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내용은 존 스트라이커 마이어의 수기인 Across The Fence에서 발췌함
(3/4톤 트럭은 그린베레 대원 수송에 자주 사용되었다. 위는 푸바이 사격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대원들의 사진이다. 왼쪽부터: 존 "버바" 쇼어, 찰리 보그, 존 S. 마이어, 빌 바클리(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 린 M. 블랙 주니어(베레모를 쓰고 있는 대원), ST 아이다호의 푸옥(서 있는 대원))
낡은 육군 두돈반이 '하우스 22'(CIA/그린베레가 다낭에서 운영하던 세이프 하우스) 앞에 섰고, 트럭 안에 있던 누군가가 외쳤다 "C&C 배치 명령 받은 사람들, 모두 갑시다" 푸르디 푸른 그린베레 대원들과 나는 나트랑에서 지급받은 M-16을 집어들고 수송 트럭으로 향했다. 십여 명 이상이 뒤칸에 올라탔다. 1968년 5월이었다. 우리는 삼중 자원자였다.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 있는 육군 공수 학교에 자원하고 이수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에서 특수부대 훈련단에서 Q코스를 수료했고 제5특전단 월남 내 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한 후 우리는 MACV-SOG의 C&C에 자원했다.
포트 브래그에서의 훈련 중, 다양한 과정을 가르치던 몇몇 그린베레 대원들은 C&C를 피하라고 말했다. 임무가 힘들고 사상자가 많기 때문이었다. 모스 부호로 메시지를 보내고 받는 방법을 배운 통신 훈련 중에서도 와그너와 루쏘 병장, 폴 빌라로사 중사가 C&C를 피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빌라로사는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그는 그린베레로 월남에서 세 차례 파병을 지냈다. 그는 월남에서의 첫 파병은 A팀에 가라고 조언했다. 비밀스럽고 치명적인 작전에 자원하기 전에 멀리서만 C&C를 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릭 하워드, 존 매킨타이어, 릭 에스테스, 토니 헤렐, 마크 젠트리, 밥 가르시아, 바비 D. 에더스, 그리고 나와 몇몇 대원들은 C&C에 자원하기로 결정했다. 1966년 12월 1일 육군에 입대한 이후로 내 군 생활은 항상 훈련 또는 훈련 전 공백의 반복 뿐이었다. 1968년 5월, 우리는 마침내 훈련 모드에서 작전 모드로 전환됐다. 어떤 소문도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우리를 준비시켜주지 못했다.
우리는 미국의 월남 비밀전쟁에 조용히 참전하려던 참이었다. 두돈반은 다낭 북쪽 끝, 다낭 공군기지 근처까지 차를 몰고 C&C 본부가 있는 정체불명의 건물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서두르고 기다리기"라는 육군 전통에 따라 서 있던 중 한 원사가 우리에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의자에 앉자 우리 중 일부는 교실에서 1년 넘게 그랬던 것처럼 패드나 작은 공책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건 필요 없을 거다." 원사가 말했다. "펜, 연필, 공책은 모두 치워둬라. 이것은 일급 비밀 브리핑이다. 제군들 모두 일급 비밀 허가를 받았거나 가까운 시일 내에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 사무적인 원사는 계속해서 그 교실에서 논의된 내용을 다른 누구와도 논의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기가 말하는 동안 양식을 나누어 달라고 뉴저지 주 트렌턴 출신의 마이크 바이어드에게 말했다. 우리들한테 바이어드는 오래된 프로처럼 보였다. 그는 3개월 동안 월남에 있었으며 통신 전문가로서 네이비씰과 함께 여러 합동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이제 공식적으로 C&C에 들어왔기 때문에 바이어드는 나머지 사람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았다. 원사는 열린 브리핑실 문을 바라보며 누군가 문을 닫으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1967년 12월 특수부대 자격과정을 이수한 뒤 주지아주 포트 고든 미 육군 남동부 통신학교로 파견되어 무선 텔레타이프 훈련을 받은 후 월남의 SOG에 배치되었다. FOB 1, 3, 4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한 대원 중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첫 줄 맨 오른쪽의 릭 에스테스. 두 번째 줄 맨 오른쪽에 마크 젠트리, 그 옆에 존 메킨타이어, 그 옆에 존 S. 마이어. 세 번째 줄 맨 오른쪽의 리차드 제닝스와 왼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플로이드 아이언. 사진에는 ST 뉴저지에서 임무를 수행한 릭 하워드와 콘툼, FOB 2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한 로버트 가르시아는 빠져있다)
