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BTR-60, 호치민 트레일의 주요도로 순찰 및 콘보이 보호를 맡았다)
SOG의 초기 샤이닝 브라스 작전 시절에 월맹군은 정찰팀을 사냥하기 위해 특별히 훈련받은 부대를 배치하지 않았다.
월맹군 후방 순찰대와 대응군은 지역 사령관에 의해 즉석에서 구성되어 행정병부터 핵심 보병까지 모든 것을 소집하여 그린베레가 주도의 정찰팀을 추적하고 교전했다.
확실히, 라오스 남부에는 야전군이 있었기 때문에 월맹군은 정찰팀 찾는다고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월맹군을 지원하는 것은 월맹군 점령군에 의해 강제로 투입된 라오스 원주민 추적병들이었다.
로인클로스만 입은 이들은 전사가 아닌 엽사식 사냥꾼들이었는데, 이들에게 매복 공격을 가하는 것은 거의 비신사적일 정도로 형편없는 전술 감각을 보였다.
종종 월맹군은 발견된 정찰팀을 안전 거리를 두고 따라가도록 사람들을 파견하고, 대나무 막대기를 서로 부딪치거나 금속 AK 탄창을 두드려 정찰팀이 근처에 있는 동료들에게 경고하거나 팀이 그냥 떠나기를 기도하기도 했다.
일부 "몰이" 시도는 더 지적되었다. 두 차례에 걸쳐 월맹군은 SOG 팀이 도망친 코끼리 풀에 불을 지르고 정찰대원들에게 불에 타 죽거나 나와서 목숨을 걸고 싸우도록 하는 끔찍한 선택을 강요했다.
조잡하지만 효과적인 청음을 위해 월맹군은 동쪽 사면에 4피트 너비의 구멍을 팠다.
이 구멍은 파라볼라 안테나처럼 작동하여 헬기가 접근하는 진동을 소리가 들리기 훨씬 전부터 감지할 수 있게 했다.
진화와 계층화
SOG의 위협이 더욱 분명해지고 SOG 작전으로 인해 월맹군이 심각한 손실을 입기 시작하면서 조잡한 방식과 즉석 전술은 전쟁 자체에 맞춰 진화하고 확장되는 일관된 전략으로 바뀌었다.
투입되는 정찰팀을 탐지하기 위해 월맹군은 헬기 LZ 근처에 1인 및 2인 "LZ 감시" 팀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모든 개활지를 덮을 만큼 LZ 감시병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가능하면 고지대나 높은 나무에 있는 플랫폼에 배치되었다.
(이러한 식으로 나무 꼭대기에 플랫폼을 설치하여 LZ를 감시하였다)
LZ 감시병은 SOG 헬기 착륙을 발견하면 전화나 파발로 이를 보고하거나 징을 울렸다.
그러면 인근 월맹군 베이스 캠프나 트럭 주차장에서 경보를 발령하고 월맹군 대응군이 파견되었다.
적군은 추적병이 팀의 위치를 이미 알고 있지 않는 한 맹목적으로 정글로 순찰대를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적군은 지역 전체의 트레일과 도로를 따라 순찰을 강화하고 보통 황혼 직전에 SOG 매복 공격을 위해 호송 경로 옆의 정글을 확보했다.
SOG 팀은 일반적으로 적이 쓰던 트레일을 피했는데, 그 이유는 그곳으로 대규모 월맹군 병력이 이동했기 때문 뿐만이 아니라 LZ 감시병을 사용했던 것처럼 RT를 감시하기 위해 "트레일 감시병"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황혼 직전에 적군은 고속도로를 따라 약 100~300야드 떨어진 곳에 보초를 배치하여 밤새도록 경비를 서게 했다.
(SOG팀은 투입된 시점부터, 사진과 같은 반복되고 계층화된 경계군을 상대해야 했다)
특수 대정찰부대
1967년, 하노이 최고 사령부는 일반 초병과 경계 순찰로는 SOG 정찰팀과 해칫포스를 상대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적군은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호치민 트레일에 영구적으로 배치된 특수 조직인 '경로 수비 대대'와 '후방 보안 부대'를 사용하여 또 다른 방어 구간을 창설했으며, 이들의 역할은 SOG 부대에 대한 순찰뿐이었다.
흥미롭게도, 2차 대전 중에 소련은 후방에서 독일 침투조와 공작원에 맞서 싸우기 위해 NKVD(KGB의 전신) 산하에 동일한 이름의 부대를 결성했다.
