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0월 20일경 사진 속 블루보이 소대는 11월 21일 월맹 포로수용소에 침입하기 위해 헬기로 수송된 3개의 그린베레 소대 중 하나였다. 블루보이는 손타이의 수용소 중앙으로 바로 투입된 유일한 소대였다)
1970년 11월 20일 오후 6시, 그린베레 테리 버클러 병장은 타클리 태국 왕립 공군 기지의 강당에 모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몇 시간 전에 그는 점심으로 스테이크와 수면제를 먹은 후, 잠을 자두라는 지시를 들었다.
버클러가 훈련하던 작전의 부지휘관인 아서 "불" 시몬스 대령이 지상군 지휘관인 엘리엇 시드너 주니어 중령과 함께 들어왔다.
시몬스는 월맹의 지도를 꺼냈다.
하노이에 동그라미를 쳤고 그 근처에 손타이 마을이 있었다.
시몬스는 손타이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 우리가 갈 곳은 바로 여기다. 최대 70명의 포로를 구출할 예정이다. 이는 미군 포로들이 전우들로부터 바라고 있는 권리이다. 우리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확률은 50대 50이다. 가고 싶지 않다면 지금 말하라."
버클러는 회상했다.
"강당에서 약 5초 동안 침묵이 흐른 후, 갑자기 대포라도 쏜 줄 알았다. 대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로 껴안으며 '당장 구하러 가자!'라고 소리쳤다."
몇 달 동안 예비대로서 훈련받은 대원들은 나설 기회가 없자 실망했다.
리차드 닉슨 대통령부터 각 공격대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임무의 도덕적 의무와 "아무도 적진에 남겨두지 말라"는 미군 정신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또한 구출된 전쟁 포로들이 포로 생활 중 받았던 잔인한 처우를 폭로하면, 월맹에 대한 세계 여론이 바뀌고, 교착 상태인 파리 평화 회담에 월맹을 다시 참여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970년 5월, 포로를 감시하던 부대의 정보 분석가들은 손타이에 있는 한 기지의 신축 건물 사진과 함께, 수색 및 구조 암호를 철자하는 방식으로 포로복을 땅에 두어 말리는 것을 발견했다.
흙더미가 "우리를 구해달라"를 의미하는 "K"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23마일 떨어진 수용소는 굽이진 강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고, 북쪽에 다리가 하나뿐이었다.
12,000명 가량의 적군이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군사 시설에 있었다.
레이드는 적 증원군이 경고받고 도착하기 전인 26분 이내에 이루어지도록 계획됐다.
공격대가 포로 주변의 경비병들을 모두 압도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약 1분 정도였다.
그 1분이 모든 계획을 결정했다.
(LZ를 확보하기 위해 도끼와 전기톱을 들고 있는 그린베레 레드와인 소대)
3개의 감시탑과 40피트 높이의 나무가 있는 수용소 벽 내부에 주 공격 부대를 투입하려면 헬기가 필요했다.
공격대를 투입하고 구출한 포로를 귀환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선택은 공군의 HH-53 "슈퍼 졸리 그린 자이언트" 수색 및 구조 헬기였다.
그러나 HH-53은 너무 커서 감옥 내부에 착륙할 수 없었다.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더 작은 헬기인 UH-1 "휴이"를 선택했다.
기획자들은 UH-1이 수용소 내부에 착륙하는 동안 로터 블레이드가 건물에 부딪혀 손상되어 다시 이륙할 수 없게 될 것으로 예상했으며, 공격대원들이 휴이를 파괴해야 했다.
또한 A-1E 스카이레이더 공격기 5대가 수용소 위를 선회하며 필요시, 접근하는 적 지상군을 저지할 것이다.
정밀한 항법과 스텔스 작전을 위해 설계된 극비 장비를 탑재한 두 대의 MC-130E 컴뱃 탈론 수송기가 스카이레이더, 휴이, 슈퍼 졸리 그린 자이언트 헬기를 수용소로 인도할 계획이었다.
야간에 공격할 때, 지평선 바로 위에 상현달이 떠야 밤 중 맑은 하늘을 가려주는 동시에 비행사들에게는 좋은 시야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 따라, 수용소 습격 시기는 가장 건조한 달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10월 말과 11월 말의 두 5일간의 시기로 결정됐다.
임무 총사령관으로는 공군의 리로이 매너 준장이 임명되었다.
매너와 그의 육군 동료인 시몬스는 모든 공격대원을 자원자로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시몬스는 노스캐롤라이나의 포트 브래그에서 약 200명의 대원을 인터뷰하며 "스쿠버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가?"와 같이, 임무 세부 사항을 모호하게 만드는 질문을 했다.