"조사 및 관찰단, 미 육군 특수 작전 증강단, 제1 특수부대, 제5특전단, 지휘 통제 분견대. 또는 간단히 C&C라 부르는 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라고 원사가 말했다. "제군들, 설명에 앞서 기밀 유지 계약이 있다." 이는 증강단 이외의 누구와도 C&C에 대해 논의하지 않겠다는 점을 인정하는 구속력 있는 계약이었다. "여자친구나 어머니, 그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누군가 우리의 임무에 대해 묻는다면 우리는 월남에 주둔하는 제5특전단 소속이라고만 대답해야 했다. 이 계약은 20년 동안 구속력을 갖고 있었다. 누구든지 이 계약을 위반하면 연방 기소에 의해 벌금과 투옥을 당하고 향후 정부 또는 보안 채용 기회를 망칠 수 있었다. 우리는 작전에 관해 어떤 것도 쓰는 것이 금지되었고, 일기를 쓰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어떤 종류의 녹음 테이프도 금지되었다. 원사는 계약서에 서명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떠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질문은 없었다. 나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나트랑에 있는 기존의 특수부대 본부로 돌아갈 것이었다. 아무도 방을 떠나지 않았다.
원사는 우리가 쓰고 받은 모든 편지를 포함하여, C&C 관계자들이 모든 우편물을 읽을 것이라고 모두에게 말했다. 우리의 우편 주소가 샌프란시스코에 APO가 있는 드로워 22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릭 하워드는 그것이 일반 육군 우편 주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평소와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제군들," 원사는 벽에 걸린 지도를 향해 돌며 말했다. "월맹군은 이 '중립' 국가들을 통제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월남의 서쪽에 위치한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가리켰다. 수년 동안 월맹군은 중립국인 라오스와 캄보디아 동부에 있는 호치민 트레일이라고 불리는 점점 늘어나는 트레일과 도로 네트워크를 통해 병력, 보급품, 로켓, 총기, 선전가들을 월남으로 이동시켰다. 월맹군에는 559 수송단이라는 부대가 있었는데, 이는 월맹 정부가 호치민 트레일을 확장하고 월남으로 보급품을 옮길 목적으로 1959년 5월에 조직했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되었다. 월맹군은 라오스에만 30,000~40,000명의 병력, 징집된 노동자, 현지인 노예를 보유하고 있었다.
성역에서 보급품이 모이면 월맹군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월남을 공격했다. 부대가 전장에서 철수하기를 원하면 그들은 종종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후퇴해 재집결하고 재보급하여 다음 공격을 준비했으며, 기존의 미군과 월남군은 국경을 넘어 그들을 추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린베레 A팀 기지는 조기 경보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기본적인 군사 훈련을 제공하고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국경을 따라 설치됐다. 하지만 A팀 기지에서의 그린베레와 현지군의 노력은 충분하지 않았다. C&C가 등장한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해칫포스라고 불리는 소대 규모의 부대 또는 스파이크 팀이라는 코드명을 지닌 4~12명의 소규모 정찰 팀은 "국경을 넘어" 이동했다. 둘 다 호치민 트레일을 따라 월맹군을 감시, 차단 및 보고하기 위해 라오스와 캄보디아 깊숙이 침투했다.
"이제 잘 들어라" 원사가 말했다. "국경을 넘어갈 때 어떤 방식이나 형태로든 신분이 파악 가능한 물건의 소지는 금하게 될 것이다." 이는 신분증도, 군번줄도, 일기도, 사진도, 연애 편지도, 녹색 베레모도 안 된다는 뜻이었다. 모든 대원은 휘장, 이름표, 부대 마크, 공수 휘장 또는 전투 보병 휘장이 없는 민무늬 군복을 입었다. 어째서? 그는 누구에게도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중립국'이고 미국 정부는 그 '중립'을 존중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가 라오스, 캄보디아, 월맹에서 사망한다면 미국 정부는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부인할 것이었다. 미국 정부는 라오스나 캄보디아에 미군이 주둔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기술적으로 정확했다. 미국 정부는 우리가 생포되거나 사망할 경우 "그럴듯한 부인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잡히면 우리는 외국어를 말해야 했다.
