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는 부정확한 사실이나 간략화된 부분이 좀 있기에 역자 주를 쓰긴 했으나 디테일한 사실을 알고 싶다면 이전에 쓴 시리즈와 비교해서 읽는걸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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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윈드 작전을 위해 B중대 소대를 이끌고 헬리패드로 향하는 덴버 민튼 중사)


1970년 늦여름, 월맹군은 라오스 남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볼라웬 고원을 점령했고, 여러 CIA 비행장과 전진 기지를 점령했다.


CIA가 지원하는 2개 몽족 대대가 가장 중요한 거점을 탈환하려고 시도했지만, 더 많은 병력의 월맹군으로 인해 계속 격퇴당했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CIA는 SOG 사령관, 존 새들러에게 해칫포스 중대를 볼라웬 북동쪽으로 40마일 떨어진 곳에 투입하여, 하노이가 일부 병력을 고원에서 끌어내도록 적의 후방에서 소란을 일으킬 것을 요청했다.


SOG 해칫포스가 라오스에 그렇게 깊숙이 투입된 적이 없었기에 가치가 있을 듯 해 보였다.


비엔티안 주재 미국 대사의 승인과 사이공의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장군의 동의로 테일윈드 작전이 진행되었다.


유진 맥칼리 대위가 이끄는 CCC의 B중대가 해당 양동 작전을 맡았다.


1970년 9월 11일, 맥칼리의 136명의 SOG 부대원은, 12대의 해병대 코브라 건쉽의 호위를 받는, 미 해병대 HMH-463 비행대의 거대한 시코르스키 CH-53 4대를 타고 닥토에서 발진했다.


라오스로 건너가자마자 월맹군 사수들은 하늘로 중기관총을 쏘기 시작했다.


세미트레일러 크기의 화물칸 내부에서는 터빈의 소음 속에서 총알이 바닥을 뚫고 날아들었지만, 거대한 헬기는 정글 언덕과 석회암 절벽 사이로 계속해서 육중하게 이동했다.


그리고 CH-53은 원을 그리며 착륙하여 SOG 중대를 투입했다.


이후 3일 동안, 종일 코브라나 A-1 스카이레이더 또는 AC-130 스펙터가 상공에 있었다.


맥칼리 대위는 주저하는 순간 월맹군이 자리를 잡고 부대를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즉시 북서쪽으로 이동했다.


해칫포스는 LZ를 떠나자마자, 몇 발의 총탄을 쏘고 도망가는 월맹군 분대와 조우했다.


이후, SOG 척후 분대가 여러 개의 벙커를 관측했다고 보고했다.


맥칼리는 여러 분대에게 지시하여 500야드 길이의 벙커 라인을 조사하게 했고, 그곳에서 122mm 및 140mm 로켓과 수천 개의 로켓을 발견했다.


SP5 크레이그 슈미트와 짐 브레벨 중사는 서둘러 20개의 각 벙커에 시간 지연 신관과 함께 폭약을 설치했다.


B중대가 1,000야드가량 이동하자, 땅을 뒤흔드는 폭발이 일어난 뒤 30차례의 2차 폭발이 일어났다. 로켓은 쿡오프 되어 12시간 동안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내려와서 우릴 잡아봐라'라는 도전장도 함께 던졌다.


그리고 한 월맹군 소대가 그 도전에 응하기 시작했다.


맥칼리와 그의 부대원들은 총격을 가한 후 물러서서, 월맹군 부대 위치로 전투기를 부른 뒤, 계속해서 서쪽으로 이동했다.


해칫포스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몽타냐드 몇 명을 후송하려고 시도했지만, 후송 헬기가 착륙하기도 전에 150명의 월맹군이 공격을 가했다.


해칫포스는 공습과 함께 월맹군과 싸웠고, 부상자들을 데리고 계속 서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거의 어두워져서 야간 경계선을 설정할 시간이 되었고, 그것이 월맹군이 바라던 것이었다.


그러나 적군이 병력을 집결시킬 때까지 오랫동안 멈추지 않기로 결심한 맥칼리는 B중대를 계속 이동시켰다.


