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사이로 하강하여 라오스의 레그혼 무전 중계지에 착륙하는 킹비)
월남전이 한창일 때, SOG의 광범위한 작전에는 SOG 산하의 월남의 H-34 15대와 미 공군 UH-1F 및 UH-1P 수십 대 외에도 45대의 미 육군 및 해병대 헬기의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했다.
문제는 이 45대의 추가 병력 수송 헬기와 건쉽 중 어느 것도 SOG에 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SOG는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이나 에이브럼스 장군의 월간 지시를 통해 월남에 주둔한 미 육군 및 해병대 사단에 자체 헬기 중 일부를 SOG로 전환하라는 명령을 통해 이러한 추가 헬기를 확보했다.
이러한 관행으로 SOG의 일급비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나, 보낸 만큼의 헬기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것에 주요 지휘부가 분개했으며 돌아오더라도 헬기들은 총알구멍이 나서 돌아왔다.
항공 지휘관들은 SOG의 높은 항공기 손실률을 지적하고 더 많은 수의 부대로 위험을 분산할 수 있도록 인원과 헬기가 로테이션을 도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전쟁 동안 SOG 승무원과 헬기는 자주 바뀌었다. 이는 호치민 트레일의 위험한 대공 환경에 지속해서 적응하고 작은 LZ로 인원을 투입하고 맥과이어 리그로 인원을 구출하는 등 독특한 비행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의미했다.
1970년이 되어서야 대안이 실행되었다. 헬기 부대가 높은 초기 손실률을 극복하고 전술과 비행 기술을 개선하는 데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을 배울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직접 지원을 받게 한 것이었다.
이는 효과가 있었다.
파일럿과 승무원이 SOG의 위험한 세계를 마스터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손실이 감소했다.
그러나 이러한 빈번한 교체로 인한 한 가지 부작용은 30년 후 미 육군 및 해병대 헬기 부대가 SOG를 위해 언제 비행했는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용감한 공군 병사들의 업적은 결코 SOG 임무에만 기인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구출한 SOG 정찰팀과 해칫포스에게만 알려진 이름 없는 영웅들의 범주를 탄생시켰다.
한 사례로, 제155 돌격 헬기 중대, 휴이 도어거너인 SP4 어니 플러머는 캄보디아에서 격추된 휴이 승무원과 SOG 정찰팀을 구출하기 위해 헬기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플러머는 혼자서 중상을 입은 사람들의 퇴출을 위해 LZ로 끌고 갔다.
나중에 두 명의 승무원(산티아고 퀸타나, 아르만도 라미레즈)과 두 명의 그린베레(필립 스트라우트, 하워드 힐)가 사망했으나 어니 플러머 덕분에 휴이 승무원 리차드 멘젤, 제롬 그린과 그린베레 아서 돌프, 마크 슈나이더의 4명의 목숨을 구했다.
이로인해 플러머는 은성훈장을 받았지만 훈장보다 더 귀중한 것, 즉 그가 존경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존경을 받게 됐다.
(캄보디아 국경 근처로 SOG 정찰팀을 옮기는 제155돌격헬기중대 휴이)
(제77 공중 로켓 포병, B포대 코브라 파일럿 Mike Brovovkh)
(로켓으로 지상 사격을 제압하고 라오스에서 CCC 정찰팀을 철수시키는 휴이)
(휴이 다운. 적의 공격을 받은 해병대 휴이가 라오스 강으로 추락하여 로널드 야누섹 중위와 브루스 케인 상병이 사망했다. 놀랍게도 두 명의 승무원, 힐 소령과 딘 병장이 살아남았다)
(라오스 나무 꼭대기에 있는 170공격헬기중대 휴이)
(1970년, 라오스에서 CCN 팀을 투입하기 위해 나무 사이를 누비는 101 공수사단 휴이)
킹비
의심할 여지 없이, 전쟁 중 미군 조직에 영구적으로 배정된 월남 비행 부대의 유일한 사례는 다낭에 기지를 둔 제219 헬기 비행대였으며, 이 비행대의 표시가 없고 노후화된 H-34는 SOG의 상징이 됐다.