"당신이 누구인지 말하지 마라"라고 그는 명령했다. "기술적으로 제네바 협정의 조건에 따라 제군들의 지위는 월맹 상공에서 격추된 공군 및 해군 파일럿과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들은 제복을 입고 있고 미군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우리 C&C 대원들은 전쟁 포로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원사는 이런 단어를 쓴 적이 없었지만, 우리는 사실상 스파이였다. 에스턴 마틴, 여자, 영화 같은 탈출구가 없는 제임스 본드가 된 것처럼 들렸다. 또한 제네바 협약에 따라 스파이가 보호받을 수 없으며 체포되면 즉결 처형될 수 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
부인 가능성을 더욱 뒷받침하기 위해 C&C 대원들은 다른 어떤 부대에도 뒤지지 않는 무기 선택지가 있었다. C&C는 M-16의 단축 버전인 CAR-15와 실험적인 스토너 시스템 같은 최신 화기와 2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영국의 스텐 기관단총, M-3 그리스건, 45구경 톰슨 기관단총에 이르기까지 여러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또한 이스라엘의 9mm UZI를 쓸 수도 있었다. 권총 옵션은 45구경 콜트, 스미스&웨슨 .38 스페셜, 9mm 브라우닝 하이파워, 독일제 루거, 베레타까지 다양했다. 무기는 호응옥타오의 FOB 6, 부온마투옷의 FOB 5, 다낭의 FOB 4, 케산의 FOB 3, 콘툼의 FOB 2, 콘툼 그리고 푸바이의 FOB 1로 이루어진 6개의 C&C 전진 작전 기지에 있는 병참 인원으로부터 지급됐다.
"실수하지 않길 바란다. 월맹군은 대원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지난 30개월 동안 월맹군는 깜득의 원래 FOB 1을 함락했고, 케산에서 서쪽으로 약간 떨어진 랑베이 A팀 기지, 아샤우 계곡에 아로이, 그리고 FOB 6 정찰팀과 해칫포스가 발진 기지로 사용하는 부돕의 A팀 기지를 공격했다.
그런 다음 원사는 우리 중 대부분이 마지막 훈련 기간 동안 여러 번 들었던 대사를 반복했다. "월맹군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대다수가 이제 30발짜리 AK-47을 휴대하고 있다." 우리 CAR-15는 18발만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어서 한 말은 방에 있던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폴 빌라로사가 1968년 초 C&C 임무 중, 월남에서의 4번째 파병 중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월맹군이 빌라로사와 같은 숙련된 군인을 잡았다면 우리와 같은 신입들은 이러한 종류의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빨리 배우는 것이 좋았다. 원사는 월맹군이 1954년 프랑스를 격파하고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놀라운 승리로 9년간의 게릴라전을 어떻게 마무리 했는지를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월경 임무 지원을 위한 재래식 병력이 없다는 소름끼치는 사실을 또 하나 말했다.
포병도 없고, 재보급도 없고, 미군이나 월남군 재래식 지상군도 없었다. "제군들은 아군 포병의 사정거리를 넘어 저 밖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월남 서쪽에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특히 라오스에서 적과 접촉했을 때 아군 헬기가 오는 데만 1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어느 시점에서 그는 휴식을 요청했다. 바깥의 분위기는 교실에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더 침울했다. 매킨타이어가 나를 옆으로 끌어당겼다.
