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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MACV-SOG 해칫포스의 투입을 준비하는 제119 항공중대)


월남전 중, MACV-SOG에 배치된 그린베레와 헬기 승무원들은 유명한 "라오스에서의 비밀 전쟁"에서 호치민 트레일을 따라 월맹군과 교전을 벌였다.


"트레일"은 월맹군이 월맹에서 월남으로 병력, 무기, 보급품 등을 이동시키는 데 사용한 주요 보급로였다.


알다시피, 이 "트레일"은 실제로는 도로, 캠프, 창고 구역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네트워크였다.


국경을 넘나드는 MACV-SOG의 정찰 임무는 월맹군의 도로, 병력 이동 및 시설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라오스에서 수행된 MACV-SOG 임무 중에는 위와는 다른 목표를 가진 것도 있었는데, 바로 월맹군이 점거한 적지에서 월맹군들과 직접 교전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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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트레일과 폭탄 구덩이)


일반적으로 3개의 MACV-SOG 부대(CCN, CCC, CCS)는 각각 "전방 작전 기지"(FOB)에 본부를 둔 3가지의 지상 부대로 구성되었다.


일반적으로 2~3명의 미군과 6~12명의 현지 병력(보통 다양한 부족의 몽타냐드)으로 구성된 정찰팀[RT 또는 ST(스파이크 팀)].


소대 규모로 보통 3명의 그린베레와 20~30명의 현지 병력으로 구성됐으며, 곤경에 처한 정찰팀을 구출하기 위한 대응 및 기타 직접적인 전투 활동에 투입된 "해칫포스".


마지막으로, 각 FOB에는 "SLAM" 또는 "호넷포스"라고 불리는 1~4개의 중대 규모의 부대가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몽타냐드 부족에서 모집되었으며, 그린베레 MACV-SOG 대원들이 직접 지휘했다.


이 점에서 MACV-SOG는 마이크 포스나 A팀 타격 중대와 같은 기타 그린베레와는 차별화되었다.


실제로는 그린베레가 현장 지휘를 맡는 것이 일반적이긴 했으나, 상기한 부대에서 그린베레 대원들은 명목상 "군사 고문"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칫포스 및 호넷포스는 FOB가 월경 타격 임무를 가능하게 했다.


MACV-SOG 작전은 몇 년 전[1990년대 초]에 기밀이 대부분 해제되었다.


실제로 이 부대는 2001년 포트 브래그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생존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다.


오늘날 MACV-SOG의 많은 임무가 공개되었고, 이 부대에 복무했던 그린베레 대원들에 대해 많은 것이 알려졌다.


MACV-SOG 대원들 중에는 명예 훈장 수훈자 9명과 수훈십자장 수훈자 23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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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MACV-SOG의 항공 자산이 임시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FOB에 고정적으로 배치되었고, 그중 적어도 한 명 이상의 헬기 파일럿들에게 명예훈장이 수여되었다는 것이다.


건쉽과 "슬릭" 파일럿들은 MACV-SOG 그린베레 대원들과 함께 기지에서 주둔했다.


파일럿들은 그린베레 대원들과 함께 생활하고,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술집에서 밤을 보냈다.


파일럿들은 임무 계획 및 사후 보고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오늘날 살아있는 파일럿/항공 승무원은 SOA(Special Operations Association/특수작전협회) 모임에서 환영받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SOA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MACV-SOG 항공 자산의 기여와 그 조직은 널리 논의되지 않았다.


실제로 일부 SOG 그린베레 대원들은 이러한 항공 부대가 국경 너머에 파견된 팀을 투입하고 보호하며 철수시키는 데 직접적인 자산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제2군단 지대에서 MACV-SOG의 주요 기지는 1967년 말에 CCC로 이름이 변경된 콘툼의 FOB-2였다.


월경 임무를 위한 발진 기지 역할과 임무 지휘는 닥토에 위치한 그린베레 캠프인 A-244 비행장에서 이루어졌다.


이 비행장에는 SOG를 위한 야전 지휘통제 기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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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콘툼 MACV-SOG 기지인 FOB-2 위를 비행하는 건쉽)


SOG 초기 임무에 대부분의 그린베레 팀은 적진 투입 및 철수 시, 고도로 숙련되고 용감한 월남 파일럿들이 조종하는 H-34 헬기를 이용했다.


또는 종종 미 공군 헬기가 이러한 임무에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중대 규모의 미 육군 헬기 부대가 MACV-SOG에 직접 배치됐다.


