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B 1에서 풋볼 경기를 마친 후 웃고 있는 론 자이스, 존 S. 마이어, 존 T. 월튼)
1968년 11월은 스파이크 팀 아이다호와 월경 임무를 수행하던 모든 정찰팀에게 힘든 달이었다.
월맹군이 계속해서 호치민 트레일로 수많은 보급품과 수천 명의 군인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월맹군을 지휘하는 공산주의자들은 남쪽으로의 핵심 물자와 인력의 이동이 마오쩌둥의 "인간 개미 군대"처럼 흐르기를 원했다.
하지만, SOG 정찰팀과 해칫포스의 존재로 인해 하노이의 피해가 계속 증가하면서 이러한 흐름이 방해를 받았다.
물론 대다수의 미국 언론은 여전히 월남전을 월맹 농민들이 밤 동안 쟁기를 놓고 2차 대전과 인도차이나 전쟁 시절 구식 무기를 주워, 추악한 미국 침략자들과 싸웠다가 새벽녘에 작은 논으로 돌아간다는 전쟁으로 묘사했다.
월맹군의 참여에 대한 진실은 과소 보고되었다.
이때 월맹군은 모든 관심을 라오스의 호치민 트레일로 돌렸으며, 이는 '하나의' 트레일이 아니라 산을 지나 끊임없이 자라는 '일련의' 트레일이었다.
폭격기가 도로를 공격하여 파괴한 경우, 폭격의 규모와 정확성에 따라 하루나 이틀 만에 도로를 재건하기도 했다.
그리고 월맹군은 삼중 캐노피 정글을 지나 도로를 계속 개척하여 도로가 공중에서 보이지 않게 만들었으며, 이 도로는 탱크와 트럭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매우 넓었다.
라오스에서 몇 번의 임무를 수행한 후, 헬기를 타고 월남을 가로질러 프레리 파이어 AO를 향해 날아가는 동안 매번 드는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라오스 상공에서 보는 동남아의 에메랄드빛 녹색의 무성한 땅은 아름다웠다.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들어갈 때마다 우리가 현지인들이 창만 들고 있는 12세기, 13세기 원시의 땅으로 날아가는 20세기 전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현대인 vs 산악 농민 같은 것 말이다.
지역 농민들은 여전히 화전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큰 면적의 땅을 불태우고, 지력이 다 할 때까지 심고 수확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하지만 라오스에서는 총력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월맹군은 모든 원주민에게 함께 일하지 않으면 죽을 것을 강요했다.
정찰팀장들은 월맹군과 현지 인력이 라오스 능선을 따라 보내져, 헬기의 이동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총성, 북, 무전 등으로 신호를 보낸다고 들었다.
적군은 다수의 LZ에 정찰병을 두었고 SOG 정찰팀을 추적하기 위해 2인조 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8년에 월맹군은 산악 지형을 잘 알고 사람이나 동물을 추적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지역 추적자, 지역 사냥꾼 및 부족민에게 압력을 가했다.
교활한 월맹군은 추적병으로부터 학습했고 아샤우 계곡과 같은 트레일의 주요 핫스팟에 자체 추적병을 배치했다.
또한 월맹군은 트레일을 위해 정예 병사로 구성된 공병 사단을 구성하고 훈련했다.
제305 공병 사령부는 SOG 팀을 사냥하고 죽이는 단 하나의 임무를 위해 헌터-킬러 팀을 훈련시켰다.
정찰팀장들은 공병들이 정찰팀을 공격할 때 로인클로스, AK-47, 탄약만 착용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리고 하노이는 보상을 추가했다. 정찰팀장을 죽이거나 살려서 데려오면 현상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한편 존슨 대통령은 3월 31일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월맹 폭격을 중단했다.
이를 통해 월맹군은 호치민 트레일에 더 많은 관심과 자원을 집중할 수 있었다.
이번 달 동안 ST 아이다호는 여러 LZ에서 다양한 수준의 월맹군 또는 파테트 라오 반군과 접촉했다.
