곳에 제이미슨의 시신이 있었다.


케이힐이 고개를 들자 AK 탄환이 그의 입에 명중했고 위로 휘어져 한쪽 눈을 파괴했다.


중상을 입은 그는 쓰러졌다.


인근 구덩이에 있던 젊은 중위 그레그 해리건은 월맹군의 공격을 막을 유일한 수단인 헬기 건쉽의 로켓과 미니건 공격을 유도했다.


해리건은 이미 그의 소대원 절반 이상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보고했다.


45분 동안 적을 궁지에 몰았으나 그 후 해리건도 공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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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분 후에 사망했다.


빌 오루크는 다른 헬기를 타고 착륙하려 했지만 헬기는 월맹군의 납의 장막을 뚫지 못했다.


CCS 사령관인 얼 트레이브 중령이 오루크와 함께 도착했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몇 시간이나 질질 끌었다.


부상자들은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햇볕에 노출되어 있었다.


휴이는 대원들을 구하기 위한 시도를 여러 번 했으나 매번 큰 화망이 헬기를 몰아냈다.


이때 도어거너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때 마침내 판랑에 있는 호주 제2 비행대 소속 캔버라 폭격기가 비상 주파수에서 상황을 듣고 그곳이 캄보디아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폭탄을 떨어뜨려 지원했고 빌 오루크는 말했다. "폭격으로 압박을 해소해준 덕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오직 마르칸텔 중위만이 여전히 공습을 지휘하고 있었고, 마침내 자신을 포함하여 생존해 있는 9명의 몽타냐드에게 부상을 입힐 정도로 가까운 공습을 유도헀다.


한 의무병이 해리건이 있던 구덩이로 달려가 그의 시신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오루크는 "대원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히 지쳐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침내 휴이 세 대가 날아와 부상자 15명을 태웠다.


댄 홀 중위는 통신병을 옮긴 다음 해리건 중위의 시신을 헬기로 끌고 갔다.


최종적으로 COSVN 습격이 종료되었다.


성찰의 시간


그 후 SOG 카바노 사령관은 생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화망이 너무 거세서 철수하고 그 지역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조차 베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거의 매복처럼 보였다.


카바노 대령은 "B-52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MACV는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막대한 손실은 이 사태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 MACV 합참 데이비드슨 준장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카바노 대령은 "장군님, 우리가 그런 식으로 대원들을 잃을 것을 알았다면, 저는 대원들을 투입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B-52 폭격에도 불구하고 매복으로 응접했다는 것은 배신의 불안한 가능성을 여는 것이었고, 단순한 가능성 이상의 문제였다.


COSVN 공격 1년 후, NSA는 SOG 본부의 첩자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SOG 작전 임박 경고에 대한 적의 메시지를 두 차례 확보했다.


하노이의 찐삿이 SOG에 침투하여 월남 고위 장교를 포섭했고 COSVN 공격대를 포함하여 수많은 미군을 배신으로 죽였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것은 전쟁이 끝난 후 오래 지난 뒤의 이야기이다.


그 공격대 중 월터 마르칸텔 중위는 부상에서 살아남았지만 6개월 후 매사추세츠주 포트 데벤스에서 낙하산 사고로 사망했으며 폴 케이힐 대위는 의병 전역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린베레 메딕 어니스트 제이미슨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러나 COSVN 습격에서 쓰러진 사람들은 잊히지 않았다.


1993년 현충일의 아름다운 봄 하늘 아래,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펄럭이는 성조기와 저공 비행하며 꽃잎을 흩뿌리는 예비군 휴이 아래에 특수전 전우회 20회 모임 회원들이 그레그 해리건 중위의 무덤 앞에 모였다.


젊은 중위의 가족 앞에서 특전단 의장대는 그의 무덤에 녹색 베레모를 두었고, 마침내 25년 전 COSVN 습격의 높은 기밀성으로 인해 불가능했던 전사한 SOG 대원에게 약간의 표창을 수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해리건의 가족이나 다른 사망자들의 유족은 일급비밀인 COSVN 습격의 전체 내용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불완전한 채로 남아 있다.


SOG의 다른 실종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노이는 계속해서 제리 슈라이버에 대한 사항을 부인하고 있다.


오루크 대위는 "매드독"이 그날 사망했다고 결론지었다.


오루크는 "나는 그의 친구가 된 것을 엄청난 특권으로 느꼈고 그가 죽었을 때 나는 내 남동생이 죽은 것처럼 슬퍼했습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거기에 없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습니다. 내가 거기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SOG 참전 용사들 사이에는 "매드독" 슈라이버가 어느 날 마치 10분 정도 정글을 헤맨 것 같이 캄보디아 정글에서 나타나 좌우를 살펴보며 "이봐! 모두들 어디로 갔어?"라고 외칠 것이라는 대중적인 신화가 남아 있다.


그를 알고 그와 함께 싸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매드독은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