1964년에 MACV-SOG 창설 당시부터 미 육군 건쉽은 투입 및 철수 시 주요 공중 화력 지원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공군은 지상팀을 위한 건쉽 지원을 보태기 위해 A-1E와 제트기를 통한 폭격 및 기총사격 등의 CAS 자산을 제공했다.


이러한 항공 지원은 경비행기에 탑승한 FAC들이 해당 지역을 정찰하고 표적을 발견한 후 조정하며 이루어졌다.


호치민 트레일 상공에서는 월맹군의 대공 사격이 항상 거셌기 때문에 저속 항공기나 헬기를 조종하려면 새로운 전술과 약간의 운이 필요했다.


1965년 11월, 내가 있던 헬기 중대인 제119 항공중대(AHC/Assault Helicopter Company/돌격헬기중대)는 TO&E 1-77G(경헬기중대)로 편성되었다.


제119 항공중대는 플레이쿠 마을 근처의 캠프 할로웨이에 본부를 둔 제1 항공여단, 제17 전투항공단, 제52 전투항공대대 예하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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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쿠, 캠프 홀로웨이)


119중대는 중대 본부, 슬릭 소대 2개, 건쉽 소대 1개, 지원 소대 및 기타 지원 분견대로 구성되었다.


119중대는 총 21대의 UH-1D(슬릭) 헬기를 운용하고 유지 관리했다.


이 슬릭들은 비공식적으로 "앨리게이터" 또는 "게이터"로 불렸다.


또한 "크로커다일" 또는 "크록"으로 알려진 8대의 UH-1C(건쉽) 헬기도 있었다.(위 4번 사진 패치 참조)


게이터와 크록은 1966년에 MACV-SOG 작전 지원을 위해 FOB-2에 배치되었다.


나는 1966년 11월 11일에 월남에 도착했고, 육군 건쉽 3대가 플레이제렝의 A-251 그린베레 캠프 서쪽, 캄보디아 국경 부근에서 격추된 날과 같은 날에 제119 중대에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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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 중대의 게리 로저스와 H-34 슬릭, 그리고 월남 승무원들.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곧 내가 추락한 이들의 대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월남에서 처음 6개월 동안 나는 UH-1C 건쉽을 타고 "일반적인" 임무를 수행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전술의 핵심을 배웠고 생존에 필수적인 기술과 정확성을 개발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같은 기체로 같은 승무원들과 함께 비행했기 때문에 팀으로서 매우 능숙하고 정확하게 비행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임무를 수행하던 플레이쿠에서의 생활은 장비를 챙겨서 콘툼으로 날아가 브리핑을 받으라는 지시를 받으며 갑자기 바뀌었다.


부대원 중 아무도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올지 몰랐다.


"MACV-SOG를 위해 비행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월남에서 "일반적인"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을 수도 있었지만, 라오스에서의 비행은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라오스 대부분의 임무에서 마주했던 지상 사격의 양과 강도는 월남에서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적의 격추 능력을 최소화하는 건쉽 전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라오스에서 살아남으려면 훈련과 적의 방어를 무력화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전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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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크로커다일 3" 고든 데니스턴과 승무원들)


우리는 "같은 장소를 두 번 비행하지 않는다", "나무 꼭대기 정도의 고도 아니면 매우 높은 고도에서만 비행한다" 등 간단하지만 논리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건쉽 파일럿의 10가지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 꼭대기 정도의 고도와 높은 고도 사이를 "죽음의 구역"이라고 불렀다.


개인적인 사견으로, 현대의 특수작전 핵심 전략은 라오스에 투입되는 MACV-SOG 그린베레 팀을 지원하기 위해 처음 개발된 전술에서 직접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임무는 AK-47과 RPG부터 12.7mm와 37mm 대공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무기를 갖춘 수많은 월맹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적지로 비행하는 것이었다.


건쉽 파일럿으로서 내 임무는 MACV-SOG 팀을 투입하거나 철수시키기 위해 진입하는 병력 수송 헬기인 "슬릭"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종종 팀을 폭탄 구덩이, 개활지 또는 실제 트레일에 투입했다.


투입 및 철수는 MACV-SOG 임무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팀원들과 항공 자산은 항상 투입 및 철수를 위해 상당한 계획을 준비했다.


월맹군은 상대적으로 착륙 가능성이 적은 지역에 대공화기를 배치했다.


그런 다음 헬기가 착륙할 때 매복하려고 했다.


투입 헬기가 사격을 받기 시작하면 건쉽이 적 사격의 제압을 시도했다.