이달 상반기에는 H-34를 타고 월남과 불안한 아샤우 계곡을 건너 라오스로 날아가다가 1차, 2차, 대체 LZ 모두에서 총격을 받는 날이 있었다.
이 길고 지루하고 별일 없는 비행이 2~3일 동안 서로 다른 LZ에서 격렬한 총격을 받으며 끝났다.
1-0들은 일부 목표 지역은 헬기 착륙이 가능한 LZ 수가 제한되어 있는 와중에도 월맹의 스파이가 정찰팀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라오스에 있는 군대에 알려준다고 사적으로 서로 얘기를 나눴다.
(미 해군 보안 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렸으며 SOG 사무실의 핵심 월맹 요원이 종종 월맹군과 LZ 감시병에게 LZ 좌표를 흘렸다)
사이공 또는 FOB 1의 누군가가 마침내 팀을 현장에 배치하기 위한 독특한 전략을 생각해 냈다. 코비가 LZ가 없는 정글 구역을 찾고, 2000파운드 데이지 커터 폭탄을 투하한 뒤, 연기가 걷히면 호버링하는 헬기에서 정찰팀이 목표물을 향해 레펠링을 하는 것이었다.
푸바이의 스파이크 팀은 기지 동쪽 끝에 있는 레펠링 타워와 H-34에서 여러 번 레펠링 훈련을 실시했다.
그 계획은 아주 확실한 아이디어처럼 들렸다.
1-0로서 매력적으로 느낀 점은 해당 지역에 망할 추적병이 없을 거라는 것이다.
정찰팀은 월맹군이 반응하기 전에 빠르게 지상에 도착하여 이동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의 훈련 끝에 ST 아이다호는 자신감을 갖고 목표로 레펠로 투입될 준비가 되었다.
마침내 C-130에 데이지 커터 폭탄이 준비된 날이 왔다.
코비는 LZ나 개활지가 없는 정글을 발견했다.
그리고 ST 아이다호는 H-34 두 대를 타고 목표 지역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LZ에서 총격을 받지 않고, ST 아이다호가 지상에 투입될 수 있는 새로운 전술이 나온 것에 기분이 좋았다.
몇 분 만에 나는 로프를 걸고 문 앞에 서서 킹비가 우리를 폭격 지역으로 데려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우리의 레펠링 장비는 원시적이었지만 효과적이었다.
우리는 헬기에 150피트 길이의 로프를 걸었다.
그리고 하네스는 스위스 시트라고 불렸다.
6피트 길이의 로프를 허리 주위에 두 번 감은 뒤, 양 끝을 다리 사이로 통과시켜 왼쪽 엉덩이 위치에 묶는 방식이었으며, 앞쪽에는 금속 D 링을 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D 링의 상단 부분에 스위스 시트를 걸었다.
헬기와 연결된 로프는 고리에 통과시킨 뒤, 마찰을 위해 한 바퀴 완전히 꼬았고, 몸의 오른쪽을 지나되 몸에 닿지는 않도록 해야 했다.
왼손은 위쪽으로 뻗고, 오른손은 로프의 아래쪽 부분을 모아 등 뒤로 집어넣어 제동했다.
H-34에는 2~3개의 금속제 계단이 있었고 나는 로프를 걸고, 왼손은 로프의 윗부분을 잡고 오른손은 제동을 위해 등 뒤에 두고, 맨 아래 계단에 서 있었다.
우리는 폭격 목표 지역에서 꽤 먼 거리를 두고 선회했다.
C-130이 데이지 커터를 떨어뜨린 후 나는 후속 폭발을 느꼈고 킹비가 계획대로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극적으로 일어났다.
거대한 폭탄이 터지고 몇 초 뒤, 2차 폭발과 3차 폭발이 일어났다.
킹비는 갑작스럽게 접근을 중단했고, 나는 헬기 안으로 굴러가 정글의 삼중 캐노피 아래에서 일련의 2차 폭발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을 놀란 채 지켜보았다.
