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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그라운드 11장: 작별 인사(푸바이 사격장에서, 왼쪽부터 존 S. 마이어, 존 '버바' 쇼어, 찰스 보그)1969년 1월 이전부터 수개월 동안 FOB 1의 폐쇄가 임박했다는 소문이 병사들 사이에서 돌면서 미군과 현지 대원들 모두에게 우려와 의문gall.dcinside.com


전편과 이어짐


문장별로 끊어서 썼던 이전과는 달리 화제가 자주 바뀌는 관계로 문단으로 모아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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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CCN 정찰 중대 간판)


틴 대위와 킹비 편대가 이륙하여 북쪽의 다낭 비행장으로 향한 후, 나는 우리를 새 집으로 데려다 줄 트럭으로 걸어갔다. 운전병이 내게 미군 팀룸으로 갈 것인지 물었다. 나는 월남 팀원들을 새 팀룸으로 먼저 데려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대원 팀룸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들의 생활에 문제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운전병은 우리를 현지 정찰 팀원들이 있는 기지의 남동쪽 모퉁이로 데려다줬다. 놀랍게도 새로 지어진 팀룸은 팀이 푸바이에 있던 방보다 훨씬 더 넓었다. 상상 이상으로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깨끗하고 편안했으며 매트리스가 있는 침대, 베개 몇 개, 작은 테이블 등 기본적인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심지어 조명도 작동했다. 게다가 샤워 시설도 FOB 1보다 훨씬 좋았다.


운전병이 나에게 현지 대원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 저녁 식사가 제공될 것이라며 우리보고 배가 고픈지 물었다. 그것은 마치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을 마실 수 있냐고 묻는 것과 같았다. 팀원들은 며칠, 몇 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은 사람들처럼 대답했다.


나는 현지 팀원들을 식당까지 데려다주는데 버바가 도와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운전병에게 그를 배정된 숙소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정찰팀 구역에서 가장 동쪽 줄에 있는 막사에 머물게 되었다. 막사는 남북으로 세 줄로 줄지어 있었다. 우리 막사에서 뒷문을 열면 나무, 덤불 등과 함께 약간 솟아오른 긴 모래사장이 해변과 남중국해에 닿을 때까지 펼쳐져 있었다.


버바와 운전병이 떠나자, 나는 팀원들을 모아 현지 대원 식당으로 안내했다. 주로 번거로움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그런데 걸어가다 문득 푸바이의 현지 대원 식당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들이 어떻게 식사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깜짝 놀랐다. 작은 그릇, 젓가락,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봉밥, 매콤한 소스를 곁들인 맛있는 쇠고기 요리가 가득했다. 


사우가 팀원들과 함께 먹자고 손짓했고, 나는 그의 옆에 앉아 매운 고추를 피하며 밥에 쇠고기를 얹어 먹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따라 작은 밥그릇을 입술에 가까이 대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입에 쓸어 넣었다. 쇠고기 한 그릇을 다 먹은 후, 나는 히엡에게 샤워하고 나서 나중에 돌아와 팀원들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히엡과 사우에게 내가 어디에 있을지 알려주고 밖으로 나섰다. 이전에 나는 1968년에 FOB 4를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기지가 얼마나 넓은지, 사방에 모래가 얼마나 많았는지 잊고 있었다. 특히 무거운 웹기어를 착용하고 CAR-15를 들고 이동하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었다.


내가 방에 도착했을 때, 린 블랙 주니어가 와서 버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블랙은 1번 고속도로를 따라 푸바이에서 하이반 패스를 지나 베트콩 매복을 뚫고 다낭에 도착하는 험난한 여정을 마쳤기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FOB 1의 모든 그린베레 장비는 다른 SOG 기지로 옮겨야 했다. 작업에 필요한 헬기가 충분하지 않았기에 그린베레 대원들은 버나드 폴이라는 저술가가 "기쁨이 없는 거리"라고 불렀던 1번 고속도로를 따라 죽음의 구간을 달려야 했다. 그리고 폴은 나중에 1번 고속도로에서 목숨을 잃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지프 한 대가 밖에 멈춰 섰다. 누구인지 궁금해서 밖을 보니, 운전병은 월남군의 빨간 베레모를 쓰고 있었고, 오른쪽 좌석에는 미군 장교가 앉아 있었다. 그 미군 장교는 우리를 방문하겠다는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차에서 내렸다. 


