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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 준비를 마친 SOG 블랙버드. 아무 표식이 없고 기수에 풀톤 "스카이훅" 요크가 있다)


SOG는 요원을 투입하고, 보급품을 투하하고, 기만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월맹의 밤하늘을 지나는 자체 항공 자산이 필요했다.


처음에 SOG는 CIA로부터 물려받은 C-46과 C-47을 사용했지만, SOG 작전 기획자들은 이 구식 월남 수송기에는 SOG의 임무 확장에 필요한 속도, 범위, 정교함 및 화물 용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쌍발 엔진기인 C-123이 적합한 대체품이었다.


화물칸은 C-47보다 거의 두 배나 컸고, 더 중요한 점은 후방 램프와 두 개의 측면 문을 갖춰 더 나은 공중 투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서류상으로는 C-123이 C-47보다 시속 20마일 더 빨랐을 뿐이지만, 장거리 연료 탱크를 장착하면 구형 비행기는 C-123보다 약 60마일이나 느린 시속 190마일로 비행했다.


1964년 초, 6대의 미 공군 C-123은 일련번호가 제거되고 쉽게 제거가 가능한 표식을 사용했으며 첨단 비행 보조 장치와 전자전 대응책을 장비한 후 제1 비행 분견대로 SOG에 인도되었다.


제1 비행 분견대


이 "비공식" C-123을 조종하도록 배정된 인원들은 아마도 월남전 중 가장 독특한 비행사들일 것이다. 이들은 약 38명의 국민당 민간인이었으며 중화민국 공군의 예비 파일럿이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제1 비행대는 연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기밀 수준의 연합군 항공 부대인 중화민국의 제34 비행대에서 시작됐으며, 이 부대는 SOG가 월맹에서 하는 것처럼 공산 중국으로 CIA 요원팀을 투입하고 재보급을 한 오랜 역사가 있다.


다수의 파일럿은 제34 비행대에서 온 숙련된 인력이었으며, 1964년에 월남에 도착할 때까지 공산 중국 상공에서 200회 이상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대부분은 초승달 수준의 광량 아래 나무 꼭대기 높이에서 비행했다. 특히나 비행 기술이 너무나 숙달되어 있어서 SOG에 있는 동안 SAM이나 미그기로부터 격추당한 적이 없다.


그들의 저고도 회피 전술은 1950년대 후반, 케이프 코드에서 미그기 역할을 하는 미 공군 전투기를 상대로 침투 훈련을 하며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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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저고도 비행을 하는 SOG C-123)


제1 비행대의 존재는 1949년에 장개석과 중국 국민당 군을 본토에서 대만으로 대피시키기 위해 설립된 CIA 소유 항공사인 CATS(Civil Air Transport Service)와 겹쳐있었다.


다채로운 역사 동안 CATS는 디엔비엔푸에서 포위된 프랑스 낙하산병의 재보급을 맡았고 1958년 인도네시아 독재자 수카르노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시도를 비밀리에 지원했다.


1959년에 CATS는 잘 알려진 에어 아메리카로 변모했고, 그 은닉 부대는 국민당의 제34 비행대가 되었다.


SOG에 있는 동안 제1 비행대 각 비행기에는 미 공군 승무원도 당연히 있었으며 이들은 월남 또는 라오스에서의 비행을 맡았고, 대만인은 대부분 월맹과 캄보디아 비행을 맡았다.


초기에 SOG는 C-123에 월남 C-47 파일럿에게 자격을 부여하려고 했으나 월남 훈련 승무원이 비행기를 다낭 인근의 몽키 마운틴으로 몰아 SOG의 장기 요원인 팀 켄타우로스를 포함하여 탑승자 모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1964년 추락 사고로 월남 공군의 제1 비행대의 참여가 중단되었다. 


대만군과 함께 일했던 돈 라디케 미 공군 대령은 이들의 배짱과 경험에 감탄하며 "대표적으로 중국 본토에서 7차례 격추됐으나 매번 돌아온 항법사가 있었다. 그에게 생존에 관해 내가 무슨 조언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회상했다.


제1 비행 분견대에서 두 번의 파병을 거쳐 미군 지휘관으로 복무한 빌 로즈 중령은 대만인 승무원이 전문적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미군 크루치프들은 하와이안 셔츠, 청바지, 카우보이 부츠를 선호하는 반면, 파일럿들은 황갈색 바지, 흰색 셔츠, 일반 운동화, 비행사 선글라스를 택하여 온 세상으로부터 중년 직장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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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 파일럿이 조종한 표식이 없는 SOG C-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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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식이 없는 SOG 제1 비행 분견대 C-123. 특이한 위장 무늬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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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SOG C-123은 휘장만 바꾸면 국민당 비행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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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23 "풀오프" 휘장 앞에 서 있는 SOG 점프 스쿨 이수자)


격월로 각 대만 승무원은 본거지인 대만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이러한 환영 휴식 동안 그들의 C-123엔 슬라이드 온 국민당 휘장이 붙어있었다.


