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L. 톰슨 3세는 대학을 휴학하고 1967년 1월에 군에 입대하여 1968년에 FOB 1 ST 앨라배마의 1-1으로 SOG 복무를 시작했고 1969년 1월에 CCN RT 미시간의 1-0을 시작으로 여러 팀의 1-0를 역임함. 미국으로 돌아와 레인저 교관, 한국에서 2사단 임시 레인저 중대 중대장, 18 공수군단 기본 훈련 중대 지휘, 작전 장교로 그린베레 및 레인저 평가 등의 활동을 해왔고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1988년에 전역하여 경영 컨설팅 및 교육 평가 회사인 High Performing Systems inc.의 CEO로 기업, 군, 소방관, 법집행기관의 리더십 교육, 스트레스 속에서 결정법 및 자살 예방 교육 등을 가르치고 있음
해당 영상의 1:26:19~1:42:43 구간을 번역했고 오역, 의역 많음
진행자인 조코 윌링크는 구어체지만 헨리 톰슨의 대사는 그냥 평서문 문어체인 것도 양해바람
(당시를 묘사한 그림)
조코: 그럼 이제 5월 2일부터 7일 사이에 있던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때 킹비 헬기 추락이 있었죠.
헨리: 그때는 좋은 날이 아니었다.
그때 내가 RT 버지니아를 데리고 임무를 수행했고 내 기억으로 그곳에 햄버거 고지로 향하는 월맹군 사단이나 연대가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찾은 뒤 공습 등을 동원하여 저지하기 위해 투입됐다.
햄버거 고지 전투는 매우 정치적인 전투였다.
101사단은 온갖 사상자를 내며 고지 정상까지 올라가려고 했다.
그리고 그 당시 모두가 '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올라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고지를 확보한다면 온갖 피해가 발생한 만큼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월맹군의 대규모 부대가 오고 있었고 101사단을 격파하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임무는 밖으로 나가서 그걸 찾고, 저지하고, 그들이 햄버거 고지에 도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월맹군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이동했다.
우리는 일단 선회하며 하강했고 우리가 착륙 직전 단계에 도달했을 때, 월맹군이 사격을 가해 우리 헬기를 피격시켰고 곧 동력을 잃었다.
나는 문에 앉아 지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추락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진짜로 추락했다.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눈이 떠지자 '내가 살았나, 죽었나'라고 생각하며 누워있었는데 뒤에서 총탄의 파열음이 나더니 그제서야 '난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날 쏘려고 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내 팀원들도 땅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난 팀원들을 폭탄 구덩이로 끌고 갔고, 우리는 최소한의 엄폐물이라도 확보했다.
그리고 그 헬기는 다시 비행 할 수 있었다.
피격을 많이 당해지만 어떻게든 다시 공중으로 떠올라 우리를 위해 날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구덩이 안에서 싸우고 있었고, 지상 사격이 너무 강해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A-1E를 불러 공습을 유도했다.
능선 전체를 타격하고 언덕 꼭대기를 타격하자 2차 폭발이 생겼다.
월맹군은 다량의 탄약과 물건들을 고지 위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막이 꽤 생겼지만 폭탄 구덩이의 꼭대기를 가로질러 총알이 날아와 머리를 내밀기가 어려웠다.
다들 부상을 입었다.
나도 엄청난 고통을 겪었는데 이게 어디서 오는 건지 잘 몰랐다.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아팠지만 밖으로 기어 나오면서 적들을 계속 죽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에는 헬기 한 대가 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적 사격을 제압했다.
그리고 나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팀원을 태웠다.
우리 둘은 구덩이에 머물렀다.
조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겁니까? 아니면 전술적인 이유가 따로 있어서 그런겁니까?
헨리: 이 경우엔 나와 함께 있던 그 사람이 나와 함께 있길 원해서였다.
그리고 헬기에 너무 많은 무게가 실렸다.
조코: 모두가 탑승하면 킹비가 이륙할 수 없다는 점이 우려됐다는 것입니까?
헨리: 추락할 수도 있었다.
조코: 그래서 둘이 남은 것이군요.