"맙소사, 틸트, 또 일을 저질렀어! 너는 우리를 비밀 전쟁에 빠뜨렸고 나는 이 사실에 대해 부모님에게 말할 수도 없어. 아버지는 벌지 전투에서 싸웠지만 나는 아버지께 뭘 했는지 글을 쓸 수도 말할 수도 없어. 내가 라오스나 월맹에서 죽으면 아바지께 진실을 말하겠다고 약속해야 할거야. 저놈이 빌라로사를 죽였다는 게 믿어져?" 빌라로사의 소식은 모든 통신병을 놀라게 했다. 포트 브래그에서 빌라로사에게 훈련을 받은 우리들은 그 베테랑 그린베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며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양쪽 귀에 수신기를 대고 양손에 연필을 쥐고 두 개의 개별 모스 부호 전송을 동시에 보내거나 받을 수 있는 짧고 강인하며 강렬한, 자그마한 수탉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강인한 교관이었지만, 모스 부호를 배우고 싶어하는 신병들에게 밤이나 필요하다면 주말에도 항상 추가 수업을 해주었다. 그 모든 훈련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망했다.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고, 누구도 더 이상 웃거나 농담을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설렘과 긴장, 두려움이 묘하게 뒤섞인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일급 비밀 작전에 참여하게 되어 기뻤다. 로빈 무어의 특수부대에 관한 획기적인 저서인 그린베레에서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을 정도로 이는 일급 비밀이었다. 동시에 빌라로사가 월맹군에 의해 사망한 전쟁에 있던 신입이었기에 긴장됐다. 나는 일부 사람들이 월남전에서 가장 위험한 작전이라고 묘사한 작전에 참여하는 것이 두려웠다. CIA의 전신인 전략정보국(OSS)이 2차 대전 중에 했던 것과 유사하게 적진 뒤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행위의 전망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특히 국경 너머에 아군이 없다는 점이 말이다. 농부와 나무꾼부터 월맹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우리를 잡으러 나설 것이었다.
브리핑이 재개되자 원사는 교전 수칙을 언급하기 전에 일급 비밀 배경 브리핑의 첫 부분에서 몇 가지 핵심 사항을 되짚었다. 국경 너머 대부분의 C&C 임무가 라오스, 캄보디아 또는 월맹 깊숙한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육군 및 해병대의 재래식 지원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월맹군, 파테트 라오 또는 크메르 루주와 교전하게 됐을 때, 재래식 군대가 우리를 지원하는 것은 금지됐다. 전차 지원도 없고 장갑차도 없을 것이다. 오직 C&C 자산만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정찰팀은 적지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지원이 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항공기, 주로 헬기를 통해서 뿐이었다. 1968년에는 대부분의 헬기에 야간 비행 기능이 없었다. 그리고 동남아의 날씨는 종종 헬기 비행을 심각하게 제한했다. 따라서 우리는 적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적과 교전해서는 안 됐다. 물론 스파이크 팀이나 해칫포스가 접촉을 시작하도록 요구되는 임무는 그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때는 C&C 자산이 우리를 지원할 것이다.
그런 다음 원사는 코드명 얘기를 했다. C&C의 모든 대원은 C&C가 발행한 코드명을 가지고 있었고 무전 중 보안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릭 하워드는 "트러스티"라는 별명이었다. 트러스티는 돈 루미스의 "트루퍼"만큼 멋지지는 않았다. 다른 C&C 브리핑에서 대원은 자신의 이름을 선택하거나 만들어야 했다. 더그 르터노는 "프렌치맨"을 요청하여 얻었다. 린 M. 블랙 주니어는 항상 자신의 이름을 잭으로 바꾸고 싶어했기에 "블랙잭"을 선택했다. C&C 코드명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팀에서의 위치를 사용해야 했다. 정찰팀에서는 팀장의 명칭은 원제로(1-0), 부팀장은 원원(1-1), 통신병은 원투(1-2)였다.
나는 동료 대원들이 나를 알아보라는 의미에서 아마도 "틸트"라는 별명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사의 보조가 이를 작전본부 인원에게 전달하라고 말했다. 내가 임무를 수행하다가 팀과 따로 떨어지게 됐을 경우, 코드명은 구조 대원이 내 신원을 확인하고 포로로 잡혀 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추가 세부 사항이 있었다. 우리는 세 개의 질의응답으로 구성된 암호를 만들어야 했다. 이 내용은 기록될 것이며, 우리가 생포될 경우 우리를 확실히 식별하는 데 사용됐다. 일례로 블랙의 질문과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질문 1: 당신의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답 1: 그 늙은 알코올 중독자말인가?
질문 2: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는요?