국경 간 정찰을 지원하도록 배정된 제219비행대(별명 킹비)는 다낭, 콘툼, 때로는 부온마투옷의 C&C에 헬기를 배치했다.
SOG는 킹비 파일럿에게 월경 비행 1회마다 3,000피아스터의 보너스를 지급했는데, 이는 투입 또는 퇴출당 대략 미화 25달러에 해당했다.
한 달이면 비행 수당, 강하 수당, 전투 수당을 다 받는 미군들의 총 수당에 이르렀다.
병 모양의 기수가 있는 H-34의 내부는 지저분하고 기름기가 많아 트렁크에 기름통이나 넣고 다니는 대학생의 500달러짜리 싸구려 자동차를 연상시켰다. 단, 킹비는 냄새가 나는 분홍색 유압유 통을 넣고 다녔으며, 머리 위 유압선에서 액체가 새고, 바닥도 그로 인해 미끄러웠다.
적의 50구경 탄환이 헬기의 격실에 부딪힐 때는 야구 방망이로 세면대를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지만 이쪽은 더 많은 타격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단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H-34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SOG 휴이를 조종한 뛰어난 미 공군 헬기 파일럿인 짐 플레밍 중위는 "SOG를 위해 만들어진 최고의 헬기는 H-34였다"라고 결론지었다.
"파일럿은 커다란 32기통 방사형 엔진 바로 위에 앉아있었고, 팀이 헬기 안으로 들어가면 헬기 동체 덕분이 팀과 월맹군 사이에는 최소한 철판 정도는 있었다. 동체가 정말 거칠고 단단하고 울퉁불퉁했다"
과연 얼마나 단단했을까?
"실린더를 날려버리고도 생환이 가능했다."
그리고 큰 헬기였기 때문에 H-34는 경사면에 바퀴 하나만 대고 호버링할 수 있어 가파른 언덕에서도 사람을 태울 수 있었다.
(1967년 케산 북서쪽으로 약 15km 떨어진 라오스 상공에서 편대 비행을 하는 킹비)
킹비의 유일한 무장은 2차 대전 시절의 벨트식 30구경 기관총으로, 문에 번지 끈으로 매달려 있었고 도어거너 좌석 아래의 낡은 캐니스터에 1,000발의 탄환이 쌓여 있었다.
도어거너만이 파일럿과 인터콤 통신을 할 수 있었고, 도어거너는 영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어느 날 딕 그로스 중사는 도어거너가 인터콤으로 신나게 수다를 떨다 눈을 크게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십자가를 긋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로스가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자신감을 심어주지 못했다.
때로는 킹비만의 평범한 운영 방식이 환상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위험한 월경 비행에서 돌아온 도어거너가 튀어나와 살아있는 공작새를 잡아 오기도 했었다.
또는 어느 날 오후 콘툼에서 일어난 일로, 킹비가 엘크 크기의 수사슴을 레펠링 로프에 묶어 돌아온 적도 있었으며 사슴은 그날 밤 바비큐의 메인 메뉴가 되었다.
그들은 포장된 지면을 따라 헬기 바퀴가 바닥에 닿도록 껑충거리다가 다가오는 차량과 부딪히지 않도록 홱 돌며 월남 고속도로를 따라 날아가는 것을 좋아했다.
비행에 대한 그들의 스릴은 무모함에 가까웠지만, 이 파일럿들이 조심스러웠다면 그들은 수년 동안 정찰팀을 구출하기 위해 지독한 화망을 뚫지 못했을 것이다.
전 CCC 사령관인 스코티 크레러는 "그들은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찰리 베크위스 대령도 킹비를 "월남 공군의 핵심이자 월남 최고의 파일럿"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감정을 공유했다.
이러한 존경심은 서로 교환됐다.