헨리: 우리가 전에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다.
종종 공공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해야한다.
최선의 해결책은 우리가 헬기에 타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가 다 같이 나가면 나가는거고 그렇지 못하면 그대로 있는 식으로 그곳에 계속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팀원은 살아야했다.
그래서 팀원들은 떠났고 우리는 여전히 건쉽과 함께 있던 중 조금 짜증이 나서 월맹군 하나라도 구해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일은 그냥 구덩이에서 기어나오는 것 뿐이었다. 월맹군이 이미 주변 풀밭을 기어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코: 그러니까 지금 당신을 포함해 두 사람만 있고 두 사람다 부상을 입었는데다 월맹군 사단에게 둘러싸인 폭탄 구덩이 속에 있는데 그 순간에 생포하기 좋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까? ㅋㅋㅋ
헨리: 지금 당장 누군가를 잡지 못한다면, 어쩌면 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적들 중 한 명을 생포하여 데려올 수 있다면 어느 부대인지, 무엇을 하는지, 모든 것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풀밭으로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풀은 2.5~3피트 정도 높이였다.
그리고 적들은 여전히 폭탄 구덩이를 향해 총격을 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어다니는 중에도 소리로 적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적들은 내가 구덩이에서 기어나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고 나는 전방에서 계속해서 소리를 향해 기어갔다.
그리고 타이밍을 맞춰 적이 나를 바로 보지 못하도록 한다면, 내가 적에게 부상을 입히고 다시 구덩이로 돌아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적은 포로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마주쳤고 부상을 입히는 것 이상의 조치를 취해 결국 포로를 생포하지는 못 했다.
조코: 총으로 쐈습니까? 아니면 칼로 찔렀습니까?
헨리: 총으로 쐈다.
칼을 써야 할 때도 있지만 빨리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적에게는 일행도 있고 칼은 알다시피 사거리가 팔 뻗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CAR-15를 사용하면 사거리도 멀고 저 멀리 있는 누군가도 제압 가능하다.
일단 힘이 다 빠져서 다시 구덩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라서 결국 다시 돌아왔고 충분한 제압 사격을 가해 헬기가 다시 들어와 우리 둘을 구출할 수 있었다.
발진 기지로 돌아가자 임무를 잘 해주었으나 아직 월맹군이 많이도 남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다시 팀을 꾸리고 내일 아침에 다시 가라는 임무를 받았다.
임무를 위해 팀원 몇 명을 교체했다.
조코: 왜 팀원을 교체하셨죠?
헨리: 헬기도 추락했고 부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조코: 당신은 어땠고요? 당신도 등을 다쳤잖아요?
헨리: 나는 의료진을 만났고 그들은 약을 처방해줬다.
그리고 충격을 입어서 약간의 타박상이 생긴 것이라고 진단했고 그냥 거기서 끝났다.
숨 쉬기 힘들 정도로 아팠는데 분명 단순한 멍은 아니었다.
어쨌든 내일 아침에 다시 임무를 해야 한다고 했다.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에 알았다 하고 다시 갔다.
조코: 동일한 투입 지점으로 말입니까?
헨리: 아니, 이전의 지점에서 몇 km 떨어진 다른 곳이었다.
투입되고 정글로 들어가기 시작했을때 적과 접촉했고 그곳에서 심한 교전을 벌였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던 화기와 건쉽을 통해 적을 제압했다.
충분히 제압되자 이번에도 나와 한 대원을 제외한 모든 팀원은 로프를 통해 철수됐다.
우리 둘은 여전히 남아 공습 유도를 했고 이때 우리는 월맹군 부대의 몸뚱이를 직접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더 나은 위치에 있었다.
우리는 제대로 적에게 타격을 가했고 말 그대로 수천 명의 월맹군이 죽어나갔다.
아침에만 그만큼의 적들을 죽였다는 뜻이다.
조코: 고지대에 있었습니까?
헨리: 그렇다. 우리는 산 꼭대기에 꽤 가까운 곳에 있어서 계곡에 있는 적들, 우리가 있는 곳으로 능선을 타고 오는 적들을 볼 수 있었다
조코: 적들은 당신의 위치를 알고 있었나?
