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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SOG 나이프가 가장 인기 있는 월남전 특수전 유물이 되었고, 심지어 그 복제품도 수백 달러에 달하지만, 이 매력적인 칼은 가장 가치 있는 수준의 SOG 기념품은 아니다.


받아본 적이 있는 소수의 그린베레 정찰 팀장 외에는 알려지지도 않은 이 물건이 MACV-SOG에서 가장 탐내는 최고의 상이다.


바로 상자에 담긴 브라우닝 하이파워 권총이다.


공식적으로 '정찰팀장 특별표창'으로 지정된 이 상은 SOG 정찰계에서는 '은권총'으로 불렸다. 


각각의 권총은 특별히 극적인 임무를 수행하거나 명예 훈장과 같은 높은 상을 받은 것에 대해 표창을 주고자 SOG 사령관이 개인적으로 사이공에서 선물했다.


당신들은 이 매우 희귀한 권총들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박물관에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처음으로 이것들의 존재를 공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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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쉬트레이 II 작전을 이끈 공로로 내게 은권총을 수여하는 SOG 사령관 카바노 대령)


SOG의 은권총


추적을 막기 위해 비밀리에 구해진 SOG의 무기에는 소음기가 달린 스텐 기관단총에서 발터 오토매틱, 심지어 자이로젯 로켓 피스톨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무기들이 같이 있었다. 


이러한 비제식 화기에 대한 사용은 팀 장비가 적의 손에 넘어갈 경우에도 '부인 할 수 있는 가능성'의 필요성에 의해 추진되었다. 


펠프스와 그가 굴리는 '미션 임파서블'의 조직처럼 SOG는 국경을 넘나드는 작전에서 당혹스러운 증거를 남겨선 안 됐다.


우리 무기고에 브라우닝 9mm 하이파워 권총이 상당히 많이 있던 것은 이러한 거부 가능성 요구 사항 때문이었고, 이는 곧 SOG가 선호하는 보조 화기가 되었다. 


견고한 강철 구조와 많은 탄창 용량으로, 브라우닝은 견고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효과적인 것을 입증했다.


1968년 말과 1969년 초 SOG 본부는 비밀리에 구한 브라우닝 권총 중 소수를 크롬 도금하고 상자에 담아 "정찰팀장 특별표창"으로 만들었다. 


비밀스러운 프로젝트 다운 적절하게 비밀스러운 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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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권총은 아쿠아마린 블루 벨벳으로 안감 처리가 된, 멋진 수제 검은 옻칠 케이스에 담겨 있으며, 놋쇠 판에 수령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SOG의 기밀 선호 전통에 따라, 판에도 수령자를 "MACV 장거리 정찰 팀장"으로만 설명하지 "SOG" 또는 "특수 부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피했다.


하지만, 동봉된 서류에는(이거 없이는 집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 이 화기가 SOG의 소유임이 적혀져 있었다.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전쟁 트로피 서류, 반출 허가 신청서와 함께 발급되었고, 많은 SOG 물품과 마찬가지로 SOG의 존재조차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인용문을 포함했다.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


SOG에 있는 동안, 개인적으로 약 6개의 SOG 권총이 동료 정찰 팀 팀장에게 수여됐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중 3개는 명예 훈장 수훈자들에게 주어졌다.


모두 콘툼 CCC 출신인 로버트 하워드, 프레드 자비토스키, 프랭클린 밀러였다.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서 유일한 CCN 명예 훈장 수훈자인 존 카비아니는 전쟁포로였고 SOG가 해체된 후까지 하노이에서 석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은권총을 받을 수 없었다.


어떤 경우에는, 대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SOG 권총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 내가 은권총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너무 빨리 죽을 것이 너무 걱정돼서 바로 집에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즉각적인 수상을 요청하기도 했다.


SOG의 높은 사상자율을 고려하고, 미래로부터 잠시 시간을 빌려 살아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멜로드라마 같은 기쁨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팀장들은 권총을 받았는데, CCN과 CCS의 정찰 팀장들도 이 권총을 받고 시간의 흐름을 고려하면, 총 권총은 약 40개 또는 50개 정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적어도 한 개 이상의 SOG 권총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독일에서 미군 기지로 가는 길에 전 정찰팀장의 모든 짐이 도난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하워드 대령은 얼마나 사심이 없었는지, 이 부사관의 권총이 분실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권총을 그에게 줬다!


(참고로, 의심의 여지가 없이 하워드 대령은 명예훈장, 두 개의 수훈십자장, 은성훈장, 여덟 개의 퍼플하트를 받은 현존하는 미국인 중 가장 많은 상훈을 받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제가 월남에 왜 그렇게 오래 머물렀는지 묻는데, 로버트 하워드와 같은 훌륭한 군인들을 알게 되고 함께 싸우는 영광을 위해서였다.)


