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때, 추축군과 연합군은 모두 이 전쟁에서 정찰을 어떻게 수행될지에 대한 명확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1차대전은 이미 소규모 정찰부대는 원하는 정찰 결과를 제공할 수 있는 필연적인 펀치력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지정된 정찰 대대와 중대들이 생겨났다.
초기 독일이 하프트랙과 오토바이, 장갑차량에 의존하고 있을때 미군은 이미 경전차를 이용하고 있었다.
독일의 프랑스 침공 당시, 독일의 개념의 단점은 명확히 들어났다.
정찰은 90퍼센트의 상황에서 전투정찰(위력정찰)로 이뤄졌다. 은밀한 경차량과 오토바이는 장점보다 더 많은 단점을 만들어냈다.
뫼즈강을 건넌 뒤, 독일은 정찰 부대들을 그저 측면 경계 요소로 활용했다.
이젠 차량화 보병이나 더 흔한 경우론 전차가 정찰을 수행했다.
독일의 정찰 교리는 수정되야했다.
첫번째는 오토바이와 장갑차량을 룩스와 같은 경전차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전차는 경차량의 장점은 부족하면서도 충분히 튼튼하지도 못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단순히 중형전차를 주 정찰 자산으로 사용하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은 독일의 기갑정찰 교리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전쟁 말기엔 교량이나 주요 지형을 정찰하기 위해선 빠른 정찰수단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게 1944년부터 기갑정찰대대는 장갑하프트랙으로 구성되었고 일부는 75mm나 80mm 주포를 장착했으며 또한 전투공병대가 포함되었다.
이는 기술의 발전의 영향도 크다.
전쟁 초기, 경차량은 적절한 정찰자산이 되기엔 공격능력과 방어능력이 모두 부족했다.
물론, 후기 정찰대대는 훨신 효과적이었음에도 여전히 전투정찰(위력정찰)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공격능력이 부족했다.
중형전차는 그런 임무를 위해 종종 배치되었다. "정찰은 모두의 의무" 라는 독일의 원칙은 오늘날 까지도 실행되며 전차병은 전선 부대에서 왔더라도 정찰을 훈련 받는다.
현대 정찰에 대한 미국의 첫 접근은 달랐다, 기계화된 기병단는 초기부터 더 공격적인 마인드셋을 갖고있었다.
단은 증편된 연대였다. 그 단들은 정찰차량 뿐만 아니라 초기부터 34대의 경전차를 포함했다.
그러나 미국 기병대는 계획에서의 중대한 실수로 정찰을 수행하지 못했다.
초기 미국 침공군은 병력이 부족했고 그렇기에 모든 기갑기병대는 공격작전이나 방어전투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독일이 그러했듯이 경전차는 정찰에 적갑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2차대전은 기계화된 정찰부대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첫 분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전반적으로 더 나은 아이디어와 개념을 갖고있었지만,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독일은 반대로 잘못된 개념으로 시작하여 고쳐나갔다.
이 모든 전훈들은 우리가 현제 배우는 것이고 소련이 1960년대에 첫 IFV를 개발한것이 사라진 마지막 연결고리였다.
"전차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 라고 종종 이야기된다. 주력전차가 정찰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입증되었지만 전담 정찰부대는 그들의 기습성과 속도, 은밀성을 극대화 해야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50mm와 ATGM이 장착된 차륜형 차량이 그런 일에 매우 적갑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합의사항으로 정찰부대는 전통적인 부대와 버금가는 양과 화력이 존재해야한다.
초기 교전에서 살아남는 것 뿐만 아니라 접촉 순찰대의 화력과 공격능력이 위협적이지 않다면 적들은 그들의 위치를 노출하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말로, 정찰부대는 필요하다면 거점을 확보해 사수할 수 있어야한다.
추가적으로 정찰부대는 다른 임무 역시 수행할 수 있어야한다.
전쟁에서 정찰이 지속적으로 수행되는 동안, 지정된 정찰부대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측면 경계부대나 산병과 같은 임무역시 정찰부대가 훈련해야하는 것이다.
정찰이 그저 "잠입하는것" 이나 "누군가를 지켜보는것" 이라는 생각은 많은 민간인들(Recce 로드아웃 논쟁) 뿐만 아니라 많은 군사 전문가들의 머릿속에서도 존재한다.
진실은 정찰 중 오직 일부만이 은밀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현대 전장, 특히 기동전의 개념속에서 은밀한 정찰자산은 너무 느리고 약하다.
언제나 그렇듯, 당신의 관심에 감사드린다.
그래서 제네레이션킬 해병대 수색대가 불만이 그렇게 많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