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자 공장"
미국 남북전쟁이 예고한 1차대전
2차대전에서, 만명의 군인 중 30명이 전투중, 혹은 비전투 부상으로 사망했다.
이는 이미 큰 숫자지만, 미국 내전(남북전쟁) 기간에는 만명중 180명이 이러한 치명적 부상으로 사망했다.
미국 내전은 끔찍했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이는 1차대전의 재앙적인 결과를 예고했다. 이제 그 이유와 동시에 그 둘이 크게 달랐는지를 살펴보자.
보통, 어쩌면 북군과 남군 모두 앞으로 있을 "새 전쟁"을 수행하기에 적갑하다고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독립전쟁기때 미군은 임무형 지휘의 얼리 어댑터 였고 척후병 대형과 순찰을 포함해 전투에 있어서 높은 수준의 분산을 적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립 이후, 모든것은 잊혀진 듯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군은 독립 이후 영국군과 전통적인 유럽대륙군대의 전술을 표준으로 적용했다.
미국이 로저스 레인저와 슈토이벤 남작에게 배운것은 모두 잊혀진듯 보였다.
무기는 점점 더 치명적으로 변해갔지만, 19세기 전쟁의 조잡한 전술은 그대로 적용되었다.
방어는 강해지는 반면, 공격은 정체되었다.
공격을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어자보다 월등히 많은 병력을 모으는 것 뿐이었다. 공격은 종종 연대를 통채로 들이박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미국은 결정적 전투라는 개념을 접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미국내전에서 유럽에서 기동전은 방어를 극복할 수 있는 전술의 부재로 작동을 멈췄다.
양측 지휘관이 같은 전쟁대학을 다녔고 서로의 전술을 알고있을 뿐 아니라 서로의 성격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
양측은 모두 결정적 전투를 원했지만 어느쪽도 이를 적용하지 못했다.
또 다른 문제는 질병이었다.
미국 내전은 전투보다 사고와 질병으로 죽는 병사가 더 많았다.
이에 대한 핵심적 요소중 하나는 미국의 농촌적 특성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 살아왔고 도시와 같이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 사는것과 관련된 병원균을 경험하지 못했다.
갑자기, 북군과 남부군이 시골에 살던 평범한 청년들을 대리고 와 대규모 군사기지에 넣었다.
이것은 누군가를 병들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고른 것과 같았다.
의학적 측면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의료 역량의 급격한 발전이 잘못된 결과를 이끌어냈다.
의사들은 새로 얻은 지식을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아닌 치료하는 것에 사용하길 바랬다.
그래서 의료적 예방책으로 캠프나 참호의 위생상태를 검사하는 대신 의사들은 질병을 치료하기위해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에 더 신경썼다.
보급은 양측 모두에게 도전적이었다, 그러나 특히 남부군에겐 더했다.
철도 네트워크는 아직 남쪽에 완성되지 않았고 도로의 상태는 끔찍했다.
병사들은 종종 식량조달을 주요 계획으로 구성해야 했다. 심지어 군복이나 재대로 된 의류, 신발조차 부족했다.
탄약은 종종 증원병력보다 늦게 도착하여 병사들을 대규모 집회장소에서 대기하게 만들어 교착상태에 일조했다.
남부연합의 주들은 그들의 농촌적 특성이 결정적 이점이 될 것이라 잘못 판단하였다.
자연적 장애물과 외딴 시골지역이 주요 방어지점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북부는 현대화된 전투공병대의 도움으로 강과 같은 자연적 장애물을 빠르게 돌파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외딴 시골지역에서어 전투는 예상과 달리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북군은 대부분의 주요 전투지역을 우회했다.
외딴 시골지역은 거의 가치가 없었기에 산악지역과 숲 전투에 굳이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전투는 대부분 개활지나 인구밀집지역 인근에서 벌어졌고 "숲에서 싸우는 애국자" 라는 낭만적인 아이디어는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언급되었던 보급 말고도 피로도의 문제는 양측의 준비시간을 장기화했다.