20세의 버클러는 훈련 대상으로 선발된 82명의 병사와 15명의 장교 중 가장 어린 공격대원이었다.
떠나기 전에 유언장을 작성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버클러 병장은 이번 임무가 이전의 작전들과는 다소 다를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매너는 특히 어려운 일을 맡았다.
플로리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독일 전역에 걸쳐 배치된 공군 특수 작전 대원들과 계획을 조율해야 했다.
또한 네 가지 유형의 항공기에 대한 승무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매너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음에도, 자원자를 모집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소수의 고위 장교와 기획자를 제외하고, 대원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무엇을 할 것인지 전혀 몰랐다.
두 명의 방첩 요원이 팀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면서 전화 통화를 엿듣고, 쓰레기통을 뒤져 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훈련은 9월에 플로리다 팬핸들의 에글린 공군기지, 듀크 필드에서 시작됐다.
대원들은 종종 상공에 날아다니는 정찰 위성에 발각되지 않도록, 각목과 천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수용소 모형에서 연습했다.
월맹 경비병이 포로 근처에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시몬스는 정확한 사격을 요구했다.
일부 창의적인 보급계원들은 사냥 잡지에 광고된 야간 조준기를 구입했고, 그 결과 대원들의 정확도가 크게 향상되었다.
또한 CIA는 대형 합판에 올려진, 보다 상세한 수용소 모델을 제공했다.
"바바라"라는 이름의 CIA 모델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버클러는 레이드 중에 모형과 동일한 지점에서 건물에 기대어 있는 자전거를 발견했다.
기본 계획에는 총 56명의 그린베레 대원으로 구성된 3개 소대가 필요했다.
14명으로 구성된 블루보이 소대는 휴이에 탑승하여, 포로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벽의 남서쪽 모퉁이에 폭발물로 구멍을 낼 돌격부대였다.
22명의 그린리프 소대는 슈퍼 졸리 그린에 탑승하여, 건물 소탕 및 다리 폭파 등 동쪽과 북쪽으로의 경계 지원을 할 것이었다.
또 다른 슈퍼 졸리 그린에 탑승할 시드너 중령의 레드와인은 지휘 역할을 수행하며, 수용소 남쪽 지역을 확보하고 LZ를 준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버클러는 레드와인에 통신병으로 배정되었다.
각 소대는 백업 계획을 훈련했다.
한 팀이 손타이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에도 레이드가 진행될 수 있었다.
MC-130E 컴뱃 탈론과 헬기 승무원은 플로리다, 조지아, 앨라배마 일대의 훈련 경로를 비행했다.
느리게 움직이는 헬기를 이끌기 위해 MC-130E는 실속 속도에 가까운 시속 121마일로 비행해야 했다.
일부 헬기는 비행기 날개를 따라 드래프팅 하여, 정상 출력보다 조금 더 빠르게 비행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헬기는 여전히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할 수 없었기에 MC-130E 항법사인 존 가거스 소령은 더 높은 고도에서 시작하여, 항공기가 목표물에 접근함에 따라 종종 하강하는 경로를 계획했다.
그러나 MC-130E의 레이더와 항법 장비가 느린 속도로 인해 성능이 저하되었으므로, 기획자 중 한 명이 더 이상 레이더에 표시되지 않는 강과 기타 랜드마크를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적외선 장치 두 대를 CIA에서 빌렸다.
마지막 훈련 단계에서는 공군과 지상군이 함께 훈련했다.
이 리허설 중, 비좁은 휴이 안에 3시간 동안 앉아 있던 블루보이 대원들이 다리를 곧게 펴고 땅에서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어, 경비병을 1분 이내로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휴이는 더 큰 HH-3E 졸리 그린 자이언트 구조 헬기로 교체됐다.
그러나 HH-3E는 수용소 벽 내부에 너무 딱 맞아서, 파일럿이 의도적으로 시설 내부로 충돌시켜야 했다.
(헬기에 탑승한 블루보이 소대)
훈련이 진행되며, 매너 준장과 시몬스 대령은 다른 기획자들과 함께 동남아를 곳곳을 돌며 발진기지를 구축했다.
공격대는 이미 동남아에 있는 항공기를 사용할 계획이었다.
적에게 무언가 준비 중이라는 단서를 주도록 항공기를 한곳에 집결시키는 대신 승무원들은 각기 다른 기지로 이동했다.
기획자들은 공군 참모총장인 존 D. 라이언 장군이 다른 지휘관들에게 아무 질문 없이 그들을 지원하라고 지시하는 서한을 가지고 다녔다.
