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한국전쟁 게릴라전의 앙증맞은 찐빠들
· 한국전쟁 게릴라전의 앙증맞은 찐빠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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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1 작전(Operation Virginia 1)


1951년 3월 15일 20시 미 육군 공수대원 4명, 한국군 4명, 유격대원 제1기생 15명, 통신사 1명 등으로 편성된 버지니아 제1팀은 C–47 수송기를 타고 수영비행장(K9)을 떠나 전선으로 수송되는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한 철도터널을 파괴하기 위해, 강원도 회양(淮陽) 부근 현리에 공중 침투작전을 감행했다. 한국군 병사들은 길안내 역할을 위해 투입됐다. 본래 페리 대위가 작전을 지휘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첫 작전에 대한 위험부담이 컸기 때문에 장교나 부사관은 모두 제외되고 사병들로만 선발되었다. 미육군 레인저 4중대에서는 상병 왓슨(Martin Watson), 마일스(William T. Miles), 퍼셀(Edward W. Purcel), 일등병 베이커(Raymond E. Baker) 등 4명이 차출되었다. 이 중 퍼셀 상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지역에서 OSS대원으로 활동을 했고, 왓슨은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던 경험이 있었으며, 나머지 모두도 보병 전투경험이 있었다.


버지니아 1팀은 훈련이나 적에 대한 정보 미흡 등 제반 여건이 성숙되지 못해 미군들과 한국인 대원들이 작전 전에 충분한 합동훈련을 받지 못하였다. 낙하 당시 공군 수송기 조종사의 경험미숙으로 인하여 낙하 예정지보다 5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4개 그룹으로 흩어져서 낙하되었고, 왓슨 상병은 현지 마을 안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눈과 폭풍이 길을 가로막아 대원들은 16일과 17일 이틀간을 완전히 허비한 후 18일 아침에서야 목적지인 현리에 도착했다. 영하의 날씨 탓에 발전기가 작동되지 않아서 무전기가 무용지물이 되어 본부와 통신이 두절되었고, 식량도 딱 3일분만 가지고 출동했기 때문에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현리 터널은 중국군 철도수송대대와 지방 자위대원이 삼엄하게 경비를 하고있어서 이를 폭파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대원들은 무전기와 폭약 등을 메고 눈 속을 헤쳐가면서 삼대리 터널로 이동했으나, 이곳 또한 터널 양쪽에 참호를 구축하고 경비를 서고 있어서 사기마저 저하되었다. 다행히, 29일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그동안 끊어졌던 무전기를 통한 연락이 가능하여 기지본부와 접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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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당시 동해안 함대에 있던 3대의 헬기가 출동해서 공중 구조작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던 적군이 그날 밤 추격을 했다. F4U 콜세어 편대가 네이팜탄으로 엄호하는 동안

시코르스키 HO3S 헬리콥터들이 상공에서 호이스트로 하네스를 내려보냈다. 하지만 당시 기상상황과 연료량등으로 인해 최대 5명 밖에 구조할 수 없었다. 지휘관인 손튼(John H. Thornton) 중위와 담당관인 왓슨 상병은 부하인 퍼셀 상병과 마일스 상병, 베이커 이병에게 탈출을 지시했다. 위 3명이 헬리콥터에 탑승하자 손튼 중위는 이어서 한국군들중 2명에게 탈출순서를 양보하였다. 하지만 북한군은 능선을 따라 올라오기 시작했으며 총격이 심해지자 헬리콥터들은 이탈할 수 밖에 없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손튼과 왓슨은 자신들과 함께 있던 한국인 대원과 헤어졌다. 둘은 각개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손튼 중위는 양구 근처에서, 왓슨은 캔자스 라인을 5마일 앞둔 위치에서 중공군에게 생포 당했다.


손튼과 왓슨의 길안내 담당이었던 한국인 대원들중 박중흠·권영채 등은 귀환했으나, 오수관·이종운 등은 사살되었거나 실종되었다. 맥기 대령은 이들이 귀환하면 베이커 2팀과 통합하고자 했지만, 귀환대원들은 장교임관, 일본휴가 등의 약속이 이행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기지본부에서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재차 침투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박중흠과 권영채는 부대를 떠나버렸다. 이 때문에 당시 미군 측에서는 박중흥과 권영채가 자신들의 탈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손튼과 왓슨을 버리고 귀환했다고 여겼다. (주: 현재도 미국측 사료에서는 이게 정설이라고 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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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튼과 왓슨은 이후 3년이 넘는 세월동안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고문과 회유를 당했으나 자신들의 임무를 발설하지 않았고, 1954년이 되어서야 자유를 다리를 통해 송환됐다.


버지니아 1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으나, 적지에서 헬리콥터를 통한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된 최초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https://arsof-history.org/articles/v1n2_helicopters_korea_page_1.html

Helicopters in the Korean War: The Rescue of Virginia 1Helicopters in the Korean War: The Rescue of Virginia 1arsof-history.org


https://arsof-history.org/articles/v1n2_helicopters_korea_page_1.html



http://audio.dn.naver.com/audio/ncr/1406_1/20120817134902439_V5O2V1GLL.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