밤새도록 B중대의 대원들은 월맹군 분대와 싸웠고, 매번 AC-130 건쉽의 사격이나 신속한 공격으로 적군을 밀어냈다.


B중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새벽 동안, 미군 16명 중 9명과 그보다 더 많은 몽타냐드가 부상을 입었다.


해칫포스 의무병인 게리 마이클 로즈 병장은 부상자들을 봐주며 계속해서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일출 직후, B중대는 월맹군의 지연 진지와 마주했고, 5명에서 시작한 월맹군이 이어서 40명을 데리고 박격포와 로켓 발사기의 지원을 받아 중대의 왼쪽 측면을 공격했다.


B중대는 공습을 요청하고 싸웠다.


정오가 되자, 중대원들은 165번 고속도로에서 0.5마일 위의 능선을 걷고 있었고, 정글 초목이 얇아지자 도로와 수십 대의 트럭과 함께 나란히 있는 수백 명의 월맹군을 볼 수 있었다.


이후, 한 쌍의 A-1 스카이레이더가 트럭을 파괴하고 적 보병을 와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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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약과 폭발물로 무장한 맥칼리의 해칫포스. 단 3일 뒤에 탄약이 거의 바닥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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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깊은 곳으로의 투입을 위해 미 해병대 CH-53에 탑승하는 해칫포스)


전술에 능한 맥칼리는 도로와 주요 트레일을 피하고 하천 바닥, 작은 길 또는 초목이 얇은 능선을 따라 서둘러 갔다.


월맹군이 B중대의 길을 막을 때마다 맥칼리는 공습으로 월맹군을 강타하고 우회했다.


그무렵 24명이 넘는 대원들이 부상을 입었고 일부는 부상 정도가 심각해 이동에 차질이 생겼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SOG 의무병 존 패젯과 존 브라운을 태운 CH-53이 도착했지만, 첫 부상자를 태우기 전에 적의 사격이 급증하여 파일럿은 떠나야 했다.


그때 RPG가 시코르스키의 중앙에 맞았지만, 발사체는 폭발하지 않았다.


헬기는 5마일을 비틀거리다 착륙했지만, 그들을 구하기 위해 도착했던 또 다른 CH-53도 격추됐다.


(역자 주: 격추됐다는 또 다른 CH-53은 큰 손상을 입어 확인을 위해 잠시 착륙하긴 했으나 추락하지 않고 기지까지 복귀했다)


마침내 세 번째 헬기가 추락한 헬기의 의료진과 승무원을 구출했다.


둘째 날 밤 동안 해칫포스 대원들은 휴식을 취해야 했었다.


맥칼리는 부대에게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그가 찾을 수 있던 가장 높은 고지에 호를 파게 했다.


월맹군은 밤새도록 RPG를 쏴대며 탐사를 진행했고, B중대는 이에 크레모아와 스펙터 건쉽의 사격으로 반응했다.


잠을 잔 대원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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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 HMH-463에 탑승하는 맥칼리의 136명의 SOG 부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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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전, 라오스로 향하는 미 해병대 CH-53에 탑승한 테일윈드 작전 지휘관 유진 맥칼리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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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4일 후, 지치고 두 번 부상을 입어, 오랜 친구인 웨슬리 맥카슬린 중사의 부축을 받는 맥칼리)


새벽에 월맹군 공격을 예상한 맥칼리는 날이 밝기 한 시간 전에 부대를 이동시켰다.


길고 힘들었지만, SOG 중대는 적의 공격을 막고 비축물을 파괴하며 서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셋째 날은 둘째 날과 같았다.


(역자 주: 3일차에 상기한 헬기 추락이 발생했으며, 본문의 2일차~3일차 사이에는 사건 발생 순서에 오류가 있다)


넷째 날 아침, 대부분의 해칫포스 대원들은 너무 지쳐서 죽을 지경이었다. 부대는 엄청난 속도로 울창한 정글을 지나 15마일을 횡단하며 싸웠다.