우리는 월맹군의 비축 물자에 가한 피해와 새로운 전술이 내일까지 연기된 것에 대해 고개를 저으며 FOB 1로 돌아왔다.
SOG에서 두 번째 파병을 보내고 있던 베테랑 1-0인 팻 왓킨스는 활짝 웃으며 기지로 돌아왔다.
왓킨스가 그 임무의 코비 라이더였다.
왓킨스는 내게 다가와서 승무원들이 데이지 커터에 의해 발생한 2차 폭발을 수십 번, 많게는 100번이나 봤다고 말했다.
"상상할 수 있냐? 지금 하노이 어딘가에서 어떤 장군이 머리를 긁적이며 '도대체 거기에 비축 물자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게 순전히 멍청하고 맹목적인 행운이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몇 달 동안 조사를 할 거라고"
다음날, 우리는 다시 시도했다.
왓킨스는 도로, LZ, 개활지가 없는 또 다른 정글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C-130이 데이지 커터를 투하한 후 2차 폭발이 발생하지 않았다.
킹비가 연기가 나는 LZ에 접근하자 나는 다시 계단 위에 서서 라오스로 레펠 준비를 했다.
SOG 정찰팀이 목표로 레펠로 투입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궁금했다.
하지만 FOB 1이나 SOG 어디에도 군사 역사가가 없었기에 그에 대한 대답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목표에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팀, 가장 짧은 시간 동안 머물렀던 팀 등의 기록은 없었다.
뜨엉 대위가 킹비를 몰아 연기 속으로 들어갔을 때, 나무 몇 그루가 여전히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폭심지는 산악 지형의 언덕 사면에 있었다.
멀리서 보면 지형이 그다지 험난해 보이지 않았으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지형의 울퉁불퉁함과 여전히 서 있는 나무의 수가 뚜렷이 드러났다.
뜨엉 대위의 킹비가 호버링을 하자마자 나는 로프를 타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언덕 사면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킹비의 소음과 끊임없는 로터의 돌풍이 결합되어 LZ의 다른 소음이 묻혔다.
그러나 로프를 타고 내려오면서 헬기 소음이 줄어들고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첫 번째로 든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그들이 이미 추적병을 여기로 데려왔는지였다.
지상에 가까이 다가가자 연기가 피어오르는 LZ 양쪽으로 목소리가 두 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킹비의 기수가 가리키는 정글 지역에서 첫 번째 목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목소리는 킹비 후방에 있는 정글 지역에서 들렸다.
로프를 타고 내려올 예정이었던 두 번째 팀원은 조지아주 사바나 출신의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대원인 헨리 킹이었다.
나는 킹에게 이상 없다고 말하기 전까지 킹비에서 뛰어내리지 말라고 신호를 보냈다.
나는 연기가 나는 쓰러진 나무 뒤에 착륙했다.
그 나무는 내 왼쪽으로 약간 위로 약간 기울어진 채 연기가 나는 다른 나무줄기 위에 놓여 있었다.
가장 높은 지점이 지상에서 약 5피트 떨어져 있었다.
나는 즉시 킹에게 임무 중단 신호를 보냈다.
처음에는 그가 하강하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내 신호를 이해하지 못 했을까 두려웠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총격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폭탄 때문에 깜짝 놀란 두 현지인이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두 사람 모두 무기를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위를 올려다보니 킹이 다시 킹비 안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여서 기뻤다.
나는 무전기로 코비에게 우리가 다시 발각됐으니 임무를 중단하라고 말했다.
잠시 동안 팀의 지상 투입을 시도해 보는 것을 고려했다.
솔직히 LZ에서 철수하는 것에 지쳤고 라오스 LZ에서 엄청난 총격전을 치르는 대신 임무를 수행하고 싶었다.
그때 폭격 지역으로 향하는 월맹군의 헬멧을 보았다.
그는 내가 처음 목소리를 들었던 곳, 내가 있는 언덕 위쪽에 있던 헬기 전방의 정글 지역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나는 CAR-15로 총격을 가했다.
그리고 갑자기 킹비가 나를 지상에 남겨둔 채로 방향을 돌리고 가버렸다.
