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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G의 정찰 임무(지역 정찰 중 개울을 건너는 RT 뉴햄프셔)SOG 팀은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만 품고 계획없이 돌아다니기 위해 라오스나 캄보디아로 보내진 것이 아니다.각 SOG 작전은 공식적으로 보고되고, 철저하게 연구되고,gall.dcinside.com


해당 글의 포로 생포 파트


1970년 초, 주월미군 사령관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장군은 SOG 스티브 카바노 대령에게 최근 라오스 남동부에서 월맹군 호송대의 이동 빈도가 급증했고, B-52가 폭격할 수 있도록 그들의 목적지를 찾으라는 특별 명령을 내렸다.

SOG 카바노 대령은 작년에 라오스에서 단 한 명의 포로도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적의 보안이 삼엄해졌기 때문에 월맹군 호송대 선두 운전자를 납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호송대 매복 및 포로 납치 작전의 이름은 애쉬트레이 작전으로 명명됐고 SOG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장교 중 한 명인 프랭크 야크스 소령과 올리버 하트윅, 다니엘 스터, 레이 햐리스, 존 블라우, 팀 린치, 포레스트 토드, 빌 스퍼전, 존 그랜트의 8명의 자원자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7일간의 계획과 리허설 후, 야크스의 대원들은 17대의 차량 호송대를 매복 공격했지만, 결과적으로, 총격전이 너무 거칠어서 월맹군을 모두 사살하고 생포에 실패하였다. 

아군 사상자는 없었다.

몇 명의 팀장들이 두 번째 시도인 애쉬트레이 II 작전에 자원했지만, 보안상의 우려로 야크스 소령의 동행이 거부되며 완전히 다른 대원들로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내 RT 캘리포니아와 프레드 크루파 대위 휘하의 RT 뉴햄프셔를 결합하여 이 두 팀이 임무를 이끌도록 선택됐다.

그리고 6명의 미군 동료들로 렉스 제이코, 존 얀시, 리처드 우디, 폴 케니콧, R. 마이클 그레이스, 제임스 갈라소, 그리고 네 명의 몽타냐드가 붙어 총 12명의 대원으로 구성됐다.

10일 동안 우리는 매복을 계획하고, 폭발물 실험과 리허설을 하고, 마지막 리허설에서 폭발물로 트럭을 멈추고, 주변을 확보하고, 운전를 잡는 데까지 10초만 걸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1970년 부활절 일요일 이브 밤 9시 30분 직전, 110번 고속도로에서 소련제 GAZ-63 트럭이 우리 곁을 지나가자, 크레모아 한 줄을 격발시키고 "돌격!"을 외쳤다. 

얀시, 크루파, 우디와 나는 멈춰 선 트럭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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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압된 트럭, 보닛에 올려진 테르밋 수류탄은 화자인 존 플라스터가 배치했다)


우리가 그를 포위하는 동안 얀시는 운전자를 땅에 눕혀 고정시켰고 크루파는 손목에 플라스틱 구속구를 슬쩍 끼웠다. 

한편, 100야드 떨어진 각 측면에서는 우리 엄호팀이 도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크루파는 그의 코닥 인스타매틱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고, 철수할 때가 됐을 때 월맹군이 리처드 우디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힌 것을 시작으로 총격전이 시작됐다. 

내가 여러 명의 월맹군과 싸우는 동안, 철수하는 동료들은 각각 6개의 시간 지연 신관 장치들을 흩뿌려 45분 동안 터지는 있는 파편 수류탄, 백린, 최루 가스로 이루어진 지뢰밭을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트럭에 장착된 테르밋 수류탄과 폭발물이 터지면서, 우리가 도망칠 때 도로와 뒷길을 공격하기 위해 도착한 전투 폭격기들을 위한 불타는 봉화가 만들어졌다. 

밤새 우리는 추격하는 월맹군으로부터 도망쳤고, 동이 트자마자 헬기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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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를 데리고 나오는 렉스 제이코 중사(우)와 존 얀시 하사, 사진 왼쪽에는 CCC 사령관인 에드가 맥고웬 중령과 작전 당시 의무병인 제임스 갈라소가 있다)


그 부활절 일요일 밤, 나는 사이공에 있는 MACV 본부에서 에이브람스 장군에게 브리핑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그는 우리 대원들을 축하해주고 내 손을 잡아주었다. 

붙잡힌 운전자는 SOG가 그해 라오스에서 데려온 세 명의 포로 중 한 명이었고, SOG 역사상 유일하게 계획적으로 붙잡힌 대원이었다. 

SOG 사령관 카바노 대령은 애쉬트레이 II 작전을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했던 작전 중, 가장 성공적인 작전"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