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6, 존 스트라이커 마이어 작성
1968년은 MACV-SOG의 8년 역사 중 가장 피를 많이 본 해였다.
FOB 1에서 여러 SOG 정찰팀이 전멸하거나, 영원히 실종됐으며 그해 5월, ST 앨라배마와 1-0 존 앨런을 제외한 모든 팀원이 사망한 사건과같이 끔찍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혼란 속에 워싱턴 주 호퀴암 출신의 과묵한 SP4가 그 해 초에 특수부대 훈련을 마치고 SOG에 자원하여 들어왔다.
그는 1968년 9월 푸바이에 도착하여 마이록 발진기지에 위치한 ST 미시간에 배치됐다.
1968년 6월, 케산에서 FOB 3가 폐쇄된 후 SOG 지휘부는 클라이드 J. 신시어 주니어 소령을 마이록의 담당장교로 지정했으며, 여러 대원은 마이록을 FOB 3라고 불렀다.
엘든 A. 버지웰에 대한 내 첫 기억은 FOB 1 푸바이에서 열린 투 핸드 터치 풋볼 경기에서다.
우리 쿼터백인 스파이더 파크스는 다른 팀 때문에 끊임없이 정신이 없었고 스파이더는 도움을 요청했다.
다음 플레이에서는 건장하고 과묵한 SP4가 라인에서 나와 러셔를 향한 블로킹을 견제하여 스파이더가 패스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모두 그의 끈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이러한 끈기의 일부는 호퀴암에서 고등학교 축구를 한 데서 비롯되었다.
버지웰은 마이록으로 돌아와 ST 미시간의 1-1으로 배정되었다.
은성 훈장 수훈자인 찰스 보그 병장이 그 팀의 1-0였으나 얼마 안 가 네브래스카로 돌아갔다.
척 윌러비 병장이 1-0를 맡았고 엘든이 라오스에서 첫 SOG 임무를 수행했다.
11월 말, 신시어는 버지웰과 보이드 대위를 LZ 스터드에서 라오스에 일련의 이탈리안 그린/엘디스트 선 배치를 위해 무전 중계지로 보냈다.
이탈리안 그린/엘디스트 선은 CISO가 적군이 방아쇠를 당기면 폭발하도록 설계된 적 탄약이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SOG 정찰팀과 해칫포스는 임무 수행 시 이탈리안 그린/엘디스트 선 탄약을 들고 적군 은닉처나 호치민 트레일 상에 많이 이용된 길을 따라 남겨 두었다.
11월 30일, FOB 1과 마이록에서 7명의 그린베레와 엘디스트 선 탄약을 옮기던 월남 공군 H-34 "킹비"가 월맹군에 의해 격추되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면서 이 특수 작전은 끔찍한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몇 년 후 버지웰은 "그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버지웰이 상기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의 팀은 임무 중 통역사 카렝을 잃었다.
마이록은 얼마 안 가 폐쇄되었고 FOB 1은 1969년 1월에 폐쇄되었다.
ST 미시간, ST 버지니아 및 ST 아이다호는 다낭 FOB 4/CCN으로 이전된 팀들이었다.
ST 버지니아의 1-1 더그 "프렌치맨" 르터노는 FOB 1을 떠난 마지막 정찰대원이었고 문을 잠근 후 다낭으로 향하여 버지웰과 같은 방을 썼다.
그의 경력 전반에 걸친 많은 일급비밀 특수 작전 임무 중 특수부대 내에서 버지웰의 전설적인 지위, 즉 특수작전 세계에서 신성시되는 전설의 시작점이 바로 이 시기였다.
1969년 3월, 버지웰은 RT 미시간의 1-0가 되었다.
SOG 정찰팀의 사상자율은 월남 내 부대 중 가장 높았다.
버지웰은 임무를 위해 팀을 준비할 때 꼼꼼하고 현장에서는 용감한 리더라는 평판을 얻었지만 바보와 REMF(Rear-Echelon Motherfucker, 후방부대의 개새끼), 그들의 사고방식의 있어서는 칼같이 나서거나 불관용 원칙으로 나섰다.
그를 저지했던 유일한 것은 개에게 물린 것뿐이었다. 의료진은 14일간의 광견병 치료를 위해 버지웰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동료 1-0인 클리트 "베이비상" 신야드는 "당시 엘든은 화를 엄청나게 냈다. 의료진들은 그의 복부에 끔찍한 광견병 주사를 꽂아댔다"고 말했다.
