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ST 아이다호 1-0들이 월남 팀원들과 함께 찍은 몇 안 되는 사진 중 하나. 무릎을 꿇은 줄 왼쪽부터, 응우옌 반 사우(월남 팀 리더이자 1-0에 대응), 뚜안(M-79 사수), 까우, 응우옌 콩 히엡(통역사). 그리고 히엡은 어두운 밤의 정글에서도 항상 그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뒷줄은 왼쪽부터, 린 M. "블랙잭" 블랙 주니어, 돈 월켄, 푸옥(수개월 동안 ST 아이다호에서 활동한 용감한 포인트맨), 존 S. "틸트" 마이어, 로버트 J. "스파이더" 파크스)
새해 전날이었기 때문에 FOB 1 기지 사령관 윌리엄 쉘튼 소령은 지역 베트콩 또는 월맹군이 몰래 공격 계획을 세울 경우를 대비하여 모든 정찰팀과 해칫포스 대원들의 경계를 포함하여 추가 기지 경계를 지시했다.
몇 달 전, 한 베트콩이 베트콩이나 월맹군 박격포병이 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라운지 지붕에 마커를 칠하였다.
또한 하루 또는 이틀 전, 해칫포스 부사관 중 한 명이 클럽하우스를 떠나면서 조심스럽게 걸음 수를 세고 있는 기지 직원을 발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박격포병이나 포병이 목표에 대한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쓰이는 관행이었다.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동안 주크박스가 요란하게 울리고, 음료가 흐르고, 슬롯머신을 돌리고, 포커 판돈은 높아져갔다.
하지만 저녁 축제에 묘한 날이 서있었다.
쉘튼은 적의 활동에 대비해 조기 폐쇄를 지시했다.
클럽이 문을 닫기 전, 포커 테이블을 둘러싼 대화의 주제는 MA 목표 현장에 있던 FOB 4 팀으로 바뀌었다.
1-0 로드니 헤드맨은 제 시간에 철수하여 국경너머 라오스가 아닌 FOB 1에서 새해 전야를 보낼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말했다.
목표 지역의 팀이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이 나왔다.
누군가가 팀의 미군들이 기념을 위해 짐 빔 한 병을 현장으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헤드맨과 나는 서로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개인적으로 유리병을 어떻게 깨지 않고 가지고 다닐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또 다른 정찰대원은 두 대원이 새해 전야에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전 지휘부은 관용을 배풀지 않고 임무를 보냈다.
나는 훈련단에서 만난 대원 한 명을 알고 있었고 그를 훌륭한 정찰병으로 여겼다.
다른 사람은 조금밖에 알지 못했지만, 두 사람 모두 현장에서 그렇게 어리석을 것이라고 판단할 이유는 없었다.
2200시쯤에 스파이더는 코비 파일럿과 함께 자정에 팀 AO로 날아가 대원들에게 "해피 뉴 이어"를 기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파이더의 O-2가 목표 지역 상공에 있는 동안 FOB 1의 박격포병들은 다양한 색상의 조명탄과 기타 조명 폭발 장치로 하늘을 밝히며 새해를 맞이했다.
기지로 돌아왔을 때 스파이더는 대원들이 짐빔을 너무 마신 것 같다고 말했다.
스파이더는 팀에게 명절 인사를 전하고 라오스에 있으니 조심하라고 상기시켰다.
FOB 1에서 겪은 유일한 적 활동은 훈련이 잘 안 된 베트콩이 우리에게 박격포를 쐈으나, 대신 남쪽에 있는 월남군 시설에 떨어진 것 뿐이었다.
(라오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후, 월남 푸바이 FOB 1의 ST 아이다호 팀룸 앞에 서 있는 응우옌 반 사우 (월남 팀장), 존 마이어, 응우옌 콩 히엡(ST 아이다호 통역병), 팀장인 린 M. 블랙 주니어)
1969년 1월 1일, 스파이더는 RT 다이아몬드백과의 통신 점검을 위해 일찍 FOB 1를 떠났다.
스파이더는 팀의 통신병과 대화를 나눈 후 푸바이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침 늦게 1-2는 주변에 적 활동이 많아져 AO에 전술 퇴출을 요청했다.
스파이더가 대원과 대화하는 동안 AK-47의 총격과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런 다음 침묵만이 이어졌다.
스파이더는 오랫동안 무전기에서 누구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파악했다.
마침내 스파이더는 미군들은 모두 사망했으나 현지대원들은 공격에서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현지 팀원의 응답을 들었다.
1200시쯤, FOB 1로 돌아가서 통신실 대원이 클럽으로 들어와서 RT 다이아몬드의 월남 팀원이 무전기로 스파이더와 대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우 나쁜 소식이었다.
FOB 1의 정찰대원 몇 명이 통신실로 향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베테랑 정찰대원인 토니 헤렐이 더 나쁜 소식을 가지고 모퉁이에서 나왔다.