게티즈버그 전투를 위한 준비는 6월 15일날 시작되었다.
전투는 7월 1일에 시작되었다.
역사적으로도 1번의 교전을 위해 2주 이상의 준비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너무나도 길었다.
양측 모두 끔찍한 손실을 맛보았다. 특히 리와 미드는 서로가 어떤 전술을 쓸지 잘 알고있었기에 게티즈버그의 결과는 예견되지 못한게 아니었다.
미국 내전과 1차대전 - 같지만 다른것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때,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모든 진영은 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누가 처음 시작할지만이 문제였다.
전투진지는 사전에 만들어졌고 대부분의 참여국들, 특히 독일은 1차대전을 기동전으로 만들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전략적 상황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지 않았다.
미국 내전은 결과적으론 비슷했지만 달랐다. 그 당시엔 새로운 전쟁에 대한 현실을 받아들일 의지도, 그것을 이용하려던 능력도 없었다.
1차대전에선 다가올 전쟁이 다를 것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미국내전에서, 양측은 모두 새로운 무기가 전장에 가지고 온 치명성에 놀랐다.
신무기들은 새로운 전술로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전쟁은 소모전이 될 것이다.
다른 무기를 압도하는 신무기를 만드는 것은 실제로 가능하긴 하지만 그것에만 의존하는 것은 수가 막힌 교착 상태와 잔혹한 산업력 기반의 소모전을 만들 것이다.
1차 대전은 전략적 상황때문에 교착 상태로 이어졌다.
미국 내전은 누구도 전쟁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신경쓰지 않았기에 수가 막힌 피투성이 교착으로 끝났다.
내 생각으론, 군사 전략가들에게 있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소모전을 피해야하는 것은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우선목표여야 한다.
뛰어난 산업역량과 높은 출산률이 있는 국가에서 마저도 그러한 수단으로 승리한 전쟁은 불명예스러운 참혹함으로 기억된다.
소비에트 연방이 그들의 2차 세계대전 사상자를 감추거나 부인하고자 많은 노력을 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심지어 현대 러시아에서도 군사 연구자들이 "대조국전쟁" 에 대한 깊은 연구를 진행하다가 체포되는 일은 숨겨진 이야기가 아니다.
소모전은 선택지가 아니다.
전쟁을 가능한 신속하게 승리하는 것은 우선시되어야 한다.
1차대전의 독일이 개전 초반의 기동전을 할때 하루에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온것은 사실이나 그 후에 수년간 독일이 잃은 사람들의 숫자는 거의 아무것도 주지 않았고 그 사상자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현대 군대는 신속하고 민첩하며 뛰어난 보급능력을 확보해야한다.
미국 내전의 또 다른 전훈은 외딴 지역의 중요성에 대한 남부의 잘못된 판단이다.
필요가 없다면 그 누구도 숲에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산림지역은 그것이 중요한 접근로가 아닌 이상 우회될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많은 서구 군대에서 잘못 퍼져있는 내러티브다. 많은 훈련들이 숲에서 진행되지만 진짜로 군대가 서로 부딪히는 곳은 개활지거나 도심지역이다.
우크라이나에선 심지어 러시아군이 숲을 접근로로 사용하는것을 막기위해 의도적으로 숲에 FASCAM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군대는 가능한 빠르게 적을 찾고, 고착시키고, 파괴해야 한다.
방어는 공격으로 가능한 빨리 돌아가기 위한 일시적 수단일 뿐이다.
보급이 적거나 없는 상황에서 전쟁을 이기는 법을 계획하는 것은 전쟁을 지는 법을 계획하는 것과 같다.
미국 내전은 어떻게 전술과 작전적 계획수립 과정의 부족이 불필요한 전사자를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준다. 첨단기술의 진화와 함께, 전술은 진화해야한다.
언제나 그렇듯, 당신의 관심에 감사드린다.
비슷한 실수를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제국이 저질렀다는 걸 생각하면 시사하는 바가 참 많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