LZ가 치열해지면 임무는 중단됐고, 우리는 건쉽, A-1E, 제트기로 해당 지역에 집중적으로 공습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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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 항공 지원을 하는 A-1E 스카이레이더)


보통 월맹군은 MACV-SOG 팀이 헬기에서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격을 가했다.


팀이 포위되어 월맹군의 공격을 받게 되면 탈출은 훨씬 더 위험해졌다.


H-34는 팀을 다시 태우려고 할 때 좋은 표적이 되었고, 우리는 여러 번 헬기를 잃고 팀과 항공 승무원을 모두 구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때 상공에는 헬기와 비행기가 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날아다니며 형언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곤 했다.


한 번은 내가 건쉽으로 기총소사를 하던 중, A-1E가 적에게 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급강하했었다.


그때 거의 공중 충돌이 일어날 뻔했다.


A-1E는 내 머리 위로 지나갔고 폭탄은 바로 아래로 떨어져 내 기체 바로 오른쪽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상공을 비행하는 건 항상 위험했지만, 사실 가장 큰 위험에 처한 건 대대급 부대의 중앙에 투입되는 그린베레들이었다.


일반적으로 2~3명의 미군과 6~12명의 현지 병력으로 구성된 소규모 "스파이크 팀"은 MACV-SOG의 핵심이었고 우리는 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의 극도의 전문성과 용맹함에도 불구하고 사상자는 많았다.


우리가 미군 몇 명과 약 30명의 현지 병력으로 구성된 해칫포스를 지원했을 때, 운 좋게 그린베레 대원 2~3명을 구출한 경우도 있었지만, 현지 병력의 대부분 또는 전원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해칫포스를 미끼로 투입하기도 했다.


그들은 수백 명으로 구성된 대대 규모의 월맹군과 교전을 벌였고, 이 월맹군들은 공중 지원, 건쉽, A-1E 스카이레이더, F-100, 심지어는 B-52(!)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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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콘툼 FOB-2, 119중대 슬릭에 탑승하는 스파이크 팀)


이러한 소모적인 전투가 끝나면 우리는 보통 수백 명의 월맹군이 죽었다고 집계했다.


이렇게 해칫포스가 1:10 비율로 월맹군을 성공적으로 상대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한 팀을 투입한 후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많은 그린베레 정찰대원들이 여러 차례 부상을 입었고 전사자 비율도 매우 높았다.


지상 대원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항공 자산의 손실도 막대했다.


월남 파병 첫 해 동안 우리 비행대원의 25%가 사망했고 제119 중대는 파병 기간 동안 60명 이상의 파일럿과 승무원을 잃었다.


팀을 잃거나 너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상태에서 팀을 철수시키는 나쁜 임무도 있었지만, 가끔은 좋은 임무도 있었다.


아래는 적의 활동이 집중된 지역에 정찰팀을 투입한 것으로 시작된 좋은 임무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사히 투입된 팀은 삼중 국경 지역에 있는 월맹군 연대 본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팀은 며칠 동안 수색한 끝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발견했다.


월맹군이 하늘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짙은 위장막 아래에 본부 건물, 연병장, 창고 건물, 통신 건물을 세운 것이었다.


오후 한낮, 나는 그 지역으로 날아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는 건쉽을 타고 이륙했고, 가는 길에 정찰팀 팀장과 FM 무전기로 대화를 나눴다.


팀장은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팀이 건물 바로 근처 덤불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그의 계획은 그냥 본부 건물로 걸어가서 총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그의 팀이 강 옆 트레일을 따라 달려가 강 한가운데서 약 0.5마일 떨어진 모래톱에 도착하면 헬기가 팀을 태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팀은 이미 그 지역을 조사하고 탈출을 위해 트레일을 따라 크레모아를 설치해 놓았다.


그 계획을 들었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누가 이게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그의 FM 무전기를 통해 그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냈다.


그래서 나는 준비되면 알려달라고 말했고 다른 건쉽에게 브리핑을 했다.


우리 계획은 모래톱 방향에서 팀의 위치로 날아가서 팀이 탈출하는 동안 화력 지원을 하는 것이었다.


강가에 트레일이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지상에 있는 팀장으로부터 팀이 공격할 준비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팀의 위치로 접근했다.


이 이야기는 사후 브리핑을 통해서만 요약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민처럼 복장을 한 그들은 월맹군 건물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 월맹군 장군과 그의 참모진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15명 이상의 월맹군을 죽였을 것이다.


그런 다음 침착하게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가 총을 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죽였다.


그 후 그들은 모래톱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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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제119 중대, 건쉽 로켓 위력)


저공으로 비행하던 중, 나는 팀이 강을 향해 트레일을 따라 달리는 것을 보았다.