전쟁 후 미국에 도착한 한 전직 킹비 파일럿은 헨리 길에게 자신이 지원했던 SOG 정찰대원은 "자신이 아는 이들 중 가장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H-34 킹비는 문이 하나였지만 기수 부분에 달린 거대한 엔진이 거의 방탄방패에 가까웠다. 또한 휘장이 없다)
(라오스에서 정찰팀을 투입한 후 돌아오는 킹비 편대)
(콘툼, FOB-2에서 킹비와 함께 있는 RT 일리노이)
(놀랍게도 민첩한 대형 헬기인 킹비는 다양한 기동이 가능했고, 심지어 뒤로 갈 수도 있었다)
(라오스 남부의 호치민 트레일에서 또 다른 킹비와 함께 편대를 이룬 사진)
그린 호넷
SOG에 영구 배정된 유일한 다른 헬기 부대는 월남전에서 휴이 헬기를 몰았던 유일한 미 공군 비행대인 제20 특수작전비행대(이하 20th SOS)였으며 "그린 호넷"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초기에 제20 헬기 비행대로 알려진 그린호넷은 처음에 CH-3 졸리 그린을 비행했는데, 종종 편한 크기였으나 좁은 LZ에 착륙하는 능력이 자주 제한되었다.
따라서 1967년, 20th SOS는 UH-1F를 배치했다.
UH-1F의 터빈은 취약하고 유지보수가 까다로웠지만 미 육군 휴이보다 더 힘이 좋았다. 즉, 치열한 LZ에서 더 빨리 탈출하고 더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으며 정찰 작전에 매우 적합한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린 호넷의 비공식 부대 패치)
20th SOS는 SOG의 유일한 미군 헬기 부대로, 승무원들은 그들이 지원하는 SOG 대원들과 함께 생활했다.
공식적으로 나트랑과 나중에 깜란 만에 기지를 둔 그린 호넷 헬기와 승무원은 부온마투옷에 있는 CCS 기지로 10일마다 교대로 갔으며 이는 관계 형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20~21세가 조종하는 미 육군 휴이와는 달리, 이 공군 휴이는 30~40대의 전문가와 중령이 조종했으며 이들 중 다수는 퇴역 전 최종 임무를 맡았다.
그린 호넷 휴이의 절반은 로켓 포드와 독특한 수동 조종 미니건을 갖춘 UH-1P 건쉽으로 구성되었다.
승무원은 항공기와 독립적으로 총을 돌릴 수 있었기 때문에 목표물로 접근하는 동안 쏘고 지나간 후에도 총을 뒤틀어 뒤로 쏠 수 있었다.
일부 건쉽에는 수동식 40mm 유탄 발사기도 장착되어 있었다.
(UH-1P 건쉽에서 밖으로 몸을 기울이는 그린 호넷 미니거너, 알폰소 "R.T." 리베라)
(UH-1P 도어거너용 미니건)
(그린 호넷 건쉽의 두 가지 무기 체계: 2.75인치 로켓 포드와 미니건)
그린 호넷 건쉽 승무원들은 미니건을 활용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전술, 특히 "360"과 같은 사격 기술을 개척했다.
팀 위를 호버링하며 파일럿은 페달을 밟아 헬기를 360도로 회전시키면서 두 미니건을 모두 아래로 발사하여 원형의 장막을 형성했다.
정찰대원 벤 라이언스는 "당신이 누구든 간에 그런 일은 겪지 못 해봤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그린 호넷 도어거너는 한 쌍의 인간 정강이뼈를 가지고 다녔고, 근접 지원 임무를 마친 후 그의 헬기는 부온마투옷 CCS기지 상공에서 저고도로 굉음을 내며 다녔고, 도어거너는 미친 주술사처럼 그 뼈들을 흔들며 노래했다.
정찰대원들은 그 꼴을 좋아했다.
그린 호넷은 1967년 3월 31일, UH-1F가 12.7mm 탄환에 맞아 울창한 정글로 추락하고 항공기 지휘관인 로버트 볼드윈 소령이 사망하면서 첫 사망자를 겪었다.
그리고 1969년 1월 3일, 그린 호넷 휴이가 CCS 정찰팀을 구출하려던 중 격추되어 미 공군 R.P. 젠가 병장이 사망했다.
