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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모카신 팀원은 라오스의 나무에서 이러한 문구를 발견했다. "우라질나게 좆같은 세상". 월맹군의 사기가 흔들렸다는 증거다)


월맹은 "호치민 트레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같은 이름의 산맥을 통과하기 때문에 라오스 침투 네트워크를 쯔엉선 루트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했다.


트레일은 매사추세츠주 크기의 정글과 안개 낀 지역에 숨겨져 있었다. 그곳에서 SOG 정찰팀은 50만 명의 월맹 야전군의 침투와 정비를 위한 부대, 시설, 서비스 및 장비와 창고, 병원, 막사, 교실까지 이르는 기반 시설을 발견했다.


최고조에 달했을 때 호치민 트레일은 야간에 약 10,000개의 대공포가 감시하는 2,000마일의 숨겨진 도로를 따라 10,000대의 위장 트럭을 운용했으며, 20,000~30,000명의 지원군이 네트워크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40,000~60,000명의 군이 경계를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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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고속도로를 순찰하며 SOG 매복 공격의 징후를 포착하면 알리는 월맹군 장갑차)


그림자 같은 기원


1966년까지 그 존재가 거의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미 트레일은 만들어진 지 7년째였다.


이는 1959년 4월, 월맹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5차 전체 회의 중 비밀회의에서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한 수천 명의 공산주의 참전용사들을 월남으로 은밀히 침투시키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 베트민들은 월남에 남아 있던 간부들과 합류하여 처음부터 월맹에서 시작된 작전으로 부인이 가능한 정복을 실행했다.


월맹의 역할을 부인할 수 있다면 미국의 개입에 대한 도덕적 근거가 약화될 것이라고 하노이는 믿었다.


대규모 침투를 위해 중앙위원회는 1959년 5월 창설을 기념하는 숫자인 559 지원단이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했는데, 이 부대는 월맹의 찐삿 비밀 정보국과 협력하여 병력 이동과 보급품 운송을 훈련했고 호치민 트레일을 이용한 남진을 실행했다.


호치민 트레일 사령관 보밤 준장은 "이 도로는 절대적으로 비밀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처음에 공산군들은 3개월 후인 1959년 8월, 추적할 수 없도록 농민 복장을 하고 추적이 불가능하게 프랑스산 무기로 무장한 채 남쪽으로 향했다.


1961년 초까지, 559 수송단은 약 4,500명의 간부로 구성된 26개 부대를 월남으로 파견했다.


빈트램 시스템


호치민 트레일의 핵심은 문자 그대로 "통신 연락기지"로 번역되는 빈 트램이라고 불리는 물류 본부 네트워크였다.


대령이 지휘하는 각 빈 트램은 지상 및 공중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고 날씨나 폭격으로 손상되었을 때 신속하게 수리가 가능하고 트럭 운송과 물자 이동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길이의 도로(보통 15~20마일)가 할당된 맞춤화된 연대였다.


또한 빈 트램 근무자는 월남에서 전투를 마친 후 라오스에서 휴식을 취할 월맹군을 수용할 베이스캠프와 지나가는 병력을 위한 임시 방공호를 건설하고 유지했다.


대부분의 빈 트램에는 SOG 정찰팀과 해칫포스로부터 해당 도로를 방어하기 위한 500명의 보병 대대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미국 전투기나 SOG 헬기와 교전하기 위한 대공포 대대, 트럭으로 여러 빈 트램을 다니며 물자를 운반하는 수송 대대, 도로를 복구하기 위한 시설공병 대대, 그리고 트럭에서 물자를 하역하고, 보급품과 탄약 비축량을 유지하고, 월남으로 병력이동을 관리하는 병참 대대가 있었다.


미국 정보부는 12~15개의 빈 트램이 트레일을 운행했으며, 각 트램은 일반적으로 월남 국경으로 이어지는 주요 동서 도로를 감독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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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0세 생일을 맞이한 호치민 트레일 설계가이자 사령관인 월맹군 장군 보 밤)


베이스캠프 및 베이스 에이리어


어떤 의미에서 각 빈 트램 사령관은 모텔 관리자였다. 하룻밤 숙박과 식사가 필요한 새로운 여행자 무리가 메일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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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G 정찰팀이 촬영한 이 월맹군 "중간 정거장"은 월남으로 이동하는 병력에게 하룻밤의 숙박 시설을 제공했다)


따라서 각 빈 트램에는 월맹군이 월남으로 가는 길에 하룻밤 동안 쉴 수 있는 다수의 "휴게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빈 트램 외에도 라오스에는 월남 전투 후 휴식을 취하는 월맹군 전투 부대가 거주하는 많은 베이스캠프가 있었다.