맙소사!!


팀 뒤에서 마치 폭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100명이 넘는 월맹군이 팀을 쫓았을 것이다.


내가 본 것 중 놀라운 점은 월맹군들이 팀을 향해 발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월맹군들은 분명히 팀을 추격해서, 붙잡아 심문하고, 죽일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월맹군은 우리 SOG 대원들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했기 때문에 포로를 잡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수백 명의 적군이 대놓고 미군을 쫓아오는 것이 건쉽 파일럿의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꿈이 실현되는 것과 같았다.


내 건쉽의 개틀링건은 분당 4,800발을 발사할 수 있었고, 고폭탄 탄두가 달린 로켓을 14개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뒤에 같은 화력을 가진 또 다른 건쉽이 있었다.


여기에는 각각 약 2,000발의 탄약을 가진 도어거너들의 화력은 포함하지 않은 것이었다.


도망치는 정찰팀 위를 비행하며 진행된 첫 공습은 많은 월맹군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고, 두 번째 공습을 위해 돌아오며 미니건을 쏘고 로켓을 날렸다.


그동안에도 팀은 목숨을 걸고 달리고 있었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월맹군의 수는 사상자와 겁에 질린 사람들로 인해 현저히 줄어든 상태였다.


두 번째 공습은 내가 그 지역 상공으로 접근하는 순간 팀이 크레모아를 격발했기 때문에 상당히 불안했다.


순간 첫 번째로 든 생각은 내 건쉽이 적의 수중에 추락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우리는 계속 비행하며 화력 지원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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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쉽 로켓 조준기)


그린베레 정찰팀은 강 옆의 트레일을 따라 내려가 모래톱까지 이동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깔끔하게 헬기에 탑승했다.


우리는 탄약을 모두 소진했기 때문에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우리가 해당 지역을 떠나자마자 공군이 날아와 지역에 공습을 가했다.


하루가 끝날 무렵 우리는 적에게 매우 큰 타격을 입혔다는 것을 깨달았고, 모든 이들이 상처 하나 없이 복귀하여 그날 밤 바에서 다 함께 생환을 축하했다.


조종석에서 나는 헬기를 조종했고 부조종사는 미니건을 쐈다.


그리고 오른쪽 좌석에 앉은 나는 2.75인치 로켓을 발사할 수 있었다.


내가 봐도 지상에 있다면 건쉽 로켓 폭격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로켓을 꽤 잘 쐈다.


약 1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55갤런 드럼통을 맞출 수 있었다.


우리는 매우 정확했다.


미니건은 분당 4,800발의 위력으로 표적을 벌집으로 만들 수 있었다.


우리의 건쉽에는 양쪽에 하나씩 미니건이 총 두 개가 있었고, 이를 조종하는 건 부조종사의 몫이었다.


또한 도어거너는 7.62mm 탄환을 발사하는 M-60 기관총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치명적인 정확도를 자랑하며 기체의 측면과 후방을 보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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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쉽 미니건)


위 사진에서 왼쪽 위: 미니건 탄약 트레이 장전.


오른쪽 위: 문에 미니건을 장착하고 우리를 지원한 공군 건쉽 헬기.


오른쪽 아래: 헬기 우측 미니건 사격


왼쪽 미니건이 멈췄을 때 오른쪽 미니건은 더 오른쪽으로 향하게 하고 분당 2,400발에서 분당 4,000발로 발사 속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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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트레일에서 기총소사 중 미니건 조준경을 통해 촬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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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커다일-3"에서 본 호치민 트레일 일부의 항공 사진)


1967년에 우리는 가끔 젊은 조종사만이 할 법한 일을 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비행 중에 8mm 동영상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기체의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이를 권장하지 않지만, 위의 두 사진은 호치민 트레일에서 전투 임무를 수행하면서 촬영한 8mm 필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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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손상된 H-34, (오른쪽) 임무 후 119 중대 "크로커다일" 건쉽]


위 사진의 왼쪽은 기체에 약 100개의 총알구멍이 발생했지만, 귀환에 성공한 월남 H-34의 내부 모습이다.


이 기체에서 여러 명이 사망했다.


해당 임무는 월맹군이 착륙하는 헬기에 매복을 가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오른쪽 사진은 게리 로저스 준위가 트레일 상공을 비행하던 중 집중 대공 사격을 받았을 당시 조종하던 제119 중대 UH-1C 건쉽의 로터 블레이드이다.


그는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


로터 블레이드가 부러졌다면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을 것이다.


우리는 건쉽 파일럿으로서 슬릭과 지상의 대원들을 방어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또한 우리는 적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대개 큰 효과를 거두며 적과 교전을 치렀다.