월남에 있는 동안 대만인 승무원들은 월남어를 거의 한마디도 할 수 없었지만 월남 신분증을 가지고 다녔다.


SOG 사령관 스티브 카바노가 말하길 "MACV의 누구도 우리가 이런 양반들을 데리고 있었다는 걸 몰랐을 거다"라고 했다.


대만 파일럿들은 나트랑 별장 안에서 도시 최고의 비밀 호스트임을 입증했다. 매일 저녁에 하비 월뱅어와 함께 파티를 즐겼고, 공군 대령 빌 페이지가 회상하길 매달 고급 중식 만찬을 즐겼으며 각 코스가 나오기 전에 75도짜리 중국 코냑으로 건배했다고 회상했다.


월간 연회에서는 15분마다 다른 파일럿이 맛있는 북경요리를 접시에 잔뜩 담아 주방에서 나와 내놓았고, 모인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 "곰베이!"라고 외치며, 코냑을 비우고 잔을 거꾸로 세워서 비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페이지는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라고 말했다.


대만인의 SOG C-123은 지상 사격으로 사이공 남서쪽으로 추락하는 일은 한 번 있었지만, 놀랍게도 월맹 상공을 수백 번 비행하는 동안 단 한 대도 손실되지 않았다.

 

블랙버드


임무, 인력 및 작전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SOG의 수송 항공기 수요는 제1 비행대의 한계를 빠르게 초과했다.


1966년 9월, 특수 작전을 위해 특별히 개조된 미 공군 최초의 C-130이 SOG에 배정되면서 추가 공수가 제공됐다.


제15공수특공대대로 지정된 이 6대의 항공기는 1968년, 제15특수작전비행대(SOS)로 변경되었다가 1970년에 제90 SOS로 재지정되었으며 나트랑의 제1 비행 분견대와 공동 주둔했다.


기밀 침투 임무에서 혼자 비행해야 했기 때문에 이 C-130 비행대는 비공식 부대 휘장에 있는 이상하게 생긴 새를 프로젝트 스트레이 구스라고 부르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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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 블랙버드 "스트레이 구스" 패치. "S/D"는 "Secret/Dangerous"을 의미한다)


이 MC-130은 미드나잇 블랙과 포레스트 그린 페인트 구성이었으며, 제거가 가능한 표식, 둥그런 노즈에 20피트 풀톤 "스카이후크" 요크 등으로 구별됐으며 이상해 보였다.


독특한 색상으로 인해 SOG 항공기는 블랙버드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는 대만인이 비행한 C-123도 비슷하게 어두운 페인트 구성을 채택하자 같은 별명이 적용되었다.


하지만 C-123과 달리 이 C-130은 모두 미 공군 승무원이 탑승했다.


특수 작전용 C-130은 C-123의 두 배 이상의 적재량에다 두 배 빠른 속도(400mph)로 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적재량과 속도가 핵심 기능이 아니었다. C-130 블랙버드는 최첨단 항법 보조 장치, 도플러 레이더 및 전략 폭격기와 동일한 고급 전자 대응책을 갖춰 특수 작전만을 위해 개조됐다.


또한 이 항공기는 가장 어두운 밤이라도 대낮처럼 TV 화면에 선명하게 표시하고 비나 안개를 뚫고 나뭇잎 너머도 볼 수 있는 혁신적인 관측 시스템인 FLIR를 갖춘 세계 최초의 군용 수송기이기도 했다.


FLIR는 그 존재조차 수년 동안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블랙버드 전투 임무


나무 꼭대기와 관목을 꿰뚫어 볼 수 있는 FLIR의 놀라운 능력 덕분에 SOG는 여러 요원 팀이 적의 통제하에 있다는 사실을 논란의 여지 없이 증명할 수 있었다. 블랙버드 승무원은 이중 활동을 하는 요원 팀이 보급품이나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는 드롭존 근처의 정글에 숨어 있는 적 경계 병력과 차량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첨단 항법 장비와 전자 대응책으로 C-130은 월맹 상공에서 가장 까다로운 야간 재보급 및 기만 낙하산 투하 임무를 맡았다.