또한 매너와 시몬스는 해군 고위 장교들을 만났고, 통킹만에서 USS 오리스카니, 핸콕, 레인저 등 세 척의 항공모함에서 항공기를 출격시키는 데 동의했다.
월맹의 대공포와 지대공 미사일의 주의를 손타이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항공모함은 하노이에서 약 60마일 떨어진 하이퐁 항구로 교란 작전을 하기로 했다.
훈련은 10월 초에 완료되었다.
11월 18일, 닉슨이 최종 승인을 내렸다.
날짜는 11월 21일로 정해졌다.
두 명의 MC-130E 컴뱃 탈론 승무원은 전주에 에글린에서 비행기를 몰고 태국으로 향했다.
11월 18일 최종 승인 이후, 대원들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에글린에서 C-141 스타리프터 수송기에 탑승했고, 28시간 후 동남아라고 추정되는 지역에 착륙했다.
공격대의 항공기가 레이드의 최종 출격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태풍 "팻시"가 해군의 교란 임무를 위협했다.
매너는 레이드를 5일 연기하는 대신에 11월 20일로 앞당겼다.
그날 저녁, 항법사인 가거스 소령과 나머지 MC-130E 승무원(호출 부호: 체리-2)은 오후 10시 25분에 타클리에서 이륙하여 5대의 A-1E 스카이레이더가 있는 집결지로 향했다.
A-1E 파일럿들은 이륙 후 구름을 만나, 잠시 불안한 순간을 겪었다.
마침내 그들은 체리-2와 합류하여, 손타이로 향했다.
오후 11시경, HH-3E 졸리 그린 자이언트 한 대와 HH-53 슈퍼 졸리 그린 자이언트 헬기 다섯 대를 이끌 컴뱃 탈론, 체리-1이 엔진 중 하나에 시동을 걸지 못했다.
세 개의 엔진으로 이륙할 수는 있었으나, 야간에는 매우 위험했다.
가거스에 따르면, 매너는 월남 다낭 공군 기지의 지휘 본부에서 임무를 모니터링하고 있었고, 체리-2에게 헬기를 이끌도록 지시하려던 참에 체리-1의 엔진에 마침내 시동이 걸렸다고 한다.
체리-1는 예정보다 약 23분 늦게 이륙했다.
(사진 속 맨 위에 보이는 것과 같은 HH-53 슈퍼 졸리 그린 자이언트 수색 구조 헬기 5대가 손타이 레이드에 참여했다)
구출 임무를 수행할 6대의 헬기는 태국 우돈 왕립 공군 기지에서 출발했다.
HH-3E 한 대와 HH-53 헬기 두 대 등, 총 세 대가 공격대를 태웠다.
나머지 3대의 HH-53은 건쉽 1대와 귀환 포로용 2대로 비어 있었다.
헬기는 라오스 상공에서 급유받은 후 체리-1과 합류해 지체된 시간을 만회했다.
오전 1시경, 해군 항공모함은 59대의 전투기, 공격기, 지원기를 이륙시키기 시작했다.
파일럿들은 하노이 일대의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로를 비행했다.
여러 대의 공군 지원기도 통킹만 상공에서 무전 중계를 수행하고, 월맹 무전 및 레이더를 모니터링하여 공격대가 탐지되지 않도록 했다.
오전 2시가 조금 지난 시각,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한 공군 F-4 팬텀 II 전폭기가 미그기의 발진으로부터 공격대를 방어하기 위해 손타이 상공의 고고도에 도착했다.
F-105 썬더치프 전폭기도 위협적인 SAM 기지를 담당하기 위해 도착했다.
교란 임무는 성공했다.
공격대가 손타이에 접근하는 동안, 월맹의 레이더는 해군의 공습과 상공의 F-4 및 F-105를 따라 동쪽을 향했다.
컴뱃 탈론의 장비에는 적 레이더가 일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나, 진입하고 있는 공격대를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3시간의 비행 후 오전 2시 16분, 돌격 편대는 손타이에서 3.5 마일 떨어진 계획된 편대 분리 지점에 도달했다.
체리-1는 수용소로 향하는 헬기를 향해 최종 방향을 알려준 후 앞서 비행했다.
빈 HH-53 헬기 두 대는 근처에 착륙하여 포로 수송 요청을 기다렸다.
오전 2시 18분, 무전기를 통해 실행 명령이 떨어졌다. "알파! 알파! 알파!"
체리-1은 수용소 위에 도착해 마치 낮처럼 수용소를 밝힐 수 있는 만큼 밝은 조명탄 4발을 투하했다.