기괴한 수준의 침묵이 갑자기 찾아왔다.
몇 초 전에 월맹군을 관측했던 곳에서 AK-47을 장전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총격을 가한 후에는 정글 및 거리 때문에 월맹군에게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소드 오프 M-79를 꺼내 마지막으로 월맹군을 보았던 곳에 한 발을 쐈다.
고폭탄의 폭발음이 엄청 크게 울려 퍼지며 으스스한 침묵이 깨졌다.
그 순간 나는 월맹군에게 이러한 치명적인 M-79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착탄 지점에서 연기가 걷히자 언덕 아래에 있던 현지 남성이 LZ 너머로 소리를 질렀다.
처음에는 대답이 없었다.
내가 쏜 유탄으로 인해 지역 농부나 나무꾼이 다치지 않았기를 바랐다.
나는 그들에 대해 아무런 적대감을 가지지 않았다.
AK-47을 들고 있는 월맹군은 다른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때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라오스 한가운데, 연기가 피어오르는 LZ 한가운데에 혼자 서 있었다.
갑자기 내가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우 작은 존재 말이다.
폭발에서 살아남은 나무들은 높았다.
LZ를 둘러싼 정글은 인상적이면서 무섭기도 했고, 혼자 여행하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무전기로 코비의 응답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왓킨스의 대답은 없었다.
공습을 요청하는 팀원은 내가 되길 원했기에, 나는 ST 아이다호의 미군 팀장이었음에도 무전기를 메고 다니는 것을 고집했다.
(ST 아이다호를 라오스의 프레리 파이어 목표로 투입하기 몇 분 전, 꽝찌 발진 기지에서 킹비 옆에 서 있는 응우옌 반 뜨엉 대위)
월남인들은 현장에서 우리의 목숨을 구했고, 정글전에서의 생존에 대한 내 책임은 적에게 항공 지원과 건쉽 헬기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이상한 각도로 쓰러진 나무, 나무의 들쭉날쭉한 가장자리가 LZ에 기괴함을 더해주었다.
또 다시 내 뒤에서 뭔가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부상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M-79를 재장전하고 CAR-15에 새 탄창을 꽂았다.
그리고 웹기어에 착용한 M-26 수류탄 몇 개에 붙은 테이프를 풀었다.
내가 바쁘게 대비하는 동안, 뜨엉 대위가 날 LZ에서 꺼내기 위해 언제 돌아올지 궁금했다.
뜨엉은 재능 있고 두려움이 없는 파일럿이었다.
그는 적의 사격량에 관계없이 여러 치열한 LZ에서 ST 아이다호를 구해냈다.
그러나 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연료가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AO 상공에서의 체공 시간은 항상 정찰팀의 주요 관심사였다.
투입 후 킹비는 라오스와 월남을 가로질러 기지로 향하기 전, 최대 10분 동안만 상공에 머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뜨엉 대위를 알고 있었다.
장마철 동안 그는 내가 H-34의 부조종사 자리에 앉아 귀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우리 재보급을 위해 킹비와 함께 북쪽으로 꽝찌 발진 기지로 향하고 있었을 때, 나는 해병대 CH-46을 향해 곧장 향하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우리가 탄 월남 공군 H-34보다 더 크고 무겁고 훨씬 추악했다.
CH-46의 경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하던 참이었다.
뜨엉 대위는 "우린 안 비킨다!"라고 말했다.
나는 뜨엉 대위에게 CH-46은 우리 헬기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뜨엉은 "안 비킨다!"라고 말했다.
그는 매우 진지했다.
그의 소년 같은 얼굴에는 이전에 본 적이 없는 험악함이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미 해병대의 크고 괴상한 헬기를 피하자고 제안했다.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뜨엉 대위는 자신의 진언을 반복했다. "안 비킨다! 우리 월남인은 월남에서 월남 헬기를 몰고 있다. 우리는 비키지 않는다!"
내가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해병 헬기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랑스러운 킹비는 계속해서 북쪽으로 꽝찌로 질주했다.
