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이 캐니언 작전 중 제리 슈라이버 중사)
씰갤 시절에 TF 무어에 있던 대원 시점에서 본 듀이 캐니언 작전 글을 올리긴 했는데 씹스압인 관계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듀이 캐니언은 미 해병대 9연대의 아샤우 계곡 평정 작전이었음
이때 해병대를 향한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SOG CCN 해칫포스 A중대와 B중대가 정보장교인 무어 소령의 지휘 하에 TF 무어라는 이름으로 투입됨
미 해병대 9연대는 전술적 성공이라는 판단 하에 3월 중순에 작전 철수를 진행했고 TF 무어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무튼 철수하며 작전을 마무리 함
이 글은 TF 무어와 해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또 다른 부대인 TF 미도우즈의 무용담 모음집임
1969년 3월 8일-13일/미 해병대 듀이 캐니언 작전
TF 미도우즈: 지원 STRATA 팀 2개 + 해칫포스
CCC/R.J. "딕" 미도우즈 대위/은성훈장
몽키마운틴 FOB/LD 헌트 하사/V기장이 달린 동성훈장
이하 CCS 예하 팀/로버트 B. 킬레브루 중위/퍼플하트, V기장이 달린 육군 공로 훈장
윌리엄 H. 오루크 주니어 중위/퍼플하트, V기장이 달린 동성훈장
중대 일등상사 토마스 투미 주니어 상사/퍼플하트, V기장이 달린 항공 훈장
제리 M. 슈라이버 중사/퍼플하트
나다니엘 존슨 중사/V기장이 달린 육군 공로 훈장, 퍼플하트
소대장 프레드릭 J. 호크스트라서 중사/V기장이 달린 육군 공로 훈장
브라이언트 J. 슈뢰더 하사/V기장이 달린 육군 공로 훈장
"듀이 캐니언"이라고 불리는 이 미 해병대의 작전은 제3 해병 사단의 예하 부대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때 CCC의 전설적인 대원인 딕 미도우즈가 이끈 이 SOG & CCS 태스크 포스가 훌륭하게 싸웠고, 위에 언급된 CCS 대원들을 포함해 5명의 미군 부상자가 발생했다.
제1 군단 지대에서 미 육군 그린베레와 미 해병대의 합동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10일간 진행된 이 수색 및 파괴 임무에 대한 초기 보도는 존 플라스터의 "SOG: 비밀전쟁의 사진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오스에서 해칫포스는 적진 뒤에서 자주 레이드 임무를 수행했지만, 미국 정책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1970년까지 캄보디아의 "다니엘 분" 지역에서의 활동이 허용되지 않았기에 CCS 중대들은 월남 쪽 국경에서 활동했다. 그럼에도 CCS 중대들은 1969년 3월, 미 해병대의 듀이 캐니언 작전을 위해 케산 남서쪽의 라오스 국경을 감시하는 동안 보았던 것과 같은 격렬한 전투를 여럿 목격했다."
랜디 기븐스 전 대령의 파일
"CCN은 A 중대와 B 중대를 투입했고 (내 기억에는) 약 2개의 정찰팀이 더 투입되었다.
나는 다른 대위와 함께 아샤우 근처 언덕 위에 있는 해병대 제9 연대의 커닝햄 화력기지에 연락장교로 파견되었다.
커닝햄 화력기지에는 155mm 포대와 해병대 약 1개 대대가 있었다.
우리 위치는 적의 122mm 포격으로 자주 포화를 맞았으나, 다른 대위와 나는 끊임없이 무전 연락을 유지하여 MLT-2(꽝찌)에 무전 중계 역할을 했다.
이때 현장에 있던 CCN 태스크포스의 임무는 해병대 제3 사단의 측면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월맹군 연대가 접근하여 CCN 부대를 포위했다.
작전장교인 무어 소령이 태스크포스 지휘관으로 투입되었다.
CCN 태스크포스는 정찰팀을 선두로 하여 아군 방어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돌파 시도를 시작했다...이후 선두 정찰팀이 전멸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꽤 치열한 전투가 발생했다...SOG는 또한 딕 미도우즈가 지휘하는 몽키 마운틴의 OP-34 소대를 투입하여 (아마도 북쪽 측면일 것이다) 월맹군을 CCN의 두 중대로부터 떼어놓았다.
미도우즈와 그의 대원들은 도보로 언덕 꼭대기에 있는 미 해병대 부대와 합류한 다음, 다른 미 해병대 화력 기지까지 행군하여 철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전체 작전을 끝마쳤다."
CCN의 윌리엄 "빌" 쉘튼 소령이 제출한 보고서에서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미 해병대의 듀이 캐니언 작전의 지원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미 해병대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잭 데커드가 지휘관으로 있는 꽝찌의 MLT로 잭 아이슬러 대령이 향했고, 아이슬러 대령은 나를 CCN 작전 장교로 데리고 갔다.
