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내가 데리고 있던 용사들한테, 면담 정신전력 등 하면서 자주 이야기했던 것들이고, 모든 걸 걸고 실제로 나는 이렇게 느끼고 있음. 가끔 갤에서 이런 거 묻는 친구들이 있어서 써봄.

1. 일단 고맙다. 선택권 없이 강제로 끌려왔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리를 지키고 있어줘서다.

2. 뭐가 됐든 열심히 하려는 친구들은 더 고맙고 멋있다. 내가 징집병으로 왔어도 어떻게든 몸 편히 있으려고 최대한 빠져나가려 했을텐데, 너희들은 어디서 의지가 생겨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저것 나서서 하는 친구들 보면 솔직히 진짜 멋있다고 생각한다. 너희 보면서 반성한 적도 있다

3. 그렇다고 뺑끼 치는 애들이 아니꼽냐? 그것도 딱히 아니다. 내가 징집병이었어도 그랬을 것 같기 때문에, 또 너희들 입장에서는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안 다치고 집에 가면 그만이니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보상을 더 해주지는 않으니까.

4. 단 하나 바라는 점은, 전투원으로써 1인분만을 해 달라는 거다. 부대 발전에 기여하고...부대 성과를 내고..지휘관 진급을... 뭐 이런 와닿지도 않는 소리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북괴를 눈앞에 마주했을 때 적어도 훈련 부족으로 본인이 개죽음 당하지 않기 위해서, 같이 Px 가서 과자 사먹던 동기를 지키기 위해서, 네 뒤에서 일상을 누리는 부모님, 친구들이 북괴와 만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 뿐이다.

5.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인지, 나라를 지킴에 적합한 보상이 주어지는지 등은 본인의 판단에 맡긴다. 정신전력과는 별개로 그 판단을 간부가 강요할 순 없다. 다만 그 판단과 하등 상관없이, 본인 의지와도 상관없이 총을 잡게 되었으니까 하는 말이다.. 간부들이라도 너희를 거기서 빼내어 줄 수는 없으니까. 불가항력이다.

6. Dmz에 들어갈 때마다, 아니면 가끔 투입신고 대기하면서 너희들을 처다보고 있으면 어깨가 너무 무겁더라. 과연 북괴군이 오늘 공격하면 내가 너희를 살려서 집에 보낼 수 있을까. 몇 명이 죽고 몇 명이 살까. 매번 확신이 안 섰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 왔던 훈련들, 과연 먹힐까, 솔직히 확신이 안 섰다. 미안하다.

7. 미안하다. 왜 우리는 미군같은 장비가 없는지, 왜 탄피받이를 끼우는지, 왜 총을 묶어놓고 쏘는지, 왜 우리를 노예 부리듯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왜 국방의 의무는 남자만 지고 있는지 물어도 명쾌한 답을 줄 수가 없어서다. 어디서부터 글러 처먹었는지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8. 어딜 가든 비율의 법칙은 존재한다. 간부든 용사든. 너희 중 하나가 실수했다고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지 않으니, 너희도 간부들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한 명의 행동으로 너희 전체를 비난하는 간부가 있다면, 그 새끼가 병신이다. 싫든 좋든 남들 다 하고, 또 해야만 하는 거 한 번 빼 보겠다고 정신병자 행세 하는 용사, 그 새끼만 병신인거다.

9. 너희는 노예가 아니다. 받는 대우나 이상한 통제 때문에, 혹은 위에서 말한 병신 몇 놈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슬프지만,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너희, 혼자 판단해서 행동할 줄 아는 성인이고, 본인 햇동에 책임질 수 있는 만큼의 경험을 사회에서 이미 했다. 군대 통제가 너희를 노예처럼 만드는 것일 뿐, 노예였던 적도 없고 노예도 아니다. 간부들도 그렇게 통제받으면 너희랑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나 뿐 아니라 적어도 너희와 부대끼는 간부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을 거다. 내가 통제하면서도 이해 안 가는 것들 많았어

10. 근데 간부는 하지 마라. 나쁜 기억이었다면 훌훌 털고, 좋은 기억이었다면 안주거리로 남기고 집에 가라. 우리 이 상태로 전쟁 치르면 개죽음이다. 너희를 아끼니까, 개죽음 당하지 않았으면 해서 그렇다. 어린 나이에 속아서 노예계약서 싸인한 건 나 하나로 충분해...

p.s) 너희 월급 200 받아서 꼴받는 게 아니다. 너희 월급 많이 받고, 그 월급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는 선순환이 일어나면 우리도 좋다. 너희들이 노력과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 쌍수 들어 찬성이다. 눈에 다크서클 껴서 업무보는 행정병들, 간부랑 같이 구르는 작전팀, 새벽에 일어나고 밤 늦게까지 일하는 취사병들,  전준태 걸리면 죽어나는 계원들 등, 내친 김에 초과근무 수당도 줬으면 좋겠다.

다만, 간부 복지문제는 예산 핑계, 절차 핑계로 몇 년을 미뤄댔으면서, 용사 월급 문제는 높으신 분의 말 한 마디로 단번에 싹 바뀌었다는, 그 추진과정이 꼴받는 거다. 바꿔 말하면 간부 복지 개선도 그간 할 수 있었는데 지금껏 하지 않았고, 할 의지조차 없다는 방증이라는 거니까. 소령 정년 연장된 거, 10년 전부터 추진한다고 아가리 털던 의제다. 이 새끼들은 초급, 중견간부 이탈 문제가 본인들 모가지 위협하기 전까지는 절대 안 고칠 거다. 그 따위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군인같지도 않은 인간들이 있으니까. 진급, 보직, 테니스, 골프 빼고는 생각 없는 놈들이 있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간부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