답변 2: 아직도 내게 레몬 쿠키를 보내고 있을거다.
질문 3: 형제는 아직도 아픈가?
답변 3: 부상으로 인해 사망했다.
브리핑이 끝나자 원사는 우리들은 최대한 빨리 다른 FOB로 옮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FOB에 착륙하면, 각 작전 기지가 고도로 구획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또한 "알아야 할 사항"에 따라 브리핑과 작전 보고서를 받게 될 것이었다. 그는 스파이크 팀이나 해칫포스 내에서는 선배들에게 최대한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다만, 기밀로 분류된 다른 작전이나 임무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질문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누군가가 말해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묻지 마라. 만약 적군에게 포로로 잡힐 경우에 대비해, 자신이 직접 관여하지 않은 다른 작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낫다." 다시 말하지만, 그 논리와 이유는 소름끼치게 간단했다.
하우스 22로 돌아가는 길은 조용했다. 훈련단에서 농담하고 장난치던 시절은 지나갔다. 우리가 하우스 22 앞에 차를 세웠을 때, 나와 매킨타이어는 경비 임무를 맡은 터프해 보이고 장난 없는 중국계 넝족 대원을 발견했다. 우리는 잔디가 없는 앞마당과 경비실을 지나 계단을 올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앞에 바가 있었다. 바 왼쪽에는 TV, 라디오, 보드 게임, 스타 앤 스트라이프 최신호, 빈 콜라와 맥주 캔 몇 개가 놓여진 좌석 공간과 복도가 있었다. 홀 아래에는 건물을 운영하는 그린베레 부사관 로시 병장의 숙소와 주방이 있었다. 오른쪽 복도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매킨타이어는 바에 들러 콜라 두 개를 샀고 나는 샤워를 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5월임에도 기온과 습도는 조지아나 노스캐롤라이나, 뉴저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나빴다. 게다가, 매킨타이어와 나는 게릴라전에서는 "누구나 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어왔다. 항상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경계하는 것은 지치는 일이었다. 거기에다 더위와 습도까지 조심해야 하니 다낭은 정말 불편한 곳이었다.
계단을 다 오르자 나는 2층 침대와 여러 개의 간이 침대가 있는 넓은 방을 발견했다. 한 2층 침대 위에는 땀에 젖어 벌거벗은 채 황홀한 순간을 맞이한 커플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서둘러 지나가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개방형 샤워실에 도착했을 때 한 대원이 샤워를 하고 있고, 벌거벗은 월남 여성이 탕에 쪼그리고 앉아 몸을 씻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 로시 병장은 매춘부들은 매주 성병 검진을 받으며, 금액이 얼마인지 설명해 주었다. 매킨타이어와 나는 매춘부들이 쉽게 다가오며 그들의 '사업'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 적응하고 있었다. 나는 샤워실로 들어가는 것을 망설였다. 나이든 그린베레 병장은 내가 월남에 새로 온 대원임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는 규칙을 따르지 마. 나는 퀴어가 아니고 저 여자도 당신을 해치지 않을 거야." 그는 아직 씻고 있는 젊은 창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빠르게 샤워를 한 후 나는 아래층 거실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는 매킨타이어에게 돌아왔다. 오래된 정글복을 입은 군인 몇 명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매킨타이어는 신속하게 최신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우리 대원 중 몇몇은 이미 FOB 2, 3, 4로 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 노병 중 한 명은 다른 그린베레 베테랑 대원이 월맹군이 국경 너머에서 실제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매킨타이어가 보고해야 했던 유일한 좋은 소식은 요리사가 저녁 식사로 스테이크를 굽고 있었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이 있을 것이며 우리가 FOB 1로 향하는 마지막 비행기를 놓쳤다는 것이었다. 몇 분 동안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누군가가 빨리 안 갔냐고 소리치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빈둥거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우리는 스크래블 게임에 빠져들었고, 곧 사전을 보러 나섰다.