놀랍게도 그 장교는 기지 사령관인 잭 "아이스맨" 아이슬러 대령이었고, 다른 방향에서 우리 쪽으로 걸어온 사람은 얼 매킨토시 원사였다. 그가 전임자만큼 좋은 사령관이 아니라는 기지 내 소문 외에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반면 매킨토시 원사는 우리와 함께 FOB 1에 잠깐 주둔한 적이 있었고 냉철한 사람으로 평이 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너무 강압적이라며 불평했지만, 그는 항상 내게 솔직하고 공정했다. 예를 들어, 내가 현지 팀원들의 추가 외박권을 요청했을 때 그는 그 이유뿐만 아니라 내가 그들을 신뢰하는지도 알고 싶어했다. 내가 그 질문에 답하자, 그는 만족한 듯 외박권을 발급해 주었다.


또 한번은 내 머리가 왜 그렇게 긴지 물었다. 내가 그동안 현장에 있었거나 연속해서 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설명하자,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긴 머리가 허용되는 유일한 이유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머리를 자르라고 지시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원사까지 막사에 들어서자, 나는 방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아이슬러 대령에게 경례를 했다. 그의 뒤에는 매킨토시 원사가 서 있었다. 운전병은 지프에 남아 있었다. 아이슬러 대령의 메시지는 직설적이었다. 카우보이 놈들이 CCN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육군과 CCN의 규칙과 규정을 모두 엄격하게 준수하지 않는 모든 미군 대원들을 군법회의에 회부하겠다고 위협했고, 새로 도착한 대원들과 기존 FOB 4 대원 사이에 마찰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RT 아이다호가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그에게 무기에서 모래만 털어내면 바로 준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눈에서 미소를 살짝 본 것 같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다음 그는 정찰팀과 해칫포스를 비롯한 모든 대원들이 기지 경계를 개선하는 과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여기에는 참호와 벙커를 파고 FOB 1, FOB 3 및 FOB 6에서 유입되는 인력들을 위한 막사 건설이 포함되었다. 


아이슬러 대령은 질문이 있는지 묻는 것으로 "CCN 환영" 연설을 마무리했다. 그의 목소리 톤을 보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좋을 것이라는 걸 분명히 암시했기에 나는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경례를 했다. 그는 경례를 받고 돌아서서 들어왔을 때와 동일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는 바쁘고, 유머도 없고, 말도 안 통하고, 빡센 개자식 같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즉시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매킨토시 원사는 아이슬러 대령이 떠난 후에도 잠시 머물렀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그의 전투복 오른쪽 소매에 달린 제187 공수연대전투단 패치를 다시 보았다. 팻 왓킨스는 매킨토시를 존경했는데, 그 이유는 한국 그가 전쟁 당시 187연대가 북한과 중공군에 맞서 두각을 나타냈던 몇 안 되는 전투 강하 사례 중 하나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아이슬러의 지시에 따라 매킨토시는 단문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매우 진지했다. 내일 아침에 점호가 있을 것이고 거기에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점호 후에는 "폴리스 콜", 즉 기지 구역에 대한 청소가 있을 것이며 전체 RT 아이다호 전 팀원이 참여하게 될 것이었다. CCN에는 특권을 누리는 그룹이 없었고, 목숨을 걸고 월경 임무를 했다고 해서 기지 생활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RT 아이다호가 다음 날 아침에 임무를 부여받지 못하면 아침 식사 후 비가 오든 안 오든 하루 종일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일을 도와야 했다. 


마지막으로, RT 아이다호의 모든 대원들은 동쪽 경계선을 따라 야간 경계 임무를 맡을 것이었다. 예외는 일절 없었다. 우리가 이 소식을 받아들이는 동안 매킨토시는 갑자기 블랙에게 불도저를 운전할 수 있는지 물었다. 블랙이 할 수 있다고 말하자 매킨토시는 아침 점호 후에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말했다. 


막사에서 나오려고 돌아서던 매킨토시는 멈춰서더니 진지한 대화를 할 때처럼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며 나를 향해 다시 다가왔다. "아이슬러 대령은 카우보이를 좋아하지 않아. 나도 그렇고. 아이슬러 대령은 매우 엄격한 사람이지만 공정한 분이시지. 그에게 시간을 줘 봐. 그리고 CCN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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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N 전출 직전 푸바이의 FOB 1, 제프리 L. 정킨스와 후방에 얼 매킨토시 원사)


그가 충분히 멀리 갔다고 확신한 나는 "좆같은 규율과 말도 안 되는 것들의 집합소인 CCN에 온 것을 환영한다."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블랙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정찰하러 온 거지 미화나 조경 작업을 하러 온 건 아닐 텐데." 블랙은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나는 CAR-15에 손을 댔다. 우리가 CCN에 온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미 얇은 모래층이 총 위에 쌓여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흙을 긁어내며 말했다. "이것 좀 봐. 푸바이보다 더 심해." 