프레드릭 "마티" 도나휴 공군 소령은 HH-53 건쉽을 돌려 두 감시탑 사이로 수용소를 가로질러 비행했다.
그가 비상 엔진 경고등을 무시하고 비행하는 동안, 도어거너들이 감시탑에 분당 4,000발의 사격을 가해, 중요한 남서쪽 감시탑을 무너뜨렸다.
그 후 도어거너들은 다른 건물에도 사격을 가했다.
예광탄이 막사에 불을 붙였다.
수용소가 블루보이의 HH-3E를 맞이할 준비가 됐다.
지상군을 태운 헬기가 LZ를 향해 이동하는 동안, 체리-2가 수용소 외부에 조명탄과 기타 소이 장치를 투하하여 해당 지역의 적군을 교란했다.
그런 다음, 남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선회하며 공격대의 무전을 모니터링하고 녹음했다.
체리-1은 추가 교란 장치를 투하하고 라오스 북부에서 선회했다.
HH-3E 졸리 그린 자이언트를 조종한 두 명의 파일럿은 수용소 남쪽으로 수백 야드 떨어진 곳에 있는, 기획자들이 "중등학교"라고 부르는 비슷한 모양의 기지에 착륙할 뻔했다.
파일럿들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바로잡아 수용소로 향했다.
블루보이 대원들은 개인 부무장, CAR-15 카빈, 산탄총, M79 유탄 발사기, M60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헬기 문과 창문 옆에 웅크린 채 대기했다.
일부 대원들은 열린 후방 램프에 엎드려 있었다.
(손타이 수용소의 위치와 주변 지역의 다양한 특징이 나타난 공군 정찰 사진)
수용소를 향한 HH-3E의 의도적인 충돌은 예상보다 훨씬 더 격렬했다.
로터가 나무에 부딪치자, 헬기가 오른쪽으로 격하게 움직이며 조지 페트리 중위가 우측 앞문 밖으로 튕겨 나갔고, 지상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대원이 되겠다는 그의 소원을 이뤄주었다.
그에게는 특별한 동기가 있었다. 그의 사촌인 제임스 히커슨 해군 소령이 포로였기 때문이다.
헬기가 사실상 추락했음에도 모두 신속하게 움직였다.
잘린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대원들은 남서쪽 감시탑의 남은 부분을 공격하고 폭발물로 수용소 벽면에 출구를 뚫을 준비를 했다.
블루보이의 리더인 리차드 "딕" 미도우즈 대위는 메가폰으로 외쳤다. "우리는 미군입니다! 당신들을 구하러 왔습니다!"
공격대원들이 일부 감방에 들이닥쳤으나 포로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계속 수색했다.
한편 그린리프 소대는 파일럿의 실수로 중등학교에 착륙했다.
대원들은 헬기에서 나와 목표물을 향해 달려갔지만, 곧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린리프와 함께 있던 시몬스는 철수를 요청했다.
헬기가 대기 지점에서 돌아오는 데 걸린 4분 동안, 그린리프 대원들은 중등학교 영내에 거주하는, 평균 월남인보다 훨씬 덩치가 큰 중국 고문으로 추정되는 무장한 사내들을 제거했다.
레드와인 소대의 파일럿은 그린리프가 잘못된 지점에 착륙했다는 것을 깨닫고, 헬기 인터콤으로 백업 계획을 전한 다음 수용소 담장 밖에 착륙했다.
레드와인 대원들이 그린리프의 임무를 인계받고 돌진하자 경비병이 총격을 가했고, 아직 헬기 후방 램프에 있던 버클러는 그 경비병을 향해 M16을 쐈다
감소된 지상 병력으론 북쪽 다리를 무너뜨릴 수 없었기에 상공을 선회하는 스카이레이더 파일럿들이 대신 집속탄을 기꺼이 투하했다.
레드와인은 헬기 귀환 지대의 콘크리트 전신주를 폭파했으며 폭발로 인해 손타이 일부 지역에 전력이 끊겼다.
소란이 한창인 와중에 그린리프 소대가 도착했다.
대원들에게 누군가 늦게 합류하는 상황에 대한 대비는 없었다.
새로운 이들이 전투에 참여하며 잠시 혼란이 발생했다.
시드너는 레드와인 대원들에게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잠시 위치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그 무렵 버클러는 무전기를 통해 "네거티브 아이템"이라는 말을 들었다.
상공에서 선회하거나 헬기에서 대기하던 대원들도 그 말을 들었다.
"아이템"은 포로를 뜻하는 암호였다.
포로가 없다니?
시몬스는 믿을 수 없었다.
"다시 확인하라." 그가 요구했다.