미국 포병이나 지상 공격의 범위를 넘어 월맹군 연대와 사단은 안전하게 재훈련과 병력 교체를 위해 몇 달 동안 라오스에 있던 다음 새로운 공격이 시작될 때만 월남으로 다시 건너갔다.


SOG의 주요 정보 임무는 베이스캠프를 찾아 감시한 다음, 월맹군이 월남으로 다시 침투할 때 부대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빈 트램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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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의료 지원 등을 위한 소규모 파견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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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네트워크


월맹에서 나페, 무지아 패스를 지나는 트럭 경로로, 주로 화물이지만 인력도 이 경로를 사용해 왔으며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다.


주 인력 침투로


쑤안마이에서 훈련을 마친 후 동호이 아래로 트럭으로 이동한 다음 라오스로 건너가 월남의 목표까지 도보로 계속 이동했다


캄보디아 네트워크


화물을 캄보디아로 인도한 후 월맹군 거점에서 월남으로의 화물 운송은 트럭이나 보트로 이루어졌다. 서양식 자재를 현지에서 구입했고 불법 무기 수입에 대한 현지 묵인이 가능했다.


월맹군은 울창한 산림으로 야영지를 숨기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SOG 정찰대원들에게 있어서 빽빽한 정글에서 거의 돔형 경기장에 가까운 형태에 나무 꼭대기 아래에 펼쳐진 공터로 들어가 수백 명의 월맹군 거주민을 발견하는 것은 항상 놀라운 일이었다.


월맹군 사단 및 연대 본부는 은폐 및 방어를 위해 매우 신중하게 배치되었으며 일부는 중앙 라오스에 구멍이 난 거대한 석회암 동굴에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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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맹군은 B-52 폭격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자연을 이용하여 일부 주요 본부를 라오스 동굴에 배치했다)


미군의 B-52 폭격으로 인해 월맹군은 부대를 널리 분산시켰다.


예를 들어, 2,000명의 월맹군 연대가 5마일 길이의 계곡에 분산되어 있고 각 언덕 꼭대기에 중대가 파병되어 있는 형태다.


이는 일부 SOG 팀이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월맹군 병력이 집중된 곳 한 가운데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팀이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0.5마일마다 적 소대나 중대, 심지어 500명 대대와 정면으로 부딪칠 수 있었다.


귀환한 팀으로부터 SOG 분석가가 보고를 받고 월맹군 병력 집중을 파악함에 따라 이러한 보고는 결국 적군이 거의 항상 우세하게 발견되는 지역 양상이 있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관된 집중은 "베이스 에이리어(이하 BA)"가 되었으며 대부분의 B-52 월경 폭격 목표가 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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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G 정보의 수집 및 대조를 통해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BA 밀집도를 나타냈다)


도로 건설 및 은폐


프랑스-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월맹은 디엔비엔푸에서의 대승을 지원한 중국으로부터 숨겨진 정글 도로를 건설하는 광범위한 경험을 얻었다.


적의 도로는 기능적이고 단순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고속도로를 공중에서 거의 보이지 않게 만드는 세심한 위장이었다.


월맹군 시설공병은 대부분의 군대처럼 나무를 그냥 밀어내는 대신 도로에 둥글게 얹고 최대한 많은 나무를 유지했다.


그리고 머리 위로 틈이 생긴 곳에는 나무에 올라가 인접한 가지를 묶거나 대나무 격자를 만들어 그 위에 갓 자른 식물을 놓도록 했다.


어떤 곳에서는 월맹군이 나무 전체를 심기까지 했다.


그들은 예리한 미 공군 FAC가 베이스캠프, 트럭 주차장, 은신처로 따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샛길 분기점을 숨기는 데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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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있는 이 월맹군 베이스캠프는 식별 가능한 지붕 하나로 위치가 발각됐다. 이는 월맹군의 비일상적인 실수였으며 바로 미국의 공습으로 이어졌다)


이 놀라운 위장 때문에 B-52의 폭격이 없었다면 공중에서 많은 도로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SOG 정찰팀이 찾기 전까지 새로운 도로가 종종 발견되지 않기도 했다.


