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MACV는 라오스 남동부에 월맹군 수송대가 야간에 출동했다는 미 공군 첩보를 입수해 이들의 행방과 물자를 파악하기 위해 MACV SOG를 이용하기로 했다.
MACV SOG 사령관 카바노 대령은 110번 고속도로에서 운전수를 확보하고 심문하기 위해 정찰대를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월맹군은 그동안 SOG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기에 SOG 정찰대에 대한 대비가 철저했고 1969년 한 해 동안 SOG는 라오스에서 단 한 명의 포로도 잡지 못했다.
카바노 대령은 개인적으로 이 임무가 성공할 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임무는 수행되어야 했고, 카바노 대령은 이 작전의 이름을 애쉬트레이 작전으로 명명했으며 CCC, FOB2의 지휘관 프레데릭 T. 압트 중령이 가장 유능한 인원을 데리고 월맹군 차량을 급습하여 포로를 확보하기로 했다.
FOB2는 올리버 하트윅, 다니엘 스터, 레이 해리스, 존 블로, 팀 린치, 포레스트 토드, 빌 스퍼전, 존 그랜트 등 5개 최고의 정찰팀에서 지원자 8명을 최종 선정했다.
이들은 SOG 나트랑 작전기지에서 운전병을 죽이지 않고 차를 멈추게 하는 방법을 포함하여 크레모아 5개를 반원형으로 배치해 트럭의 전륜를 박살내 정지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CCC의 작전 장교인 프랭크 야크스 소령이 지휘한 애쉬트레이 I 작전은 RT 오하이오, 워싱턴, 하와이 및 아이오와 간의 협동 작전이었다.
팀은 3주 동안 훈련을 받은 뒤, 작전에 투입되어 호송대를 파괴하는 임무를 진행했으나 실수로 모든 적 병력을 죽여버리고 말았다.
몇 달 후, 존 플라스터가 이끄는 다른 협동 팀에 의해 임무가 다시 시작 되었고, 월맹군 포로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애쉬트레이 II 작전은 SOG가 수행한 작전 중 가장 성공적인 작전 중 하나였다.
먼저, 애쉬트레이 I 작전이 7일간의 훈련을 거친 후 시작되었다.
사흘째 되는 날 밤, 110번 고속도로 부근에 매복해 있던 이들은 4개 호송대를 포착했고 각 호송대에만 20여 대의 트럭이 있었다.
넷째 날 밤, 정찰팀은 포로를 확보할 준비를 했고, 두 팀으로 나뉘었는데, 한 그룹은 야크스가 이끌고, 다른 그룹은 올리버 하트윅이 이끌었다.
하트위그는 폭발물과 총격으로 호송대에서 후미 차량을 매복했으나 운전병을 사살했다.
한편 야크스는 다른 차량을 공격해 운전석을 열고 포로를 확보하려 했으나 월맹군은 몰살되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정찰팀은 헬기를 타고 철수했고, 작전 동안 트럭 3대를 공격해 월맹군 10여명을 피해없이 사살했지만 포로는 잡지 못했다.
작전이 실패했음에도 캐바노 대령은 다시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작전은 애쉬트레이 II로 명명되어, 존 플라스터를 리더로 하여, RT 캘리포니아와 RT 뉴햄프셔의 협동 작전으로 진행했다.
당시 RT 뉴햄프셔 팀장인 프레드 크루파 대위가 부사관인 플라스터 보다 계급이 높았지만 플라스터는 14개월 넘게 SOG에 복무하며 10여 차례의 월경 임무를 수행했고, 이에 비하면 크루파는 경력이 부족했으며 크루파 본인도 작전 기간 동안 높은 계급으로 권력을 잡으려 한 적이 없었다.
팀에는 렉스 제이코, 존 얀시, 리처드 우디, 폴 케니콧, 마이클 그레이스, 데이비드 갈라소 등 6명의 미군과 몽타냐드 4명도 포함됐다.
인원이 확정되자 정찰팀은 낮에는 훈련을 하고 밤에는 모여 포로 생포의 전례를 연구했다.
정찰팀에서 가장 덩치가 큰 존 얀시가 포로를 확보하고, 한 손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 9mm 하이파워 권총 한 자루만 들었으며, 크루파 대위가 그의 엄호를 맡았다.
