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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맹군 대정찰 부대와 전술(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BTR-60, 호치민 트레일의 주요도로 순찰 및 콘보이 보호를 맡았다)SOG의 초기 샤이닝 브라스 작전 시절에 월맹군은 정찰팀을 사냥하기 위해 특별히 훈련받은 부대를 배치하지 않았다.월맹군 후gall.dcinside.com증가하는 월맹군의 대정찰 능력에 대해 SOG의 4번째 사령관인 스티브 카바노 대령보다 더 우려한 사람은 없었다.
1968년 중반에 배치된 이 전 10 특전단 사령관은 증가하는 사상자와 SOG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팀을 적진 뒤에 머무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다.
2차 대전 당시 젊은 공수부대 장교였던 카바노는 제11 공수사단에서 두 차례 전투 강하를 하여 뉴기니와 필리핀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그의 두 번째 강하는 도널드 "헤드헌터" 블랙번의 필리핀 게릴라가 확보한 노스 루존 강하 구역에서 시행했다.
그리고 또 다른 우연의 일치로 전임 SOG 사령관인 잭 싱글롭과 UCLA 동급생이었다.
카바노의 1961년 첫 번째 월남 파병 동안 그는 해당 국가의 미 육군 선임 훈련 장교였으며 그 후 포트 브래그의 특수전 개발단을 이끌고 특수부대 훈련, 교리 및 매뉴얼을 작성했다.
카바노는 거의 아버지 같은 인물이었고 항상 지원해주고 진정한 경청자였으며 조언을 구하던 정찰팀으로부터 존경 받았다.
카바노 SOG 최고 사령관은 작전 보안 위반이 의심됐기에 각 FOB를 방문하여 1-0들로부터 팀이 계속 현장에 있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카바노는 무선 보안이 문제라고 결론을 내리고 팀의 현장 무전기에 연결되는 쇼핑백 크기의 50파운드 장치인 KY-38 암호화 장비를 휴대하도록 팀에게 지시했다. "물론 정찰팀은 이것을 싫어했다"라고 카바노는 인정했다.
정찰대원들은 그 큰 장치가 기동성을 저하시켜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했고, 게다가 암호화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보안 실패 문제를 끝낼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은 KY-38이 다른 무전기만큼 쉽게 방향 추적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KY-38이 팀 투입 직전에 "의문스럽게" 고장났다. 1-0, 조 워커의 KY-38은 발진 기지에서 5번 연속 오작동하여 투입되지 못하게 "강제"됐다.
SOG 본부의 월남군 장교들 사이에 적의 첩자가 존재할 수 있다고 의심한 카바노는 월남 동료들을 속이기 시작했고, 실제 LZ까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을 때 팀이 투입될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그리고 실전에서는 또 다른 문제였다."라고 카바노는 말했다.
이어서 카바노는 SOG의 20km 제한을 넘어서 팀을 투입하는 것이 또 다른 개선 사항이라고 생각했다.
"적들은 우리 LZ를 꽤 굳게 확보했다. 나는 마침내 워싱턴으로 돌아가서 더 깊이 침투할 수 있는 권한을 요청했고 설리번 대사만 아니었다면 그 권한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팀을 투입할 때마다 대사관에 이를 알려야 했는데 이를 따랐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발각된 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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