르터노가 덧붙이길 "그는 매우 불행한 캠퍼였다"고 했다.
1969년 3월, 광견병 치료가 종료되었을 때 RT 미시간은 아샤우 계곡 북서쪽, DMZ를 지나 동서로 흐르는 강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표적 중 하나인 MA-14에 대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돈 셰퍼드를 1-1으로, 마이크 무어하우스를 1-2로 하여 버지웰과 RT 미시간의 임무는 간단했다. 월맹군 연대 본부와 중간 기지를 찾고, 베이스캠프를 정확히 찾아낸 다음, CCN에 임시 파견된 제리 "매드독" 슈라이버가 이끄는 CCS 해칫포스를 부르는 것이었다.
팀이 이른 오후에 투입되던 중, 월맹군이 LZ로 박격포 사격을 가하여 팀의 네 번째 미군 대원이 헬기에서 뛰어내리느라 팔이 부러졌다.
버지웰은 헬기를 다시 불러 부상자를 후송시켰다.
헬기가 LZ를 떠나자 월맹군의 박격포 사격은 조용해졌다.
팀 전원이 목표물을 떠났다고 믿고 월맹군들은 호치민 트레일을 따라 정규 임무로 복귀했다.
그동안 RT 미시간은 정보 장교들이 연대 본부라고 말한 곳으로 이동했다.
(장례식 참석자(왼쪽에서 오른쪽으로) 1열 - 클레티스 "베이비상" 신야드, 밥 카스티요, 팀 커크, 더그 "프렌치맨" 르터노. 2열 - 마이크 테일러, 스콧 케이스, 릭 에스테스, 키스 A. 라슨. 3열 - 개리 롭, 론 오웬스, 브랜트 버지웰, 로건 버지웰, 데이비드 마우러, 밥 리틀)
200m만 이동한 후 포인트맨은 오래된 월맹군 벙커를 발견했다.
버지웰이 놀랄 정도로 변화에 대한 정보가 정확했다.
팀은 언덕 위로 조심히 올라가 더 많은 빈 벙커를 확인했다.
버지웰는 그 안에서 지도처럼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은 사실상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행운이 따른 일이었다.
버지웰은 월맹군 본부로 들어가서 지도, 차트, 일지, 각종 문서를 배낭에 집어넣어 넘칠 때까지 배낭에 넣기 시작했다.
무기 은닉처, 공급 경로, 통신 기지 및 암호 등 그야말로 정보의 노다지였다.
프로머의 가이드 호치민 트레일 버전 수준이었다. 잠잘 곳, 먹을 곳, 연료를 보급할 곳, 무기를 찾고 군수품을 보충할 곳, 지하 병원 등이 있었다.
이 정보를 입수하면 미군이 월맹군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RT 미시간은 수색을 계속했다.
팀은 덤불이 조금 치워진 지역에 이르렀고 버지웰은 벙커에 기대어진 AK-47과 근처에 널브러진 월맹군 조끼를 보았다.
버지웰은 그것들을 살펴보기 위해 다가갔다.
버지웰은 항상 전쟁 기념품을 원했기에 버지웰은 조끼를 뒤집어쓰고 AK-47을 몽타냐드 팀원에게 건네주었다.
월맹군 조끼 전면 파우치에는 3개의 AK-47 바나나 탄창이 있었다.
새로 발견한 조끼를 입고 버지웰은 몽타냐드 팀원 3명을 데리고 천천히 언덕 위로 이동했고, 셰퍼드와 무어하우스는 뒤에 남아 나머지 몽타냐드 팀원과 함께 방어 경계선을 구축했다.
산을 40m 더 올라간 후, 버지웰은 간이테이블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5~6명의 월맹군을 발견했다.
살아있는 월맹군 생포하면 이 특별한 임무가 기록에 남을 것이었다.
버지웰과 세 명의 몽타냐드는 월맹군 중 한 명이 발견하기 전까지 그들을 향해 조심히 다가갔다.
M-79 사수는 머리 위로 유탄을 발사하여 한 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포로로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너무 높았다.
월맹군은 데인 고양이처럼 공중으로 곧장 뛰어올라 근처 벙커로 달려갔다.