H-34가 나에게 돌아오는 소리를 듣자 그 순간이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킹이 로프 바닥에 부착된 모래주머니를 떨어뜨리는 동안 뜨엉 대위는 헬기를 호버링 시켰다.
밧줄은 몇 피트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
나는 타버린 나무에 발이 채어 비틀거렸다.
내가 로프에 몸을 걸기 시작하자 더 많은 총성이 들렸다.
나는 스위스 시트의 D 링을 로프에 걸었다.
그런 다음 다시 사격해야 했다.
나는 월맹군을 보지 못했지만 발사된 화기에는 틀림없이 AK-47의 총성이 있었다.
나는 그 방향으로 M79 유탄을 발사했다.
유탄의 폭발은 뜨엉 대위를 깜짝 놀라게 했을 것이다. 뜨엉 대위는 내가 왼쪽 어깨에 있는 D 링을 로프에 걸기도 전에 킹비를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그 어깨 D 링은 스위스 시트에 매달리는 데 매우 중요했다.
우리는 월맹군이 SOG 대원들에게 행한 시신 훼손 등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그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뜨엉이 나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자, 나는 언덕 꼭대기에 총구 섬광처럼 보이는 곳으로 CAR-15를 쐈다.
그러다가 무서워졌다.
나는 아직 어깨 D 링을 걸지도 못했는데 누군가 우리에게 녹색 예광탄 몇 발을 쐈다.
그리고 뜨엉 대위는 목표 지역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헬기가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나는 몇 그루의 나무에 튕겨지며 정글에서 벗어났다.
나중에 킹비 부조종석에 앉고 나서야 내가 나무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킹비가 LZ에서 출발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헬기가 격추되면 임무는 악몽으로 바뀌고 헬기에 탑승한 승무원과 정찰 팀원이 부상을 입거나 사망할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뜨엉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젠장, 애초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나.
만약 그가 그러지 않았다면 다른 헬기가 나를 구출할 때까지 적어도 두 시간 이상 그곳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무 사이로 끌려가는 것은 아팠다.
팔오금에는 로프가 피부를 파고들어 피가 흐르고 아팠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
뒤집히는 것을 막기 위해 로프를 팔로 꽉 붙들어야 했으나 다치지는 않았다.
어깨 D 링이 걸리지 않으면 그 실수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레펠 교관이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모든 정찰대원은 팀원들이 퇴출 도중 스위스 시트에서 총에 맞거나 헬기가 정글을 통과하는 동안 스위스 시트에서 나무에 의해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분 만에 나는 라오스 상공 5,000피트에 도달했다.
나도 안 다치고 팀도 피해 없이 LZ에서 철수할 수 있어서 기뻤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어깨 D 링을 걸 수 없었다.
그리고 시속 80마일 이상의 속도로 날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고글도 없었다.
허벅지에 로프가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팀 대원들과 교관들이 말했듯이 나는 하네스에 다리가 마비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심한 로프 화상으로 오른팔에서 피가 나고 통증이 심했기에 왼팔로 바꿨다.
바람과 내가 걸치고 있는 장비 때문에 두 팔로 동시에 로프를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팔뚝을 보호하기 위해 긴 소매를 내릴 수도 없었다.
몇 분 후 왼쪽 팔에 상처가 나자 거꾸로 뒤집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오른쪽 팔을 썼다.
킹비를 올려다보니 킹이 문 쪽에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에게 킹비를 착륙시키라는 신호를 보냈다.
차가운 공기, 헬기의 속도, 피가 나는 팔 때문에 월남 횡단 비행 내내 버틸 힘이 없을까 두려웠다.
로프로 표적에서 구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이륙하기 전에 빌어먹을 D 링을 걸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팔이 너무 아팠다.
팔을 바꾸려고 하다가 뭔가 에어포켓 같은 것에 부딪혀 갑자기 5,000피트 상공에서 거꾸로 뒤집어졌다.
내 목숨의 유일한 물리적 연결고리는 하네스에 D 링과 헬기에 매달린 150피트 길이의 로프뿐이었다.