월맹군은 자신들의 도로와 이동로를 마치 석공 수준으로 만든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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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언덕 등고선을 따라 도로를 깎는 월맹군)


도로가 활발하게 사용 중일 때는 단단한 지면에서 나뭇가지나 나뭇잎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월맹군 유지 관리 담당자는 도로 상태를 면밀히 감시했다.


트레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언덕을 오르는 곳에 설치된 월맹군 트레일은 더그아웃 계단과 대나무 난간이 경이로운 수공예품 수준으로 너무 잘 만들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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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G 정찰병들은 트레일이 적 공병들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독창성과 경이로움을 지닌 수공예품을 발견했다)


트럭과 호송대


호치민 트레일 고속도로 네트워크를 시각화하려면 순환계로 상상해야 한다.


심장은 월맹의 빈 근처에 있었고, 이곳에서 주요 동맥이 세 개의 산길을 통해 라오스로 흘러갔고, 그다음 미국 포병 사정거리를 넘어선 거리를 두고 월남 국경과 평행하게 남쪽으로 흘러갔다.


이 동맥을 통해 트럭 호송대는 남쪽으로 이동한 다음 월남 국경을 향한 침투로를 형성하는 주요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했다.


도로가 국경에 가까워짐에 따라 도로는 미로 같은 고속 자전거 도로와 모세관처럼 쪼개져 보급품과 병력이 눈에 보이지 않게 월남의 전장으로 운반했다.


매일 밤 어두워지기 직전에 월맹군은 도로를 따라 200~300야드마다 보초를 배치했다.


어두워지고 항공기 엔진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게 되면 보초는 신호를 전달하여 도로가 안전함을 알렸다.


그러면 어디선가 나뭇잎 더미처럼 생긴 트럭들이 나타나 호송대처럼 다니기 시작한다.


모습을 숨기려면 돌출된 정글 위장 덮개를 아래로 당기기만 하면 됐고, 가장 자주 폭격을 받는 도로 구간을 따라 월맹군은 언덕에 방공호를 파냈는데 그리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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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위장된 월맹군 트럭은 마치 굴러가는 수풀더미처럼 보였다)


미국의 공습 가능성이 거의 없는 흐린 밤에 월맹군은 100대의 트럭 호송대를 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맑은 밤에는 그들을 더 작은 호송대로 나누어서 운용했다.


이 호송대는 매일 밤 한 번에 20마일 가량을 이동했다.


운전자들은 매일 밤 같은 길을 운전했기 때문에 저광도 조명으로도 운전할 수 있었고, 전혀 조명이 없어도 운전할 수 있었다.


가장 경험이 풍부한 운전자가 호송대를 이끌었다.


일일 트럭 호송은 매일 아침 새벽이 되기 직전에 끝났으며, 수천 대의 월맹군 트럭이 라오스 고속도로를 떠나 5~25대의 트럭이 있는 트럭 주차장에 숨어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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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남부의 이 트럭 주차장은 폭탄으로 위장이 날아가 트럭 묘지가 되었다)


우선시되는 트럭 화물은 탄약이었기 때문에 남쪽으로 향하는 월맹군은 일반적으로 도보로 이동했다.


과도한 물류 라인을 더욱 줄이기 위해 하노이는 남진 병력의 자립을 요구했는데, 이는 병력이 월맹을 떠날 때 몇 주간의 식량을 운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찬가지로 트레일을 따라 주둔한 병력은 식량 수송의 필요성을 줄이고 탄약을 위한 트럭 공간을 늘리기 위해 자체 야채를 재배하고 사냥을 통해 신선한 고기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러한 긴축 노력은 AC-130 스펙터 건쉽이 라오스 밤하늘을 배회하기 시작한 이후 극적으로 증가한 미 공군 폭격으로 인해 트럭의 손실이 늘어나는 것에 대응할 수 없었다.


