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2일 저녁, 이마드 무그니예는 다마스커스 인근 크파르 수사Kfar Sousa에 위치한 한 건물에서 헤즈볼라 고위 지휘관들과 레바논 국민저항전선 조직원들을 만났다.
10시 30분쯤, 그는 건물에서 나왔다. 그가 길 아래의 주차장에 주차된 그의 2006년식 미쓰비시 파제로 4×4로 걸어갈 동안, 두 명의 CIA 준군사 공작원과 현지 정보원이 그를 주시했다.
폭발은 10시 45분경에 일어났다. 거대한 불덩이가 차를 집어삼켜 이마드 무그니예를 분멸시켰다. 폭탄은 텔아비브에서 감시하고 있던 모사드 공작관들에 의해 원격으로 폭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발 직전에 무그니예와 만났던 헤즈볼라 지휘관 여러 명을 포함하여 수십 명이 폭발 장소로 달려갔다.
거리에 있는 CIA 공작원들은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들은 향후 사용을 위해 에이전시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 될 것이었다.
“저희는 그가 시리아에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어요,” 라고 무그니예의 이모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저희는 시리아에서라면 그가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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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미국은 이 작전에서 숨겨진 패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2015년 1월, 5명의 전직 정보 관리들은 워싱턴 포스트의 아담 골드만과 엘렌 나카시마에게 미국이 무그니예를 죽인 폭탄을 만들었다고 확인했다.
CIA는 논평을 거부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수석 대변인인 마크 레게브는 기자들에게 “우리가 이번 일에 대해 첨언할 말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메이어 다간 모사드 국장은 60 Minutes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그자가 이 세상에서 소멸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고 밝혔다.
“미국인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대한 무그니예의 공격에 대해 다간이 말했다. 그는 1983년 레바논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와 1985년 베이루트 해병대 막사 테러, 이라크에서 죽은 수백 명의 병사들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들 [자비로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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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그니예의 암살과 관련된 가장 미스테리한 의문점 중 하나는, 이스라엘이나 미국에 대한 헤즈볼라의 즉각적인 보복 공격 없었다는 것이다.
보복으로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폭발 테러나 납치도 없었다.
어쩌면 협박이 정말로 최고위층 간의 게임이고, 무그니예가 사우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든지 거기엔 “협박이 오간 거래”가 있었고, 거래와 관련된 세부사항들이 대중에게 공개된다면, 순교자 무그니예가 충격적일 정도로 간악한 자로 보이게 될 것이라는 빌리 워의 말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이란은 만들어진 영웅을 잃고싶지 않았고 미국은 보복공격을 원치 않았던건가
무그니예는 미국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나 유대인 대상으로 한 테러도 여러 번 일으켰기 때문에 암살당했을때 모사드 혼자서 죽인줄 알고 이스라엘만 오질라게 욕했음. 이란, 헤즈볼라 쪽에서도 뭔가 켕기는게 있었는지 공격은 일체 하지 않었고
2015년에 WP 기사로 미국이 배후로 드러났을 때는 아마 암살 작전 관련한 엠바고가 풀려서 (그러니까 이제 공개해도 안전하겠다 판단해서) 전직 관리들이 인터뷰에 응해준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