버지웰은 여전히 월맹군을 생포할 수 있다고 믿고 콘투아와 함께 월맹군을 쫓아 벙커로 향했다.
벙커로 내려오면서 버지웰은 그것이 거대한 지하 시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격을 감행했다.
르터노는 "엘든이 지하 시설에 들어섰을 때 총격전이 있었고 엘든이 월맹군 장교를 죽이고 CAR-15의 총알이 떨어졌다고 말한 걸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엘든은 AK-47을 보고 집어 들어 월맹군 한 명이 큰 구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는 순간까지 계속 사격을 가했다. 그런데도 엘든은 월맹군을 쫓았다."
적을 추격하던 중 다른 월맹군이 AK-47로 3~4발의 사격을 가하자 버지웰은 적군을 벽에 있는 큰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탄환 중 하나는 버지웰이 입고 있던 조끼에 있던 AK-47 탄창에 맞았다.
충격으로 인해 버지웰은 추격을 멈췄고 마치 야구 방망이에 맞은 것처럼 그를 뒤로 밀쳤다.
잠시 동안 버지웰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만약 생각하고 있다면 엄청나게 아플 뿐 여전히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콘투아는 구멍으로 M-79 유탄을 발사했다.
엘든은 유탄이 뼈와 살을 타격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유탄은 폭발할 만큼 충분히 멀리 날아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유탄을 발사함으로써 버지웰과 콘투아는 재집결하고 벙커에서 나와 RT 미시간의 경계로 돌아갈 충분한 시간을 얻었다.
스스로의 지나친 열정에 당황한 버지웰은 셰퍼드나 무어하우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지 않았다.
셰퍼드는 코비에게 연락하여 CCS 해칫 포스를 벙커 시설에 투입하고 RT 미시간의 철수와 CCN 본부로 돌아가 정찰팀이 확보한 첩보의 검토를 요청했다.
코비는 지연이 있다고 말했고 버지웰은 이전에 우연히 발견했던 사령부 벙커로 돌아갔다.
지도 보관함을 열고 호치민 트레일의 해당 부분 내의 전체 트레일 체계의 지도를 발견했다.
최근에 본 적의 정보 중 단연 최고였다.
RT 미시간은 사령부 벙커를 더 깊이 조사하면서 수많은 장비, 무기, 군수품, 지도, 측량 장비, 의료 키트 및 방대한 보급품 보관함을 발견했다.
팀 전원은 LZ와 CCN으로 가져갈 무언가를 확보했다.
팀이 마침내 LZ로 향하는 순간, 버지웰은 월맹군 조끼를 입은 채로 지도 케이스와 기념품 AK-47을 들고 다녔다.
팀은 벙커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주둔하던 월맹군 관리 부대와 접촉했지만 RT 미시간은 월맹군 REMF를 빠르게 처리했다.
RT 미시간은 철수했고 신시어가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있던 캠프 이글 발진 기지로 데려갔다.
셰퍼드가 코비 라이더 벤 "인디언" 넬슨에게 버지웰이 벙커까지 가며 월맹군을 쫓았다고 말했기에 신시어는 월맹군을 생포했는지 물었다.
노력을 보여줄 월맹군이 없었기에 버지웰은 발진 기지에 있는 누구에게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지 않았다.
CCN으로 돌아온 버지웰은 그와 콘투아가 동굴에서 경험한 사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르터노에게 향했다.
프렌치맨에게 자신이 가슴에 총에 맞았다고 말하자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버지웰은 월맹군 조끼를 벗고 AK-47 탄창 중 하나를 뺐다.
르터노는 "정말 놀라운 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버지웰을 향해 갑자기 날아오고 그를 넘어뜨릴 총탄은 탄창 조끼의 총알이 박혀 있었다. 그가 조끼를 벗고 티셔츠를 올리자 탄환 때문에 가슴에 커다란 멍이 있었다."
완전히 장전된 바나나 탄창을 보는 동안 버지웰은 탄창을 가볍게 흔들었고 총알이 그의 침대 위로 떨어졌다.
버지웰과 르터노는 그것을 쳐다만 보았다.
"버지웰, 너는 참 운이 좋은 새끼야" 르터노가 말했다.
