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4월, 다낭의 CCN 본부에서 RT 아이다호를 시찰하는 제1군단 사령관 리차드 스틸웰 중장. 라오스 북부에서의 특별 임무를 위해 RT 아이다호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이는 헬기에 탑승하고 목표로 투입되기 전 팀원들의 모습이다. 왼쪽부터: 잭 "아이스맨" 아이슬러 대령(베레모 착용한 인물), 리차드 스틸웰 중장, 존 S. 마이어, 손, 사우, 히엡, 린 M. 블랙 주니어, 닥 포텐베리, 헝, 마이클 오번 대위, 하사. 더글라스 "프렌치맨' 르터노 병장, 까우)
1970년 2월 8일 늦은 오후, 라오스 남부를 향해 동쪽으로 비행하던 중, 나는 로터 소음 너머로 들리는 존 C. 잉글스 부팀장의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진입한다. 저 개새끼들이 우릴 안 깨웠어."
문제의 개새끼들은 우리를 LZ로 투입하는 시코르스키 HH-3의 승무원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우현 문밖을 내다보니, 우린 놀란 라오스 농부 두 명, 아낙네 한 명, 물소 두 마리 위로 비행하고 있었다.
커다란 헬기가 생울타리 너머 인접한 들판에 착륙하는 동안, 잉글스와 나는 RT 아이다호의 나머지 팀원들을 미친 듯이 깨웠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목표 지역에 접근하는 동안 알려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쁜데, 이제는 현지 농부들과 매우 가까이 비행한 다음 우리 주요 LZ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주요 목표인 다리에서도 멀리 떨어진 들판 한가운데에 착륙하여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신중하게 선택하고 계획했던 원래의 LZ는 조금 더 먼 능선 정상 부근에 있었다.
게다가 예정과 달리 오전이 아니라 오후에 AO에 투입됐기에, 이대로 월맹군이 가득한 계곡에 버려진다면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임무를 시작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좀 더 주의를 기울였거나 화가 덜 났다면 강하게 항의하고 헬기에서 내리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지 생활의 지루함과 몇 주간의 좌절감에 지쳐 있었기에 그냥 내려서 떠나고 싶었다.
결국에는 이것이 우리의 일이었고, 나는 일을 즐겼다.
이 특별 임무는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간단한 임무였다.
1970년 초, 지휘부는 수중 교량이라는 월맹군 측의 새롭고 다소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는 라오스를 지나는 호치민 트레일을 따라 전략적인 지점에 설치됐다.
공중에서 보면 몇 피트 깊이의 물 때문에 트레일이 막힌 것처럼 보였지만, 트럭들이 개울을 건너 남쪽으로 향하는 것은 분명했다.
항공 사진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항상 창의적인 월맹군들이 공중에서 보이지 않으면서도 대형 트럭을 지탱할 수 있는 수중 구조물을 고안해 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중 교량은 매우 영리한 아이디어였고, 잘 실행됐다.
특히 라오스 남부 아샤우 계곡에서 남서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곳에 있는 한 다리는 이러한 발전에 흥미를 느낀 사이공 상부의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정보 보고에서 이 다리를 공학적 경이로움의 결정체라고 했기에 상부에선 이 다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했고, 가능한 한 빨리 알고 싶어했다.
상부는 "직접 안 해도 다 된다"라는 모토와 함께, 정보를 찾는 기본 기간으로 "최대한 빨리"를 요구했다.
시작부터 발생한 문제
하지만 시작부터 문제가 있었다.
월남에서의 악천후로 인해 팀은 푸바이의 캠프 이글 발진기지에 발이 묶여 있었다.
그리고 AO 자체와 관련하여 두 가지 큰 우려 사항도 있었다.
첫째, 호치민 트레일의 해당 지점은 통행량이 매우 많았다.
둘째, 대부분의 주변 언덕과 계곡에는 일반적으로 정찰팀이 생존을 위해 의존하는 두꺼운 정글 초목이 비정상적으로 드물었고, 엄폐가 가능할 정도로 두껍게 자란 곳도 몇 군데 없는 데다 흩어져 있었다.
항상 사려 깊으신 지휘부께서는 월남 악천후를 극복하기 위해 RT 아이다호를 태국으로 보내 나콘파놈에서 발진시키는 상투적인 전술을 사용했다.
우리는 휘장이나 식별 표시가 전혀 없는 C-123 블랙버드를 타고 날아갔다.
우리가 태국에 도착하자, 커튼과 암막 창문이 달린 파란색 공군 밴이 비행기를 따라왔고 우리를 제46 특전중대 기지로 데려갔다.