현장에 있는 두 중대는 무어 소령이 지휘했고, 부지휘관은 게리 존스가 맡았다.
이 두 중대(이하 "태스크포스")는 불교와 정령숭배를 믿는 현지 부대원에게 불길한 의미를 담은 소리를 내는 월맹군들에 의해 겁을 먹었다.
미군은 잭 아이슬러 대령이 무어를 독촉했음에도 병력을 이동시킬 수 없었다.
그렇게 태스크포스는 월맹군에게 포위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때 아이슬러는 다음 날 목표에 투입되기 위해 딕 미도우즈가 CCS의 정찰팀을 훈련시키는 것을 보았다.
CCN 사령관인 아이슬러는 미도우즈와 이야기를 나눴고, 미도우즈의 임무 우선순위를 다시 정했다.
미도우즈와 그의 팀은 태스크포스 남쪽에 투입되어, 월맹군에게 우리가 태스크포스를 구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다고 확신시키기 위한 교란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나는 이 팀의 투입과 관련하여 우리 구역에 있는 해병대 연대와 조율했고, 임무가 완수되면 미도우즈의 팀은 해당 구역에서 아군 전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랜디 기븐스를 포함한 CCN 장교 3명에게 이를 브리핑하고 해병 부대에 배치했다.
이는 미도우즈 팀의 원활한 재진입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미 해병대는 현지 부대원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도우즈의 교란 작전은 원하는 효과를 거두었고 태스크포스에 대한 즉각적인 압박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작전 전반에 걸쳐 다양한 부분에서 인용된 CCS 대원들의 표창 발췌문을 살펴보면 훨씬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오루크 중위의 수여문은 다음과 같다.
"... 오루크 중위는 그린베레/해병대 합동부대의 고문이었다....
1969년 3월 1일, 오루크 중위와 그의 코만도 타격 소대는 적진 깊숙이 투입되었다.
전날 투입된 다른 소대와 합류한 오루크의 소대는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3월 9일 아침, 코만도 타격 소대는 자신들의 위치 남쪽에서 무언가가 활동하는 소리를 감지했다.
오루크 중위는 5명의 SCU와 함께 조사하러 나섰다.
순찰 중 소총 노리쇠 소리와 목소리를 들은 오루크 중위는 대원들을 엄폐시키고, SCU 1명과 함께 짙은 안개와 초목을 헤치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이동했다.
약 50m가량 작은 트레일을 따라 이동한 오루크 중위는 50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월맹군 병사를 발견했다.
더 전진하자, 적에게 발각되었다.
오루크 중위는 즉시 생포하기 위해 월맹군의 다리에 총을 쐈다.
적은 자동화기를 꺼내 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오루크 중위와 SCU는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 적들로부터 거센 사격을 받았다.
오루크 중위와 SCU는 월맹군 병사를 사살한 후, 다른 4명의 대원들에게로 후퇴했다.
그리고 오루크 중위는 자신의 안전을 완전히 무시한 채 팀을 이끌고 보이지 않는 적들을 향해 돌격했고, 월맹군이 죽은 지점에 팀이 도달할 때까지 연사로 적을 공격했다.
그런 다음 오루크 중위는 태스크포스 지휘관에게 연락하여 정찰 임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다.
안 된다는 답변을 받은 오루크 중위는 대원들을 경계선에 배치하고 월맹군 시체를 수색하여 다양한 정보, 데이터, 문서, AK-47 1정을 확보했다.
그 후 오루크 중위는 시체에 백린연막탄으로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대원들을 70m 뒤로 이동시켜 매복 지점에 배치했다.
약 10분 후 백린연막탄이 터지고 비명 소리가 들렸다.
오루크 중위는 즉시 트레일을 따라 사격을 개시했고, 대원들에게 양쪽에서 수풀을 향해 사격을 지시했다.
산발적인 사격이 줄어들자 오루크 중위는 팀을 데리고 시체가 있는 지점으로 이동시켜 다양한 옷가지, 혈흔 등 월맹군들이 시체를 수습하며 발생한 적의 피해 증거들을 발견했다.
오루크 중위는 지휘관에게 상황을 알렸고, 다시 시체에 부비트랩을 설치한 후 본대로 복귀했다..." (5th SFGA GO#568, dtd 05/01/69.)
투미 상사의 수여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투미 상사는 79명으로 구성된 현지인 태스크포스의 그린베레 고문이자 중대 일등상사로 복무하고 있었다...
약 0545시, 태스크포스의 모든 부대가 소화기, 박격포 사격 및 공병 분대의 협동 공격을 받았다.