1969년 3월 13일, 팀 구출을 지원하던 중 그린 호넷 건쉽이 심하게 타격을 받아 부조종사 J.O. 린치 대위가 사망하고 비상 착륙 중 항공기 지휘관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승무원인 이시드로 아로요 병장은 동료들이 구조 헬기에 탑승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전쟁 중 약 15명의 그린 호넷 승무원을 잃었으며 이 외에도 용감한 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CCS 정찰대원 프랭크 벅하트는 정찰대원들 사이에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하며 "마음에 안 드는 그린 호넷을 만난 적은 없다. 그들이 언제나 최고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린 호넷 휴이는 월남 비행장에서 대기하다 캄보디아의 정찰팀이 구출이 필요할 경우 즉시 이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970년 캄보디아 국경에서 SOG 팀과 함께 이륙하는 그린 호넷 휴이)
명예훈장, 짐 플레밍 중위
1968년 11월 26일 오후, 짐 플레밍 중위가 그린 호넷 항공기 지휘관으로 근무한 지 둘째 날이었다.
그날 아침, 휴이 부조종사인 폴 매클렐런 소령과 함께 비행한 플레밍은 적 보트 이동을 감시하기 위해 넓은 캄보디아 강 근처에 RT 치셀을 투입했다.
오후 중반, 두 대의 그린 호넷 건쉽과 세 대의 병력 수송 헬기가 두코 특수부대 국경 기지 근처를 비행하던 중, RT 치셀의 통신병 찰스 휴스 병장으로부터 절박한 무전을 들었다.
앤실 "소니" 프랭크스 하사가 이끄는 6인 팀이 강 제방에 갇혀 월맹군에게 포위된 채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팀의 세 번째 그린베레로, 새로운 CCS 정찰 중대장 랜디 해리슨 대위가 그들과 함께 있었다.
미 공군 찰스 아논센 소령의 O-2 FAC 항공기와 함께 그린 호넷은 연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서쪽으로 캄보디아를 향해 날아갔다.
현장 상공에 도착한 그린 호넷은 하늘이 강렬한 화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데이브 밀러 대위의 건쉽이 추락했고, 해당 건쉽의 승무원은 휴이에 의해 구조됐으나 연료가 부족했고 두코 기지로 곧장 향했다.
그다음 두 번째 휴이도 연료가 거의 바닥나서 돌아가야 했다.
플레밍 중위의 휴이와 레오나드 곤잘레스 소령이 지휘하는 건쉽 이렇게 두 대만 남았으나 두 대 모두 연료가 위험할 정도로 부족했다.
곤잘레스가 RT 치셀 주변으로 로켓을 뿌렸지만 플레밍은 곤잘레스의 건쉽에 연기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헬기는 피격 당했지만 아직 날 수 있었다.
(RT 치셀을 영웅적으로 구출한 후 휴이에서 내려와 바로 찍은 짐 플레밍의 사진)
플레밍은 AK와 기관총 사격 속으로 기체를 몰았고 도어거너인 J.J. 존슨과 프레드 쿡이 RT 치셀을 엄호하고 확인했다.
플레밍이 휴이를 제방으로 몰아넣은 것처럼 월맹군은 정찰팀이 헬기를 향해 달려갈 틈도 주지 않을 정도로 RT 치셀을 공격했다.
통신병은 "저들이 우리를 압도했다! 저들이 우릴 압도했다! 빨리 철수해, 철수!"라고 소리쳤다.
플레밍은 팀 통신병이 "우리가 잠시 격퇴했지만 크레모아가 부족하여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라고 보고하자 뒤로 물러섰다.
안전한 고도에서 선회하면서 플레밍은 상황을 파악했다.
강을 등지고 있는 RT 치셀의 대원들은 몇 분 더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두코에서 연료를 보급하고 돌아오기에는 있는 일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젊은 중위는 헬기를 몰고 총알을 피하느라 너무 바빠서 위험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없었지만 이제 위험이 분명해졌다.
플레밍은 자신의 연료가 위험할 정도로 부족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고(절대적으로 사실임) 또는 마지막 건쉽이 간신히 비행 중인 데다 탄약도 거의 바닥났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이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플레밍 중위는 "한 번 더 시도해 보겠다"라고 무전을 보냈다.
