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FOB 2, ST 네바다 팀룸에 서 있는 루이스 J. 드세타)
키 5피트 4인치, 몸무게 120파운드의 루이스 J. "제이크 쓰리 제로" 드세타는 소위 말하는 존 웨인 유형의 전형적인 미국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1967년의 대부분을 제173공수여단 4대대 A 중대에서 보낸 뒤, 닥토의 875고지에서 벌어진 끔찍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델라웨어 출신의 젊은이는 1968년 1월에 그린베레 임무에 자원했다.
드세타는 제5 특전단에 가기 위해 나트랑으로 갔고, 그곳에서 한 병장이 젊은 공수부대원인 그에게 나쁜 소식이 있다고 말했다.
"다낭 C&C로 가게 될 거다."
"C&C가 뭡니까?" 드세타가 물었다.
"곧 알게 될 거다." 병장이 대답했다.
1968년 2월 말, 다낭의 FOB 4에서 C&C 브리핑을 받고 20년 동안 일급 비밀 작전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문서에 서명한 후, 드세타는 콘툼 FOB 2로 날아갔다.
비행하는 동안 드세타는 자신이 무슨 일에 자원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드세타는 1년 동안 포병 지원과 지원 부대와 함께 월맹군과 싸웠지만, 그런 종류의 지원 없이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월맹군과 싸울 생각을 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잘 닦인 새 정글화와 새 군복을 입고, 카빈과 더플백을 들고 기지에 들어선 드세타는 또 다른 놀라움을 느꼈다. 14번 고속도로가 FOB 2 한가운데를 바로 관통하고 있었다.
드세타는 FOB 2가 월남에서 가장 불안한 기지라고 생각했다.
인사 본부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ST 네바다의 1-0, SP4 하워드 테일러는 드세타의 오른쪽 어깨에 있는 173여단 전투 패치를 발견하고 FOB 2에 도착한 것을 환영해 줬고, 정찰에 관심이 있는지 물었다.
드세타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라고 말했다.
드세타는 병장이고 테일러는 한 계급 아래였으나, 드세다는 테일러에게 명령받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조금 뒤, 테일러는 드세타를 그린베레 하사이자, 뉴저지주 트렌턴 토박이인 프레드 자비토스키에게 소개했다.
이후 세 사람은 자비토스키의 팀룸으로 가서 일반 정찰 전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두 명의 베테랑 정찰대원은 프레리 파이어와 다니엘 분 AO에서 정찰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 배운 통찰력과 교훈을 공유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맥주 몇 잔을 마시기 위해 클럽으로 갔다.
자비토스키는 자신이 명예훈장 후보에 올랐다고 언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다음 며칠 동안, 테일러와 자비토스키는 드세타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곧 ST 네바다가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임무 전 브리핑에서 한 병장이 테일러와 드세타에게 엘디스트 선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월맹군의 AK-47용 7.62mm 탄약을 운반하여 적지에 남겨두고 올 것이었다.
이 탄약은 적군이 발사하면 AK-47 안에서 폭발하도록 미국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박격포탄도 적의 박격포 포신 내에서 폭발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러한 개조 탄약을 투입하는 임무를 엘디스트 선 또는 소프 칩이라고 했다.
브리핑을 하던 병장은 테일러와 드세타에게 엘디스트 선 탄약을 적의 수중에 넣는 방법 중 하나는 월맹군에게서 AK-47을 빼앗아 불량 탄약을 삽탄하고 적지에 두는 것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드세타는 그 말에 어리둥절했다.
브리핑 룸을 떠나면서 드세타는 테일러에게 몸을 돌려, 브리핑을 하던 사람들은 살아있는 월맹군에게서 AK-47을 확보하려고 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테일러는 그저 웃었다.
FOB 2에 온 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됐지만, 드세타는 자신이 만난 거의 모든 대원들이 이전에 만난 것들보다 미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드세타는 C&C 임무에 자원한 자신의 정신 상태에 의문을 제기했다.
캄보디아로의 엘디스트 선 임무는 3일차에 ST 네바다가 월맹군과 접촉하고 적의 거센 사격 속에서 철수하며 끝이 났다.
