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0월 첫째 주의 따뜻하고 달이 없는 밤, 씰 6팀 오퍼레이터들로 구성된 소규모 팀이 미 해군 핵순양함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4대의 조디악 F470 보트에 탑승한 뒤, 목적지인 북서쪽으로 약 1500미터 가량 떨어진 해안 지대를 향해 잔잔한 캐리비아 해를 지나갔다.
얼굴에 검은색 위장크림을 바르고 야간투시경을 착용한 씰 대원 들은 해안가를 조심히 살폈다.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단 3시간 밖에 없었고, 그들이 다가가고 있는 아이티 공화국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그늘에 있는 해변가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씰 대원들이 계획대로 붉은색 플래시라이트로 신호를 보내자, 해안가에서 비슷한 붉은색 빛이 깜빡거렸다. 무전 신호는 해안가에서 되돌아온 붉은색 플래시라이트가 한때 정보 지원 활동대, ISA라고 불리던 부대(당시에는 부대의 별명인 '버지니아 북부의 비밀 군대' 로 주로 불렸다) 의 언더커버 대원들이 보낸 신호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해안가까지 몇백 미터만을 남겨두자, 씰 대원들은 모터의 시동을 끄고 남은 거리는 페달을 저어서 갔다. 두 대의 보트가 무리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빠져 씰 6팀 레드 스쿼드론 대원들을 태운 남은 두대의 '픽업' 보트의 측면을 보호했다. 이 두대의 보트는 곧장 직진해 그대로 해변에 내렸다.
해변에 내린 씰 대원들 앞엔 ISA 대원들과 이들이 보호하고 있던 몇명의 아이티인들이 있었다. 작전에 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물은 미 정부가 이 9명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티인들을 반드시 구출해야 된다고 생각해 JSOC에게 이 일을 맡겼다고 했다.
(작전으로부터 20년이 더 지난 뒤에도, 이 작전에 참여한 인물들이 "귀중한 화물" 이라고 묘사한 아이티인들의 정체와 왜 미 정부가 그렇게 이들을 아이티 밖으로 빼내고 싶어했는지에 대한 의견은 여러가지로 나뉜다. 이에 대한 부분은 CIA가 관여했다. 한 ISA 대원은 "그것과 관련된 세부정보는 매우 구획화(compartmented) 되어 있었습니다." 라며 심지어 ISA조차도 이들이 해변으로 데려간 아이티 인들이 누구인지 몰랐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임무는 차를 운전해 이들을 적절한 장소까지 데려가서 (씰 6팀에게)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라고 그가 말했다.)
씰 6팀의 몇몇은 이들이 군사 쿠데타로 물러나게 된 아이티 공화국 대통령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의 친척들이라고 생각했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이미 아리스티드를 국외로 추방시켰지만, 그의 친척들은 자국에 남도록 강제되어 위험에 빠져 있었다. "그당시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직계 가족이었다." 라고 씰 6팀 대원이 말했다.
하지만 한 JSOC측 장교는 이날 구출된 사람들이 미국의 정보자산과 그의 가족들 이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선임 JSOC 장교는 "미국 정보당국 측에 정보를 제공하던 정보원과 가족의 신분이 들통날 위험에 빠지자 탈출해야 했다." 라고 말했다.
해당 작전의 준비와 친숙한 한 특수작전 장교에 따르면 미국 관리들은 미국을 도왔다고 의심받는 아이티인들이 가솔린을 뿌린 타이어에 묶어 불에 태워 죽이는 "목걸이형" 이라는 처형을 당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두 증언은 각각 개별적인 진술이다.
작전과 관련된 세번째 버전은 작전에 참여한 씰 6팀 해군 상사 데니스 처커의 자서전에 등장하는데, 구출된 인물들 중에 미국 국적의 18개월짜리 갓난아기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또다른 선임 장교에 따르면 아기가 구출된 무리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작전이 실행된 원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작전에서 아기를 배까지 데리고 가야 한다고 브리핑을 받은 처커는 그의 딸이 쓰고 있던 캐리어를 검은색으로 칠한 뒤 젖꼭지와 함께 가져왔다.
씰 6팀 지휘관, 론 예우 해군 대령은 배에서 작은 지휘통제 셀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부대의 운명이 이 작전의 결과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Victor Squared" 라는 코드네임의 이 작전은 워싱턴에서 너무 중요하다고 판단해 콜린 파월 합참총장이 펜타곤 작전센터에서 실시간으로 작전을 보고 있었다.
파월은 관타나모 해군기지에서 작전을 운영하고 있던 신임 JSOC 사령관, 빌 개리슨 소장과 보안회선을 통해 통화하고 있었다. (일부 씰 6팀 오퍼레이터들은 관타나모로 날아가서 순양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월은 네이비 씰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파나마 침공에서의 파이티아 공항 전투에서부터 이들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반감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더 심해졌는데, 언론에게 슈워츠코프 장군이 거부한 작전을 수행하고 싶었다고 말한것이 씰팀 대원이었다고 의심했던 것이었다.
작전 도중 예우와 해변으로 향하던 오퍼레이터들을 연결하던 UHF 위성통신이 잠시 끊기자, 파월은 개리슨 소장에게 씰 6팀을 영구적으로 없에버리기 직전이라고 협박했다.
"우리 부대가 도마 위에 올라갔었어요." 라고 한 씰 6팀 대원이 회고했다.
개리슨 소장은 씰 6팀을 믿고 있었고 그것을 파월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중단된 통신은 파월을 설득하는 것을 돕지 못했다. 예우가 보낸 대원들은 최소 6명의 숙련된 중사들과 2명의 상사를 포함했다. 통신이 끊어진 상황에서는 그저 이들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매우 긴장되는 시간이 지나자, 무전기가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통신이 다시 연결되었다. 현장의 씰팀 대원들이 가족들을 구출해서 보트를 타고 포르토프랭스 항구에 위치한 배로 복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얼마 안가 대원들 모두가 핵순양함에 승선했다. ISA 대원들은 해변에서 흔적을 제거하고 차를 타고 사라졌다. 전체 작전은 두어 시간정도가 소요되었다. "블루(씰 6팀)는 작전을 잘 성사시켰고, 빌 개리슨은 매우 만족했고 결과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번에 (함참 레벨에게) 브리핑을 올릴때 블루를 변호했었습니다." 라고 또다른 씰 6팀 장교가 말했다. "그건 중대사건이었어요. 의심의 여지 없이."
"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훗날 개리슨이 한 장교에게 말했다. "씰 6팀은 해체되었을거야."
https://youtu.be/MYrITkZO4Yw
브금틀고봤음
레드 스패로에 나오는 퇴출작전이랑 비슷하노 - dc App
정보를 개추
데니그 처커 영화 더록에서 씰팀으로 나왔던 그 아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