몇 분 후 버지웰은 우리 RT 아이다호 팀 룸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린 M. 블랙 주니어와 나는 MA 목표 위에 있는 라오스 북부에 대한 향후 임무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왼쪽부터: 장남 브랜트 버지웰, 더그 "프렌치맨" 르터노, 클리트 "베이비상" 신야드, 데이비드 마우러, 막내 아들 로건 버지웰)
린은 버지웰이 달성한 놀라운 정보적 쾌거와 수많은 월맹군 문서를 가져온 것을 축하했다.
그리고 버지웰웰 동굴과 총에 맞은 것에 대해 우리에게 말했다.
린과 나는 버지웰의 이야기에 놀랐다. 특히 린은 1968년 10월 5일 아샤우 계곡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의식을 잃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버지웰이 비록 가슴에 멍이 들었지만 살아 있고 건강하다는 사실에 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조끼가 아니었다면 난 죽었을 거야"라고 버지웰는 말했다.
약간의 자학형 유머를 염두에 두고 블랙은 버지웰에게 순간 자신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버지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래,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 틀림없는 거지!"
버지웰은 샤워하러 떠났고 블랙과 나는 깜짝 놀랐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버지웰은 월남 제1군단 지대의 최고 장군인 리차드 스틸웰 중장에게 자신의 임무와 계획된 해칫포스의 후속 조치에 대해 보고하고 브리핑했다.
스틸웰은 그에게 RT 미시간의 임무가 최근 몇 달 동안의 최고 단일 정보 수집 작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바지웰에게 감사를 표하고 해칫포스 작전이 완료되자마자 연대급 벙커 시설에서 확보한 지도와 보고서에서 얻은 목표를 향해 일련의 B-52 아크 라이트 출격 지시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르터노에 따르면 이 임무에는 또 하나의 이상한 점이 있었다.
"총에 플라스틱 개머리판이 있었기 때문에 엘든은 자신의 기념품인 AK-47을 정보과의 괴짜들에게 넘겨야 했다. 우리 중 누구도 이전에 플라스틱 개머리판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AK에 마텔에서 제조했다는 글이 있었다. 우리는 그 AK-47에 또 다른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엘든의 장례식 후에도 그 조끼를 보았다. 엘든 조끼를 간직하고 있었다."
다음날 슈라이버의 해칫포스가 벙커 시설에 투입되었으며, 그곳에서 최소 소대 규모의 월맹군 부대가 CCS와 마주쳤다.
CCS 해칫포스는 여러 차례의 전술 공습과 결합하여 소규모 월맹군 부대를 격퇴하고 그곳에 못으로 고정되지 않은 모든 것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끝날 무렵 CCS 해칫포스는 헬기 15대를 동원해야 할 만큼의 보급품, 지도, 무기 및 군수품을 수집한 후 마침내 CCN으로 돌아와 당시 SOG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해칫포스 작전 중 하나를 축하했다.
이틀 후, 전형적인 혼란스러운 월남전의 아이러니 중 하나로, 르터노와 버지웰은 아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와이로 가는 길에 있었다.
르터노는 "우리 SOG 정찰병들은 '무언가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삶에는 보호받는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할 특별한 맛이 있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었다. 하와이로의 비행은 우리가 살아있는 기쁨을 맛보았던 전형적인 순간이었다. 그들이 말했듯이 우리는 전투 경험이 있었고 우리 자신과 각 팀의 사람들의 삶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그 때 엘든이 한두 달 된 큰아들 브랜트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버지웰은 9월까지 RT 미시간에서 임무를 계속 수행했으며 첫 파병 동안 20개 이상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1971년 2월, CCN으로 돌아와 RT 부시마스터에 1-1으로 배정되었고 데이비드 로빈슨 하사가 1-0로 임명되었다.
버지웰은 RT 바이퍼에서 1-1으로, 1-0 찰리 제이와 함께 한 임무를 수행한 후 RT 부시마스터로 돌아와 1-0가 됐다.
(그 월맹군 조끼를 걸친 엘든)
(1969년 3월, 가슴에 총을 맞은 임무 며칠 뒤의 엘든 버지웰)
그의 파병은 1971년 9월 27일 라오스에서 월맹군 공격으로 팀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갑작스럽게 끝났다.
버지웰은 얼굴에 총을 맞았음에도 전투의 중요한 순간과 철수 중 기관총으로 진압 사격을 계속하여 팀의 엄호를 맡았다.