헨리: 그렇다. 계속되는 교전으로 적들은 우리가 있는 곳을 알았지만 이미 이쪽에 있던 적들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었다.
적들을 쓸어버릴 만큼 충분히 큰 항공 지원 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우리에겐 A-1E와 주변을 계속 선회하는 건쉽이 있었다.
상공에서 선회하다가 자기 차례에 공습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있던 곳에선 적들을 볼 수 있었고 바로 그곳에서 꽤 상당한 접촉이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포로를 잡기 좋은 순간인 것 같았다.
저번과는 다른 지형이라고 생각했다.
현지대원에게 엄호사격을 맡기고 기어나와 적과 만났으나 나는 그를 다룰 힘이 없었다.
나는 적에게 부상을 입혔으나 너무 아파서 힘이 안 들어갔다.
평소라면 데려올 수도 있었지만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 적을 '행복한' 전쟁터든 어디든 보내주는 걸로 끝내야 한단걸 깨달았다.
그리고 뒤로 기어갔고 당일 중으로 나와 다른 대원이 로프로 철수 할 수 있었다.
우린 그곳을 제대로 엎어놨다.
조코: 그때 현장에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죠?
헨리: 거의 종일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가 돌아오자 사람들은 '너한테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고 나는 '그런 것 같아'라고 했다.
조코: 그건 그렇고 결국 월맹군은 수천 명의 부대로 그곳을 햄버거 고지로 만들었죠. 그 이유가...
헨리: 101사단은 그많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고지를 올랐다.
그들은 고지에 올라서서 '우리가 언덕의 왕이다'라고 외쳤으나 '좋아, 다시 내려와'라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조코: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안락의자에 앉은 자칭 쿼터백들을 돌아보며 '아,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 같은 생각을 해본적이 있습니까? 정확히는 그런 소리를 듣고 '지휘부는 도대체 뭐하는 걸까?' 같은것 말입니다.
헨리: 따지고보면 '우린 뭐하는 것일까?' 일 것이다.
내 말은, 왜 이 짓을 하는가? 왜 그렇게 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는가? 같은 것 말이다.
지금은 정확한 숫자를 잊어버렸지만 수많은 미국인이 오르자마자 돌아서서 다시 내려가야 할 고지를 위해 죽어나갔다.
그리고 이것이 그저 큰 정치적 움직임이나 무언가에 그친다는게 아니라는건 알고 있지만 개인적인 사견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잃을만한 가치는 없었다.
조코: 사람들과 대면으로 이러한 얘기를 하며 우리가 이런 일을 왜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헨리: 가끔 우리가 복귀할 때, 팀원은 주위에 앉아 있는 미군 대원들에게 "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냐?"라고 묻곤 했다.
그리고 진행되고 있던 정치적인 일들에 대해 물어봤다.
조코: 그때가 1969년이었고 미국의 반전 운동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으니까요. (중략, 기지로 돌아올때마다 신문, 방송, 라디오 등 모두 반전을 다루고 있었고 군인들에 대한 대접이 매우 좋지 않아 회의감을 느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눔) 잠시 말 끊기 전으로 돌아가, 사람들이 당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헨리: 사람들이 내가 당시에 허리와 척추뼈에 심하게 멍이 들었다고 진료했다.
내 생각에는 갈비뼈가 두어 개 더 부러진 것 같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갈비뼈도 두어 개도 부러졌을 것이다.
나중에서야 척추 몇 개가 부러진 것으로 밝혀졌고 그들은 내가 그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했고 우리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조코: 며칠간의 휴식 시간과 약간의 모트린(항염증제)는 주던가요?
헨리: 그 후 며칠간 다운타임이 있었고 모트린은... 사탕같았다.
조코: 휴식이 충분했습니까?
헨리: 다음 임무를 하게 될 때까지는 쉬었고 휴식이 끝날 무렵에 임무를 뛸 준비는 완료됐었다.
이후 대화는 그 '다음 임무' 등의 이야기라 여기서 잘랐음
리얼 워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