나는 다시 킹을 보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여전히 문밖에 서 있었다.
나는 헬기를 착륙시키라고 다시 신호를 보냈다.
킹에게 신호를 보내는 동안, 로프가 내 허벅지 아래에서 무릎까지 가차 없이 미끄러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내 웹기어는 엉덩이에서 배 위를 지나 목 쪽으로 미끄러졌다.
순식간에 스위스 시트가 내 무릎 위에 위치해 있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리를 벌리는 것뿐이었다.
이 목표로 투입되기 몇 주 전에, 나는 장비와 몸무게를 측정했다.
웹기어가 목까지 온 것을 느꼈을 때, 장비, 무기, 탄약, 물, PRC-25, 배터리의 무게가 80파운드가 넘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나는 배낭을 벗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웹기어와 엉켜서 목에 하중이 많이 가해졌다.
나는 킹에게 다시 한번 신호를 보내려고 했다.
헬기의 속도와 장비의 무게가 죽음의 손길로 변했다.
목에 걸린 장비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킹비가 같은 속도로 동쪽으로 계속 날아가는 동안, 사람이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땅에 부딪히기 전에 죽을 것이라는 내용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로프가 내 무릎 위로 미끄러졌다.
실질적으론 로프가 움직인 것은 아니다. 거꾸로 뒤집힌 내 몸이 스위스 시트의 로프를 지나 계속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정말 바보 같았다.
모든 훈련을 마쳤는데 정말 바보처럼 죽는 방법이었다.
게다가 목을 조르는 장비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몸이 로프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자 나는 의식을 잃는 것을 느꼈다.
발이 로프에 닿자, 나는 벌린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비상 상황에 대비해 왜 다리 근력운동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평생 두 번 기절했었다.
그 익숙한 암흑이 내 의식을 휩쓸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전투가 아니라 어리석은 실수로 죽을 뻔했다!
로프가 내 발 위로 미끄러지자, 나는 얼마 안 가 기절할 것을 알아차렸고 다리를 계속 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내 인생의 몇 가지 짧은 장면이 떠올랐다.
내 유치원 시절 사랑인 돌로레스는 왜 캘리포니아로 떠났을까?
그리고 짙은 푸른색 페인트에 흰색 측면 패널, 금박 문자가 있던 아버지의 1949년형 쉐보레 우유배달 트럭.
어렸을 때 끌던 빨간 수레.
고등학교 풋볼 경기.
설상가상으로, 내 죽음에 관한 고향 신문의 1면 기사까지 보았다.
월남에서 죽어가던 지역 청년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제 흔해졌기에 그 이야기는 접힌 부분 아래에 있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우리 가족은 내가 실제로 어디서 죽었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내가 실제로 어떻게 죽었는지 알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기절하기 시작하자마자 발이 로프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몸이 축 늘어졌다.
등이 바닥에 세게 부딪히기 전에 코끼리 풀에 닿은 것이 간신히 기억난다.
나는 단지 10~20피트 정도만 떨어졌다!
코끼리 풀이 추락을 완충했다.
나는 그 정신없는 마지막 순간에 뜨엉 대위가 헬기를 하강시켰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움직이려고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킹이 나를 데려가려고 했을 때 나는 거의 의식을 잃었다.
그는 우리가 아직 라오스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목에 걸린 웹기어와 배낭을 풀었다.
이어서 나를 헬기로 데려간 다음, 내부로 던졌다.
헬기의 금속 바닥에 머리가 튕겨 나가는 느낌이 좋았다.
나는 킹에게 장비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킹은 코비하고 킹비가 가능한 한 빨리 라오스에서 나오기를 원하니까 그냥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이제 킹비의 연료는 위험할 정도로 부족했다.
누군가 내게 물을 준 것 외에는 푸바이로 돌아가는 동안에 대해 별로 기억나지 않았다.