실제로 1967년 중반, 미 공군 블랙버드는 무월광 시기를 제외하고 월평균 월맹에서 평균 4회의 야간 재보급 비행을 실시했다.


그쯤에는 미 공군 전투기가 매일 월맹 상공을 비행했기 때문에 부인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덜했고, 블랙버드는 C-123만큼 엄격하게 추적 불가능에 얽매이지는 않았으나 블랙버드의 승무원은 그럴듯한 변명과 함께 작전했다.


한 블랙버드 베테랑은 "월맹에 추락한다면 장비가 오작동하여 비행경로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이야기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 이야기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항공기는 가짜 비행 계획서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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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에서 이륙하는 SOG C-130 블랙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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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에 착륙하는 SOG MC-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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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블랙버드 승무원은 일반 C-130보다 두 배 정도 더 탑승했다. 앞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니 다우드, 마이크 코너틴 , 베르너 웨인돌프, 프랭크 제메레, 앨런 코헨, 홉디 에드먼슨. 뒷줄: 지미 리그스, 하워드 라이스, 빌리 엘리스턴, 도널드 로드스, 고든 스틸리)


제1 비행대의 C-123과 마찬가지로 블랙버드는 달이 수평선 위 30도에 떠 있을 시점에 라오스 백도어를 통해 월맹으로 들어가 적의 레이더와 SAM 지대를 피하기 위해 세심하게 계획된 침투 경로를 따라 이동했다.


정교한 항법 보조 장치와 전자 대응책에도 불구하고 SOG 항법사는 그들의 성공의 기초는 신중한 경로 계획과 세심한 항법에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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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해상을 비행하는 MC-130 블랙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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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1월 25일, 나트랑에서 박격포 공격으로 파괴된 C-130 블랙버드)


블랙버드는 장기 요원 팀을 월맹 깊숙한 곳까지 낙하산으로 보내는 것 외에도 호치민 트레일을 따라 미군 주도의 정찰 팀을 공중 투입했고 수천 개의 선전 수단인 "기프트 키트"를 뿌렸으며 미국 포로를 인도해 오는 사람에게 현금 보상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팸플릿 수백만 장을 라오스와 월맹 상공에 뿌리기도 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HALO 팀을 투입했다는 특징도 있다.


전쟁 중 잃은 블랙버드는 두 대였다.


첫 번째는 1967년 11월 25일, 박격포 공격 중 화재가 발생하여 나트랑 공군기지에 주기된 동안 파괴되었다.


두 번째는 1967년 12월 29일 월맹 상공에서 기밀 비행 중에 사라졌다.


제1 비행대의 비공식 엠블럼


제1 비행대의 임무는 일급비밀이었지만 유머 감각이 있고 '매드' 매거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안목 있는 사람이라면 비공식 엠블럼을 보고 해당 부대가 무엇을 했는지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파란색 방패에는 박쥐가 북두칠성 위를 맴돌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스파이 대 스파이"의 흰색 스파이가 숨어 있었다. 즉, 제1 비행대는 밤 중에 북두칠성(북쪽)을 향해 박쥐처럼 날아가 아군 측 스파이를 지원한 것이다.


제1 비행대가 언론에 나온 적이 없는 점을 보아 분명히 미국 기자들은 제1 비행대의 상징을 꿰뚫어 볼 만큼의 유머는 없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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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비행대의 비공식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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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베이!" 중식 연회에서 미 공군 승무원 롭 록커와 건배를 나누는 SOG 대만 파일럿)


풀톤 스카이훅 시스템


SOG의 C-130 블랙버드에는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는 곳에서 정보 요원과 추락한 공군 승무원을 구출하기 위한 장치인 풀톤 "스카이훅"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었다.


스카이훅을 만든 천재는 세계 최초의 증기선 중 하나인 클레르몽(풀톤 폴리)을 만든 이의 현손인 로버트 E. 풀톤 주니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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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훅 엠블럼)


스카이훅은 1940년대 민간 우편물 수거 기술로 개발된 올 아메리칸 시스템(All-American System)에서 발전했다. 


항공모함의 정지 장치와 유사한 고리를 단 C-47이 지상 십수 피트 높이로 날아가, 갈고리로 두 기둥 사이에 고정된 케이블을 걸어 케이블에 부착된 우편물 가방을 공중으로 잡아당긴 뒤, 위치로 감아올려 착륙하지 않고도 우편물을 픽업할 수 있게 했다.


한국전쟁 당시 CIA 산하 주한 합동 고문단(JACK)은 올 아메리칸 시스템을 수정하여 북한과 중국 본토에서 요원을 퇴출하는 데 사용했다.