(임무 개시 하루 전, 태국 나콘파놈 공군기지 내 제46 특전단 본부에서 촬영한 사진. 왼쪽부터 RT 아이다호 1-0 존 S. 마이어와 발진기지 지휘관이자 FOB 1이 폐쇄되기 전 마지막 지휘관이었던 빌 쉘튼 소령)
얇은 초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계획은 밤과 어두운 새벽 시간에 이동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막 동이 트는 시간대에 투입을 요청했다.
우리의 우려와 희망 사항을 간략하게 브리핑한 후, 기지 지휘관인 빌 쉘튼 소령은 다음날 0700시에 CH-3를 타고 투입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1970년 3월, 다낭 CCN 정찰 중대 RT 아이다호 막사 앞에 서 있는 존 C. 잉글스 병장)
하지만 늘 그렇듯이 문제가 있었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무튼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미스터리한 상황의 결과로 우리는 1300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두 시간 동안 동쪽으로 비행한 후, 우리는 고립된 산맥 꼭대기에 있는 CIA 기지에 급유를 위해 잠시 착륙했다.
여정의 첫 구간에서 헬기는 약 8,000피트 상공에서 고도를 유지했는데, 우물 파는 사람보다 더 춥다는 속담처럼 추워서 우리는 공군 승무원이 준 담요로 몸을 감싸야 했다.
비행의 두 번째 구간에서는 우리 모두 월남 포커를 밤새도록 즐긴 탓에 심한 졸음에 시달렸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게임이기에 몸이 지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도어거너에게 물어봤을 때, 그 역시 비행을 얼마나 더 할지 알 수 없었기에 우리는 약간의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잉글스가 내 어깨를 흔들고 문밖으로 놀란 농부들을 본 순간이 되어서야 잠에서 깼다.
(패트리어트 코요테 훈련 중 수색 및 구조 임무를 위해 HH-3E 졸리 그린 자이언트 헬기에서 내리는 파라레스큐 팀원들)
바퀴가 지면에 닿자, 내가 가장 먼저 내렸고 잉글스, 사우, 뚜안, 차우, 손이 그 뒤를 따랐다.
나는 한쪽 팔에는 배낭을 걸고, 다른 쪽 팔에는 웹기어를 걸치고, 목에는 CAR-15를 매단 채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정찰대원의 이상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랬다.
팀원 전체가 LZ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HH-3이 마치 우리의 전문성을 폄하하듯이 흙먼지와 파편을 우리에게 쏟아부었다.
솔직히 그들의 성과도 그다지 훌륭하진 않았는데 말이다.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완만한 경사면을 가로지르는 가장 가까운 생울타리 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우리는 목표에서 남쪽으로 몇 km 떨어진 지점에 있었는데, 목표는 동쪽과 서쪽 측면에 거대한 산이 형성되어 있는 광활한 계곡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는 주요 트레일의 동쪽 어딘가에 있었다.
정보 보고에 따르면 밤마다 최대 200대의 트럭이 이 트레일을 따라 이동했다고 한다.
우리는 위장도 없이 도착했기에, 수백 명의 월맹군 병력과 추적병 및 개들이 이 도로를 따라 쏟아져 나오는 건 시간 문제라는 걸 알았다.
생울타리를 넘은 후, 나는 팀을 나눴다.
나는 각 팀의 후방 사수들에게 우리 흔적을 모두 가리고, 월맹군이 풀어둔 개를 막도록 가끔 후추나 메이스 가루를 뿌리라고 조언했다.
잉글스는 동쪽으로, 나는 서쪽으로 가서 계속 서로를 주시하며 나란히 북쪽으로 향했다.
북쪽으로 향하던 중 또 다른 산울타리를 만났고, 울타리를 지나 경사면을 따라서 북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우리는 최대한 빨리 움직였다.
"10분 이동 10분 휴식" 따윈 없었다.
하지만 이동하는 동안, 이 먼 라오스 계곡의 놀랍고 고요한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뚝 솟은 그림 같은 산으로 둘러싸인 울창한 이 숲은 미국 관광객들이 큰돈을 지불하고 볼 만한 수많은 풍경을 선사했다.
맹렬한 속도
그러나 우리는 관광을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대낮에 이 아름다운 계곡을, 정찰팀에게 있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는 것이 매우 불안했다.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노출된 위치에서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휴식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팀은 전열을 가다듬고 서쪽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작은 계곡으로 내려갔다.
좁은 바위 개울을 건넌 뒤, 계곡의 가파른 서쪽 면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넓게 트여 있고 초목이 매우 얇았기 때문에 팀은 넓게 퍼져서 횡대로 움직였다.