건쉽을 선두로 하여, 그린 호넷 두 대가 강을 따라 낮고 빠르게 날았고, AK탄이 그들 주변을 따라 물을 튀겼다.
곤잘레스는 남은 로켓을 일제 사격하고 굉음이 나도록 미니건을 쐈다.
그러자 플레밍의 오른쪽 도어거너인 프레드 쿡이 굉음 너머로 "저기 있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플레밍은 몽타냐드가 네 명의 대원을 따라 제방에서 물을 튀기며 걷는 것을 보았다.
AK와 로켓 사격에도 불구하고 플레밍은 헬기를 흔들리지 않게 유지했고 이는 나중에 미 공군이 "믿을 수 없는 비행 기술의 위업"이라고 불렸다.
그러자 도어거너 J.J. 존슨의 총이 걸렸고, AK 탄환이 휴이의 전방 유리를 깨고, RPG가 헬기의 겉을 긁어냈다.
총알이 헬기 주변의 강 표면을 강타하자 플레밍은 제방에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그 순간 마지막 대원인 해리슨 대위가 강으로 뛰어들었다.
AK와 RPG 사격 속에서 해리슨 대위는 사다리로 끌어올려졌고 10초 후 모두가 철수에 성공했다.
그날 그의 사심 없는 용맹으로 플레밍 중위는 SOG의 유일한 미 공군 명예훈장 수훈자로 명예훈장을 받았다.
용감무쌍한 그린 호넷 건쉽 파일럿인 곤잘레스 소령은 공군 십자장을 받았다.
RT 치셀 1-0 소니 프랭크스는 "그들은 훌륭한 사람들이었다"라고 주장하며 이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짐 플레밍이 구출한 RT 치셀 1-0 앤실 "소니" 프랭크스(왼쪽).
21st SOS, 포니 익스프레스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자란 것처럼 태국에 기반을 둔 21st SOS도 SOG의 월남에 기반을 둔 제20 헬기 비행대에서 진화했다.
1966년 2월, 제20 비행대대의 D비행대는 태국의 나콘파놈(간단히 NKP라고도 함) 공군기지로 이전되었다.
그곳에서 "포니 익스프레스"라는 별명을 가진 이 승무원들은 이미 NKP에 기지를 둔 졸리 그린 자이언트 수색 구조 헬기와 유사한 CH-3를 타고 자연스러운 배경 이야기를 만들었다.
추락한 비행사를 구하는 대신 포니 익스프레스 헬기들은 라오스에서 CIA 비밀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날아갔으며 월맹 국경의 85번 기지에서 자스 평원과 볼라웬 고원까지 모든 곳을 비행하는 동시에 CIA가 모집한 현지인 로드워치 팀을 SOG 활동 구역 너머로 투입했다.
SOG가 1967년 1월, NKP에 자체 일급비밀 프로젝트 헤비훅 발진기지를 개설하자 D 비행대는 C-130 블랙버드를 타고 비밀리에 태국으로 온 그린베레 주도의 정찰팀을 호치민 트레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SOG가 STRATA(단기 순찰 및 표적 획득 팀) 프로그램을 시작하자 포니 익스프레스 CH-3는 이러한 현지 팀을 월맹 남부 돌출부에 투입하는 주요 침투 기체였다.
1967년 9월까지 NKP의 특수 작전 공수 수요는 새로운 CH-3 부대인 제21 헬기 비행대대가 도착할 정도로 증가했다.
처음에는 호치민 트레일을 따라 이글루 화이트 센서를 설치하는 작업을 전문으로 했으나 곧 SOG 및 CIA 헬기 임무를 처리하기 위해 D 비행대와 결합하였으며, 이 결합한 기관은 1968년 21st SOS로 재지정되었다.
21st SOS는 전쟁 후인 1975년 5월 캄보디아 공산주의자들이 미국 선박, 마야구에스호를 나포한 후 CH-53이 코탕 섬에 미 해병대를 착륙시켰을 때 가장 큰 손실을 입었다.
공격 중에 CH-53 3대가 파괴되고 2대가 심하게 손상되었으며 승무원 2명이 부상을 입었고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되었다.