하지만 전쟁 중 내가 수행한 모든 임무 중에서 가장 도전적이고 보람 있었던 임무는 MACV-SOG의 그린베레 대원들과 함께한 임무였다.


각각의 호출 부호가 떠오르는 3명의 대원들이 있는데, 제리 "매드독" 슈라이버, 로이드 "스네이크" 애덤스, 로버트 "스쿼럴" 스프라우스이다.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기억될 만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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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매드 독" 슈라이버는 1969년 4월 24일에 전사한 MACV-SOG 그린베레의 전설이다.


나는 여러 임무에서 그의 팀을 위해 화력 지원을 제공했다.


제리는 전사할 때까지 2년 넘게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제리와 나는 바에서 전술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나는 그의 전술을 이해하고 싶었고 제리도 우리의 전술에 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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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스네이크" 아담스는 MACV-SOG의 또 다른 전설로, 라오스에서 수많은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종종 생존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장거리 주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월맹군은 개를 동원하여 끊임없이 팀을 수색했기 때문이다.


적들이 뒤를 쫓아올 때는 좋은 매복이 준비되어 있지 않는 한 적들을 앞질러야만 했다.


로이드는 (놀랍게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으며 몇 년 전에 개인 사진 컬렉션을 내게 공유해 주었는데, 그중 일부는 이 글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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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스쿼럴" 스프라우스 또한 진정한 프로이자 롤모델인 MACV-SOG 정찰팀장이었다.


아래는 존 플라스터의 책에서 그에 대해 언급된 부분의 인용문이다.


[같은 정찰팀이 계속해서 배치되는 이유에 대해 논하던 중]


그 후 TOC에서 나오면서 나는 벤에게 물었다.


"왜 하필 RT 일리노이인데?"


그의 대답은 분명했다.


"주변을 둘러봐. 지금 전투 준비가 된 팀이 얼마나 되냐?"


1월 1일 이후로 60명으로 구성된 작은 정찰 중대에서 미군 6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부상을 입었으니, 3개월 동안 미군 병력의 절반 가까이 사상자가 발생한 셈이었다.


그 결과, 20개 정도의 팀이 병력 배치표에 있었음에도 8개 정도의 그린팀(전투 준비가 된 팀)이 불균형적으로 많은 임무량을 짊어지고 계속해서 출동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를 같은 목표에 왜 다시 배치하는 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지가 말했다.


"군사적 논리 때문이지. '누가 해당 지역을 가장 잘 아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방금 거기서 나온 사람들'이니까."


정찰대원들은 그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지역에 계속해서 투입되어 고안할 수 있는 모든 전술과 속임수를 사용하다가 결국에는 끔찍한 대가를 치렀기에 RT 와이오밍의 1-0인 "스쿼럴" 스프라우스는 이를 "죽을 때까지 달리는 것"이라고 불렀다.


...


1-0가 더 잘할수록, 팀이 더 뛰어날수록 죽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나는 1967년 11월에 MACV-SOG를 지원하던 제119 중대에서 파병을 마쳤다.


1969년에 2차 파병으로 돌아왔지만, MACV-SOG와 엮이지는 않았다.


오늘날까지 나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공산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매일 같이 준비했던 그린베레 대원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크로커다일"의 일원으로서 FOB-2의 MACV-SOG 그린베레 대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임무를 계획하고, 출격하고, 싸우고, 파티를 벌였다.


나는 이 전설적인 부대원들의 임무에 참여하게 된 것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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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제119 돌격헬기중대, "크로커다일 3" 고든 데니스턴 준위)




글쓴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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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데니스턴은 1966~1967년에 제119 중대에서 복무했다.


1969년에 2차 파병으로 월남에 돌아온 고든은 스틸웰 장군의 지휘 파일럿으로 배치되었다.


파병 종료 및 전역 후, 1973년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졸업했다.


1975년에 고든은 팔레비 왕조와 계약을 맺고 벨 헬기의 강사, 파일럿, 테스트 파일럿이 되었다.


아야톨라 혁명 이후 이란을 탈출한 고든은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에서 A-10을 제작하는 페어차일드의 품질 관리 책임자가 되었다.


1984년부터 1993년까지 고든은 내슈빌에 있는 아브코/텍스트론의 품질 관리 책임자를 맡아 B-1과 C-5의 날개 제작을 담당했다.


1993년부터는 자신의 회사를 직접 운영하여 여러 대형 병원 기업을 대상으로 기술 및 병원 수익 주기 운영에 대한 프로젝트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