이동하면서 모두가 자신의 흔적을 가리고 더 많은 메이스 가루를 뿌렸다.
우리는 최대한 풀숲에 머무르며, 언덕을 약 50m 정도 곧장 올라갔다.
경계 중인 적에게 혼란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LZ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계곡의 해당 부분에는 산을 따라 계곡 바닥까지 뻗어 있는 세 개의 손가락 모양의 언덕이 있었다.
각 언덕의 초목은 우리가 지나왔던 곳보다 더 무성했다.
우리는 수풀이 빽빽하게 우거진 곳을 피하며 첫 번째 언덕, 즉 손가락을 올랐고, 이어서 손가락 사이에 움푹 들어간 곳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밀림이 빽빽하게 자란 계곡의 잔디 바닥을 따라 다시 두 번째 언덕을 올랐다.
이제 우리는 지치기 시작했다.
전투 장비를 모두 갖추고 고된 등반을 하다보니 지치기 시작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갈 때마다 경사도가 더 증가하는 것 같았다.
기지에서 정기적으로 했던 배구 경기가 충분한 체력 훈련이 아니었다는 것이 고통스럽게 분명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고통 때문에 속도를 늦출까 하는 생각은 북쪽에서 들리는 소리와 함께 우선순위에서 내려갔다.
이 위협적인 소리는 우리가 목이 마르고, 폐가 무겁게 느껴지고, 무릎과 허리가 아프다는 것도 잊게 했다.
적은 저 밖에 있었고 아직 병력이 합류하지 않았을 테지만, '게임은 시작되었다'라는 말처럼 전투가 임박했다.
이 긴박한 상황은 은신에 대한 우려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치명적인 SOG 버전의 숨바꼭질이 곧 시작될 예정이었고, 날이 거의 어두워진 와중에 우린 아직 RON을 정하지 못했다.
우린 필사적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1970년 3월, CCN 정찰 중대 구역 내 RT 아이다호 팀 막사 앞에 서 있는 RT 아이다호 1-1 존 C. 잉글스. 잉글스와 함께 왼쪽부터 유탄수인 뚜안, 통역사인 호안, 도티꽝, 차우, 까우, 보가 있다)
월남 대원 팀장인 사우가 선두에 있었다.
우리가 두 번째 언덕 끝을 지나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파른 산을 오르는 동안, 나는 사우의 뒤에 있었다.
사우는 위에 이중 캐노피가 있으며, 가시덩굴로 뒤덮인 거대한 덤불을 발견했다.
그 덤불은 가파른 언덕의 측면에 펼쳐져 있었다.
경사도는 40도 이상이었으며 아주 큰 도전이었다.
"여기 있으면 VC 우릴 못 찾는다." 사우가 속삭였다.
우리는 한 명씩 그 험난한 덤불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손과 차우가 앉자마자, 사우는 쉭쉭 거리는 소리를 내며 덤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라고 말했다.
사우가 우리 모두를 이끌고, 가시덤불과 뾰족한 돌에 찔리는 고통을 잊고 덤불 속으로 최대한 깊숙이 들어가라고 하는 동안, 곧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마침내 사우가 만족했다.
모두 자리를 잡고 40도 경사면에서 최대한 편안히 지내려고 노력했다.
경사가 너무 심해서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나무에 몸을 묶어야 했다.
우리는 일반적인 원형 방어를 취하는 대신, 언덕 위에 일렬로, 각 대원이 마주한 방향을 번갈아 가도록 배치했다.
우리의 가장 큰 우려는 월맹군이 북쪽이나 남쪽 측면, 또는 양쪽 모두에서 이 손가락 모양의 땅으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동쪽 끝은 언덕 아래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우는 기어 나와서 북쪽을 향해 크레모아를 놓고 우리 위치로 돌아왔고, 마치 고양이처럼 어둠 속에서 거의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였다.
한편 월맹군이 계곡 북쪽 끝에서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투가 펼쳐질지도 모르는 이 단계에서 내 머릿속에는 세 가지 시급한 미지의 사항들이 떠올랐다.
1. 우리가 LZ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졌는가?
2. 우리가 착륙하는 것을 본 농부들이 급히 도망쳤는가, 아니면 남아서 우리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월맹군에게 신고했는가?
3. 분명 저 밖에 있던 개들이 우리 흔적을 찾을 수 있는가?
2200시경, 주요 도로에서 수많은 트럭 소리를 들었다.
불과 몇 분 만에 몇 대가 우리 RON을 지나 천천히 남쪽으로 달려갔다.