("블랙 머라이어"라는 별명을 가진 이 21st SOS 헬기는 현재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있는 USAF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SOG 현지인 정찰팀을 월맹으로 옮기는 21st SOS CH-3 졸리 그린 자이언트)
(CCN 정찰팀을 위해 온 21st SOS 졸리 그린 자이언트)
(SOG가 비밀리에 라오스로 보낸 태국 나콘파놈에 기지를 둔 HH3 "졸리 그린 자이언트" 헬기)
SOG를 위해 비행한 미군 헬기 부대
SOG 헬기 지원은 주로 외부 항공 부대에서 이루어졌는데, 자주 교대되어 기록이 불완전했다.
많은 단편적인 출처에서 수집된 이 부분 명단은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SOG 대원들의 생명을 구한 훌륭한 파일럿과 승무원을 기리는 것이다.
CCN 지원:
미 육군
제101공수사단 제17기병연대 제2대대
제101공수사단 제17항공중대
제101공수사단 제188돌격헬기중대
제101공수사단 제77항공로켓포병 4대대
제158돌격헬기대대, B중대
제158돌격헬기대대, C중대
제158돌격헬기대대, D중대
미 해병대
해병 항공 부대는 1966년 여름 케산에서 SOG 임무 비행을 시작하여 1968년 구정 이후 1군단의 101 공수사단이 도착할 때까지 활동했으며 1970년 여름까지 가끔 지원했다.
초기 임무는 VMO-2, VMO-3, VMO-6, HMM-165가 맡았다.
CCC 지원:
미 해병대
1970년 9월, 테일윈드 작전용 HMH-463
미 육군
제52전투항공대대, 제119돌격헬기중대
제52전투항공대대, 제57돌격헬기중대
제52전투항공대대, 제189돌격헬기중대
제52전투항공대대, 제170돌격헬기중대
제361항공중대(호위), 핑크 팬더
CCS 지원:
미 공군
제20특수작전비행대대
미 육군
제155돌격헬기중대
제195돌격헬기중대
태국 기지 헬기 부대(CCN, CCC 및 STRATA 프로그램 지원):
미 공군
제20특수작전비행대대, D비행대
제21특수작전비행대대
(초목을 뚫고 CCC 정찰팀에게 도달한 제57돌격헬기중대 휴이)
(1968년, 안개로 뒤덮인 라오스 계곡으로 진입하는 CCN 케산 기지 헬기)
(일몰 전 닥토 기지에서 팀을 투입하고 콘툼으로 돌아오는 미 육군 휴이)
졸리 그린 명예 훈장
1967년 11월 8일, RT 매사추세츠는 라오스 표적 오스카-8에서 불과 몇 시간 만에 빠른 총격전 끝에 수백 명의 월맹군들로 인해 코끼리 풀로 뒤덮인 언덕 꼭대기까지 몰아붙여졌다.
그린베레에서 가장 잘 알려진 상사 중 한 명인 1-0 브루스 백스터는 1-1 호머 윌슨 하사, 5명의 몽타냐드와 신입 정찰병인 1-2 SP4 조 쿠식과 동행했다.
월맹군이 팀을 압도하려고 할 때 킹비와 휴이 건쉽이 도착했다.
첫 H-34에 탑승했던, NFL 라인맨처럼 체격이 뛰어난 흑인 위생병이자 SOG에서 가장 터프한 남자 중 한 명인 제임스 스커리 중사는 "그들이 정말 심각한 문제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커리의 강력한 손에 의해 1-1 윌슨과 여러 몽타냐드가 첫 킹비에 올랐다.
그런 다음 두 번째 킹비가 들어갔지만 사격으로 인해 추락했다.
1-0 백스터는 부상당한 승무원을 잔해에서 서둘러 끌어냈다.
세 번째 헬기가 들어와 몇 명의 병력을 실은 뒤 예광탄 사격을 받자 사라졌다.
마침내 네 번째 킹비가 착륙했고 백스터는 나머지 팀원을 서둘러 태웠다. 그러나 그는 부상을 입었고 헬기는 LZ에서 격추되었다.