리처드 우디는 짐칸을 확보하고, 플래스터는 조수석을 확보한 뒤, 얀시를 도와 저항하는 운전수를 차량 밖으로 끌어낼 예정이었다.
다른 대원들은 전투가 시작되면 차량 앞뒤 100야드에서 매복해 도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았다.
운전병의 손이 핸들에 묶여 있을 경우를 대비해 얀시는 10파운드짜리 볼트커터도 휴대할 계획이었다.
또, 트럭에 탄 병사가 저항하면 정찰대가 낮은 자세로 아래에서 위로 사격해 도비탄과 총상을 피하기로 했다.
매복한 지점 일대는 완전히 월맹 진영이었고, 근처에 다른 월맹군이 있을 수도 있으니, 뒤따라오는 적군을 지연시킬 방법도 고려해야 했다.
플라스터는 이를 위해 5개의 지연신관과 파편 수류탄, 백린 연막탄, 최루탄이 연결된, 스낵백이라고 불리는 가방을 만들어 45분 정도의 시간을 벌어 공격을 지연시킬 수 있도록 했다.
정찰팀은 또한 트럭에 테르밋과 폭약을 장착해 폭파한 뒤 AC130에 지시를 내려, 110번 고속도로로 폭격을 유도하여 철수를 엄호하기로 했다.
정찰팀은 수없이 많은 훈련을 거쳐 10초 만에 차량을 습격해 차량을 정리하고 포로를 체포할 수 있었다.
작전 시작 전, 플라스터와 크루파는 사이공 본부로 가서 카바노 대령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했고, 카바노 대령은 고민 후, 안전을 위해 목표 지역을 먼저 정찰할 것을 지시했다.
크루파 대위는 이틀 동안 AO를 정찰한 뒤 무사히 철수했다.
이틀 뒤, 애쉬트레이 II 작전이 시작됐다.
투입 후 2일차 까지는 산발적으로 들리는 총소리와 버려진 적의 벙커 몇 개를 만난 것 외에는 모두 순조롭게 흘러갔다.
밤 10시경, 정찰팀은 약 1마일 떨어진 곳에서 차량 행렬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고, 플라스터는 6~10대의 트럭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내일 밤이 결전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다음 날 낮, 플라스터와 크루파는 110번 고속도로 주변을 살펴봤고, 도로에는 차량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월맹군은 길가에 드문드문 대나무 숲이 있을 뿐, SOG가 이곳에서 매복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어떠한 경비대도 배치하지 않았다.
저녁 무렵, 플라스터는 무전기로 라오스 내 레그혼 무전중계지에 연락했고, 곧이어 AC130에게 작전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플라스터는 12시간 동안 체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원들에게 암페타민을 나눠줬다.
오후 7시 20분경,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트럭 한 대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며 매복지점을 지나갔고, 많은 병사와 나무상자가 적재되어 있었다.
차체에 장갑을 끼운 소련제 장갑 트럭이었던 것으로 보여 정찰팀은 다른 차량을 노리기로 했다.
7시 25분경, 두 번째 트럭에는 대나무와 나뭇가지가 적재되어 있었고, 플라스터는 운전병이 웃는 모습까지 보았다.
이번에도 이 차를 포기하기로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플라스터는 두 개의 엄호팀에게 각각 좌우 도로변에 크레모아를 설치하도록 시켰다.
플라스터는 공격팀을 이끌고 큰 나무 옆에 3개의 크레모아를 설치했는데, 큰 나무가 길가로 튀어나와 플래스터가 참고용으로 쓸 수 있었고, 트럭 앞바퀴와 나무가 일직선이 되면 격발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플래스터는 크레모아에서 15피트 떨어진 곳에 숨었다.
여전히 위험한 거리이지만 SOG의 관행이기도 했다.
이때 시각은 정확히 오후 7시 30분, 정찰대는 차량에 무엇이 실려 있든 다음 차량을 포로로 잡기로 했다.
어둠 속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뒤, 트럭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달려와 플라스터 앞에 도착하자, 그는 격발기를 눌렀고, 폭발음과 함께 플라스터는 고함을 질렀다.
4인조 공격팀은 곧바로 트럭으로 돌진했고, 플라스터는 크레모아를 격발할 때 눈을 뜨고 조준을 했기에 오른쪽 눈이 잠시 멀어 왼쪽 눈으로만 볼 수 있었다.
그가 조수석을 보니 조수석에 사람이 없었다.
