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국제정세가 극적으로 변화하여 세상이 많이 변한다는 얘기를 해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이 역사적 물굽이와 거리를 둔 대국이 있다. 바로 독일이다. 이번 칼럼에선 독일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나는 1995년부터 97년까지 2년 동안 독일 연방군 지휘참모대학에 유학을 갔었다. 전후 독일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 영국으로부터 역사의 단절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정열적이었던 과거 독일군/프로이센군 시절의 정신적 계승은 단절되고 말았다.
전후 일본이 개인의 생명보다 귀중한 가치를 잃고 세계 최강의 전투자 집단으로서의 그림자도 형체도 잃고 말았듯이 독일군도 정신력 면에서 나약한 군대가 되고 말았다.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목숨을 내던져가며 나라를 위해 싸우는 일에 가치를 찾을 수 없도록 변한 셈이다.
그렇다고 일본에도 아직 전통 문화를 지키고, 거기서 자신의 생명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는 전투자들이 살아남듯이 독일도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전후 미국, 영국은 일본과 독일이 다시는 앵글로색슨 질서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엄격한 제도를 확립했지만, 그 방식은 각기 다른 것이었다.
왜냐하면 전쟁전 일본 주위의 여러 국가들은 모두 일본과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맹국으로써 함께 미국, 영국과 싸웠다. 그런데 독일은 주위가 모두 적국이고 대립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후의 미국, 영국의 대소련 전략상 일본과 독일을 재무장시키는 과정에서 독일에 경우엔 처음부터 NATO에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가 단독으로 자국군을 지휘 운용할 수 없게 하여 전승국이 독일군을 지휘 운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에 반해 아시아에서 같은 짓을 하려면 미군과 호주군을 제외하고는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과 함께 대동아공영권을 지향한 다국적군이었기 때문에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허브 방식으로 국가별로 컨트롤하기로 했고 일본에 대해서는 헌법 9조와 미일 동맹에서 자위대를 관리하는 구조를 취했다.
만약을 위해 말해 두지만 대동아전쟁 당시 중국에서는, 일본과 중국 국민당 정부(수도 난징)는 동맹 관계를 맺어 미국, 영국에 대항하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영이 지원하는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군(수도 시안)과 장제스의 국민당군(수도 충칭)이 중국 안에서 싸우고 있었다. 중일 전쟁이라는 단어는 전쟁 후에 생긴 말로, 그런 전쟁을 일본은 벌이지 않았다.
또 그린베레와 CIA의 전신인 OSS가 중국에서 수행하던 비통상작전에서 친일적 감정을 갖고 있던 많은 중국인들에게 반일감정을 심어주기 위해 OSS는 중국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벌이거나 '중국인이 일본인을 죽였다' ,'일본인이 중국인을 학살했다'는 루머를 퍼뜨려 일본/중국 간 적대감을 조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대 감정을 조성하는 모략 활동은 영국, 미국의 주특기지만 지금도 육자대 헬기가 미야코지마 하늘에서 추락한 것은 중국군이 한 것이다 같은 지극히 군사 상식과 정치 상식에서 벗어난 바보같은 이야기가 확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절실히 생각한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1955년, 독일 연방군은 NATO 내 군대로서 창설되었다. 독일 내에서는 독일군이 민주주의의 군대로 탄생했다는 의견이 돌았고, 일본에서도 자위대가 '민주주의의 자위대'란 말을 들은 것과 비슷하다.
일본, 독일 그 어느 쪽도 그저 단어일 뿐인 것을 같은 시기에 미/영의 대소련 전략에 필요성에 만들어진 군대에 지나지 않았다. 독일 연방군이 자위대와 다른 점은 징병제 군대라는 점이었다. 전후 일본에선 징병제의 징만 꺼내는 것조차 금기사항인데 이는 징병제도는 국가의 국민에 대한 군역 강요이며 본인의 의지에 반하는 고역의 강요에 해당하므로 헌법의 취지에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전쟁은 나쁜 것이다. 군인은 나쁜 사람'이라고 일본은 가르쳐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정반대로 나갔는데 히틀러 나치 시절처럼 국민의 의지가 다른 놈의 의사에 따라 행동할 우려가 있다면서 남성 전원이 군복무를 하게 되었다.
내가 유학하고 있을 때는 예를 들면 사단 22,000명의 병사 중 직업군인은 전체의 10%도 안 되는 약 2,000명 정도였고 그 중 전체의 60%를 차지하는 병사 계급 전원이 징병 군인이었다. 심지어 사단 홍보부에는 민간 기사 작성·편집 전문원이 2명 배직되어 있으며, 군과 관련된 정보는 기본적으로 모두 시민에게 공개하는게 일반화 되어있었다.