헬기가 적의 총격에 여러 차례 피격당했지만 ST 네바다에 부상자는 없었다.
그날 밤, 드세타는 FOB 2 안에서 영화를 보러 갔다.
드세타는 CAR-15를 야외극장 구역으로 가져갔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한 대위가 드세타에게 다가가, 극장에서는 무기 반입이 허용되지 않으니 CAR-15를 달라고 했다.
드세타가 대위에게 CAR-15를 원하는 이유를 물어보자, 기지에 월맹군 침입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드세타는 대위에게 월맹군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드세타는 자신의 CAR-15를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았다.
그가 자리에 앉자, 어려 보이는 그린베레 대원이 장교한테 한 대답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며 드세타와 악수하며 자신을 C&C의 베테랑 정찰병인 데이비드 "베이비상" 데이비슨이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그날 밤 우정을 쌓았다.
월남 임무를 수행한 후, 테일러와 드세타는 라오스, 캄보디아, 월남의 삼중국경 지대인 '찰리 50'이라 지정된 목표에서 임무를 수행하라는 브리핑을 받았다.
그들은 그곳이 힘든 목표라고 들었다.
테일러와 드세타가 브리핑을 마치고 작전본부에서 나오자, 전투복에 계급장과 이름이 없는 그린베레 대원이 테일러에게 다가와 ST 네바다가 어떤 목표에 가는지 물었다.
나중에 테일러가 제리 "매드독" 슈라이버라고 밝힌 그 대원은 드세타에게 지난 6개월 동안 찰리 50에서 살아남은 미군은 없다고 말했다.
드세타는 넋을 잃고 잠시 서 있었다.
6개월 동안 그 목표에서 살아남은 미군이 없다면 도대체 우리가 투입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곳은 정말 미친 곳이었다.
그리고 그 대원의 "매드독"이라는 별명은 아주 제대로 지은 것이었다!
하지만 훌륭한 보병이었던 드세타는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ST 네바다와 함께 찰리 50으로 투입되어 3일 동안 있었다.
팀은 주요 트레일을 따라, 적의 활동을 비행기에 보고하는 공군 센서를 성공적으로 삽입했다.
또한 엘디스트 선 탄약도 뒀다.
임무 3일차에 ST 네바다는 월맹군 및 파테트 라오와 큰 접촉이 발생했다.
드세타는 목표에서 철수하기 전에, 살아있는 월맹군들이 주워다 사용하기를 바라면서, 죽은 적들 사이에 나머지 엘디스트 선 탄약을 떨어뜨렸다.
RT 네바다는 다시 적의 강한 공격을 받으며 철수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팀은 사상자 한 명 없이 구출됐다.
당시 드세타는 173 공수여단의 친구로부터 *'더 허드'에서 그린베레로 옮기는 것이 좋을지 묻는 편지를 받았다.
*173 공수여단 별명
드세타는 그 친구에게 임무와 C&C 일부 대원들이 미쳤으니 더 안전한 173여단에 남으라고 말하는 간단한 메모를 썼다.
또한 친구에게 부대를 옮긴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라고 말했다.
드세타는 C&C에서 살아남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다음날, 드세타는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아일랜드계인, SP5 존 J. 케덴버그라는 새로운 팀원을 소개받았다.
키가 크고 잘생긴 이 대원은 그린베레 모집 포스터에 딱 맞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 며칠 동안 케덴버그가 ST 네바다와 함께 강도 높은 훈련을 하던 중, 드세타는 그의 웹기어에 걸린 M-1 카빈의 총검을 보고 감탄했다.
ST 네바다에게 새로운 임무 예정이 잡히자, 드세타와 케덴버그는 총검을 챙기기 위해 병참 본부로 이동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자비토스키가 보급관인 밥 하워드 중사와 농담을 나누고 있었다.
자비토스키는 하워드에게 드세타를 소개했다.
드세타는 케덴버그가 가지고 있던 것과 유사한 M-1 카빈 총검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워드는 몇 분 동안 병참 본부의 내부로 들어갔다가 다시 카운터로 돌아와 드세타에게 상자를 건네주었다.