그리고 시몬스는 욕설을 연달아 내뱉으며 "내가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시몬스는 감방을 확인했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습격 개시 11분 후인 새벽 2시 30분, 시드너는 철수를 요청했다.
공격대는 HH-3E에 시간 지연 신관과 함께 폭약을 설치했고 두 대의 선두 HH-53 헬기가 철수를 위해 돌아왔다.
그 사이 월맹군은 자신들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월맹군의 대공 레이더가 기체를 조준하자 체리-2의 레이더 탐지 장비에 불이 켜졌다.
파일럿은 더 안전한 위치로 북쪽으로 날아갔다.
오전 2시 35분, 손타이 인근의 월맹군이 공격대를 향해 첫 SAM을 발사했다.
오전 2시 45분, 블루보이가 안뜰에 충돌한 지 26분 만에 HH-53 헬기가 마지막 지상 병력과 함께 이륙했다.
공격대원 한 명이 부족하다는 집계가 나오자 잠시 공포가 엄습했다.
몇 차례의 불안한 순간과 몇 번의 재집계 끝에 아무도 두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격대의 피해는 다리에 총을 맞은 유일한 "적 사격"에 의한 부상자인 그린베레 1명, 의도한 충돌에 의해 발목이 부러진 HH-3E 승무원 1명으로, 총 두 명뿐이었다
공격대가 손타이를 떠나자, SAM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두 대의 F-105 썬더치프가 피격됐다.
한 대는 재급유를 받고 비틀거리며 우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른 기체의 파일럿과 전자전 장교는 오전 3시 17분에 라오스 상공에서 탈출했고 체리-2가 이들을 찾아냈다.
빈 HH-53 두 대가 재급유를 받고 일출까지 대기한 후, 지상에서 3시간을 보낸 추락한 승무원들을 태웠다.
낙담한 공격대원들은 우돈으로 돌아와 보고했다.
매너와 시몬스는 11월 23일 기자회견을 위해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공격대원들의 용맹함 및 포로수용소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의 어려움을 강조했지만, 일부 언론은 명백한 정보 실패에 초점을 맞췄다.
나중에 밝혀진 증거에 따르면, 포로들이 이송됐다는 정보는 있었지만, 작전 개시까지 불과 2시간밖에 남지 않은 최종 결정권자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가거스에 따르면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철저한 비밀 유지가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970년 11월 25일 시상식에서 손타이 공격대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리차드 닉슨 대통령. 왼쪽부터 리로이 매너 준장, 리로이 라이트 하사, 타이론 애덜리 중사, 아서 시몬스 대령)
그러나 레이드는 실패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격대가 얼마나 쉽게 자국 내를 드나들었는지에 충격을 받은 월맹은 전국의 포로들을 악명 높은 "하노이 힐튼" 수용소로 모아 향후 구출 시도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노이 힐튼 수용소로의 통합 수용은 구출을 제외하고 포로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다.
손타이 포로 중 한 명인 레온 "리" 엘리스 전 대령은 레이드 중에 포로들이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10마일 떨어진 새 수용소에 수감된 동안, 공격대가 우연히 주변 일대의 전력을 차단한 탓인지 수용소의 전기가 끊겼다.
그 직후 포로들은 손타이에서 폭발음을 들었고 곧이어 SAM이 발사되는 소리를 들었다.
이틀 후, 간수들이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감방에 들어와 포로들을 하노이로 옮겼다.
독방에 갇혔던 포로들은 이제 수십 명과 함께 방을 쓰게 됐다.
고위 장교들은 군 지휘 체계를 갖춘 포로수용소를 조직했다.
포로들은 서로 가르치고, 저녁 강연을 하고, 몰래 교회 예배도 열었다.
모든 공격대원들은 그들의 행동으로 은성훈장 이상의 훈장을 받았지만, 일부는 포로들의 상황을 더 악화시켰음을 우려했다.
1973년 2월~4월 동안 포로가 석방된 후 대원들은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되었다.
많은 포로들이 손타이 공격대원들을 만나 그들이 끼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어 했다.
텍사스의 억만장자 사업가인 로스 페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감사 파티에 대원들과 손타이 포로들을 초대했다.
그때부터 두 그룹은 여러 차례 재회를 가졌다.
그리고 1979년, 시몬스는 이란 교도소에서 페로의 직원 두 명을 구출하는 데 앞장섰다.
손타이 레이드의 계획과 실행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중 포로로 잡힌 제시카 린치 일병의 구출과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레이드와 같은 특수 작전 부대의 청사진이 되었다.
오늘도 고맙게 잘 읽었다. 언제 글이 올라오나 항상 기다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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