손실된 트럭을 교체하기 위해 보밤 장군은 독창적이고 간단한 시스템을 구현했다. 미국의 공습으로 빈 트램의 트럭 한 대가 파괴되면, 월맹에 더 가까운 인근 빈 트램은 트럭 한 대를 제공하고, 그 트럭은 다시 인근 빈 트램 트럭으로 교체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반복은 월맹의 노선 끝에서 소련 선박에서 새 트럭이 하이퐁 부두로 하역될 때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라오스 지역의 손실이 아무리 크더라도 트레일을 따라 있는 모든 부대가 필요한 만큼의 트럭을 남쪽으로 이동시킴으로써 늦어도 하루나 이틀 만에 트럭을 교체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 정비


도로 정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장비로서 각 빈 트램에는 2~3개의 불도저가 할당되었다.


하나가 파괴되면 트레일 위쪽에 있는 부대에서 도저를 보내 교체했다.


호치민 트레일은 전쟁 초기부터 폭격 대상이었지만, 1969년 월맹에 대한 폭격이 중단되면서 라오스 고속도로의 차단이 전략적 우선순위가 되어 수천 건의 공격이 이루어졌다.


미 공군 정보 분석가들은 반복적인 폭격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장소 수십 곳을 확인했다.


폭격으로 산사태가 생길 수 있는 가파른 산등성이, 막힐 수 있는 산길, 폭탄 구덩이로 인해 건널 수 없게 될 수 있는 강여울이 특히 매력적인 곳이었다.


차단 지점(Interdiction Point, IDP)으로 알려진 이 목표물은 공습의 초점이 되었고 장기적인 측면의 싸움이 되었다. 이는 미 공군의 도로 폐쇄 능력과 월맹군의 도로 개방 능력 간의 경쟁이었다.


종종 월맹군은 가장 중요한 IDP 주변에 위장 우회로를 구축했기에 이러한 지점이 폭격으로 폐쇄되더라도 트럭은 여전히 통과했다.


가장 빈번하게 폭격을 받은 IDP 근처에서 월맹군은 신속한 정비를 위해 목재, 매트, 충전재와 근처에 상주하는 시설공병 및 부대를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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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2로 인한 산사태를 치우는 월맹군 공병)


밤에는 횃불을 켜고 일하거나 공습 사이에는 수백 명의 월맹군이 삽과 손수레를 들고 서둘러 폭탄 구덩이를 채우고 잔해를 치우고 도로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미 공군 FAC는 놀라운 경험을 했는데, 어느 날 오후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산비탈까지 이어지는 B-52 폭격이 있었는데, 다음 날 아침 돌아오자 같은 도로가 다시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도로를 정비하는 적의 놀라운 능력은 수천 명의 문맹 고산 부족민을 강제 징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사실상의 노예인 이 남자, 여자, 아이들은 하노이의 "소모품"이었으며, 폭격, 질병, 영양실조에 노출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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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노예였던 이 몽타냐드 부족민은 수년간의 강제 노동 끝에 1968년, 월맹군으로부터 탈출했다)


자연도 마찬가지였다.


매년 3개월 동안 지속되는 몬순 동안 라오스 도로 체계의 대부분은 규칙적인 주기로 유실되어 월남에서의 "건기" 공세 시기와 규모가 결정되었다.


이를 인식한 CIA는 몬순 강수량을 늘리기 위해 구름을 뿌리고 세제와 같은 유화제를 공중 투하하여 통행할 수 있는 일부 도로를 무르게 해 트럭 이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팝아이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SOG는 이러한 CIA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정찰팀이 라오스 남부 전역에서 토양 샘플을 수집하도록 했다.


미국의 트럭 연료 차단 완화를 위한 월맹군의 주요 노력 중 하나는 1969년 빈에서 무지아 패스를 거쳐 라오스까지 이어지는 6인치 파이프라인을 설치한 것이다.


곧 여러 파이프라인이 케산 남서쪽의 오스카-8 목표에 있는 559 수송단의 전방 본부까지 25마일 더 이어진 후 아샤우 계곡을 향해 동쪽으로 뱀처럼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파이프라인은 매우 엄격하게 순찰 됐기 때문에 SOG 팀이 파이프라인 경로로 추정되는 곳에 접근하는 것조차 극도로 위험했다.


파이프라인과 더불어 월맹군은 남쪽으로 흐르는 라오스 강에 반쯤 채워진 석유 드럼통을 띄우는 독창적인 자연 활용을 써먹었다.