이는 소련의 월맹군 보안 기관 고문을 매우 강력하게 암시한다.
그러다 1967년 7월 중순, 정찰팀은 라오스 922번 고속도로 근처에서 아주 잘 훈련된 월맹군의 매복공격을 받았다.
두 명의 그린베레가 사망했고, 세 번째 대원은 부상을 입었고 가까스로 생포에서 벗어났다.
거의 동기간에 CIA의 라오스 로드워치 팀은 "라오스 비정규군이 적에게 알려지며 '작전팀'을 찾아 섬멸하기 위한 월맹군의 특수부대"의 추적을 받았다.
1967년 3월 19일, 호치민은 하노이 서쪽 30마일 지점에 위치한 손타이에서 열린 독특한 새 학교의 첫 수료생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같은 날 전후 월맹군 간행물에서 "월남 인민 전쟁의 특수 작전 부대"라고 인용된 조직이었다.
월맹의 유일한 낙하산 부대인 정예 305공수여단은 "공병"으로 전환되었다. 이 부대는 반바지만 입고 배낭 폭탄을 메고 미군 베이스캠프를 습격하는 것으로 유명한 야간 잠입 부대이며 동시에 SOG 팀을 사냥하고 죽이는 임무를 맡은 특수 대정찰 부대였다.
(월맹군 특수작전의 정교함을 보여주는 지표로 7.62x25mm 탄으로 개조한 프랑스제 MAT-49 기관단총에 소음기를 부착하여 사용했다)
인도차이나 전쟁 동안 베트민은 유사하게 프랑스 코만도이자 전선 뒤에서 싸운 SOG와 매우 유사한 기밀 부대인 Groupement de Commandos Mixtes Aéroportés(GCMA)에 맞서기 위해 421 정보대대를 창설한 전적이 있었다.
군장을 최소화하고 탄창 몇 개와 물통 하나만 든 월맹군 대정찰 부대는 대개 100명으로 구성된 중대로 운영되어 소대로 나뉘어져 SOG 팀을 포위하여 소탕하고 사냥했다.
하나의 무전 지령으로 두 개의 소대가 급습했고, 타 지역 부대는 차단군으로 활동했다.
(조 워커의 RT 캘리포니아는 수류탄 무더기를 빠르게 던지기 위해 따로 제작된 판자를 가슴에 걸고 다니는 대정찰 부대원을 조우했다)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
새로운 대정찰 부대와 함께 전문적으로 추적 훈련을 받은 월맹군 부대가 있었는데, 그들은 로인클로스를 입은 이전의 라오스인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LZ 감시병이 헬기 착륙을 보거나 월맹군 순찰대가 SOG 팀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발견한다면 트레일을 따라 전략적 지점에 배치된 추적병이 호출되었다.
새로운 추적병만으로 충분히 나빴지만 일부는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인 개와 함께 활동했다!
개가 확실히 우호적이지 않은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상황을 겪은 이들은 그때의 불안한 감정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초기의 패닉 이후, SOG 팀은 개가 맞서 싸워야 할 또 하나의 위험 정도로 받아들였다.
사실 이들은 진정한 추적견은 아니었지만, 그 평범한 아시아 개들은 냄새를 추적하는 법을 배웠고 능숙하게 쫓아왔다.
다가오는 추적견을 관찰한 몇 안 되는 정찰대원 중 한 명인 1-0, 조 워커는 "고양이 정도 크기의 작고 늙은 미키 마우스 개"를 발견하고 놀랐다.
그래도 그 작은 개는 적 순찰대를 워커 팀으로 직접 이끌었다.
월맹군이 일반적으로 팀을 사냥하는 방법
(이동하는 월맹군. 이러한 수천 명의 부대가 SOG 팀 사냥에 동원될 수 있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월맹군 방어 체계는 1968년과 1969년에 발달했으며,주요 시설을 향한 고정형 경계와 함께 추적병 및 대응군과 통합한 탐지 부대의 형태로 대규모 계층형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었다.
무전기와 유선 전화로 서로 연결되고 지역 정글 트레일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보유한 월맹군은 SOG 팀이 투입된 시기와 장소를 파악하고 팀을 정확한 위치로 추적한 다음 마지막으로 SOG 팀을 포위하고 섬멸하거나 포획하려고 했다.
팀의 도착을 감지하기 위해 월맹군은 LZ 감시병력을 극적으로 확장시켰다. 1969년에 라오스 남동부에는 거의 모든 사용 가능한 LZ가 감시병의 감시하에 있었다.