"이거면 되겠나?"
드세타는 상자를 열고 칼을 꺼냈다.
그것은 일련번호 2704의 공식 SOG 나이프였다.
키가 크고 친근한 군인인 하워드는 드세타를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가 정찰을 한다는 것은 알았다.
드세타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왼쪽부터, 루이스 J. 드세타와 두 명의 ST 네바다 현지 팀원, 1968년 6월 13일 전투 중 사망한 SP5 존 케덴버그. 케덴버그는 사후에 명예훈장을 받았다. 이 사진은 케덴버그가 새 카메라로 시간 지연 스위치를 사용하여 촬영한 사진이다)
이전에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일련번호 2704의 SOG 나이프는 드세타는 항상 칼날을 날카롭게 유지하여 결코 무뎌지는 일이 없었고, 향후 모든 임무 동안 드세타의 웹기어에 걸려있었다.
며칠 후, ST 네바다는 1-0인 테일러와 케덴버그, 드세타와 함께 목표에 투입되어 며칠 동안 현장에 머물렀다가 피해 없이 로프로 철수되었다.
임무를 마친 후, 드세타의 브라우닝 9mm 권총용 어깨걸이 권총집을 구하기 위해, 케덴버그와 드세타는 시내로 운전했다.
떠나기 전에, 케덴버그는 드세타를 보며 베레모를 착용하는 방식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케덴버그는 드세타에게 베레모를 건네주고 자신이 각을 잡아 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들은 베레모를 교환하고 시내로 향했다.
FOB 2로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작전본부가 ST 네바다에게 할당한 다음 목표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고, 드세타는 복무가 약 4개월 남은 단기근무자로서 포병 지원 없이 C&C 월경 임무를 수행해야 하고, 복무가 끝날 때까지 살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며, 육군이 이보다 더 너무하게 나올 수는 없을 거라고 케덴버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케덴버그는 전형적인 미국인 미소를 지으며 드세타에게 걱정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테일러, 케덴버그, 드세타가 다가오는 임무에 대해 논의한 후, 테일러는 드세타에게 팀의 수류탄 재보급을 위해 병참 본부로 가라고 했다.
병참 본부로 걸어가는 동안, 루퍼트 G. 스트래튼 원사가 드세타를 보고, 케산의 FOB 3로 가야하니 "짐을 싸라"고 말했다.
드세타의 턱이 놀라서 벌어졌다.
드세타가 그 말을 정신적으로 이해하는 동안, 스트래튼은 다시 짐을 꾸리라고 했고, 먼저 헬기를 타고 다낭으로 가서 처리를 한 다음 FOB 3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드세타는 돌아서서 팀룸으로 돌아가 테일러에게 수류탄을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했지만, 그걸 따지기 이전에 스트래튼 원사가 방금 그의 삶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지난 1월, 콘툼에 복무하기 전에 휴가로 집에 있던 중, 드세타는 케산 포위전에서 해병대가 싸우는 장면을 TV 생방송으로 시청했다.
또한 케산에서 서쪽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랑베이 그린베레 A캠프가 월맹군 전차에 의해 압도당하는 것도 목격했다.
월남의 그 지역은 동남아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지였고 육군은 드세타를 그곳으로 파견하고 있었다.
군이 그에게 더 심한 짓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군은 그를 케산으로 보냈다!
48시간 후, 드세타는 FOB 3에 보고됐다.
킹비가 LZ에 접근하자, 도어거너는 드세타에게 케산 기지가 월맹군의 포격을 받고 있으므로 헬기가 착륙하기 전에 장비와 함께 뛰어내리라고 말했다.
익숙한 포탄 소리가 들리자, 드세타는 헬기에서 뛰어내려 가장 가까운 벙커로 달려갔다.
몇 초 동안 그의 마음에는 작년 11월에 173 공수여단 소속으로 875고지에서 경험했던 공포와 무자비한 충격이 떠올랐다.
드세타는 마침내 인사 본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ST 라이언의 1-0인 팻 왓킨스 하사의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드세타는 몇 주 만에 FOB 3 AO에서 가장 치명적인 라오스 목표인 오스카-8 목표에 투입됐다.