"공병들에게 공격을 받은 모양이다. 상황이 매우 안 좋아 보여"라고 말했다.
우리가 통신실로 가려고 하자 작전장교인 소령은 팀원들에게 통신병들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밖에 있으라고 말했다.
소령은 어떤 팀원에게도 동정심을 보이지 않았고 마치 목표 지역에서 팀이 살든 죽든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기에 기지의 모든 정찰대원에게 보편적으로 경멸당했다.
그가 여전히 심한 독일 억양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한 몫 거들었을 것이다.
피해 확률이 극도로 높은 목표로 팀을 보내야 하는 것과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 사이에서 그 무뚝뚝함이 완충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결코 들지 않았다.
늘 그렇듯이 한 팀에 문제가 생기면 여러 팀원이 PRC 25를 꺼내 긴 안테나를 부착하고 수신할 수 있는 모든 무전 트래픽을 모니터링했다.
FOB 1에서 대원들은 일반적으로 코비 라이더가 지상 팀과 대화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상에 있는 팀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푸바이에서 무전을 수신할 수 없었다.
새해 첫날의 소식은 나쁜 소식이 됐다.
코비 라이더가 현장에서 월남 팀원들과 끈기 있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히 동요했다.
우리들은 처음에 월남 팀원들이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월남 팀원 3명이 살아 있고 전투 중 부상도 입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또한 월맹군 피해는 없었다.
미군들은 반응이 느린 듯 했다.
몇 초 만에 공병들은 그린베레 대원 3명을 죽이고 월남 팀원들을 살려두기로 결정했다.
공병에 대한 소식은 세 가지 나쁜 소식을 의미했다.
첫째, 그린베레 3명이 사망했다.
둘째, 월맹군 공병이 치명적인 세력이라는 몇 달 동안 1-0들이 접수한 보고가 지금 확인되었다.
셋째, 월맹군은 미군만을 죽임으로써 대규모 심리적 분열을 일으켰다.
월남 팀원들을 살아있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존이 그린베레와 현지군들 사이에 의심과 불화의 씨앗을 심도록 하였다.
그 전술은 푸바이에서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었다.
현지군들과 매일 일하지 않는 기지의 일부 미군들은 월남 팀원들의 충성심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나는 ST 아이다호 막사로 가서 히엡과 사우에게 기지에 있는 미군들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팀이 경계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또한 RT 다이아몬드백의 월남 팀원에 대해 가능한 한 빨리 알아봐달라고 요청했다.
(1968년, 사격장에 있는 린 M. 블랙 주니어와 존 마이어)
나는 다시 통신본부로 향했다.
이번에는 소령이 사라졌고 아무도 나를 막지 못했다.
팀이 목표에서 빠져나온 후에는 통신실은 보통 으스스한 침묵을 지켰다.
그날 오후도 다르지 않았다.
통신 본부에서 들리는 소리는 무전 신호음, 대원들이 기지로 복귀하는 헬기를 기다리는 동안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정적 뿐이었다.
그리고 팀이 RT 다이아몬드백만큼 큰 피해를 입을 때마다 통신 본부는 더욱 침울해졌다.
1969년 첫날은 무덤 같았다.
세 명의 미군이 사망했으며 C&C 전체가 월맹군 공병이 이전 브리핑에서 선전된 것만큼 훌륭하다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됐다는 사실 외에는 뚜렷한 정보가 없었다.
헤렐과 나에게 있어서 친구를 영원히 잃었다는 사실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몇 분 동안 우리는 그 자리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파일럿들이 무전으로 RT 다이아몬드백 팀원을 태우고 꽝찌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고한 지 약 10분째가 됐다.
이상하게도 RT 다이아몬드백을 철수시킨 항공기 중 어느 것도 월맹군으로부터 심각한 지상 사격을 받지 않았다.
그것은 월맹군 공병들이 RT 다이아몬드백에게 자행한 학살과 함께 심리적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한다는 확실한 지표로 보였다.
11월 30일, 우리는 그린베레 7명과 킹비 승무원 전원을 잃었다.
32일 후, 우리는 세 명의 미군을 잃었다.
그리고 이것은 비밀 전쟁이었기 때문에, 월터 크롱카이트(미국의 유명 언론인)는 시청자에게 더 이상 전쟁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미국 대중에게 SOG의 또 다른 나날에 대해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통신 본부 밖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전쟁에 지친 목소리가 통신 본부의 오랜 침묵을 깨고 짧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해피 뉴 이어."
그의 말에 나는 놀랐다.
나는 SOG에 합류한 날이자 글렌 올리버 중사와 ST 아이다호 전원이 프레리 파이어 AO에서 실종된 날 이후로 ST 아이다호가 살아남은 수많은 위기 상황의 맥락 속에서 그 말을 생각했다.