그 넷째 날 아침, B중대가 3시간가량 이동했을 때, 선두가 벙커 지대로 도망친 몇 명의 월맹군들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맥칼리는 공습과 소화기 사격으로 월맹군 진지를 무력화한 후 공격을 지시했다.


크레이그 슈미트와 또 다른 분대장인 마누엘 오로즈코 병장이 부대원을 배치하고 공격했다.


월맹군은 저항군이 버티고 있는 벙커 두 개만 남기고 대대 규모의 베이스캠프를 버리고 후퇴했다.


B중대의 사격으로 적군이 머리를 숙이는 동안, 두 명의 몽타냐드가 앞으로 조심히 다가가 벙커로 수류탄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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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토에서 이륙하는 마지막 스탤리온. 작전 중 한 대가 격추됐지만, 기적적으로 사망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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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입 LZ로 향하는 미 해병대 CH-53의 탑승자들. 개리 마이클 로즈(가운데)와 얼굴에 위장을 칠한 맥칼리 대위(오른쪽))


베이스캠프는 점령되었지만 그동안 부상당한 SOG 부대원은 49명으로 늘어났으며(피해율이 거의 50%에 달했음), 유일한 의무병이자 두 번 부상을 입은 로즈는 상황을 거의 따라갈 수 없었다.


월맹군 기지를 수색하던 B중대원들은 트럭 4대, 120mm 박격포, 쌀 9톤을 발견했다.


그리고 수색하던 대원 중 한 명이 맥칼리 대위를 벽이 지도로 도배 되어 있고, 사물함과 파우치에 수백 파운드의 문서가 보관되어 있는 대형 벙커로 불렀다.


해당 기지는 주요 병참 지휘 본부였으며 아마도 165번 고속도로를 통제했던 빈 트램 본부였을 것이다.


맥칼리는 "모든 문서를 확보하라"라고 지시했고, B중대는 이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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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토에서 출동 태세를 갖춘 해병대 코브라 건쉽 12대 중 6대. 이들은 테일윈드 작전 중 100회 이상 출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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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165번 고속도로에서 전투 후 소강상태 중에 촬영한 해칫포스 데이브 영 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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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중대에 의해 압도된 빈 트램의 월맹군 막사. 월맹군 후방 부대는 부실한 전투를 벌였고 약 50명이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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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대가 반격을 막는 동안, 맥칼리의 부대원들은 확보된 빈 트램을 급히 수색하여 그동안 라오스에서 확보한 것 중 가장 중요한 문서를 발견했다)


작전 4일차인 그때, 상공에 FAC는 월맹군 부대가 두 방향에서 B중대를 향해 집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모든 미군이 부상을 입었고 여러 부대원이 여러 부상을 입었다.


이제 철수할 시간이었다.


맥칼리는 신속한 이동을 위해 정글을 포기하고 매끄러운 도로를 이동하며 속도를 냈다.


그리고 미 해병대의 CH-53이 30분 안에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피로에도 불구하고 맥칼리는 현명하게 싸웠고, 고지대에 있는 적 사수들이 헬기에 사격을 가할 수 있었기에, 우연히 마주친 첫 LZ를 포기했다.


맥칼리의 부대는 또 다른 LZ로 진격했고, 코비 라이더인 윌리엄 "컨트리" 그라임스는 월맹군 대공포 사수의 시야를 방해하기 위해 아트 비숍 소령이 조종하는 CBU-30 최루탄이 장착된 A-1을 데려왔다.


곧이어, CH-53 한 대가 착륙하여 가장 심한 부상을 입은 대원들과 확보한 문서를 싣고 이륙했다.


월맹군 박격포가 LZ를 공격하기 시작했지만, F-4 팬텀이 저공비행 하며 네이팜탄으로 휩쓸었다.