미래의 SOG 사령관이 될 젊은 JACK 장교인 존 "스킵" 새들러 중위는 1952년 일본에서 올 아메리칸 시스템의 시연을 맡기도 했었다.


같은 해, 새들러 중위는 만주에서 중국 고위 망명자 구출 임무로 CIA C-47과의 동행 허가를 얻기 위해 JACK에 있던 상사(미래의 또 다른 SOG 사령관인 존 "잭" 싱글롭이었다)에게 열심히 로비를 벌였으나 싱글롭은 허가해 주지 않았다.


비행기는 격추되었고, 두 명의 CIA 승객인 리차드 펙토와 존 다우니가 생포되어 1972년,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할 때까지 중국에 투옥되었다.


스카이훅 사용


스카이훅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 우선 사용자는 블랙버드나 F-4 팬텀이 수축된 풍선, 1,500피트 케이블, 하네스 슈트가 들어간 관 크기의 캐니스터를 열어야 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선 슈트를 입고, 헬륨 풍선을 부풀려 케이블이 세워지는 데 약 15분이 걸렸다.


그 사이 스카이훅 항공기는 기수에 장착된 20피트 요크를 유압식으로 전방으로 세웠다.


그런 다음 파일럿은 풍선 아래의 케이블을 향해 요크가 향하도록 몰았고 사용자는 시속 125마일로 낚아채진 다음 윈치를 통해 뒷문으로 감아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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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훅 요크가 펼쳐지고 풍선으로 접근하는 블랙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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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이 케이블이 걸리자 사용자가 지상에서 떠오른다. 그런 다음 사용자는 윈치를 통해 뒷문으로 감겨 올려졌다)


CIA의 스카이훅 사용


스카이훅 시스템은 1961년, 인도네시아 감옥에서 CIA 계약 조종사 알 포프를 구출하려는 계획에 필수적이었다.


포프의 민항 수송기는 1958년 2월, CIA가 지원한 인도네시아 쿠데타 시도 중에 격추되었다.


그러나 포프를 구출할 예정이었던 스카이훅 조종사는 라오스에서 사망하자 로버트 케네디 미 법무장관의 개인적인 호소와 상당한 금액의 사례금을 통해 포프의 석방이 이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카이훅은 실제 첩보 작전에 투입되었다.


북극 인근, 얼음이 부서지기 시작하자 소련 기상 관측소가 센서와 장비만 남겨진 채 버려졌다.


미 해군 정보부는 소련이 얼음 밑에서 미국 잠수함을 추적하는 기술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에 소련 장비를 회수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다.


두 명의 미국 팀이 현장으로 낙하산을 통해 투입됐으나 얼음이 부서져 철수를 위한 항공기가 착륙할 수 없었다.


결국 스카이훅 키트가 투하됐고 풀톤 장비를 갖춘 B-17 폭격기가 요원들을 구출했다.


흥미롭게도 이 비행기는 3년 후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007과 본드걸을 구하는 데 사용된 것과 동일한 비행기였다.


스카이훅과 SOG


1966년, 롱탄 기지에서 최초로 스카이훅을 테스트한 SOG 대원은 SOG 사령관인 잭 싱글롭 대령이었다.


싱글롭은 "유일하게 후회한 점은 나를 매단 후 파일럿에게 어디로 비행할지 지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항공기가 워존 D에서 1,000피트도 채 안 되는 고도로 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월남 전체에서 적군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스카이훅은 대공포 사격이나 근처의 적대적인 지상군이 있는 곳에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한 퇴출에 가장 적합했다.


SOG는 정찰팀을 탈출하기 위해 스카이훅을 사용하지 않았다. 시스템은 한 번에 두 명만 들어 올릴 수 있고 대공포 위협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전직 블랙버드 파일럿 돈 제임스 중령은 "풀톤 회수 시스템을 갖춘 사람을 어딘가에서 구출하려면 많은 계획이 필요했다. 구조 대상자가 주변의 모든 이들이 눈치챌 수 있는 곳에서 풍선을 설치해야 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1967년 5월 21일을 첫 시도로 하여 SOG 블랙버드 승무원들은 월맹에서 추락한 파일럿을 여러 차례 추적한 적이 있었다.


그날 샘 로즈 소령의 블랙버드에 동승한 제임스 "L.C." 스미스에 따르면, 항공기가 도착하기 전에 추락한 파일럿과의 무전이 두절되었기 때문에 구출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블랙버드 승무원이 보고하길, 추락한 파일럿이 풍선을 부풀렸으나 근처에 장애물을 고려하는 것을 잊었기에 위치를 옮겨야 했었다.