이러한 징병제 하의 민주주의의 군대'는 '교복을 입은 시민'이라고도 불렸다. 국민이 군복을 거리를 걷는 것은 당연하고 군복을 입고 있으면 어디서나 경의를 가지고 맞이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전교조 선생님으로부터 자위관의 자식은 교실에서 나가라며 자위대 자식의 책상이 복도 밖으로 쫒겨나간 일이 일어나기도 했고 같기도 했지만 도쿄 근무 자위관이 제복 통근을 할 수 없는 것과는 큰 차이다.
다만 민주주의의 군대의 번거로운 부분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 존중과 '임무수행에 대한 책임과 의무'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적절히 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명령 지시에 대한 불만과 불복 사례는 독일군 사단 내에서만 연간 100건을 넘게 터지는 중이었다 .특히 내가 유학을 갔을 때는 그때까지의 NATO군 안에서만 군사작전을 한다는 전후 군사체제를 고치고 독일군 단독 작전이나 나토 밖에서의 군사 작전도 수행할 수 있도록 방위 구상의 전환을 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임무행동에 대한 불복신청 서류가 각 부대에서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어쨌든 내가 독일에 유학을 간 시기는 냉전 종식 후 신세계 질서로의 이행기였고 매우 중요한 시기로 급속한 소련경제권 붕괴와 서방 국가들이 미국을 벗어나 자립하려는 도전이 활발한 시기였다. 옐친 대통령의 시장 개방 정책으로 러시아의 국가 자원은 서방 자본에 먹히기 시작했고, 카터 대통령의 보좌관 브레진스키의 전략에 따라 미국/러시아가 맺었던 조약이 보란듯이 파기당하고 NATO가 동진하는 게 큰 화제가 되고 있었다.
독일군이 받아들이는 외국인 유학생(소령 이상)도 러시아같은 동유럽 국가들의 범위가 확대되어 나와 동기였던 외국 유학생 63명 중 31명이 러시아, 동유럽 군인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육해군 대령이 와 있었다. 동기 러시아 육군 대령은 스페츠나즈의 지휘관이었다.
얼마 전 나는 10전차사단에 한달 남짓 부대 연수를 가서 당시 최신식 주력전차 레오파르트 2나 공중 기동이 가능한 위젤 공정 전투차 등에 탑승하여 시속 80km/h로 주행·사격하거나 거기에서 급브레이크로 회전 정지, 삼림 속 고속 주행, 같은 아슬아슬한 체험을 했는데 목이 휘청휘청거리며 휘어질 뻔했다. 그만큼 뛰어난 장갑 기동력을 앞세운 독일군이었지만 신세계 질서의 세계에서는 전차와 같은 전력은 무용지물로서 경보병이나 특수부대로 중점이 넘어갔다. 최근 우크라이나로 보내지고 있는 전차는 이제 전장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유물에 불과하다.
독일은 NATO의 변혁에 있어서 독일군 독자적으로 독일군을 지휘 운용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국제정치에서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정치/경제에서는 EU의 리더적 지위까지 국력을 향상시키고 정치적으로 서서히 힘을 길러 온 독일이었다. 하지만 미영의 영향력을 배제한 WEU(서구)동맹) 안의 군사적 리더의 포지션도 취하려고 했지만, 이것은 미영에게 찌그러뜨림 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냉전 종료 직후에는 미국으로부터 자립 지향적인 독일이었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문제에선 미국에서 무너질 뻔했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문제에서의 전략 목표에는 「러시아의 약화뿐 아니라 서방동맹의 연계 강화'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근년에,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러시아와의 공조를 꾀하던 독일·프랑스에 대한 저지가 포함된 게 자명하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공급 단절을 강요당하고 심지어 노르트스트림까지 파괴되어 에너지 부족에 몰린 독일이지만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결단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독일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독일 유학동안에 나에게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TV에서 방영되고 있던 '카미카제 특공대 영상'과 구미 이외의 유학 동기생들의 일본 전투자들에 대한 경외의 말이었다.독일의 텔레비전은 자주 '카미카제 특공대 영상'을 방영했는데
활기차게 웃으며 경례하고 출격하는 어느 당시 일본 전투자들의 영상이었다.
그래서 독일인에게 왜 카미카제 영상이 자주 방영되느냐고 묻자 사지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젊은 사나이들이 공포심도 흥분도 안 보이고 웃으며 날아가는 그 모습에 진심어린 경의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해외 유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 일본은 미국 밑에서 입을 다물고 있으나 여차하면 다시 한 번 싸울거라고.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거의 일본 전투자들과 똑같을거라고 내게 말했다.
우리 일본인들은 지금도 대동아전쟁까지 이어받아 내려어 온 일본 전투자들의 위업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세계에는 일본의 전투자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이것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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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S란 무엇일까
진짜 쟤 글은 보면 볼수록 병신이 육갑떤다는 생각밖에 안남 ㅋㅋ
걍 나가 뒤져야될새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