그는 용기와 전투 기술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훈장인 수훈십자장을 받았다.
1972년에 나는 버지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N.J. 턴파이크에서 남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학사장교를 위해 조지아 포트 베닝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식사와 CCN에 대한 몇 가지 전쟁 이야기와 새 소식, 우리가 함께 했던 놀라운 사람들과 슬프게도 FOB 1과 CCN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잃은 사람들 얘기를 위해 모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전자 통신을 나눴고 결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특수작전협회 동창회에서 다시 만났고, 그곳에서 그는 1년 동안 초청 연사로 활동했다.
2005년에 그는 이라크 다국적군 본부에서 전략 작전 책임자로 근무했는데, 이는 거의 40년 동안 복무한 그의 마지막 임무였다.
이메일을 통해 나는 내 의붓아들이 2005년 8월 20일 그린 존 남쪽에 WIA로 있다고 언급했다.
며칠 후, 나는 에반으로부터 엘든 버지웰 소장이 병원에 방문했다는 흥분된 이메일을 받았다. 에반의 치료는 즉시 호전되었고 버지웰에 의해 고양되어 있었다.
지난 SOA 모임에서 버지웰은 에반과 다시 만났다.
(버지웰 삼부자, 이라크에서)
우리가 이야기하고 농담을 나누었던 퇴역한 2성 장군은 본질적으로 1968년 가을 푸바이에서 만난 군인과 동일했다. 겸손하고 용감하며 진정한 친구였다.
2010년에 나는 버지웰이 USSOCOM 불 시몬스 상을 받은 탬파에서 열린 SOFIC 시상식 및 훈장 연회에 참석했다.
그 행사가 있기 며칠 전에 버지웰은 예정된 연회에 대해 전형적이고 겸손하며 자기를 숨기는 스타일로 몇몇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난 아직도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여러 정보를 통해 확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전직 SF/SOF 전사 수십 명을 언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상은 내가 경력을 쌓는 동안 날 지지해 주고 내 부족한 지도력과 비전을 보완해 준 수많은 사람의 공로이다.
"내가 젊었을 때 레인저 대대의 중위였던 시절 가장 위대한 부하이자 스승 중 한 명은 내 부소대장이었다. 모든 일이 올바르게 이루어지도록 만든 사람이며 어느 날 내가 분대장들에게 명령/지도를 했는데 나중에 그가 분대장들에게 지도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시작했다.
'중위가 하려던 말은 ---'
"처음에는 좀 화가 났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부소대장 스미스 중사가 내 미약한 지침을 임무를 완수하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해석하고 있었기에 우리 소대가 매우 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 경력 전반에 걸쳐 스미스 중사와 같은 훌륭한 부사관 및 장교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행운을 누렸고 그 이후로 나는 시간이 주어지면 항상 원사 또는 팀 서전트의 생각을 검토하여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확인했다.
"사람들이 내 의견에 자주 찬성했다고 하면 과장일 것이다. 절반 이상은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바라봤다.
감사하다.
V/r 엘든"
미국은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고 미국 군사 역사상 거의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리더십 기술로 조국에 봉사한 위대한 군인을 잃었다.
물론 내가 편향된 것은 안다.
4월 29일, 그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수년 동안 그와 함께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처럼 쓰라린 슬픔의 눈물을 흘렸으며 올가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특수작전협회 전우회에서 환대실에 둘러앉아 우리 시절에 SOG 그린베레가 싸운 미국의 비밀전쟁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일이 영원히 그리워질 것이다.
그에게 영원한 평화와 은총이 있기를 빈다.
(엘든 A. 버지웰 소장의 장례식이 2019년 5월 9일 앨라배마주 유폴라에 있는 제일 연합감리교회에서 거행되었다. 그의 시신은 군의 영예와 함께 포트 미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이 시리즈 재밌는데 길어서 한번에 읽기가 너무 빡셈 ㅋㅋㅋ
본인도 독서를 하는 느낌으로 시간을 잡고 읽는걸 추천함
폰에 탭 띄워놓고 띄엄띄엄 읽는중 ㅋㅋ
이런 사람들을 진급시켜서 델타 지휘관으로 기용하니까 델타가 델타답게 유지되는 게 아닐까 싶네요.
풋볼 경력도 있고 실무자, 팀장 경력도 오래됐으니 리더로도 보스로도 완벽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