오퍼레이션 애쉬트레이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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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쉬트레이 II 작전 중 110번 고속도로 옆 매복지점에서 프레드 크루파 대위를 찍은 사진. 프레드는 1년후 SOG 임무 중 실종됐고 그의 유해는 아직 수습되지 못했다) 


내 SOG 권총을 8개로 자를 수 있다면, 그것들을 애쉬트레이 II 작전를 함께 수행한 동료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내 표창에 "훌륭한 전쟁포로 확보"라고 언급된 이 은권총을 받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노력이었기 때문이다.


프레드 크루파 대위와 렉스 제이코, 존 얀시, 리처드 우디, 폴 케니콧, R. 마이클 그레이스, 데이비드 갈라소와 함께 이 위험한 임무를 시도했다. 


호치민 트레일에서 월맹군 트럭 호송대를 매복 공격한다는 것은 우리가 트럭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선두 트럭 운전병을 달고 밤새 수많은 추격자들을 피해 달려야 하는 것이 확실시되었다.


정보 분석가들은 선두 트럭 운전병이 특히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라오스 남부의 숨겨진 월맹군 트럭 주차장, 중간 정거장, 베이스 캠프의 위치를 알고 있으며 가장 붙잡기 쉬운 적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기한 시설들은 차례로 B-52의 표적이 될 것이다. 


그러한 운전자를 잡는 것은 1970년 초 SOG의 최우선 임무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호치민 트레일 네트워크 근처에서 적군을 잡는 것은 말이 쉽지 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고속도로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를 거둘 정도로 지역 순찰이 삼엄했을 뿐만 아니라, 월맹군 대응군이 너무 커서, 느리게 움직이는 포로와 함께 탈출하는 것도 위험했다.


내가 연장 휴가로 집에 있는 동안, 첫 번째 애쉬트레이 작전이 시도되었다.


우리 작전장교였던 프랭크 야크스 소령이 이끌었고, 여전히 젊고 활기찼으나, 10대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반나치 빨치산으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모든 대원들이 성공적으로 고속도로에 도착했고 여러 대의 트럭을 파괴하고 많은 사상자를 입혔지만, 그들은 의도치 않게 선두 운전자를 죽이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애쉬트레이 미션


야크스 소령은 두 번째 애쉬트레이 임무를 지휘하기를 원했지만, 합참은 그가 라오스에서 다시 한 번 위험을 감수하기에는 너무 식견이 많다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완전히 새로운 관점, 다른 접근법으로 진행됐고, 애쉬트레이 II는 다른 누군가가 이끄는 새로운 그룹의 사람들로 진행하기로 결정됐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팀장으로 선발됐다.


이 임무는 내 RT 캘리포니아와 프레드 크루파 대위가 이끄는 RT 뉴햄프셔의 공동 작전이 됐다.


크루파가 나보다 계급이 더 높긴 했지만(나는 하사였다), 이런 종류의 "가장 경험이 많은 대원이 리더" 윤리는 SOG에서 꽤 흔했다.


각 팀에 미군 4명 씩 있었고 추가로 4명의 몽타냐드를 데려왔다. 


총 12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SOG 정찰 팀은 보통 이 수의 절반만 쓰기 때문에 이 정도면 꽤 큰 규모다.


3주 동안 우리는 길고 힘든 훈련을 했고, 매복을 위한 모든 세부 사항을 숙지하고, 적과의 접촉을 대비한 훈련, 다양한 폭발물을 실험했다. 


그리고 물론, 매복 리허설을 반복했다. 밤낮으로 말이다. 


나는 유연성 없는 지휘자였지만, 모두가 이해해줘서 조금의 불평도 없었다. 


이들은 원치 않게 끌려온 징집병이 아니며 비록 몇몇은 SOG 정찰이 처음이긴 했지만, 대부분이 두 번째 전투 파병 중인 노련한 특수부대원이란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사이공에 있는 SOG 참모에게 우리의 계획을 설명하자, 그는 우리가 철수 중 숨어있는 적 기지 캠프로 바로 달려가지 않도록 매복 공격 후 도망칠 지역에 대해 이틀간의 짧은 정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루파 대위가 이 신속한 임무를 맡았고, 내가 다른 막바지 준비를 마치는 동안 아무 일 없이 들어갔다가 나왔다. 


이틀 후, 12명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헬기로 투입되었다.


야간 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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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가 촬영한 작전 중 매복한 GAZ-63 트럭. 대나무와 위장막이 있으며 보닛 위에는 내가 올린 테르밋 폭발물이 있다. 폭발물이 터지며 우릴 추격하기 위해 몰려든 월맹군을 향한 공습의 신호탄이 되었다)


우리가 110번 고속도로에 도착하는 데 3일 동안 느리고 조용한 움직임이 필요했다. 