2차 대전 중 일본이 남태평양 섬에서 단절된 군대의 재보급을 위해 사용한 이 오래된 방법은 부력이 있는 드럼통을 사용하여 보급품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월맹군의 경우 드럼통은 몬순으로 불어난 강을 따라 떠내려갔고 물 흐름을 따라 하구까지 도달한 드럼통은 월맹군이 하천 위에 매달아 놓은 케이블에 걸림으로서 회수됐다.


이는 소규모 시도가 아니었다. SOG와 미 7공군 FAC는 1970년 4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라오스 강에 떠다니는 10,000개의 배럴을 발견했다.


자전거, 짐꾼, 동물들


미국 언론인들은 자전거와 짐꾼의 이미지로 적의 보급 시도를 설명했는데, 그 이유는 라오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보급품이 월남 국경을 넘어간 순간에 사용된 배송 수단만 봤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많은 기자는 호치민 트레일 전체가 일련의 자전거 도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월맹군 트럭이 운용될 수 없는 지역에서는 자전거, 인간 짐꾼, 짐을 운반하는 짐승을 얕봐서는 안 된다. 보급은 전적으로 이러한 원시적인 전달 시스템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SOG 팀이 확보한 월맹군 자전거를 가져왔을 때, 오늘날의 산악자전거 타이어와 유사한 넓은 타이어를 사용하는 무거운 프레임의 이륜차 또는 삼륜차인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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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가져온 적 수송용 자전거와 함께 자랑스럽게 포즈를 취한 CCS RT 픽의 데일 커 병장(왼쪽)과 애틀리 샤프 중사)


사이공 분석가들은 월맹군 자전거 한 대가 양쪽에 최대 220파운드의 화물을 실어 나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총용량이 거의 500파운드에 달하며, 이는 사람이 운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고 이전에 추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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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트레일을 따라 이동하는 자전거 짐꾼. 각 자전거에는 최대 500파운드의 짐을 실을 수 있었다)


월맹군 보급 경로를 관찰함으로써 SOG는 자전거 짐꾼이 짐을 싣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 한 정거장에서 다음 정거장까지 걸어간 다음 하역하고 다시 짐을 싣기 위할 때나 다시 자전거를 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라이더가 옆으로 걸으면서 핸들을 조종할 수 있도록 짧은 대나무 조각을 핸들 바의 한쪽에 묶어서 확장했다.


트럭 운전사처럼, 자전거 짐꾼도 정해진 길이의 도로나 경로를 배정받았고 그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기 때문에 어두운 밤에도 탈 수 있었다.


짐 운반용의 짐승으로 코끼리와 물소는 드물게 발견되었지만 SOG 팀은 라오스에서 월남으로 통하는 다양한 교차로에서 둘 다 사용되는 것을 발견했다.


잘 알려진 한 사건에서 여러 정찰팀은 캄득 근처에서 월맹군 코끼리 호송대를 관찰했다고 보고했지만 사이공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석가들께선 이를 비웃었다.


분노한 정찰병 몇 명이 그 지역으로 돌아가서 M79 유탄 발사기로 월맹군 코끼리를 쏘아 죽인 다음 상아를 잘라낸 다음 SOG 블랙번 사령관에게 이를 선물했다.


오늘날 그 상아는 블랙번 장군의 자랑스러운 소유물 중 하나로, 그의 거실에 전시되어 있다.


대공 방어


1968년 11월, 존슨 대통령의 월맹 폭격 중단으로 수천 개의 적 대공포가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 상공에서 연합군 폭격기가 직면했던 것보다 더 큰 집중 사격을 위해 이 대공포들을 라오스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 미 공군은 10,000개의 대공포가 호치민 트레일을 따라 존재하고 라오스 체포네 주변의 BA 604와 92번 고속도로와 922번 고속도로 교차점에 있는 오스카-8 지점의 BA 611에 가장 밀집된 대공포 구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공군은 라오스의 이 두 지점에서 매우 많은 항공기와 승무원을 잃었다.


이러한 강력한 대공포 사격에도 불구하고 SOG 헬기는 5,000피트 상공을 비행하여 이를 건너거나, 우회했으며, 헬기가 해당 지역으로 비행해야 하는 경우는 나무 꼭대기 높이에서 비행하는 초저고도 비행 전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SOG 작전은 심각하게 방해받진 않았다.


