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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군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대원 단 한 명만 꼽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SOG에는 최상급의 정찰대원인 로버트 하워드 중사가 있었다.

로버트 하워드는 미군 역사상 유일하게 13개월 동안 세 번이나 명예훈장 후보에 올랐고, 많은 이들은 세 번 모두 받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 헌신적인 군인은 이 시대 또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미군이다. 그의 제복에는 명예훈장, 수훈 십자장, 은성 및 수많은 하위 훈장과 더불어 8개의 퍼플 하트 훈장이 있었고 모두 SOG에서 받았다.

어느 날 밤 적군 트럭 옆을 달리며 월맹군들이 탄 짐칸으로 크레모아를 던져 격발시킨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또 한번은 오토바이를 탄 베트콩 테러리스트가 미군 배식 대열로 수류탄을 던지는 것을 본 하워드는 놀란 경비병에게서 M16을 빼앗아 한쪽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조준한 뒤 운전자를 쏘고 동승자를 0.5마일 정도 쫓아가 총으로 죽였다.

그의 첫 명예 훈장 추천은 1967년 11월, 해칫포스의 척후조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받았다.

해칫포스가 적의 은닉처를 파괴하는 동안 하워드의 팀은 4명의 월맹군을 만나 총격을 가했지만 팀은 기관총 사격에 제압됐다.

하워드는 월맹군 저격수를 사살한 다음 기관총 진지로 돌진하여 모든 적들을 근거리에서 쏴죽였다.

두 번째 기관총이 발사되자 하워드는 다시 앞으로 기어갔다.

나중에 쓰인 그의 수여문에는 "머리 위 불과 6인치 높이에 타오르는 기관총 총구가 있었고 거점 바로 외곽에 있었다. 하워드는 진지로 수류탄을 던져 사수들을 사살하여 일시적으로 기관총을 침묵시켰다. 더 많은 월맹군이 기관총을 쏘자 하워드는 로켓 발사기를 들고 총알 세례 속에 서서 로켓을 쏘아 진지를 완전히 파괴했다."라고 쓰여있었다.

하워드의 1인 공격으로 적군의 사기가 저하 되어 월맹군은 언덕을 두고 후퇴했다.

명예훈장 추천에도 불구하고 하워드는 수훈십자장을 받았다.

1968년 11월 중순, 하워드는 라오스의 더 깊은 곳에서 포위된 CIA 지원 부대로부터 월맹군을 따돌리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해칫포스와 함께 브라에 진입했다.

4일간의 산발적인 접촉 끝에 11월 19일, 해칫포스는 대규모 적 병력의 매복 공격을 받았고, 특히나 PT-76 전차의 포탑에 장착된 12.7mm 기관총에서 쏟아지는 사격은 치명적이었다.

하워드는 두 개의 LAW를 쏘기 위해 앞으로 조심히 다가가서 총좌를 제압하고 전차를 파괴했다.

나중에 호송 헬기로 온 휴이가 격추되었을 때 하워드는 자신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홀로 적의 사격 속으로 300야드를 돌진하여 부상당한 도어거너를 구출하고 살아남은 파일럿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

후속 사격 중에 14개의 파편이 하워드를 베었고  그는 분노에 차 적군에게 돌격했다. 세 명의 월맹군이 이에 놀랐고 하워드는 두 명을 쏘고 나머자 한 명은 포로로 생포했다.

셋째 날 밤까지만 해도, 하워드는 50개의 관통상을 입은 뒤 팔, 다리, 등, 얼굴에서 피를 흘리며 허약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다음날 아침, 37mm 대공포가 부대원의 퇴출을 중단시키자 하워드는 다시 월맹군 진지 사이를 기어다니며 대공포로 40mm 유탄 한 다스를 쏟아부어 운용병을 죽이고 퇴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12개월 만에 하워드는 두 번째 명예훈장 추천을 받았지만 정치적인 문제와 옹졸한 질투의 조합으로 인해 은성훈장으로 강등되었다.

하워드는 겸손한 사람이었고 그 어떤 훈장보다 동료들을 더 아끼는 사람이었기에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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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당한 월맹군 포로를 데리고 CCC 진료소로 향하는 밥 하워드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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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령이던 로버트 하워드. 목에 명예훈장을 걸고 1982년, 워싱턴 DC에서 열린 월남전 사망자 추모벽 헌정식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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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훈장 임무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회복 중인 하워드 중사)

그리고 몇 주 후 로버트 슈어딘 일병이 라오스에서 임무 중 부상을 입었고 그의 팀과 따로 떨어지게 되었다. 슈어딘 일병이 사라진 언덕에서 비상 무선 신호가 감지되었다.

다음날 아침, 하워드는 짐 저슨 중위가 이끄는 40명의 브라이트 라이트 소대와 함께 언덕을 수색했다.

증원된 월맹군 중대를 우회한 후 소대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으나 적의 매복을 당했다.

중국제 지뢰의 끔찍한 폭발과 함께 저슨과 하워드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하워드가 깨어나자 온몸에사 고통이 느껴졌고 잘린 손가락을 심하게 다쳐 쓸 수 없었지만 화염방사기를 휘두르는 월맹군을 가까스로 몰아냈다.

서 있기도 힘든 부상을 입은 하워드는 저슨에게 기어갔고 그는 살아 있었다.

하워드는 저슨을 서투르게 끌고 언덕에서 내려갔고, 도중에 잠시 멈춰 적군과 싸우며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약 20명의 생존자를 소집한 하워드는 그날 밤 자신의 위치로 스펙터 건쉽의 지원을 요청하여 죽을 때까지 싸울 준비를 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낙하산 조명탄 아래 야간 퇴출이 진행되어 적의 허를 찌르며 소대 생존자들은 철수에 성공했다.

끝까지 용감한 리더십을 보여준 하워드는 헬기에 마지막 사람으로 탑승한 사람이었다.

하워드는 손에 붕대를 감고 얼굴이 연고로 뒤덮힌 채로 야전병원에서 깨어났고, 짐 저슨 중위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버트 하워드의 세 번째 명예훈장 추천은 격하되지 않았지만, 훈장이 수여되었을 때 미국의 애국심은 급락했고 특별한 기획 없이 미군 군복을 입은 이들 중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인물에 대한 전국 TV 보도는 단 1초도 되지 않았다.

그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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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위이던 로버트 하워드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리처드 M. 닉슨 대통령. 하워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군인이었지만 25년 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