부활절 일요일 전날인 1970년 3월 29일 이른 오후에 침투가 완료되었다.


마지막 날까지 무성한 나뭇잎 속에 엎드려 있었고, 심지어 대낮에 트럭 한 대가 감히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기도 한 후, 우리는 도로를 향해 기어갔다. 


동시 격발을 위해 도폭선으로 연결된 세 개의 크레모아를 배치했다. 


트럭 전륜에 폭발의 초점을 노리기 위해 반원형으로 조준 설치됐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고속도로 옆에 엎드려서 기다렸다. 


밤 10시가 되기 직전에, 트럭이 접근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마치 디젤 기관차가 접근하는 것처럼 굉음이 들리던 때, 마침내, 하나가 정확히 3개의 크레모아가 집중되는 곳으로 굴러 오자 "쾅"하고 터졌다.


내가 크레모아를 격발했고, 곧 이어 얀시, 크루파, 우디와 나는 우리 앞에 멈춰선 소련제 GAZ-63 트럭을 공격했다.


사실상 3초 만에, 크루파가 플라스틱 구속구를 꺼내는 동안 얀시는 운전사를 운전대에서 홱 잡아 땅에 눕혔다.


악명 높은 호치민 트레일 한복판에서 코닥 인스타매틱과 플래시 큐브를 들고 서 있는 프레드 크루파의 놀라운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것다. 


내가 트럭에 가방 폭탄을 던지고 후드에 시간 지연 테르밋 수류탄을 올려놓았을 때, 번쩍거리며 빛이 났다. 


몇 초 후, 나는 철수하라는 명령을 외쳤다. 우디는 우리가 리허설을 했을 때처럼 휘슬을 불며 뒤로 물러섰다. 


그때 숨어있던 적병이 우디를 쐈다. 


렉스 자코는 우디를 붙잡고 집결지 쪽으로 다시 이끌었고 크루파와 얀시는 적 포로를 끌고 갔다.


해당 과정에서 나만 트럭에 남게 됐다. 


그래서 나는 집결지에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적 몇 명과 총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편, 다른 대원들은 40개 이상의 다양한 크레모아와 수류탄에 시한 신관을 작동시키고 있었는데, 이는 우리 뒤에 약 45분간 폭발하는 지뢰지대를 만들어 매복 지점에 모여드는 월맹군을 혼란스럽게 하고 지연시킬 수 있었다.


집결지에서, 의무병이었던 갈라소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우디를 치료했다. 


그리고 우디는 큰 고통에도 불구하고(AK 총알에 의해 양쪽 팔이 산산조각이 났다), 모르핀이 우리의 속도를 늦추게 될까 봐 거부했다. 


그는 진정한 터프 가이였다. 


한편, 몽타냐드 한 명이 실종됐다. 


우리는 그를 기다리거나 찾을 수 없었다. 


즉시 그곳에서 나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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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콘툼. 눈을 가린 포로 옆에 선 존 얀시(얼굴 위장한 대원)와 데이브 갈라소(모자 쓴 대원). 초기 델타포스 대원이었던 존 얀시는 1980년 이란 인질 구출을 시도했으나, 이후 포트 브래그에서 훈련 중 사고로 사망했다)


밤 내내 칠흑 같은 정글을 뛰어다녔고, 우디를 치료하거나 포로의 구속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멈춘게 전부였다. 


약 한 시간 후, 특별한 전방 항공 관제사가 우리에게 약속한 대로 "무제한 항공지원"과 함께 상공에 도착했다. 


불타는 트럭들의 불길이 전투기들을 위한 봉화가 되어주었고, 동이 트기 직전까지 매복 지점 주변에 계속해서 폭탄이 떨어졌다.


날이 밝자마자, 제57돌격헬기중대의 휴이가 제361돌격헬기중대의 코브라 건쉽의 호위를 받으며 도착했다. 


그리고 나서 A-1 스카이레이더 한 쌍이 우리를 가로질러 집속탄을 던졌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리는 맞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휴이가 내려와 우리는 떠났고, 임무는 성공했다. 


실종된 몽타냐드는 하루 뒤 SOG 헬기에 의해 발견돼 무사히 돌아왔다.


사이공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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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를 잡고 헬리패드에서 나오는 렉스 제이코와 뒤에 서 있는 존 얀시와 데이브 갈라소)


CCC 헬기장에서 떠들썩하게 환영을 받은 후, 나는 RT 캘리포니아 팀 룸에 장비를 내려놓을 시간조차 거의 없었다. 일등상사가 SOG "블랙버드" C-130이 임무를 전환해가며 포로와 나를 사이공으로 데려가기 위해 10분 후에 도착할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중국 민간인이 조종하는 이 번호조차 없는 SOG C-130은 풀톤 "스카이훅" 시스템과 최첨단 전자전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후에 블랙버드 한 대가 도착했고 나는 팔다리가 묶인 트럭 운전사를 안으로 데려갔다. 