그러자 내 이빨에도 알갱이 같은 것이 씹히는 것이 느껴졌다. "샤워를 해야겠어. 이 빌어먹을 곳과 여기의 좆같은 것들이 다 싫어." 나는 시트용 판초 라이너 두 개를 꺼내 블랙과 함께 뒷방에 있는 침대에 던졌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왼쪽으로 돌아서 막사 몇 개를 지나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실로 들어가자, 샤워기 소리가 들렸고, 월남 여성이 쪼그리고 앉아 생식기를 씻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푸바이에서는 이런 문제를 겪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더러웠고 모든 것들이 역겨워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바로 걸어가 물을 틀었다. 하지만 태연한 척을 할 수 없었다. 더 큰 놀라움을 느꼈다. 물이 뜨거웠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푸바이에서는 밤에 뜨거운 물을 써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말이다. 길고 뜨거운 샤워라는 예상치 못한 사치는 CCN의 먼지와 모래를 씻어냈을 뿐만 아니라 내 속에 있던 불안감에도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다. 적어도 CCN에 대한 구원의 은총이 한 개는 있는 셈이었다.


발을 닦고, 수건을 허리에 감은 후 숙소로 돌아와, 블랙, 버바 그리고 나는 새로운 기지에 대한 불평으로 남은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에 현지 팀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봐야겠다는 생각에 장비와 무기를 챙기고 월남 대원 팀룸으로 향했다. 처우 악화를 예상한 나는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모래밭을 걸어 나갔다. 그러나 문제는커녕 월남 팀원 몇 명은 샤워를 마치고 이미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푸옥, 까우, 헝은 FOB 1에서 가져온 C-4 중 일부를 이용해 금속 수통컵으로 밥과 생선 요리를 만들어 야식을 준비했다.


그들이 요리하는 동안, 갓 샤워를 마친 사우, 히엡과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 모두 새로운 팀룸에 만족하며 현지 대원 식당의 셰프가 친절하고 넉넉한 음식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사우는 팀에서 유일한 기혼자였고 히엡은 다낭으로 이사 온 오랜 동반자가 있었기에 그들은 애인들과 만나고 새 거주지의 가사를 도울 수 있도록 외박권을 받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팀 전체가 다음 날 밤 보초를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그들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외박권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히엡이 문 쪽으로 턱짓을 했고 우리 셋은 밖으로 나갔다. 사우 외에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어깨 너머로 살펴본 후, 히엡은 8월 23일에 기지 내부의 월맹군 요원들이 습격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RT 아이다호 대원들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며칠 동안 베트콩 조력자나 월맹군 요원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자체적으로 비밀리에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또 다른 습격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놈들을 추적해서 죽일 거야. 습격 중에 베트콩이 훌륭한 정찰대원들을 죽였지. 여기에 베트콩이 있어도 걱정마. 우리가 처리할 테니까." 히엡이 말했다. 나는 그에게 할 수 있는 대로 뭐든 알아내서 알려달라고 말했다. 만약 필요하다면, 포로 생포를 시도할 때 월맹군 병사에게 "니 캡"을 하는 데 사용했던 .22구경 소음 권총을 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잘 자라고 말하기 전, 사우는 내가 기지에서 웹기어를 착용한 것을 보고 놀렸다. 그의 놀림에 미소를 지었지만, 8월 23일은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고, 적들이 무언가를 꺼낸다면 최소한 완전 자동으로 쏴버릴 수 있는 옵션이라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모래를 밟으며 팀 막사로 돌아가는 동안, 나와 마주쳤던 소수의 미군들이 권총만 들고 있었기에 내가 약간 과하게 차려입었고 조금 어리석게 느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팀룸에 들어간 후, 침대로 가서 벽에 박힌 못들 위에 CAR-15를 올려놓으려고 침대 위로 손을 뻗었는데, 그새 상부 덮개에 모래가 묻어 있었다. 씨발놈의 모래, 안 묻을 틈이 없었다. 나는 모래를 막아주기를 바라며 녹색 크라바트(커다란 삼각건)를 가져다가 총 위에다 둘렀다. 