그리고 월맹군은 대규모 공격을 가했다.
머리 높이의 코끼리 풀 속에서 1-2 조 쿠식은 백스터가 총에 맞고 거의 동시에 사망하는 것을 보았고 백스터의 시신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무전으로 알렸다.
1분 뒤, 젊은 쿠식도 사망했다.
그런 다음 월맹군의 지상 사격으로 휴이 건쉽이 격추되었다.
해 질 녘이 되자 살아남은 헬기 승무원들이 백스터와 쿠식의 시신 옆에 모였다.
미 공군 기록에 따르면 "생존자를 마저 처치하는 대신 공산군은 생존자를 미끼로 사용하여" 더 많은 구조 헬기를 유도했다.
다낭에 본부를 둔 제37 항공 구조 수습 대대의 HH-3 졸리 그린 자이언트 두 대가 야간 구출을 시도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낙하산 조명탄의 강렬한 빛 아래 첫 번째 졸리 그린은 큰 사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철수했다.
두 번째 졸리 그린은 39세의 제럴드 영 대위가 지휘했으며 60회의 전투 임무를 함께 수행한 부조종사인 랄프 브로워 대위, 항공기관사 유진 클레이 하사와 구조대원인 래리 메이시 병장이 있었다.
구출을 시도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영은 "젠장, 이미 공중에 있는데도 철수해야할 정도로 치열하다!"라고 대답했다.
졸리 그린이 화망으로 뛰어들었고, 영은 생존자들이 그린베레 대원들의 시신을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사격을 막아냈다.
막 이륙하던 차에 오른쪽 엔진이 RPG에 맞아 HH-3이 뒤집어졌다.
헬기가 사격이 위아래로 튀면서 영 대위는 심한 화상을 입은 채 캐노피 사이로 떨어졌다.
영은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다 부상당한 승무원을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했다.
새벽이 되자 구조 헬기가 생존자들 몇 명을 구조했고, 영과 동료들은 적군이 백스터와 동일하게 미끼로 삼기 위해 월맹군이 중기관총을 눈앞에 설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영은 부상당한 동료를 숨긴 다음 적에게 팔을 흔들고 소리를 질러 하루 종일 추격을 받으며 다른 생존자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월맹군의 시선을 끄는 놀라운 용기를 보여줬다.
그날 아침, 찰스 "스킵" 민닉스 상사를 필두로 짐 스커리 병장, 로널드 복, 마이크 호글런드가 이끄는 SOG 해칫포스 중대가 1마일 떨어진 곳에 투입됐다.
월맹군이 백스터와 쿠식의 시신을 고지대 아래 개활지로 끌고 간 것을 본 민닉스는 미끼를 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그의 대원들은 유혈낭자한 총격전을 벌여 호글런드 병장이 사망했고 복 병장은 은성 훈장을 수훈할 만큼 대단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한편, 부상당한 졸리 그린 파일럿인 영 대위는 정글 깊숙한 곳에서 월맹군의 추격을 따돌렸고 헬기를 불러도 안전하다고 확신하자 구출을 위해 무전을 보냈다.
쿠식과 백스커의 시신은 수습되지 않았다.
백스터의 유족은 그가 LZ에서 반복적으로 자신을 총격에 노출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먼저 대피시킨 사심 없는 용기에 대해 사후 수훈십자장을 받았다.
고통스러운 부상에도 불구하고 구출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적을 끌어낸 공로로 영 대위는 SOG 작전을 지원하면서 영웅적인 공로로 명예훈장을 받은 유일한 비 SOG 대원이었다.
무스타치오와 카우보이
아마도 H-34 킹비를 조종한 가장 위대한 파일럿 둘은 "카우보이"와 "무스타치오"일 것다. 이들의 업적은 전설적이라고만 할 수 있다.
무스타치오의 본명은 응우옌 반 호앙으로 그의 잘 다듬어진 콧수염을 반영하는 별명이었다.
찰리 노튼 소령은 카우보이의 별명은 손으로 재단한 위장 비행복에 대한 선호에서 비롯되었다고 회상한다.