톰 스텀프 중위는 낮게 깔린 구름 아래서 A-1을 조종하여 월맹군 무리에게 집속탄과 네이팜탄을 투하했으며, 스텀프는 이러한 활약으로 수훈비행십자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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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레이더 옆에 선 공군 파일럿 톰 스텀프 중위. 그는 화려한 비행으로 수훈비행십자장을 수훈했으며, 그의 활약 덕분에 압도당하던 해칫포스를 구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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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칼리의 철수 LZ로 달려드는 월맹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거센 지상 사격 속에서 CS탄을 투하한 아트 비숍 소령)


테일윈드 작전의 해칫포스 대원들


유진 맥칼리 대위


모리스 아데어 일등상사


개리 마이클 로즈 병장


피트 랜든 중위


로버트 밴 버스커크 중위


짐 브레벨 중사


버나드 브라이트 중사


도널드 부드로 하사


마이클 헤이건 병장


SP5 짐 루카스


덴버 민튼 중사


마누엘 오로즈코 병장


키스 플란시치 하사


윌리엄 슈어러 하사


SP5 크레이크 슈미트


데이브 영 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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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윈드 작전에 참여한 16명의 해칫포스 부대원 중 13명. 모두 부상을 입었고 일부는 여러 번 부상을 입었다)


테일윈드 사건


1998년 6월, CNN은 테일윈드 작전이 여기에 묘사된 것보다 훨씬 더 사악한 임무였다고 주장하는 보고서를 전 세계에 방송했다.


CNN 기자 피터 아르넷과 프로듀서, 에이프릴 올리버가 공동 집필한 방송과 타임지 기사에 따르면, 테일윈드 작전의 목적은 사린가스를 이용해 라오스에 있는 미국 망명자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터무니없는 소리였고, 테일윈드 작전의 대원들뿐만 아니라 미군 포로와 실종자들을 구출하려다 사망하고 부상을 입은 모든 SOG 대원들에 대한 모욕이었다.


게다가, 테일윈드 작전을 진행한 콘툼 기지의 클럽은 1966년 미군 포로, 칼 잭슨 대위를 구출하려는 피비린내 나는 시도인 크림슨 타이드 작전에서 찰리 베셀스와 함께 사망한 해칫포스의 부사관인 프레드 "허클베리" 루이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CNN 방송 후, 많은 SOG 퇴역 군인들이 특수 작전 및 특수 부대 협회와 함께 보도가 거짓임을 언론에 설득하기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을 시작했다.


윌리엄 코헨 국방장관과 그린베레 월남 참전용사인 휴 쉘턴 합참의장은 CNN/타임지 보도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감독했다.


그러자 역사상 가장 극적인 미디어 전환이 이루어졌다.


타임지는 사과했고 CNN은 해당 기사를 철회했다.


스토리 프로듀서인 에이프릴 올리버를 포함해 CNN 직원 3명이 직장을 잃었으며, 기자인 피터 아르넷은 계약 만료 후 갱신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국방부는 테일윈드 작전의 의무병인 개리 로즈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고 작전 지휘관인 유진 맥칼리 대위에게 수훈십자장을 수여하는 것과 함께, SOG에게 오랫동안 받지 못했던 대통령 부대 표창 수여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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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C 해칫포스 B중대의 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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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윈드 작전에 대한 CNN의 주장을 반박한 윌리엄 코헨 국방장관과 전 SOG 대원들. 왼쪽부터: 5대 SOG 사령관 존 새들러, 유진 맥칼리, 3대 SOG 사령관 잭 싱글롭, 코헨의 비서, 게리 마이클 로즈, 특수부대 협회 대표인 루디 그레샴, 바비 핑커튼, 존 플라스터(본문 저자))


테일윈드의 용감한 의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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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부상을 입고 셔츠가 찢어진 상태에서 빌 스퍼전 하사와 찰스 토마스의 도움으로 헬리패드에서 걸어가는 테일윈드 작전 의무병 게리 마이클 로즈)


테일윈드 작전 참가자들도 동의하는, 가장 이타적이고 용감한 대원은 젊은 그린베레 의무병인 게리 마이클 로즈 병장으로, 그는 여러 번 부상을 입었음에도 혼자서 약 49명의 부상자를 봐주었다.


끝이 없어 보이는 그 나흘 동안 마이크 로즈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분투했으며 가장 심각한 사상자를 옮기는 것을 도왔고 적의 총격을 뚫고 쓰러진 몽타냐드나 미군을 치료했으며 심지어 월맹군의 공격 속에서도 자신의 몸으로 부상자들을 보호했다.