공격 당시 중대 지휘소에서 전진하는 모습이 목격된 투미 상사는 적의 공격에 노출되어 가며 부상자들의 대피를 더 잘 지원할 수 있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투미 상사는 나중에 자신의 위치에서 1소대의 기관총 중 하나로 탄약 상자를 옮기는 모습이 목격되었고, 이후 중대 전체에 탄약을 재분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투미 상사의 용기 있는 리더십은 전투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행동은 그가 지휘하는 현지 부대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5th SFGA GO #655, dtd 5/15/69)
킬러브루 중위의 수여문에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져 있다.
"...소대장이었던 킬러브루 중위는 2개 분대의 순찰대를 이끌고 커닝햄 화력기지 남쪽 능선을 따라 이동하던 중 대규모 적 벙커 단지를 발견했다.
벙커 단지에 진입하자마자 선두 부대가 참호로 둘러싸인 적 진지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킬러브루 중위는 앞으로 나아가 대원들에게 사격을 지시하여 적의 사격을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전방에 노출된 위치에 있던 킬러브루 중위는 적이 접촉을 끊고 후퇴하려는 것을 감지했다.
킬러브루 중위는 전진하여 즉각적인 공중 지원을 요청했다.
코브라 건쉽이 여러 차례 공습을 가해 무장을 소모했고, 코브라가 떠난 후 추가 건쉽이 요청되었다.
2대의 OV-10 브롱코가 상공을 비행하며 제압 사격을 가했다.
킬러브루 중위는 공습을 피해 도망치려던 적군 중2명을 사살하고 다수의 월맹군에게 부상을 입혔다.
킬러브루 중위의 냉철한 판단과 자신의 안전을 무시하는 과감함, 그리고 현지부대원들을 고무시키는 그의 능력 덕분에 적의 매복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순찰 중 킬러브루 중위의 임무는 능선을 확보하여 월맹군이 직사화기를 설치하고 커닝햄 화력기지에서 이착륙하는 헬기에 사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5th SFGA GO #576, dtd 05/01/69.)
존슨 중사의 수여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존슨 중사는 그린베레 의무병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존슨 중사는 소대가 적의 벙커 단지를 수색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본대에서 분리되었다.
이때 존슨 중사의 소규모 부대는 분대 규모로 추정되는 적군들로부터 소화기 사격을 받았다.
존슨 중사는 자신의 안전을 무시하고 부상자들을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 거센 자동화기 사격으로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그는 적에 맞서 움직였고 용감한 행동으로 부상자를 보호할 수 있었으며 더 이상의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존슨 중사는 부상자들을 계속 치료하고 그날 대부분과 다음 날 일부 동안 현지대원 부상자들을 옮기는 것을 도왔다.
존슨 중사는 69년 3월 8일, 후송헬기가 접근 도중 소화기 사격을 받았음에도 부상자 후송을 계속 지시했다.
그는 부상자 후송을 감독했고, 노출된 위치에 머무르며 들것에 실린 부상자들의 철수를 엄호했다..." (5th SFGA GO #569, dtd 05/01/69.)
슈뢰더 하사의 수여문
"... 69년 3월 13일, 슈뢰더 하사는 9명으로 구성된 현지인 분대의 분대장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작전 철수 단계에서 슈뢰더 하사는 전사자와 부상자를 옮기던 해병대 소총 중대의 측면 보호를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분대를 이끌었다.
분대는 여러 차례 매복을 당했지만, 슈뢰더 하사의 성실함과 전문적인 임무 수행 덕분에 아군은 더 이상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 활약은 적진 깊숙한 곳에서 야간 중 3시간을 포함하며 약 6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그의 격렬한 행동과 세부 사항 및 임무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으로, 슈뢰더 하사는 모든 대원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 (5th SFGA GO #586, dtd 05/03/69.)
호크스트라서 중사의 수여문에 따르면 그는 위의 슈뢰더 하사와 마찬가지로 사망자와 부상자를 후송하는 해병대 중대의 측면 경계 임무에 참여한 25명 소대의 부소대장이었다.
호크스트라서 중사의 수여문은 슈뢰더 하사의 수여문과 거의 동일하다. (5th SFGA GO #0656, dtd 05/15/69.)
위 이야기는 무용담 모음집이라 작전의 기승전결이 아예 써져 있는데 여러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TF 미도우즈의 행적을 간단히 요약하면
1. 미 해병대 3사단 9연대를 지원하던 CCN TF 무어를 지원하기 위해 리차드 미도우즈가 지휘하는 TF 미도우즈가 TF 무어 근처에 배치됨
2. TF 미도우즈는 위력정찰과 함께 RT 미시간의 엘든 버지웰이 확보한 첩보를 토대로 벙커 지대를 공격하여 큰 성과를 이룸
3. 미 해병대의 작전 철수가 진행되자 TF 미도우즈는 도보로 아군 지대로 돌아가 철수함
정도가 될 듯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