우리가 스크래블 조각을 보너스 구간에 놓으려고 애쓰는 동안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 교대를 위해 바 뒤로 왔다. 그녀의 이름은 한이었다. 그녀는 키가 5피트도 채 안 됐고, 어둡고 총명한 눈을 가졌으며, 짧은 머리를 했고, 그날 밤 하우스 22 주변을 떠돌던 매춘부들과는 달리 보수적인 옷을 입었다. 그리고 스테이크가 나왔다. 매킨타이어와 나는 바에 가서 콜라를 주문하고 식사를 시작하면서 한과 잠정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술에 취한 두 명의 CIA 직원이 그녀에게 그들과 함께 위층으로 가자고 무례하게 제안하자 그녀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나가라고 말했고 그린베레 병장 중 한 명은 한이 로시의 여자 친구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매킨타이어와 내가 미국에 여자 친구가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약간 긴장을 풀고 우리와 대화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톨릭 신자이고 하우스 22에서 어머니를 돕기 위해 일했으며 프랑스어를 포함한 3개 국어를 구사하며 통역사로 일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녁이 깊어갈수록 그녀의 유머 감각은 더욱 자주 드러났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불안했던 하루가 한결 편해지는 것 같았다.
자정 직전에 하우스 22 아래 거리에서 몇 발의 총성이 들리자, 나와 매킨타이어는 그 자리에서 바닥에 엎드렸다. 방 안의 베테랑 대원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자정이 지나서 우리는 위층의 이층 침대로 갔다. 우리 둘 다 아래쪽 침대에서 잤는데, 만약 하우스 22가 박격포를 맞는다면 위쪽 침대가 우리를 조금이라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 그런 것이었다. 매킨타이어와 나는 베트콩이 기지에 박격포를 쏴대던 나트랑의 제5특전단 기지에서의 첫날 밤을 떠올렸다. 최소 두 발이 우리 막사 옆에 날아들었다. 폭발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끔찍했다. 우리가 잠든 순간, 곧바로 현지군의 막사에서 82mm 포탄이 폭발하여 우리 지붕에 잔해가 쏟아졌다. 그리고 부상자들의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모두가 막사에서 무기고로 달려갔지만, 대원들은 열쇠를 가진 당직 장교가 근처에 없으면 무기를 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는 베트콩의 돌격을 예상하고 경계선을 마주한 근처 벙커로 달려갔다. 대신 조명탄이 하늘로 발사되어 낙하산을 타고 천천히 땅으로 내려와 밤을 으스스하게 밝혔고, 경계선 밖에는 물소 몇 마리만 모습을 드러냈었다.
다음날 아침, 매킨타이어와 나는 늦잠을 자서 푸바이로 가는 헬기를 또 놓쳤다. 놀란 한이 바에서 우리를 반겼다. 몇 분간 정중한 대화를 나눈 후 우리는 전날 밤에 먹던 스테이크 몇 개가 남아 있었기에 스테이크와 계란을 주문했다. 스테이크를 기다리는 동안 매킨타이어는 웃으며 D.C.에서 그날 밤을 기억하는지 물었다. 그 문제의 밤은 랑베이 기지가 월맹군에게 점령당했던 주말이었고 우리는 바에 앉아 텔레비전으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 68년 겨울 그날 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월남 파병 중 죽을 것이 분명하다고 여러 번 말했었다. 우리는 집에 가서 계좌에 있던 모든 돈을 인출하고 무전 통신 훈련을 받고 있던 포트 고든으로 차를 몰고 돌아갔다. 몇 주 동안, 매킨타이어와 나는 기지에서 나올 수 있으면 계속 조지아 주 오거스타 공항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차를 몰고 가서 구운 감자와 음료가 있는 스테이크 저녁식사를 자주 먹었다. 우리는 친척들이 다툴 일이 없도록 돈을 남겨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낭에 앉아 우리는 D.C.에서 보낸 그날 밤을 회상했다. 몇 년은 지난 것 같았지만 사실은 고작 몇 달밖에 안 된 일이었다.
