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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푸바이 FOB 1의 극장)


병사들을 즐겁게 할 때는 두 가지 기본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병사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할 만한 것을 직접 찾아야 한다. 둘째, 그게 무엇이든 상부의 승인을 통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병사들이 여성과 특정 동물들이 등장하는 티후아나 플로어 쇼를 아주 좋아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는 육군이 노새를 쓰던 시절부터 내려오는 여섯 가지 규정에 위배되는 것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경우, 술, 포커, 골동품 슬롯머신 몇 대를 제외하면 FOB 1에서 허용되는 오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주기적으로 상영되는 영화뿐이었다. 이 영화들은 수수께끼의 출처로부터 보내졌고, 운 좋게, 또는 비굴하게 "사기 및 복지" 사업에 뛰어든 일부 이름 없는 후방의 개새끼에 의해 선택되었다.


공식적으로 승인된 오락물이었기에 영화는 단조로운 것부터 밋밋한 영역에만 걸쳐 있었다. 사실 나쁜 영화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이 기대하던 영화는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의심스러운 어떤 이유로 인해 사기와 복지 담당자들이 최전선의 병사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전쟁 영화와 서부극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FOB 1에서는 클럽 뒤편의 작은 지붕이 있는 공간에서 영화가 상영되었다. 적은 인원이 모였기에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포커 게임을 포기할 정신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군들이 관심 없더라도 몽타냐드와 다른 현지병들은 영화를 좋아했다. 사실 그들은 영화를 보고 싶다고 간청하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미군 정찰대원들은 교대로 팀의 "작은 친구"들을 극장으로 안내했다. 일종의 전투 데이트였으며, 더 나은 표현을 빌리자면 극장에서 가족 문제를 느끼며 밤을 보내는 것이었다.


팀의 '단합'과 '결속'에 있어서는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너무 작은 공간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싶어 했으며 영화도 거의 없었다. 또한 FOB 1 기지의 별도 공간에서 생활하던 해칫포스 내에서 소규모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해칫포스는 정찰팀의 임무와 다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이유는 대부분이 캄보디아인이었기 때문에 별도 공간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몽타냐드와 캄보디아인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FOB 1이 주로 정찰 작전을 수행했기에 해칫포스는 차별을 받았다고 느꼈다. 그들은 자신들이 충분한 존중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이는 종종 급여, 장비, 특혜 등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정찰병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나은 숙소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장비를 제공받았으며, 그중 일부는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적절히" 사용할 수 있었다.


정찰대원들은 영화를 볼 수 있지만 해칫포스는 볼 수 없다는 사실과 맞물려, 엉망이 된 케이크에 설탕을 뿌린 격이 되었다. 해칫포스는 자신들도 영화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그들의 요구는 타당했지만, 병참 상의 문제가 있었다. 소규모 정찰대원들을 극장에 데려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했지만, 중대 규모의 부대를 데려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상가상으로 영화는 하루나 이틀 안에 미상의 발송인에게 반송해야 했기 때문에 다중 상영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린베레는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어떤 "천재"(장교였음이 틀림없다)가 FOB 1의 큰길에 침대 시트를 걸고 모두가 함께 영화를 보도록 초대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행복한 한 가족. 


몇 곱절 더 높아진 유대감. 


이 아이디어는 제정신인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몽타냐드와 캄보디아인들이 가까이 모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대다수의 의견이 "좋지 않다"였기에 여러 정찰팀장들은 저녁 포커 게임과 인솔자 역할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대혼란의 가능성이 다른 모든 고려 사항보다 우선시됐다.


그리고 최초의 FOB 1 합동 영화 상영이 시작되었다. 로프 퇴출에 사용되는 로프를 중앙 비포장도로를 가로지르게 묶은 다음, 깨끗한 흰색 시트를 조심스럽게 걸었고 저녁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밑단에 무게를 달았다. 기괴하기는 하지만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해칫포스 병사들이 먼저 행진하여 앞쪽에 일렬로 정렬한 후 바닥에 앉거나 쪼그려 앉았다. 미군 장교와 부사관들은 옆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찰팀들은 캄보디아인 뒤에 서서 자리를 잡았고, 미군 1-0, 1-1들이 그들과 섞여 있었다.


몽타냐드들은 그들이 원하고 훈련받은 대로 CAR-15로 무장한 채로 왔다. 수류탄으로 장식된 웹기어는 두고 오라는 설득을 받았지만, 그들은 어떤 종류의 무기 없이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었고, 특히 100명의 캄보디아인 사이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캄보디아인들은 숨겨진 권총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무장하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되었고, 당연히 서부 영화였다. 그냥 서부극이 아니라 1951년 로이드 브릿지 주연의 고전 영화인 "리틀 빅 혼"이었다. 내용이 전개되자, 현지병 관객들이 누구를 응원할지 고민하며 재미있는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인디언들이 현지병들과 매우 비슷해 보였지만 미군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면 누구를 응원할까? 한동안 이 문제는 모두가 모두를 응원함으로써 해결됐다.


사람들은 곧 완전히 빠져들었고, 다른 것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집중했다. FOB 1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현지병들은 머릿속으로 몬태나의 대초원에서 복잡하고 적대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었고, 이는 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원초적으로 장면에 몰입했다. 그들에게 이 장면은 침대 시트 위의 깜박이는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사적인 생사를 건 투쟁의 일부이자 마법 같은 현실이었다.


반면에 미군들은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친 현대인이었다. 그저 영화일 뿐이었다. 별거 아니었다. 거만하고 멋들어진 커스터 장군이 패배하기 직전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이 있다면, 지난 92년 동안 군의 리더십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장교들은 여전히 무지나 승진을 향한 집착으로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고, 그 결과 훌륭한 장병들이 죽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었다.


커스터가 포위되어 전멸 위기에 처하자, 원주민과 현대인의 시각 차이가 갑자기 드러났다. 공격을 저지해야 했고, 커스터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 때맞춰 약간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누군가 침대 시트에 총을 쐈다.


대혼란, 혼돈, 폭동 중 무슨 일이 생겼을까. 모두 다 일어났다. 시트가 찢어져 갈기갈기 조각났고 프로젝터가 흙바닥에 쓰러졌다. 당황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엄폐물을 찾아 뛰어들었다. 캄보디아인들은 바닥에 엎드리고 목에 걸고 있던 불상을 입에 물고 있었는데, 이는 종말이 왔다는 확실한 신호였다.


정찰팀들은 본능적으로 "사격 및 후퇴" 자세를 취하고 탈출 및 회피 후 지정된 집결지에서 재집결할 준비를 했다. 단지, 지정된 집결 지점이 없었기 때문에 그날 밤이 무사했는지도 모른다. 그 찰나의 망설임 속에서 미군들은 상황을 통제하고 유혈 사태가 벌어질 뻔한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피해는 시트와 프로젝터뿐이었다. 기지 전체가 함께하는 영화의 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막사로 돌아가는 길에 한 몽타냐드가 1-0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쭝시(중사), 왜 커스터는 건쉽을 안 부른 거야?"라고 묻자, 현지병들의 당혹감과 좌절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왜 안 불렀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