헬기가 착륙하는 것을 발견하면 감시병들은 추적병을 불렀고 지역 월맹군 사령관은 즉시 감시병과 순찰대를 인근 트레일로 파견했다.
월맹군 지역 사령관(아마도 해당 지역의 빈 트램(통신 및 연락 기지)을 지휘했을 것이다)은 일반적으로 한 개 이상의 군견 팀과 함께 대정찰 중대의 배치를 지시했고 이들은 1~2시간 안으로 배치됐다.
추적팀의 최신 보고를 들은 대정찰 중대는 소대 단위로 나뉘어져 신중하게 선택된 지역을 수색하여 SOG팀을 노렸다.
(RT 메릴랜드의 1-0 건터 왈드, 동료인 윌리엄 브라운과 도널드 슈와 작전 중 월맹군 대정찰 부대의 야간 습격으로 실종됐다)
이러한 노력은 종종 정찰팀을 기다리는 차단군이나 팀을 매복 공격으로 밀어붙이는 "몰이꾼"과 같은 지역 지원군의 도움을 받았다.
지역 보안도 마찬가지로 강화되었으며, 도로에는 추가 보초가 배치됐고 트럭 주차장, 베이스 캠프, 비축물자 시설 근처 정글을 순찰하는 순찰대가 있었다.
팀이 발견되면 월맹군은 후방 병사부터 월남으로 향하는 부대나 국경에서 전투 휴식을 치루던 노련한 보병에 이르기까지 모든 병력을 소집하여 가능한 한 모든 병력을 투입했다.
(항공기로부터 숨기 위해 나무에 몸을 밀착한 월맹군 도로 초병)
(월맹군의 가장 위협적인 대정찰 화기인 B-40 로켓, 등에서 탄을 뽑아 장전했으며, 사진과 같은 경우 더 이상 위협이 아니다)
잘 갖춰진 트레일을 따라 빠른 행군을 할 수 있었기에 월맹군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부대를 강화하여 소탕, 매복 및 차단 병력으로 해당 지역을 장악했다.
퇴출 LZ를 향한 맹렬한 경주에서 SOG 대원들은 정글을 가로질렀고 월맹군은 고속 트레일을 따라 달렸기 때문에 종종 팀을 앞질렀다.
SOG 팀이 이러한 모든 장애물을 피하고, 우회하고, 싸울 수 있다고 판단되면, 적군은 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12.7mm 대공 기관총을 재배치하여 퇴출 LZ로 최후의 일격을 가할 기회가 있었다.
여러 SOG 팀이 이때 최고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으나 재배치된 12.7mm 기관총에 의해 퇴출 헬기가 격추될 뿐이었다.
(월맹군 대공조)
부록 1: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20169
부록: 미군 사살 훈장본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20083 월맹군 대정찰 부대와 전술 - 워리어플랫폼 마이너gall.dcinside.com1969년에 이러한 대규모 병력을 상대로 한 임무 시도는 40,000명 이상의 월맹군 병력을 묶어놓았다. 이는 월남 전장에서 놀라울 정도로 병력이 분산된 것이다.
항상 약 50명의 SOG 병력이 라오스를 배회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각 그린베레 대원이 800명의 적군을 묶어두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아마도 현대 역사상 가장 큰 병력비일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월맹군은 여전히 SOG 작전을 중단할 수 없었다.
부록 2: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20170
부록: 파테트 라오본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20083 월맹군 대정찰 부대와 전술 - 워리어플랫폼 마이너gall.dcinside.com부록 3: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20172
부록: 도청과 첩자들본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20083 월맹군 대정찰 부대와 전술 - 워리어플랫폼 마이너gall.dcinside.com부록 4: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20173
부록: SOG 사령관 카바노와 월맹군 대정찰본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20083 월맹군 대정찰 부대와 전술 - 워리어플랫폼 마이너gall.dcinside.com
여러모로 월맹애들이 잘싸우면서도 독하네
수류탄 판 씹ㅋㅋㅋㅋㅋㅋ 광기네
(사진과 같은 경우 더 이상 위협이 아니다)
지금의 응우옌들이면 SOG 사냥 관련한 국뽕 영화 뽑을 수 있겠는데ㅋㅋ
라오스, 캄보디아 써먹은거 때문에 못 쓸걸
자세히 설명 좀 님아
호치민 트레일의 형태로 즈그들 전쟁에 남의 나라 써먹은 꼴이 나오잖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