탁 트인 계곡 들판에 도달하자, 차가 멈추고 병력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트럭에서 내린 적군들은 남쪽에 있는 LZ로 향하는 듯했고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처럼 들렸다.
이는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자정이 되자, 나는 공중 지휘기와 정기 통신 점검을 했고, 아무 말 없이 무전기의 송신 키를 한 번 눌러 스퀠치를 보내는 식으로 진행됐다.
항공관제사가 우리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위안이 되는 소식이었다.
메이스와 후추 한 숟갈
행복한 시간은 추적견이 짖는 소리가 들리며 망쳐졌다.
마치 큰길을 건너 우리가 마주했던 생울타리를 지나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지만, 개들이 우리 냄새를 알아차린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가 계속되는 행운을 조용히 음미하는 동안,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가 메이스와 후추를 맡은 것이 분명했다.
그 개는 더 이상 우리를 추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0100시경, 우리는 적군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동쪽에서는 누군가가 AK-47을 몇 발 발사했다.
러시아제 무기의 독특한 소리는 우리를 완전히 경계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저럴까?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까?
얼굴 앞의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완전한 어둠 속에 앉아 있던 중, 마치 적들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월맹군이 우리가 건넌 첫 번째 손가락 모양의 언덕을 수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언덕 양쪽 측면에서 우리가 지나온 풀밭을 통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있는 곳 양쪽에 적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덤불이 빽빽한 만큼 월맹군이 들고 있는 램프 불빛이 깜빡이는 듯했다.
적군이 우리가 있는 언덕 아래쪽을 탐색하기 시작하자, 도로에서 차량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우리는 매우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사우가 우리를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월맹군이 우리를 발견했을 수도 있었다.
우리 위치로 적군 한 명이 접근했으나, 우리는 그 지독한 덤불 속에 너무 깊이 있었고, 그 적군은 망설이다가 가시덤불에 지쳐 포기했다.
우리는 그 적군이 차라리 동료들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을 거의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다섯 개의 CAR-15와 한 개의 M-79가 자신을 향했으며, 죽음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서서히 월맹군들은 답답하고 불편한 수색에 지쳐 수색을 중단했다.
RT 아이다호는 마침내 참아왔던 숨을 집단적으로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위험은 멀리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물러난 것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RT 아이다호가 적과 숨바꼭질을 했던 그때의 밤이 떠올랐다.
특히 그때 우리 경계선까지 기어들어 와 손을 뻗어 내 군화를 만지더니 놀란 듯한 소리를 냈던 월맹군이 떠올랐다.
다행스럽게도 그 월맹군은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순간에만 움직여 조용히 물러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날이 밝자, 사우는 지상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나무에 올라갔고, 거기서 주요 도로를 따라 적군을 관찰했다.
사우는 이전에 보았던 트럭은 더 이상 보이지 않지만, 병사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우리 상황은 위태로웠고 선택지도 제한적이었다.
북쪽, 남쪽, 동쪽으로는 이동할 수 없었기에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언덕 측면의 나무에 묶여 또 밤낮을 보내고 싶지 않았던 우리는 서쪽으로 이동한다는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남은 하루 동안 우리는 가파른 산비탈을 계속 올랐다.
처음에 우리는 우거진 수풀 사이를 네발로 기어야 했고 수풀에서 벗어나자, 이번에는 거대한 암벽과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상당히 빽빽한 이중 또는 삼중 캐노피 정글 아래에 있었다.
오전 중반이 되자 암벽에서 깎아지른 듯한 바위면에 도달했다.
이제 우리는 단단한 바위를 따라, 벌레처럼 조금씩 올라가야 했다.
바위면이 너무 가팔랐기에, 스위스 시트에 쓰는 6피트 길이의 로프를 묶어 다음 바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 만큼 긴 로프를 만들어야 할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이는 우리가 웹기어와 배낭을 벗고 한 번에 하나씩 들어올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렸다.
이 등반 중 유일하게 좋은 소식은 월맹군이 우리 뒤를 쫓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산양이라도 우리를 따라오는 데 애를 먹었을 테니까 말이다.
1200시가 되자,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서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불규칙한 수직 행렬로 팀을 위태롭게 매다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덩치가 큰 미국인인 나에겐 정글을 통과하는 것은 특히 어려웠다.
완전한 전투 장비를 착용하고 산을 오르는 것은 정말 지친 일이었다.
그러나 어떤 영리한 분이 말씀하시길 "필요는 어머니다."라고 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산을 올랐다.