라오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큰 대공포 SOG는 목측식으로 운용되는 37mm 대공포로, 최악의 도로에서도 견인되고 사람이 방열할 수 있을 만큼 민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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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mm 포는 월맹군이 운용하는 대공포 중 가장 중포였으며, 5발짜리 살라미 크기의 포탄이 클립에 장전되어 운용됐다)


37mm 포는 일반적으로 3개 포로 구성된 소대가 운용했는데, 이들은 별도로 배치되었지만 교차점이나 산길과 같은 중요한 목표에 대한 공중 접근 시 대략적으로 십자포화를 가했다.


방향을 트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지나갈 수 있는 미국 항공기를 향해 조준 사격을 가하진 않았고 공중 폭발의 희망을 걸고 계획된 패턴으로 포격을 가했다.


37mm 포탄의 직격탄은 일반적으로 치명적인 파괴를 의미했다.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더라도 포탄 파편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거나 항공기 손실이 발생했다.


또한 어지간한 기관총보다 빠른 속도로 시가 크기의 충격신관 포탄을 뿜어내는 23mm 대공포가 라오스 전역에서 발견되었다.


월맹군은 대공포를 배치하기에는 너무 가파른 언덕 위에 배치가 가능한 이중 포신의 23mm를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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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서 가장 치명적인 저고도 대공포는 2연장 23mm 대공포였다. 발사속도도 빠르고 기동성이 뛰어났으며 포탄은 충격을 받으면 폭발했다)


23mm의 엄청난 화력, 탄도, 민첩성은 헬기에 특히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대공화기는 12.7mm 중기관총으로, 브라우닝 50 구경과 유사한 탄약을 발사하는 소련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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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용 조준기를 통해 조준하는 월맹군 사수. 리드를 잡기 위해 왼쪽 조준기에 소형 비행기 실루엣이 있다)


3명이 분해하고 운반할 수 있기 때문에 월맹군은 종종 SOG 팀을 추적하는 동안 12.7의 위치 변경이 가능했으며 월맹군 지휘관은 팀의 철수 LZ가 어디에 있을지 예상하며 12.7을 체스 말처럼 움직였다.


많은 정찰팀이 철수 헬기가 도착할 시점에 강렬한 12.7mm 사격에 노출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적의 AK 사격도 항공기, 특히 헬기를 겨냥했지만 정글로 인해 조준이 방해받는 경우가 많았다.


AK 사격으로 인해 탑승자와 승무원이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지만, 순전히 AK 공격만으로 항공기가 추락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월맹군의 가장 치명적인 견착식 대 헬기 무기는 RPG 로켓 발사기였는데, 이 바주카포 같은 로켓은 휴이 헬기를 불덩이로 변형시킬 수 있었다.


충격신관 외에도 최신 RPG-7 포탄은 920m 높이에서 자체 폭발하여 적군이 공중 폭발로 인해 항공기가 손상되거나 추락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하늘 높이 로켓을 발사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났다.


호치민 트레일에 대한 이러한 모든 시설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발견했으며 그린베레 정찰대원과 현지 팀원들의 피를 흘린 대가였다. 거기다 월맹군이 지속적으로 방어에 동적 계층을 추가했기 때문에 대가는 더욱 커졌다.


트레일에 주둔한 대공포, 도로 보초, 경비부대 외에도 월맹군은 SOG 대원들을 추적하고 죽이기 위해 LZ 감시병, 추적병, 헌터-킬러 부대와 같은 특수 대정찰 전술을 개발했다.


월맹군 피난처: 라오스 폭격 금지선


월맹군은 미국 항공기가 "중립국"인 캄보디아 영토에 있을 때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라오스 영토에서는 그 반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머물렀다.


그래도 라오스에는 미국의 폭격을 피할 수 있는 중요한 피난처가 몇 군데 있었다.


이는 라오스 민간인의 부주의한 사상자를 방지하기 위해 대규모 라오스 마을 주변에 조심스럽게 설치된 "폭격금지선"(No-Bomb Lines, NBL)이었다.


월맹군이 이러한 "선"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며, 인근 도시를 점령한 다음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공개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미국이 실수로 투하한 폭탄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 월맹군의 의도적인 점령을 보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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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맹군에 의해 점령된 라오스의 아타프. 월맹군은 'NBL' 덕에 낮에도 과감하게 군용차량을 몰았다)


프로젝트 이글루 화이트


1967년 미국 국방장관 맥나마라는 DMZ를 따라 장벽을 건설하라고 명령했는데, 이는 곧 '맥나마라 라인'이라고 불렸다.