아침이 되자 꽤 세차게 비가 내렸다. 누군가가 와서 아침 점호는 없지만 비가 오든 해가 쨍쨍하든 아침 식사 후에는 임무 점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에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침 식사 후 점호가 끝나고 RT 아이다호 대원들이 모래주머니를 채우기 시작하자 비가 잠시 그쳤다. 첫 휴식 시간에 나는 팀원들과 함께 기지의 북동쪽 모퉁이로 이동했고, 그곳에는 해변으로 통하는 구멍이 있었다. 남쪽을 바라보니 새로운 철조망과 최근에 묻힌 크레모아가 보였다. 하지만 강한 바람과 비로 인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위장되어 있던 크레모아는 비바람으로 인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대인 지뢰 몇 개도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기지 방어를 개선하기 위해 할 것들이 매우 많았다.


크레모아 도폭선은 들쭉날쭉한 참호 사이에 세워진 벙커를 향해 서쪽으로 이어졌다. 마치 1차 세계대전의 참호를 연상시켰다. 나는 벙커와 참호 일부를 가리키며 RT 아이다호가 임무를 수행하게 될 때까지 며칠 동안 보초를 서게 될 곳이라고 말했다. 


한편 매킨토시와 블랙은 인근 씨비(Seabee) 기지를 방문하여 CCN 지프를 담보로 남겨두고, 불도저와 프론트 로더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그들은 위장 판초, 판초 라이너 및 "전쟁 기념품"과 함께 공군 기지로 향하여 에어컨 몇 대와 교환했다. 


물물교환은 군의 오랜 전통으로, 그린베레 대원들은 항상 돈이 많은 해군 및 공군과 선풍기, 소형 냉장고, 스테이크와 같은 식량과 생필품을 물물교환했다. 물론 블랙은 찢어진 피 묻은 월맹군 깃발이 CCN에서 일했던 하녀 중 한 명이 만든 것이며, 그가 가지고 있던 AK-47은 푸바이에서 가져온 오래된 총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못했다. 


블랙을 제외한 우리들은 파편과 소화기 사격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각 건물 주변에 쌓은 모래주머니를 계속 채웠다. 오후 중반이 되자 비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월남 팀원들을 팀룸으로 돌려보내 몸을 말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히엡과 사우에게 시내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을 마련해주면서 그날 저녁 보초 임무 시간에 맞춰 돌아오라는 약속을 했다.


버바와 내가 숙소로 돌아오자, 제프 정킨스가 우리를 보고 소리쳤다. "서핑 시작! 한 번 봐봐." 그는 내게 서핑을 하냐고 물었다. 나는 바디서핑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서핑 시작이야, 틸트, 어서 가자." 정킨스는 어디선가 발견한 긴 서프보드를 들고 남중국해를 향해 계속 이동하며 말했다. 


놀랍게도 평소에 잔잔하던 남중국해에 파도가 일었고 정찰대원 몇 명이 이미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서핑하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된다는 냥, 나는 정킨스에게 비가 온다고 말했다. "젖을까 봐 걱정되냐?!" 그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짧은 시간 동안 지역 경계, 보초, 월맹군 공병 습격에 대한 모든 걱정이 물에 씻겨 나갔다. 정킨스는 바디 서퍼들에게 길을 비키라고 소리쳤고, 우리 미천한 바디 서퍼들은 그에게 모래놀이나 하라고 말했다.


"이미 하루 종일 모래주머니 가지고 놀았어. 길을 비켜라, 찌끄레기들아!" 정킨스가 대답했다. 우리 모두 물속에 있었고 해변에서 누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고 서로 소리 지르고 웃고 있었기에, 베트콩이나 월맹군이 해변을 따라 내려왔다면 수많은 "미군 사살" 훈장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잠시 후 누군가 낡고 너덜너덜한 흰색 가죽 풋볼 공을 가져왔다. 곧 두 팀이 해변을 따라 줄을 지어 투핸드 터치 풋볼을 시작했다.


비교적 사이드라인과 엔드존이 잘 구분되어 있던 FOB 1과 달리 이 즉석 풋볼 경기장은 모래밭이 충분히 넓지 않아서 바다에 들어가야만 했다. 물속에서 풋볼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었는데, 리시버는 공 때문에 불필요한 다이빙을 하는 반면, 러너는 물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곤 했다. 소란스럽고 떠들썩한 게임은 우리 모두에게 큰 스트레스 해소가 되었다. 