늘 그렇듯, 고양이 같은 사우가 바위 위로 오르는 길을 이끌었고, 다른 팀원들이 다음 지점까지 오는 것을 뚜안이 도왔다.
모든 팀원들이 정해진 지점에 도달하면 이를 다시 반복했다.
계속 앞으로, 계속 위로 말이다.
천국같은 산꼭대기
일몰 무렵, 우리는 산 정상에 도달했다.
나는 육체적으로 지쳐 있었다.
바지는 찢어졌고 손, 무릎, 다리에는 베인 상처와 긁힌 자국, 타박상이 가득했다.
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우린 신속하게 RON을 설정하고 교대로 식량을 먹은 후 불침번을 정했다.
전날 밤의 RON과 비교하면, 이 산 정상은 천국이었다.
우리는 적 트럭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이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피곤해서 생각할 수도 없었고, 현장에 있기에는 극도로 위험한 상태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결이 아니라 휴식이었다.
나는 보고할 내용이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목표인 수중 교량에 도착해 임무가 완수되었음을 보고하기를 원했기에 절대적인 무전 침묵을 유지했다.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좋은 소식으로 침묵을 깨고 싶었다.
사우가 첫 번째 보초를 섰고, 다른 팀원들은 바로 잠들었다.
아침이 되자, 우리는 아름다운 일출을 보며 잠에서 깨어났고, 우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라오스 산맥 꼭대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이로운 풍경 그 자체였고 우리가 전쟁의 한가운데서 짐승처럼 쫓기고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단 한 번의 불침번과 함께 숙면을 취하고 나니 말 그대로 세상의 정상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멋진 동남아의 전경을 바라보자, 전날 등반으로 생긴 상처와 아픔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느껴졌다.
하지만 무전기가 나를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그렇다. 우리는 아름다운 산 정상에 있었고 험난한 등반을 통해 거기에 도달했고 우리를 죽이려는 놈들이 우리를 찾고 있었지만, 본부의 쪼그라든 마음속에는 우리가 지도에서 겨우 100m밖에 이동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눈물 나게 엿을 먹여줬다.
확인이 정말로 필요하다면 사이공이나 다낭에 지도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은 현장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겐 종이에 적힌 단어, 지도 위의 마커, 체스판의 말이 전부였다.
그들이 이것들을 현실에 대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는 없었다.
실제로 팀의 생사가 위태로운 상황이 닥쳤을 때, 그들이 전한 최선의 조언은 "접촉을 차단하고 임무를 계속하라"는 것이었다.
코비가 나타나자, 나는 우리 위치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도록 재빨리 거울로 빛을 비췄다.
코비에게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고, 적의 활동이 심해서 계곡에 머무르려던 원래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능선에 우리가 목표로 이동하는 것을 가려줄 수 있는 충분한 초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다음 몇 시간은 내가 어느 AO에서든, 현장에서 보낸 시간 중 가장 멋진 시간이었다.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고,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연이어 마주쳤다.
산의 분위기는 로키산맥에서 스키를 타거나 뉴햄프셔주 화이트산맥의 프레지덴셜산맥을 따라 하이킹을 했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1200시경에 우리는 수천 개의 야생 난초가 화려하게 만개한 지역을 발견했다.
미국에서는 하나당 5달러에서 50달러 했을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트렌턴의 엘레뉴스키 형제가 떠올랐다.
그들은 난초와 멋진 표본을 전문으로 키우는 사람이었고, 나는 존 엘레뉴스키가 이와 같은 야생 난초를 위해 기꺼이 그의 왼팔을 내어줄 것 같은 모습이 생각났다.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난초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들판에 들어가기로 결정했고 곧 사우를 제외한 모든 팀원들이 난초 한가운데서 꽃을 꺾어 머리, 치아, 귀 뒤, 전투복 단춧구멍에 꽂으며 즐거워하는 아이처럼 행동했다.
행복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것 같았고, 다소 어리석었지만 상쾌하기도 했다.
우리 모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코비와 다시 한번 통신 점검을 한 후, 우리는 계곡에 있는 적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능선 위나 그 근처에 머물며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계속 내려갔다.
어제의 혹독한 등반으로 인해 여전히 몸이 쑤셨기에 우린 너무 무리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우리가 다리까지 아직 3km 이상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편에서 계속-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riorplatform&no=32669
헬기에서 자는거 존나 기합이네. 개 추적 따돌리려고 후추 뿌리는거 아이디어 좋노
저 야생난 이야기. 히스토리 채널애서 이 양반이 말하는거 생각나네. 꽃가게에 아거 다 가져가면 큰돈벌겠는데 러고 생각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