우리가 유일한 승객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일정 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중국 조종사는 더 외딴 곳에 있는 에어 아메리카 활주로 대신 사이공의 탄손누트 민간 공항에 착륙했다.


면도도 하지 못하고 얼굴에 위장크림이 묻은 채, 수갑을 찬 월맹 포로를 데리고 활주로를 건넜다. 


번잡하고 현대적인 공항의 놀라운 현실을 보자, 포로는 약간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신경을 가라앉히고 시점을 재정립시키기 위해, 그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45구경 권총의 총구를 대고 눈에 덜 띄는 군사 터미널까지 100야드를 걸어갔다. 


이 치료법은 즉시 효과가 있었고 그를 진정시켰다.


나는 미 공군과 터미널에 있는 후방 육군 부대원들의 놀란 얼굴을 항상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팔다리가 묶인 포로에게 45구경 권총을 겨눈 채 다가오는 초췌한 특수부대원을 힐끗 보더니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주변에 50여명의 미군이 있었지만 SOG의 아무 표시가 없는 상용 밴이 도착해 우리를 데려가기까지 10분 동안 아무도 잡담조차 하지 않았다.


그 후 목이 말라 차가운 맥주가 땡기기 시작했고, 그때쯤 SOG의 부사령관인 로스 프랭클린 대령을 만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걸 알게 됐다. 


주월미군 총사령관인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장군이 우리를 보고 싶어했다.


저는 서둘러 새로운 정글 퍼티그를 입고 SOG 원사의 호위를 받으며 면도와 이발을 위해 이발소로 달려갔다. 


차가운 맥주는 물건너 갔다.


그날 저녁 우리는 MACV 본부로 가서 에이브럼스 장군에게 애쉬트레이 II 작전에 대해 브리핑했다. 


그 후, 에이브럼스 장군의 좋은 반응은 나를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그는 대중적으로 매우 반SF적인 성향이 있다는 명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해야 할 것이, 이 사람은 1년 전에 제5특전단 사령관인 로버트 레알트 대령을 베트남 이중간첩 살인 혐의로 기소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브리핑이 끝날 때 철학적 견해를 제쳐두고 그린베레와 SOG에 찬사를 보낸 그를 인정해야 했다. 


에이브람스와 악수를 하며, 그는 내 동료들에게도 모두 축하의 말을 전해 달라고 진심으로 부탁했다.


끔찍한 하루였다. 


동트기 전에는 라오스 깊은 곳에서 적 추격조들을 피하고, 해질녘에는 사이공에서 미군 사령관과 대면을 했다. 


그래도 한 시간 후, 에어컨이 설치된 바에서 다 마실 수도 없는 맥주를 쌓아 놓고 있었다. 


정말 멋진 나라였다. 


유일한 후회는 애쉬트레이 II 대원들이 그날 밤을 축하하는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지만 나는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며 잔을 들었다.


에필로그: 애쉬트레이 II의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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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쉬트레이 II 작전에 있던 8명의 미군들은 SOG 대원들이 직면하게 되는 큰 위험에 대한 정확하고 미시적인 지표가 되었다.


매복 중에 양팔에 심각한 총상을 입은 리처드 우디는 월남의 한 병원에서 안정을 취했고, 그 후 미국으로 보내졌다. 그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폴 케니콧은 무사히 작전을 넘겼지만, 거의 1년 후, 우리가 매복했던 곳에서 동쪽으로 약 5마일 떨어진 지점을 정찰하던 중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그도 마찬가지로 미국으로 보내졌다.


적 포로를 트럭에서 끌어내어 포로를 데리고 그 길고 어두운 밤에 정글을 통과한 존 얀시는 나중에 또 다른 정찰 중에 수훈십자장을 받았다. 


그는 너무 심한 부상을 입어 걸을 수 없었던 쓰러진 전우를 혼자 지켜냈다. 


비록 그 대원은 사망했지만, 존은 구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용맹하게 한 시간 이상 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나는 그가 명예 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델타 포스의 초기 대테러대원 중 한 명인 존은 1980년 인질 구출 시도 중, 이란의 데저트 원에 있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델타 포스 대원의 실수로 인해, 존은 1989년 실탄 훈련에서 사망했다. 


우리 모두 그를 많이 그리워한다.


애쉬트레이 II 작전이 성공한지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프레드 크루파는 캄보디아 국경에서 중대 규모의 SOG 급습 부대를 이끌고 가던 중 AK 탄환에 맞아 호버링하던 헬기에서 추락했다. 


나는 O-2A 코비를 타고 그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비록 우리가 많은 공습을 가했고 구조 임무를 시작하려 했지만, 프레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실종 상태이다. 


신이시여 그에게 축복을 내려주소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나머지는 아직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