정찰대원 로이드 오다니엘스에 따르면, 카우보이는 "헬기가 이륙하는 동안 뒤로 날아가는 것처럼 설계 외의 일을 할 수 있었다. 카우보이가 데리러 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전문가란 말답게 그가 물러설 일은 없다는 것도 알 것이다"
무스타치오는 1966년 SOG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헬기 구출 중 하나의 주역이었다.
정찰팀이 밤에 공격을 받아 후퇴했다. 그러나 여러 명의 부상자가 있었기 때문에 적군이 날이 밝기 전에 팀원들을 잡을 것이 확실해 보였다.
미군 휴이는 어둠 속에서 비행할 수 없었고 월남의 H-34도 마찬가지였지만 무스타치오는 시도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거의 자살 행위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는 부조종사나 도어거너 없이 킹비를 몰고 혼자 떠났다.
지상 사격과 완전한 어둠에도 불구하고 무스타치오는 팀을 발견하고 전원 구출했다.
스코티 크레러는 "그가 어떻게 그런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88개의 총알구멍이 났고 파일럿의 엄지 손가락이 날아갔다. 그 기체는 다시는 비행할 수 없었지만 팀은 구출했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비행 이야기가 모두 전투 임무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1966년 케산에서 다낭까지 킹비 편대 비행 중에 무스타치오는 후에의 교회 첨탑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기로 결심했다.
물론 실수로 십자가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1966년 7월 3일, 무스타치오는 임무를 마치고 RT 네바다를 콘툼으로 데리고 오던 중 H-34가 5,000피트 상공에서 추락했다.
항공모함에 보관하기 위해 돌아가도록 설계된 테일붐이 헐거워지며 돌아가 동체와 부딪치며 헬기를 공중에서 조각냈고 기체가 빠르게 회전하며 승객과 승무원이 튕겨 나갔다.
무스타치오 외에도 RT 네바다의 랄프 리노 하사, 도널드 포싯 하사, 작전 장교 에드윈 맥나마라 대위를 포함하여 탑승한 모든 사람을 잃었다.
SOG 팀은 리노를 제외한 모두의 시신을 발견했다.
1967년 7월 12일, 사무엘 알멘다리즈 상사와 로버트 설리반 중사와 해리 브라운, 다섯 명의 넝족이 후에에서 서쪽으로 약 60마일 떨어진 라오스 922번 고속도로 근처에서 매복 공격을 받았다.
월맹군은 설리반과 알멘다리즈를 사살하고 브라운이 도망가기 전에 어깨에 부상을 입혔다.
(콘툼 FOB2 클럽에서 메키 슐러 및 다른 킹비 파일럿과 함께 앉아 있는 무스타치오(왼쪽))
(H-34를 조종하는 무스타치오)
케산에서 환상적인 비행사 듀오 중 아직 살아있던 카우보이는 브라운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H-34에 올라탔고 세 명의 SOG 대원, 빌리 워 상사, 찰스 "스킵" 민닉스, 올리버 브린 대위가 그를 따라 탑승했다.
건쉽이나 전투기의 지원 없이 카우보이는 브라운과 여러 넝족이 발견될 때까지 킹비를 나무 꼭대기 위로 천천히 돌다 로터가 돌출된 가지를 잘라낼 정도로 작은 LZ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월맹군 총탄이 킹비에 부딪히기 시작했고 카우보이는 결국 케산으로 돌아가 연료를 보급해야 했다.
부조종사와 도어거너에게 케산에 머물라고 지시하고 끈질긴 스킵 민닉스만 데려온 카우보이는 다시 그 좁은 구멍으로 하강해 호버링을 했고 민닉스는 뛰어내렸다.
AK 탄환이 카우보이의 목을 완전히 관통했지만, 어떻게든 그는 한 손으로 킹비를 조종하고 다른 손으로 환부를 압박하고 있었고, 민닉스는 부상당한 브라운을 헬기로 끌고 와 구출에 성공했다.
카우보이의 용기는 빌리 워를 놀라게 했고, 빌리 워는 "그는 명예훈장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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