요오드의 맛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전에 단 한 번 주마등이 떠오른 적이 있었다. 비에 젖은 뉴저지 뒷길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경주하면서 빠르게 운전하고 있었는데, 너무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폭스바겐이 미끄러운 도로를 옆으로 달리다, 다가오는 차와 마주친 순간 나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두 경우 모두 의식이 얼마나 빨리 돌아가는지, 세부 사항이 명확함과 죽음의 문 앞에 서 있는 동안 느끼는 두려움에 놀랐다.
킹비가 푸바이에 돌아오자, 나는 월맹군들이 총격을 가하더라도 앞으로 로프로 철수할 때 D 링을 연결하는 것을 절대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푸바이에 착륙했을 때 죽음과의 조우가 끝났으니 일종의 환영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FOB 1 건너편 착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 생명을 구해준 뜨엉 대위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킹비의 조종석에 올라갔다.
그는 내가 잘못하면 기절할 수 있었단 걸 깨닫지 못했다.
뜨엉 대위는 누군가가 그에게 라오스에 착륙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킹이 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깊은 인상을 줬다고 말했다.
우리는 1번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기지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작전 장교에 보고했을 때, 인사는 별로 따뜻하지 않았다.
"팀의 레펠을 막은 이유가 뭐야? 겨우 나무꾼만 본 거지?"
작전 장교인 소령은 대부분의 정찰 대원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분명히 그 소령은 킹비를 향한 월맹군의 사격은 못 들었다.
그런 다음, 나는 소령에게 나쁜 소식을 전해야 했다. 내 모든 장비, 웹기어(우리가 선호하는 구형 BAR 탄띠), 모든 수류탄 및 PRC-25가 들어 있는 배낭이 전부 라오스에 있다는 것 말이다.
"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나?" 소령이 물었다.
나는 그러니 지금 말하고 있지 않냐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병참 건물로 가서 새 장비를 구하고 다음 날에 또 다른 목표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병참 건물에 가기 전에 월남 팀원들을 확인하고 아침에 새로운 임무가 있다고 말한 다음, 클럽에 들러 누가 있는지 확인했다.
이번에도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도 내 퇴출에 대해 못 들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 퇴출은 총격전에 참여하지 않고도 죽음에 가장 가깝게 이르렀던 사건이었고 다시는 그렇게 가까이 있고 싶지 않았다.
우리 팀에서 세 번째로 레펠 강하를 할 미군 팀원이었던 버바 쇼어가 클럽에 있는 내게 다가와 어깨에 팔을 올렸다.
"오늘 깜짝 놀랄 소식 하나 말해줘? 계속 이 말 하려고 기다렸는데, 아무튼 뭔지 알아?"
그리고 그는 당시에 이상해 보였던, 불안한 표정으로 거기 서 있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오늘 너하고 헨리가 목표에 같이 안 들어가서 다행이다."
"왜?" 나는 물었다.
"그게... 우리 킹비에는 로프가 없었어."
"뭐?"
나는 아이다호에 온지 한 달쯤 된 쇼어에게 방금 한 말을 다시 해 달라고 했다.
말이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버바는 본인을 포함한 나머지 절반의 정찰팀이 타고 있던 후속 헬기에는 레펠에 쓸 로프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두꺼운 장갑도 없었다.
농담도 이런 농담이 따로 없었다.
킹, 사우, 내가 같이 레펠을 했다면, 팀의 나머지 절반이 없는 상태로 발각되어 현장에 남겨졌을 것이다.
내가 죽을 뻔했다는 사실은 사후 보고서를 제외하고는 기지 내에서 언급되지 않는 것 같았다.
모든 1-0는 팀이 현장에서 1분을 보냈는지, 일주일을 보냈는지에 관계없이 임무 후에 사후 보고서를 제출했다.
물론 듣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는 말해줬다.
하루의 남은 시간을 새 장비를 구하고, 탄창을 삽탄하고, 또 다른 M-79 유탄 발사기를 찾고, M-26 수류탄의 고리와 핀을 테이프로 붙이고, 또 다른 PRC-25와 배낭을 얻는 데 다 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작전 장교는 전에 말한 대로 ST 아이다호를 다른 목표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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