(FOB 1에서 해칫포스 부대원과 중대 점호를 선 존 앨런 하사. 앨런은 ST 앨라배마의 1-0였으며 1968년 초 ST 앨라배마가 여러 월맹군 부대에 의해 공격을 받았을 때 유일한 생존자였다. 앨런은 목표 지역에서 구출되기 위해 적진에서 탈출하고 적들을 회피해야 했다. 또한 해칫포스의 모든 캄보디아 부대원들(KKK)이 빨간색 스카프를 착용하고 있다)
하우스 22에서의 짧은 시간은 또 다른 이유로 교육적이었다. 매킨타이어와 내가 푸바이로 가는 헬기를 놓치자 마이크포스의 몇몇 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하우스 22에 들어왔다. 그들은 곤경에 처한 C&C 정찰팀을 구출하기 위해 나간 임무들을 포함하여 최근 수행한 여러 임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토론 중에 그들은 C&C에 배치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지난 3월 라오스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FOB 4의 정찰팀 전체가 사라졌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FOB 1의 스파이크 팀 앨라배마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존 앨런 하사를 제외하고 팀의 모든 미군을 잃은 것을 이야기 해줬다. 매킨타이어와 나는 침울해졌다.
마침내 다음날 우리는 일찍 일어나 트럭을 타고 다낭 공항으로 가서 월남 공군 제219 비행대대 소속의 시코르스키 H-34 헬기에 탑승했다. 오래된 H-34는 2차 대전의 전설적인 폭격기인 B-17에 동력을 공급한 라이트 항공의 9기통 "사이클론" R-1820 엔진으로 구동되었다. 이때 또 다른 그린베레 대원인 존 허천스가 다낭에서 푸바이로 가는 비행에 우리와 합류했다. 우리가 문을 통해 헬기에 타자(문은 우현에 하나만 있었다), 월남인 크루치프는 우리에게 헬기 좌현에 있는 캔버스 좌석을 가리켰다. 크루치프는 우리를 쳐다보더니 잠시 밖으로 나가서 파일럿에게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열린 문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FOB 1, 푸바이에서 이륙하여 후에 및 꽝찌 방향으로 1번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는 킹비 헬기)
출발할 시간이 되자 낡은 9기통 엔진은 시동이 걸리지 않을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몇 차례의 촉구와 욕설 끝에 마침내 작동이 됐다. 엔진이 예열되자 털털거리던 소리는 강하게 푸르르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헬기 전체가 새로운 리듬을 맞이했다. 나는 월남 파일럿이 이륙하고 바로 북쪽으로 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헬기는 격납고에서 나와 주 활주로 중 하나를 향해 시멘트 길을 따라 이동했다. 우리가 활주로를 향해 달리던 중, 공군 F-4 팬텀 제트기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북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H-34가 주 활주로까지 왔다. 파일럿은 헬기의 후미를 들어올렸고 우리는 활주로를 따라 달리며 충분한 양력을 얻을 때까지 속도를 냈다. 우리의 이륙은 공군 제트기보다 훨씬 덜 극적이었다.
우리가 산과 하이반 패스를 넘어 천천히 올라가자 방사형 엔진에서 푸르르거리는 소리가 났다. 헬기가 수평을 유지하자, 코드명 '킹비'의 H-34는 하노이에서 사이공까지 이어지는 유일한 남북 도로인 1번 고속도로와 평행하게 비행했다. 해안 도로를 따라 활주하는 동안 지상의 아름다움과 현재의 전쟁으로 발생한 폭탄 구덩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잠시 후 우리는 1번 고속도로 동쪽에 위치하며 민항기와 군용기를 모두 취급하는 푸바이 공항을 통과했다. 공항을 지나는 동안 크루치프는 헤드셋에 대고 뭐라고 잠깐 말한 뒤 우리 셋을 슬쩍 쳐다봤다. 킹비는 1번 고속도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다. 헬기가 도로를 따라 이동하자 동쪽에 제2 월남군 훈련소가 나타났다. 1번 고속도로를 마주한 높은 벽이 있는 거대한 시설이었다.
그때 경고도 없이 헬기가 잠시 동안 아래로 내려가다 갑작스러운 상승을 했고, 엔진의 RPM이 급상승했다. 매킨타이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허천스를 바라보았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헬기는 상승 중에 오른쪽으로 급선회했다. H-34는 90도 돌아 기체를 옆으로 돌렸다. 1번 고속도로를 따라 날아가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비행은 끝났고, 우리는 지상이 수직으로 보였기 때문에 겁이 났다. 매킨타이어는 좌석을 잡고 "젠장!"이라고 소리쳤다.