킹비 파일럿, 해병대 및 육군 건쉽 헬기 승무원, 엉클 샘의 공군의 영웅적인 행동이 없었다면 ST 아이다호의 전원이 임무 중 어떻게 죽었을 지 생각해보았다.
1969년 1월 1일, 월맹군의 대응 수준이 커졌고, 월경 임무 생각을 하면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클럽에 가서 8월 이후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며칠 만에 ST 아이다호는 월맹군 가솔린 파이프라인을 찾기 위한 또 다른 시도로 MA 목표(라오스)로 가기 위해 킹비에 탑승했다.
그리고 우리가 북쪽의 꽝찌로 향하는 동안 101공수사단 헬기가 6명을 태우고 남쪽으로 날아갔다.
헬기가 이착륙장에 착륙하자 잭 워렌 대령은 FOB 4의 모든 대원에게 기지 밖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대원들을 진심으로 아꼈기 때문에 그린베레 대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린베레 임무와 대원들에 대한 헌신으로 인해 그는 결코 대령 이상으로 승진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워렌 대령은 그린베레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렀고, 이는 전통적인 육군 계층이 경멸하는 진로 결정이었다.
다이아몬드백은 워렌이 지휘하는 FOB 4 출신이었다.
당시 FOB 4는 SOG 내 주요 자원 통합의 일환으로 북부 지휘 통제(CCN)로 전환 중이었다.
FOB 1은 다낭에서 FOB 4에 합류할 것이었다.
한때 6개의 FOB가 있었던 곳에 이제는 다낭의 CCN, 콘툼의 중앙 지휘 통제(CCC), 부온마투옷의 남부 지휘 통제(CCS)의 3개의 기지가 있게 됐다.
세 구의 시신이 헬기에서 내려진 후 워렌은 눈물을 글썽이며 대원들에게 간결한 연설을 했다.
워렌은 현장에서 부주의하면 죽음이 그 부주의의 결과로 이어진다고 모든 이들에게 경고했다.
그런 다음 그는 몸을 굽혀 시신 가방을 열고 사망한 미군 중 한 명의 시신 일부를 집어 들었다.
이제 현장에서 결코 부주의하지 말라고 그의 부하들에게 울부짖고 있었다.
워렌은 그 이후로 결코 예전과 같지 않았다.
C&C도 마찬가지였다.
(1969년 초, FOB 1는 폐쇄되었다. ST 아이다호는 다낭의 CCN으로 이전됐으며, 그곳에서 팀은 종종 마블마운틴 정상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추운 밤을 맞이하며 산에 머무는 동안 가벼운 순간을 즐긴 팀원들. 왼쪽부터: 헝, 더글라스 L. 르터노, 까우, 손, 차우, 린 모리스 블랙 주니어, 존 S. 마이어)
1월에 ST 아이다호는 다낭의 CCN으로 이전되었고 ST 아이다호는 RT 아이다호가 되었다.
다낭은 FOB 1의 2~3배 크기였다.
FOB 1에서의 동료애는 영원히 사라졌다.
또한 팀원인 버바 쇼어는 본부로 전근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버바가 있던 짧은 팀 재임 기간 동안, 나와 버바는 많은 임무를 함께 했다.
나는 버바를 존중하고 즉시 요청을 승인해주었다.
이제 팀에는 나와 블랙 뿐이었다.
블랙은 공산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과 함께 월남으로 이주한 월맹 태생의 ST 앨라배마 출신 대원인 도티꽝을 영입했다.
우리 월남 팀원들은 매우 강했고 그들이 대부분의 미군보다도 정글에서 더 낫다고 느꼈기에 우리는 팀에 미군을 추가로 데려오지 않았다.
월경 임무를 수행하는 매일의 고된 작업이 나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치게 했다.
69년이 밝아오자 나는 SOG 생활에 대한 정신적 고찰을 시작했다.
미국 최고의 특수 작전 부대 내 엘리트 부대에 소속되는 것이 내가 원했던 것이었다.
극도로 일방적인 확률 속에서 끈질긴 적에 맞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치명적인 총격전은 중독적이었다.
나는 그런 흥분이나 순전한 공포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머릿속 어딘가에선 생존, 즉 SOG 팀을 상대로 한 격렬한 적전에서 살아남는 것 뿐만 아니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 측면에서도 살아남는 것을 말하는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비밀 전쟁 속에 내재된 새로운 도전에 맞서는 것과 더 안전한 임무로 돌아가는 것 사이에서 정신적 논쟁을 시작했다.
내 1년간의 복무는 4월 말에 끝날 예정이었다.
SOG의 일반적인 규칙에 따라 6개월 동안 임무를 수행한 후 편한 임무를 요청할 수 있었다.
나는 이미 팀에서 7개월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히엡, 사우, 푸옥, 뚜안을 비롯한 ST 아이다호의 대원들 덕분에 살아있었다.
그냥 떠날 수가 없었다.
저기는 뭐 개나 소나 다 이름에 응우옌 들어 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어지간하면 이름으로 부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