워싱턴에 있는 기술 전문가들은 서로 맞물린 울타리, 지뢰밭, 철조망 바리케이드에 대한 비현실적인 환상에 속아 이 장벽이 월맹군의 월남 침투를 막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실패했다.


맥나마라 라인의 부산물은 케산에서 포위된 미 해병대 주변의 적의 움직임을 감지하기 위해 항공기와 SOG 팀이 설치되는 인간 및 차량 감지 센서 제품군이었다.


포위 공격 중에 센서에서 포착된 정보는 B-52 폭격을 위한 상당한 정보를 제공했으며, 이는 트럭과 병력을 감지하기 위해 라오스의 호치민 트레일 시스템을 따라 수백 개의 센서를 뿌리는 프로젝트 이글루 화이트로 이어지는 성공으로 이어졌다.


SOG 정찰팀은 열대 식물로 위장한 수십 개의 센서를 손으로 배치했다.


다른 것들은 미 해군 넵튠에서 공수됐으며, 더 많은 것들이 태국에 있는 제21특수작전비행단의 미 공군 헬기에 의해 투하됐다.


SOG 정찰팀과 함께 이글루 화이트는 정보의 주요 소스가 되었다.


매일 밤 태국 나콘파놈 공군기지의 일급 비밀 시설에서는 센서가 무지아 패스에서 남진하는 트럭과 병력의 이동하는 신호를 감지하면서 벽 크기의 지도에 불이 들어왔다.


불행히도 이 정보는 미 공군 폭격기와 실시간으로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백만 달러 규모의 프로그램으로 인한 전투 효과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글루 화이트 센서가 어느 정도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에 곧 월맹군의 대책이 뒤따랐다.


인간의 소변으로부터 암모니아를 감지하여 월맹군 밀집도를 나타내는 "인간 탐지기"를 속이기 위해 월맹군은 비어 있는 지역의 나무에 소변 양동이를 걸어 놓았다.


또한 자기형 트럭 감지기(및 자기 격발식 지뢰 신관)를 속이기 위해 물소에게 무거운 사슬을 달아 몰고 갔다.


가장 정교한 대응책은 무거운 케이블이 감긴 강력한 디젤 발전기를 탑재한 개조형 소련제 BTR-50 장갑차였다.


강력한 전자기력을 내뿜어 센서를 교란하고 미 공군 자기 신관 대차 지뢰를 폭파했다.


동남아에서 효율성이 의심되는 이 1세대 센서는 결국 오늘날의 정교한 원격 감지 시스템과 자체 격발 지뢰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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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파묻힌 이글루 화이트 센서. 정글 나뭇잎과 거의 구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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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화이트 센서는 호치민 트레일을 따라 손으로 투하되어 태국에 정보 데이터를 보냈다)


'폴즈'를 향한 아크 라이트


라오스 남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B-52 표적 중 하나는 96/92번 고속도로가 폭포에서 멀지 않은 정글 언덕 사이를 통과하는 좁은 고개였다.


그래서 '더 폴즈'라는 별명이 붙었다.


폴즈 지점은 매우 잘 알려져 있어서 1970년 크리스마스 동안 반복된 B-52 아크 라이트 공격은 SOG에서 '덱 더 홀즈'를 개사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Deck the Falls


With Bombs for Charlie


Fa-la-la-la-la, la-la, la la.


Tis the season


To nuke him hardy,


Fa-la-la-la-la, la-la, la la.


세 명의 서로 다른 SOG 정찰대원이 B-52 폭격으로 점차 정글이 확장되며 보급로가 노출되는 것을 촬영한 1967년, 1969년, 1970년의 세 장의 사진이 있는데 이보다 더 명확한 연대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수천 개의 폭탄, 겹쳐진 구덩이, 박살난 토양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길이 열려 월남을 향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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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더 폴즈' 차단 지점에 B-52 공격으로 인한 초기 피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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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B-52가 나무를 솎아냈지만 도로는 여전히 열려 있고 통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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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수년간 B-52의 공격으로 '더 폴즈'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트럭로가 폭포를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