나중에 버바와 내가 팀 막사로 돌아왔을 때, 버바는 몇 가지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CCN 본부에 공석이 있는데 그 자리를 맡고 싶다고 말했다. 버바는 정찰 임무에 지쳤고, 더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내가 화내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버바에게 1968년 11월과 12월에 우리가 많은 임무를 수행했고, 탄약이 바닥난 데다 헬기가 로프로 우리를 철수시키기도 전에 밤이 다가왔던 12월 말의 임무 등 모든 임무가 월맹군과의 총격전으로 끝났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68년 11월 캄보디아 목표에서 목숨을 걸고 도망치던 중 우리 목숨을 구한 5초 신관을 만드는 등 그의 뛰어난 활약에 감사를 표했다.


그가 마지막 임무에서 몇 번이나 망설였던 것과 총격전 중에 사우가 그에게 얼마나 실망했는지에 대한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또한 블랙잭이 RT 아이다호에 합류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버바가 RT 아이다호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그가 새로운 직장에서 힘든 일 없이 잘 지내길 기원했다. 헤어지면서 나는 버바에게 우리는 극소수만이 경험한 임무를 수행했고 어떻게든 살아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침에 쇼어가 막사에서 나오자, 나는 매킨토시에게 버바를 대신해 블랙을 RT 아이다호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매킨토시는 블랙이 FOB 1에서 "단 한 번의 임무만 수행했다"는 점을 내게 상기시키면서도 그가 블랙을 존중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방식으로 말했다. 블랙은 그 "한 번의 임무"에서 은성훈장을 받았다. 나는 매킨토시 원사에게 내가 블랙을 존경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SOG에 합류하기 전에 제173공수여단에서 복무를 마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몇 주 동안 CCN에서의 생활은 즐거운 놀라움과 예상 가능한 군대의 헛짓거리가 흐릿하게 섞인 혼합물 같았다


기지의 북동쪽 모퉁이에 누군가 모래 위에 배구 네트를 세웠는데, 푸옥과 몇몇 월남 팀원들이 흥미를 보였다. 어느새 우리는 배구를 하고 있었고, 푸옥과 손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구기 선수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평소 과묵했던 푸옥은 제한된 영어를 아는 대로 구사하고 월남어로 욕설을 퍼붓는 등 매우 전투적으로 변했다


CCN 클럽하우스에는 TV가 있었고, 한 채널에서는 쿼터백 조 나마스가 이끄는 신생팀인 뉴욕 제츠가 우승 후보였던 볼티모어 콜츠를 꺾은 슈퍼볼 III의 놀라운 승리의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클럽 주크박스에는 FOB 1의 주크박스보다 더 많은 로큰롤이 있었다. 지미 헨드릭스, 더 도어스, 제퍼슨 에어플레인 외에도 크레이지 월드 오브 아서 브라운이라고 불리는 그룹의 "파이어"라는 노래가 있었다. 가사는 마치 점점 더 치명적인 위험에 직면하도록 정찰팀을 파견하는 사이공과 펜타곤의 지휘부를 묘사하기 위해 쓰인 것처럼 들렸다. "I am the God of Hell fire and I bring you... Fire, I send you to burn. Fire, I bring you to learn. I'll see you burn. You're going to burn."... 우리가 목표 지역에서 네이팜탄을 여러 번 사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서 브라운이 열광에 휩싸여 목소리를 높여가며 외친 "You're gonna to burn. You're gonna burn, you're gonna burn, you're gonna burn, burn, burn, burn, burn, burn, burn."이라는 소름 끼치는 가사는 매우 적절했다.

한 REMF 하사는 정찰팀 점호와 서류 작업을 더 많이 시키는 것과 더불어, 블랙과 내가 막사 주변에 모래주머니를 충분히 놓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보초를 선 처음 며칠 밤은 별일 없이 지루했지만, 처음으로 RT 아이다호의 월남 팀원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어 즐거웠다. 당시 팀의 월남인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졌는데, 하나는 "오래된 프로들"로, 베테랑 팀원이자 농부인 사우는 1966년부터 정찰 활동을 해왔고,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도시 출신인 히엡은 1967년에 SOG에 합류했으며, 의사가 되고 싶었던 뚜안은 1967년에 RT 아이다호에 합류했다. 반면 젊고 어린 대원들인 푸옥, 차우, 까우, 손, 헝, 보, 민은 1968년 5월, RT 아이다호에서 미군 2명, 월남인 4명 등 6명이 실종된 후 팀에 합류했다.

