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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극동 군사령부는 부산 동래에 위치한 베이커 기지(Baker Section)를 본진으로 하는 제8240부대 예하 유격부대들을 재편하여 제1 공수유격연대(the 1st Partisan Airborne Infantry Regiment, 1st PAIR)를 창설했다.


1st PAIR의 작전목표는 북한지역으로 대원을 침투시켜 게릴라기지를 건설한 후, 첩보 수집, 시설파괴, 주 보급로와 병참선 차단작전을 용이하게 하며, 유엔군 포로를 구출하기 위한 도피망을 제공하는 것 등이었다. 이를 통해 적의 부대병력을 전선에서 감소시키고자 함이었다. 각 유격대는 소규모 자체 공수훈련을 벌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부대마다 TO를 배정하여 남양주 덕소리나 한강 모래사장에서 주기적으로 공수훈련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 훈련은 문제점이 많았다. 일단 DZ가 매우 협소했으며, 공수비행 경험이 전무한 파일럿들이 배정되기도 했고 타군과의 협조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951년 2월말경 공수낙하 훈련 중, 조종사가낙하지역을 놓쳐서 얼음이 꽝꽝 언 논밭에 낙하하여 11명이 골절상을 입었고, 나머지 9명은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1953년 초에도 7명이 한국인 유격대원이 잘못된 낙하산 점프훈련으로 한강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사령부 측은 이에 대한 적절한 시정을 하지 않았고, 그대로 다시 훈련을 하다가 추가적으로 6명이 더 희생됐다. 사고가 끊이질 않자 UNPIK 측은 공수훈련을 중단시키고 폭파 같은 훈련으로 대체했으며, 이는 한국인 대원들의 공수경험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렇게 미숙한 상태로 훈련을 마친 대원들은 북한지역에 어거지로 투입됐고 작전 시작부터 엄청난 비전투손실을 맛봐야만 했다.


자신들이 소모품처럼 다뤄지는 것을 참지 못한 한국인 대원들중 일부는 훈련을 거부하거나 탈영, 퇴소를 감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대원들은 한국군 부대보다 좋은 보급과 대우, 그리고 북한에 대한 증오심으로 묵묵히 훈련을 견뎌냈다.



UN Partisan Forces in the Korean Conflict - Francis R. Purcell






???: 옐로우 멍키들 좀 죽으면 어떠하리, 그냥 또 뽑으면 되는데~

대략 미군의 게릴라전에 대한 이해도가 바닥을 기던 시절의 이야기임. 개나소나 게릴라부대 만들겠다고 여기저기서 창설을 해댔고, 그만큼 전문성이 떨어졌음. 이때의 삽질들을 바탕으로 녹색모자가 창설되었고 베트남전의 성공적인 특수전 역사의 밑바탕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