맞은편에 있던 얀시가 운전수를 끌고 나와 바닥에 엎어버린 뒤, 때리기 시작했고, 크루파가 재빨리 포로에게 수갑을 채우자, 놀란 포로는 어설픈 영어로 살려달라고 빌었다.
모든 것이 해결된 후, 얀시는 그가 메고 있던 볼트커터를 버렸다.
크루파는 길 한복판에 서서 코닥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플라스터는 폭약을 트럭에 던지고 시간 지연 신관을 설치한 뒤 철수를 명령했다.
예정대로 우디도 두 차례 휘파람을 불며 엄호조의 철수를 상기시켰다.
이때 어둠 속에 숨어있던 월맹군이 사격을 가해 총탄이 우디의 양팔에 명중하자, 제이코는 서둘러 우디를 데려갔고, 얀시와 크루파 역시 포로를 데리고 매복지로 돌아갔으며, 이때 플라스터만이 차에서 월맹군과 교전했고, 엄호조는 지연 신관을 설치하고 있었다.
메딕은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고, 우디는 양팔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정찰대의 후퇴가 지연될 것을 우려해 본인이 모르핀 사용을 거부했다.
플라스터와 정찰팀이 합류한 뒤, 그는 월맹군들이 소리를 지르며 트럭으로 돌진하는 것을 목격했으나, 차에 있던 폭발물이 폭발하여 월맹군을 죽였다.
크루파는 레그혼 중계지에 연락해 AC130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아직 AO 상공에 AC130이 도착하지 않아 정찰팀은 스스로 생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와 함께 콘툼 지휘관인 압트 중령은 AC130이 제때 도착하지 않은 것에 분노했고 로이드 오 다니엘 상사(이하 OD)에게 FAC를 타고 AO 상공으로 날아가 정찰대를 도울 것을 명령했다.
밤 0시쯤, OD가 탄 FAC가 도착했고 그는 쉽게 정찰팀을 발견했다.
트럭이 폭발하는 불빛이 10마일 밖에서도 보였다.
OD는 무전기로 부상을 입은 우디에게 연락했다.
"우디, 경고하는데, 언제가 됐든 내가 150달러 꿀꺽하는 수가 있다."(우디에게 150달러의 도박 빚을 졌다)
이어 OD는 지원을 위해 달려온 미군 항공기를 지휘해 폭발한 트럭 근처와 정찰팀이 지나간 경로로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동안, 정찰팀은 두 차례 멈춰 우디의 부상과 포로 상태를 확인했다.
동틀 무렵, 코브라의 엄호를 받으며 휴이가 도착했고, 착륙 직전에 A-1이 마지막 지원으로 정찰팀 머리 위에서 집속탄을 투하했다.
집속탄이 근거리에서 폭발했지만 정찰팀은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었고, 그들은 헬기를 타고 기지로 돌아왔다.
콘툼 기지 비행장에서 환영을 받은 이들은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사이공에서 출발한 C130 수송기가 10분 안에 공항에 도착해 포로와 함께 사이공 본부로 옮겨질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10분 뒤, 아직 위장크림도 지우지도 못한 플라스터는 수갑을 찬 포로와 함께 수송기에 올랐다.
포로를 배웅한 뒤, 플라스터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기도 전에 또 다른 명령을 받았고, MACV 최고사령관인 에이브럼스 장군을 만나러 갔다.
씻은 뒤, MACV 본부에 도착한 플라스터는 한 무리의 장군들 사이에서 임무 경과를 상세히 설명했고, 트럭에 있던 폭발물이 터지며, 트럭으로 돌진해 온 월맹군을 모두 죽였다고 말하자 장군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회의 후 에이브럼스는 플라스터와 악수를 나누며 플라스터가 작전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축하를 전해주길 바랐다.
1970년 동안 라오스에서 3명의 포로만 잡았는데, 애쉬트레이 II 작전에서 확보한 포로만이 유일하게 사전에 계획된 상황 속에서 확보에 성공했으며 카바노 대령은 "그동안 사전 계획한 모든 작전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전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애쉬트레이 II 작전이 끝난 지 몇 달 후, SOG 정찰팀은 110번 고속도로에서 부상당한 월맹군 한 명을 붙잡았고, 그 포로는 트럭 운전병들이 여전히 해가 진 후에 미군이 갑자기 나타나 그들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아갈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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