다른 대원들이 자는 동안에도 로즈는 계속 일했으며 다른 대원들이 식량을 먹는 동안에도 로즈는 일했다.


그는 결코 불평하지 않고 그저 생명을 구했다.


결국 부상자 수는 해칫포스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49명으로 늘어났지만, 그 지독하게 과로한 의무병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주변의 모든 대원들을 고무했다.


작전 후, 로즈 상사는 명예훈장을 추천받았으나 수훈십자장으로 강등되어 1971년에 크레에튼 에이브럼스 장군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47년이 걸렸지만 로즈는 마침내 2017년 10월 23일, 도널드 J. 트럼프로부터 명예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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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족, 테일윈드 작전 참여자 및 비행사들이 지켜보는 동안,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는 로즈 대위의 목에 명예훈장이 걸렸다)


맥칼리는 다른 LZ로 남은 두 소대를 이끌었고, 코브라와 스카이레이더가 공습을 가하는 동시에 갑작스러운 착륙으로 지상 사격이 날아들었다.


두 번째 소대는 철수를 위해 CH-53에 올라탔다.


그동안 수백 명의 월맹군이 언덕에서 쏟아져 나와 끊임없는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맥칼리는 마지막 소대를 데리고 대담하게 세 번째 LZ로 전진했으며, 그동안 코브라와 A-1은 질주하는 SOG 소대의 앞뒤로 공습을 가하여 로켓, 최루탄, 집속탄으로 월맹군을 강타했다.


(역자 주: 3개의 서로 다른 LZ에서 철수했다고 서술됐으나, 첫 LZ에서 고지에 있는 월맹군에게 사격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LZ를 변경한 이후로 하나의 LZ에서만 철수가 진행됐다)


적군이 바짝 따라온 가운데, SOG 대원들은 마지막 CH-53이 오자마자 6피트 높이의 풀밭이 있는 LZ로 빠르게 달려갔다.


맥칼리는 헬기에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철수에는 72대의 미군 전투기가 투입되었고, 거의 50만 파운드에 달하는 폭탄, 로켓, 네이팜탄이 이용됐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SOG 대원들은 거센 사격 속에서도 절대 움츠러들지 않은 A-1 파일럿들과 해병대 파일럿들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한 SOG 대원은 "침착했다, 정말 멋졌다"라고 표현했다.


B중대 피해는 몽타냐드 사망자 3명, 부상자 33명이었으며, 또한 미군 16명이 모두 부상을 입었다.


3일간의 치열한 전투에서 B중대는 월맹군 144명을 사살하고 50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약 288명이 공습에 의해 추가로 죽었다.


양동작전이 성공하여 CIA의 몽족군이 거점을 탈환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작전 중 확보한 월맹군의 문서는 사실상 잭팟이었음이 입증되었다.


미 사령부의 최고위 정보장교는 해당 문서들을 "전쟁이 시작된 이래 호치민 트레일에서 확보한 가장 중요한 부수적 정보"라고 불렀다.


SOG 사령관인 새들러는 "포츠 소장과 에이브럼스는 모든 문서를 입수할 때까지 트레일 시스템의 완전한 의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라고 했다.


2주 후, 미 해병대 CH-53과 코브라 승무원들은 B중대와 함께 작전을 축하하기 위해 콘툼으로 날아갔다.


SOG 대원들이 밤새도록 승무원의 음료를 사준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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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보한 문서가 담긴 가방을 들고 헬리패드에서 절뚝이는 몽타냐드 의무병 코흐. 부상을 입었음에도 쾌활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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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보한 전리품을 자랑스럽게 들고 있는 SP5 크레이그 슈미트(가운데). 호치민의 사진은 그날 아침 라오스 165번 고속도로의 빈 트램에 놓여 있었다. 또한 그의 테일윈드 작전 동료인 마누엘 오로즈코 병장(왼쪽)과 도널드 부드로 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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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기념 파티. 작전 종료 일주일 후, B중대 미군과 몽타냐드는 스테이크와 음료로 미 해병대 승무원을 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