추락한 파일럿이 준비를 마치고 블랙버드가 돌진하기 시작한 순간, 월맹군은 이미 파일럿의 위치를 향해 몰려들었다.


풀톤 스카이훅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근접 퇴출에는 SOG 사령관인 존 새들러 대령이 개인적으로 참여했다. 존 새들러는 블랙버드 승무원에 대한 위험을 염려하여 F-4의 뒷좌석에 탑승하여 블랙버드의 진입을 허가하기 전에 직접 그 지역을 비행했다.


월맹 깊은 곳에서 새들러는 팬텀에서 스카이훅 키트 투하를 승인하고 구출이 준비하는 동안 추락한 파일럿의 무선 메시지를 모니터링했다.


그때 파일럿은 갑자기 자신의 호출 부호를 "피터 윌리"로 바꾸었다. 이는 전쟁 포로인 PW를 뜻했다. 


이는 블랙버드를 격추하기 위한 적의 함정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52년에 올 아메리칸 퇴출을 진행하다 중국에서 매복 공격을 받을 뻔했던 새들러 대령은 구출을 중단했다.


전쟁 후반에 스카이훅이 추락한 파일럿을 구출하기 위해 고려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는데, 특히 미 공군 휴 햄블턴 중령의 "Bat-21" 구출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각각의 경우에서 몇 가지 중요한 요인이나 파일럿의 포획으로 인해 스카이훅 픽업은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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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버드는 스카이훅 요크를 완전히 펼치고 돌진하여 케이블을 걸고 승객을 구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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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톤 스카이훅 장비는 SOG 블랙버드에 의해 공중 투하됐고, 지상에 있는 사용자는 특수 슈트를 착용하고 퇴출을 위해 풍선을 부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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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47은 뒤를 낮춰 케이블을 낚아채고 올 아메리칸 시스템으로 승객을 들어 올렸다.


(2) 올 아메리칸 시스템으로 확보되는 1952년 당시 대위였던 존 새들러.


(3) 격하게 C-47 아래서 윈치로 감기며 올라가는 미래 SOG 사령관 새들러.


실종된 스트레이 구스


1967년 12월 28일, SOG 블랙버드 승무원 S-01은 월맹에 침투하여 프로젝트 우들스를 위한 허위 팀인 팀 미카도를 향해 허위 재보급을 투하했다.


그 의도는 적의 방첩 활동을 혼란스럽게 하고 보안군이 허상의 팀을 좇게 하여 SOG의 장기 요원 팀이 더 나은 생존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계획된 낙하지점은 중국 윈난성에서 남쪽으로 12마일 떨어진 월맹 북서단 지역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짙은 구름으로 인해 승무원은 투하를 중단했다.


임무 일정은 다음 날 밤으로 변경되었다. 


12월 29일 이른 아침, 블랙버드는 선전 전단을 투하하기 위해 하노이 남서쪽으로 날아갔고, 오전 4시 30분에 "all-OK" 무전을 보낸 후 허위 보급품 투하를 위해 낮은 고도로 하강했다.


그 메시지는 승무원 S-01로부터 마지막으로 들은 메시지였다. 


격추되거나, 추락하거나, SAM에 격추되는 등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항공기는 그냥 사라졌다. 


2주간의 실종 지점 비행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미 공군 특수 작전의 놀라운 역사에서 이 블랙버드는 작전 중 손실된 유일한 MC-130으로 남아 있다.


라오스의 SOG 정찰팀 MIA와 마찬가지로 하노이도 블랙버드 승무원의 운명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1992년, 블랙버드의 것으로 추정되는 잔해를 조사한 결과 일부 뼛조각을 회수했으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실종된 미 공군 승무원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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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2월 29일 블랙버드에 탑승한 찰스 클랙스턴 소령, MIA)


• 도널드 E. 피셔 중령, 항법사


• 찰스 P. 클랙스턴 소령, 파일럿


• 에드윈 N. 오스본 주니어 대위, 항공기 지휘관


• 제럴드 반 뷰렌 대위, 파일럿


• 프랭크 C. 파커 3세 대위, 전자전 장교


• 고든 J. 웨나스 대위, 항법사


• 잭 맥크레이 하사, 항공기관사


• 진 P. 클래퍼 병장, 통신병


• 웨인 A. 에클리 병장, 항공기관사


• 에드워드 J. 달시 병장, 로드마스터


• 제임스 윌리엄스 병장, 로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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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맹 상공에서 사라질 블랙버드의 문 앞에 서 있는 실종 승무원 웨인 에클리(왼쪽)와 진 클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