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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군인, 특히 보병은 연결, 경계, 정찰, 그리고 분산의 원칙에 이끌어진다.

이 요소들간의 균형적인 적용은 성공을 위해선 매우 중요하다.

특히 분산은 고려요소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초기 역사에서부터 현대 전장까지 어떻게 전술과 과학기술이 분산에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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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선사시대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우리는 추측만 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사람들은 공동체를 형성했고, 사람을 모으는 것은 권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빠르게 알아쳈다는 것이다.

수렵채집인들도 혼자 사냥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부분 큰 그룹을 형성했다.

이것은 군사력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병력을 모으는 법을 배운 쪽이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했을때 유리했을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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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에서 팔랑크스 대형은 표면 중심의 대형의 시대를 열었다.

이 대형은 작은 면적에 성공적으로 군대를 집중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시기엔 표면과 질량의 개념이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지만, 이미 존재했다.

팔랑크스는 작고 밀도가 높았다. 이 높은 밀도는 낮은 밀도의 대형을 쉽게 돌파하고 무너트리게 만들었다. 분산은 척후병 대형에게만 국한되었고 보통은 아무런 이점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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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고대 그리스

발리스타와 같은 공성무기들은 오랜기간 존재했고 언제부터 보병 대형을 향하여 사용되었는진 알 수 없으나 스파르타인들이 그것에 대해 불평했다는 이야기는 전해진다.

그리고 실제로도 보병을 향한 공성무기의 사용은 분산의 중요성을 키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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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로마인들에게 소프트 타겟을 향한 곡사화기의 사용은 이미 흔한 관례였고 그들의 적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군대는 폭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16x16 팔랑크스 대형 대신, 4x12명의 넓은 대형이 적용되었다.

이 방법으로, 공성무기로 인한 사상자를 줄였다.

기병대에 맞서는 종심을 만들기 위해, 2차 대형이 1차 대형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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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밀도가 낮아짐으로 전술이 바뀌어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대기병전술은 개발되어야했고 적 진형의 틈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대형이 필요했다.

밀집 대형의 시대는 끝났다. 일단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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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중세

이 시대동안, 유럽에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상비군은 일부에만 존재했고 영화에서 나오는 대규모 전투는 매우 희귀한 예외였다.

귀족들에 의해 소집된 농노들을 매우 적거나 아에 훈련을 받지 않았다.

이로 인해 사기는 바닥을 쳤고 대형은 다시 조밀해졌다. 이는 전술적 이점이 아닌 농노들의 도주를 막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장궁의 등장은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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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중세

상비군이 늘어나며 장궁이 확산되었고 대포와 같은 흑색화약 무기들이 흔해졌다. 대형은 분산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할 수 있어졌다.

후기 로마의 전술은 다시 전장에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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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18세기는 전술이 가장 큰 혁명을 일으킨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흑색화약 무기는 표준이 되었고, 대형은 더 얇고 넓어졌다.

또한, 흑색화약 무기의 치명성으로 인해, 기병 돌격이 아닌 기동 역시도 효과적이 되어갔다.

열세에 놓인 군대가 항복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군대는 끊임없이 서로를 압도하고자 했다. 전장에서 분산은 더욱 더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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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미국

신대륙에선, 다른 종류의 전쟁이 벌어졌다.

대규모 전투는 유럽에서 일어난 방식과 비슷했지만, 척후병과 레인저 부대는 이후 현대 보병 전술이 되는 것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 부대들은 주력부대에서 멀리 떨어져 목표를 확보하거나 적을 우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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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나폴레옹은 참모 제도의 기반을 마련하고 진정한 대규모 군대를 다시 규합했다. 그는 최초로 군대를 군단으로 분산시켰다.

그 군단들은 분산되어 다양한 목표를 책임지거나 결정적 전투를 찾았을때 규합되었다.

전투공간은 갑자기 몇 제곱킬로미터에서 수천 제곱킬로미터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전술적 전투공간은 매우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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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1차대전 전까지만 해도, 전략가들은 중대를 분소대로 분산하는 것에 대해 논쟁을 하고 있었다.

일부는 군중심리의 지지자였고 그들의 병력이 서로 매우 가까이에서 뭉치길 원했다.

다른 한편에선 침투전술을 사용해 적을 빠르게 압도할 수 있는 소규모 팀을 원했다.

이후 소규모의 쇼크트루퍼를 원했던 자들이 옳았다는게 증명되었고 1차 세계대전은 중대를 수백미터가 넘는 간격으로 분산시켰다.

분산은 기관총과 같은 새로운 무기에 대항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 무기는 거대한 질량의 대형을 파괴하기 위해 나온 무기였다. 너비는 어느때보다 중요해졌고 깊이는 거의, 또는 전혀 일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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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은 또한 분산이 극복해야할 문제를 보여주었다.

독일군은 종종 새로운 과분산된 전장이 응집력의 부족을 초래하는것을 설명하며 "Die Leere des Schlachtfelds"(전장의 공허함)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갑자기, 병사들은 고립되는것을 막기 위해 전우조로 행동할 필요가 생겨났다.

그 조들은 나머지 분대원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연결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우리가 아는 현대의 "버디-화력조-분대" 개념으로의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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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1차대전에서 배운 전훈들은 전투의 모든 참가자가 그 위치를 오랜기간 고수하는 것은 즉각적인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전쟁은 높은 기동성을 가지게 되었고 통신의 발전은 이러한 증가된 분산에 힘을 더해주었다.

소대는 이제 500미터의 너비를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붐비는 전장은 사라졌다.

무기체계가 더욱 가볍고 기동성이 좋아졌다는 것은 분대가 이전엔 가질 수 없었던 화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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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에서 분산의 필요성을 가중시킨 또 다른 요소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포화적인 항공정찰과 항공위협이었다.

크고 밀도가 높은 대형은 쉽게 발각되어 파괴되었다.

이는 다른 부분에선, 대공 지원을 필요로 하기에 분산에 리미트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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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중동전쟁

이 시대엔 현대적 C2시스템의 도입으로 대대는 5 제곱킬로미터 반경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ATGM의 도입으로 기계화부대의 완전한 지배가 다소 줄어들었고 방어의 중요성이 강화되었다.

소규모 인원의 병사들은 이제 다양한 위협에 대비해 넓은 지역을 방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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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2000년대

대대가 담당하는 지역은 갑작스럽게 10 제곱킬로미터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C2기술의 발전과 GPS의 도입덕분이었다.

그러나 또한 이것은 임무형 지휘에 대한 새로운 이해 덕분이기도 했다. 부대는 기동하며 분산되고 빠르게 주 노력을 형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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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UAV는 헤드라인을 장악하며 전장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군대의 반응은 이전보다 더 분산하는 것이다, 소대는 종종 응집된 전투부대를 구성할때 연결이 끊기는 위협에 노출된다.

누군가는 이러한 분산이 정규부대의 능력 이상으로 벌어졌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전자전은 부대의 응집력이 남아있게 하는 것을 완전히 부술 수 있기에 더욱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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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이야기 후,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일이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부대를 더 넓은 지역에 분산시키는 군대의 분산의 연속일 뿐이다.

한편, 이는 소부대 전술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위협완화의 중요성으로도 일어났다.

종종 분산은 기동의 자유의 결과로 여겨지지만 역사는 그것이 자주 강요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고대 그리스의 모든 군대가 들어갈 수 있는 사진에 오늘날 우리는 한대의 전차밖에 볼 수 없다.

언제나 그렇듯, 당신의 관심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