오스카-8에서 팀과의 첫날 밤, 적군 병사가 ST 라이온 현지 팀원에게 다가갔고,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그에게 경비 임무를 수행하라고 말했었다.
드세타는 그 임무에서 살아남았고 FOB 3가 7월에 폐쇄되기 전까지 ST 라이온에서 여러 임무를 더 수행했다.
C&C에서 복무하는 동안 최고의 1-0였던 왓킨스는 남쪽의 FOB 1로 향했고 드세타는 FOB 2로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케덴버그가 1968년 6월 13일에 임무 중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린베레 의무병인 조 파너는 ST 네바다의 남은 절반의 대원을 로프로 구출하려던 후속 헬기에 있었다.
파너는 케덴버그가 현지 팀원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로프에 있는 D링을 풀었다고 했다.
케덴버그가 다시 링을 걸기 전에 헬기는 적의 강력한 총격을 받아 철수했고, 케덴버그는 지상에 홀로 남겨져 월맹군의 웨이브에 맞섰다.
다음날, 케덴버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FOB 2 브라이트 라이트 팀이 투입되었다.
그 팀의 모든 대원들이 부상을 입었고 현지 대원 한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파너에게는 고국으로 향할 케덴버그의 마지막 비행을 위해 그의 시신을 준비하는 참담한 임무가 주어졌다.
드세타는 해칫포스로 라오스와 삼중 국경 지대에서 몇 가지 작전을 수행했고, 월남에서 떠나기 며칠 전에 ST 네바다에서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하며 1968년 8월 18일에 C&C 복무를 마쳤다.
C&C에서 6개월 동안 그는 1968년, FOB 2에서 명예훈장을 수훈한 세 명의 그린베레 대원인 프레드 자비토스키, 밥 하워드, 존 케덴버그와 어깨를 맞대었다.
이 셋 중에서 케덴버그는 사후에 수여되었다.
하워드는 명예훈장 후보로 두 번 더 지명되었으며 월남전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군인으로서 동남아를 떠났다.
제리 "매드독" 슈라이버와 데이비드 "베이비상" 데이비슨은 나중에 C&C 월경 임무를 수행하던 중 사망했다.
드세타의 가장 소중한 애장품 중에는 케덴버그의 베레모와 일련번호 2704의 SOG 나이프가 있다.
(1969년, 푸바이 비행장 비행단 본부에서 HML-367 표지판 앞에 서 있는, 호출 부호: "스카페이스 47"의 해병대 스카페이스 파일럿, 마크 버드 중위. 버드는 1969년 12월 2일, CCN 1-0, 닉 매닝의 RT 미시시피의 긴급 구출을 포함하여 많은 프레리 파이어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해당 임무 중, "이글 클로" 선두 기체가 격추되었다. 프레리 파이어 임무에서 스카페이스의 호출 부호는 "이글 클로"였다. 1967년 여름 이전에 VMO-3으로 알려졌던 HML-367은 수년 동안 FOB 1, 3, 4 AO와 이후 CCN 임무에서 SOG의 프레리 파이어 임무에서 헬기 자산을 이끌기 위해 매일 최소 2대의 UH-1E 휴이 건쉽을 제공했다. 그리고 다른 해병대 비행단도 SOG 임무에 참여했다. 1967~68년에, 추라이에 기지를 둔 VMO-6는 호출부호 "클론다이크"로, SOG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케산에 4대의 UH-1E 건쉽을 반영구적으로 파견했다. 그들의 항공기는 1967년 6월, 오스카-8 목표에서의 불운한 레이드 중에 SOG 헬기 패키지를 이끌었다. 1969년 12월, HML-367은 AH-1G 코브라로 전환되고 마블마운틴 비행장으로 이전되었으며, 이후 미 해병대 파일럿들이 수행한 대부분의 프레리 파이어 임무는 호출 부호 "컴프라이즈"의 HML-167에게 할당되었다. 버드에 따르면 2011년 1월 현재 월남전에서의 해병대 항공 부대 작전과 SOG 또는 SOG 유형 임무에서의 희생에 대한 완전한 기록은 출판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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