젊고 어린 대원들 중 푸옥이 월남 팀원들 중 가장 강인했고 신체적으로도 키가 크고 힘이 좋았다. 히엡은 작년에 푸옥이 작년에 담배를 떨어뜨리지도 않고 월남 경찰관 두 명을 팬 이야기를 들려주며 즐거워했다. 우리가 차우, 까우, 손, 헝, 보를 고용했을 때 그들의 나이는 15~16세였다. 1969년 무렵, 젊은 팀원들 중 한 명이 번갈아 가며 사우, 히엡, 푸옥 또는 뚜안과 임무를 수행하는 식으로, 사우는 보와 민을 제외한 각 젊은 팀원들이 로테이션으로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1969년 2월 무렵, 푸옥은 모든 임무에서 포인트맨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손이 젊은 대원들 중 두 번째로 강인한 정찰대원으로 성장했다. 종종 사격장에서 하루 동안의 훈련을 마친 후, 사우는 각 젊은 팀원들과 함께 전술, SOP, 개인 기술을 검토하곤 했다. 사우는 일대일로 개인적으로 그들의 멘토링을 해주었다. 나 또는 히엡의 제안 없이 사우 스스로 한 일이었다. 

매킨토시 원사가 우리 막사에 들러 블랙과 내게 팀에 세 번째 미군 팀원을 바라는지 묻자, 블랙은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우리 팀의 현지 대원들이 기지에 있는 미군들보다 정글에서 더 나으며, 새로운 미군 대원을 훈련시키는 데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임무가 있으니 작전본부로 가보라고 말했다. 작전본부에선 DMZ 목표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다음 날 아침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킹비들은 우리를 새로운 SOG 발진기지가 설립된 푸바이의 캠프 이글에 있는 제101 공수사단으로 데려다주었다. 1번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FOB 1에서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목표물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후 101사단은 우리를 꽝찌 발진기지로 데려갔고, 이어서 우리는 목표 지역으로 투입됐다. 우리는 첫 번째 LZ에서 총격을 받았고, 두 번째 LZ도 마치 월맹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았다. 

수목선에 여러 명의 월맹군이 있었다. 다행히 푸옥 또는 사우가 숨어 있는 적군 중 한 명을 발견하고 101사단 헬기가 지면에 닿기 전에 적들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잠시 긴장의 순간이 흐른 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정글에서 월맹군의 총격이 울려 퍼지자, 도어거너도 사격을 퍼부었다. 휴이 헬기는 고양이처럼 곧장 뛰어오르는 듯했고, 몇 초 만에 우리는 치명적인 LZ에서 벗어나 상공에 있었다. 크루치프와 도어거너가 기체의 손상 여부를 확인하는 동안 블랙과 나는 팀원들을 확인했다. 기적적으로 부상자는 아무도 없었다. 헬기는 몇 차례 총격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푸바이로 날아갔다.

그 몇 초간의 갑작스러운 분노는 일주일이 넘는 CCN에서의 지루한 기지 생활 때문에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어두워진 CCN에 도착해 사우, 히엡, 푸옥, 헝이 클럽에서 가져온 음식과 시원한 음료수를 충분히 먹었음을 확인한 후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블랙과 나는 팀원들을 데리고 기지 남쪽, 마블 마운틴 앞에 대원들이 무기를 시험 사격하는 곳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M-79 유탄을 쏘는 본격적인 실사격 돌발 상황 대응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팀을 준비했다. 

또한 블랙과 나는 사우, 히엡과 함께 포인트맨이 AK-47을 휴대하는 등 월맹군 군복과 장비를 착용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우리 측 포인트맨이 월맹군 포인트맨과 마주친다면, 적군은 우리 측의 월맹군 군복을 보고 머뭇거릴 테니 우리 포인트맨이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이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AK-47 몇 자루를 가지고 시험 사격 후 곧바로 돌발 상황 훈련에 사용했다.

AK-47 사격과 함께 첫 훈련을 마치자, 통신본부에서 지원이 필요한지 묻는 정신없는 무전이 날아왔다. 나는 방금 AK-47 총성은 훈련의 일부였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후 REMF 하사 중 한 명이 지프를 몰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기지에 있던 여러 대원들이 불안해했고 기지 근처에서 AK-47 총성이 들리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었다.

2월 초까지 우리는 적 활동이 분주한 LZ 몇 군데를 더 마주했다. 심지어 태국 나콘파놈에 있는 극비 발진 기지까지 가서 투입되기도 했으나, 지상에 도착하기도 전에 총격을 받고 목표에서 철수했다. 이런 일이 아이스맨의 임무 증가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