나는 매킨타이어와 허천스의 반응을 파일럿에게 말하면서 얼굴에 활짝 미소를 지은 크루치프를 힐끗 보았다. 급진적인 기동으로 인한 원심력이 우리를 기체 안에 가두었으나 그런 과학적 사실은 우리의 불안을 해소시켜주지 못했다. 우리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하기도 전에 H-34는 180도 돌아 FOB 1을 향해 급하강했다.
마지막 순간에 숙련된 월남 파일럿은 몇 초 동안 수평을 유지해 남쪽으로 향했다가 헬기를 다시 오른쪽으로 굴려 서쪽으로 선회했다. 그는 1번 고속도로의 서쪽으로 천천히 돌아서 헬기를 하강시키면서 다시 수평을 유지시켰다. 바퀴가 땅에 거의 닿기도 전에 크루치프가 튀어 나와 우리에게 서둘러 나가라고 말했다. 로터에서 나오는 돌풍으로 인해 우리는 먼지, 모래를 덮어썼다. 우리가 헬기에서 멀어지자 3/4톤짜리 픽업트럭이 C&C 정찰팀을 뒤에 태우고 다가왔다. 1-0 글렌 올리버 레인 중사가 이끄는 스파이크 팀 아이다호의 6명의 대원이 헬기에 탑승했다. 우리가 장비를 트럭에 싣는 동안 킹비는 이륙하며 라오스를 향해 서쪽으로 날아갔고, 우리에게 더 많은 흙먼지를 쏟아부었다.
(최고의 FOB 1 항공사진 중 하나로 헬기 이착륙장과 1번 고속도로가 기지 서쪽 가장자리 하단에 있다. 맨 오른쪽(남쪽)에는 월남군 제2 훈련대대가 있다. 맨 왼쪽(북쪽)에는 동쪽으로 계속 이어져 결국 동쪽 경계선을 둘러싸는 오래된 프랑스 지뢰밭이 있다. 기지 내부에는 왼쪽 하단부터, 해칫포스 부대원을 위한 다양한 크기의 건물 5개가 있다. 다음으로 중앙 건물은 샤워실이며 오른쪽(남쪽)에 급수탑이 있다. 동쪽으로 가면 북쪽과 남쪽으로 이어지는 두 건물이 있는데, 1954년에 끝난 프랑스-인도차이나 전쟁 중에 지어진 오래된 프랑스 막사이다. 첫 번째 건물은 장교 클럽이고 두 번째 건물은 부사관들 건물이다. 다음 4개의 작은 건물은 사병을 위한 추가 숙소이다. 다섯 번째 건물은 미군 사단의 제176 돌격 헬기 중대의 승무원을 포함하여 FOB 1에 배정된 헬기 파일럿을 수용하기 위해 1968년 7월에 지어졌다. 동쪽으로 몇 피트 더 가면 그린베레 라운지가 있다. 진료소는 옆 건물이고 모터 풀은 캠프 왼쪽(북쪽)에 마지막 큰 건물이다. 사진 위쪽에는 레펠링 타워가 있다. 오른쪽에는 탄약고가 있고 그 뒤에는 식당이다. 현지인 시설은 맨 오른쪽에 있고 미군 식당은 북쪽에 있다. 미군 식당 북서쪽 모퉁이에는 지프가 지나다니는 풋볼경기장의 시작 부분이 있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건물들은 동쪽에 병참본부와 서쪽에 인사본부, 정보본부, 작전본부 및 우편실이다. 그리고 각각 3개의 건물이 붙어있는 건축물 3개가 있는데 이는 현지군 막사다. 유일하게 안 나온 건물은 북동쪽 모퉁이에 있는 지휘관 집무실이다. 첫 번째 건물들에는 정찰부대원들이 있었고 나머지 두 건물은 대부분 해칫포스 막사였다)
-다음 챕터에서 계속-
사진 밑에 있는 설명은 책에 안나온 부분 보충해주는건가?
ㅇㅇ
그런데 인물 소개 정도만 보고 기지 소개 같은건 더럽게 복잡하니 대충 읽는거 추천함. 어차피 사진도 대부분은 인물 소개로 나오는 사진들이니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