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좀 편찮으신 상황이었는데
누나 동생도 다 타지에서 일하는 중이라
장남인 나까지 직업군인을 하면 역시 무리가 아닐까해서
그래서 꿈을 맘속에 고이 접어뒀는데
그냥 월급 받아서 쓸 거 쓰고 남는 거 다 저축하고
어쩌다가 돈 남으면 장비 틈틈히 모으며
'언젠간 때가 오면 써야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
지금 직장에 대만족 중이고 비상근도 부업으로하고 있는데
벌이도 괜찮고 엄마도 건강해지시고 삶에 여유도 생기고
20대 중반에 부모님이랑 저녁먹으면서 집 근처에 직장도 잡고 매일 운동도 하고 여자친구랑 자주 만나고
그냥 다 좋아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좋아

근데 뭔가 내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이 열정이
옳지 않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혼자 일어나지도 않는 전쟁에 써야겠다고 장비를 모으고
가끔 혼자 집에서 에어소프트건으로 연습을 하고
아침뉴스로 우러 전쟁 전황을 보고
군복입고 부대에 출근할 때면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는
이런 내 모습이 사실 남들에겐 안 좋게 보일까봐
그냥 마음이 가라앉는다

현역도 아닌 주제
핑계대고 군에서 도망친 주제
혼자 비장한 척 정의감 있는 척 나대는 것으로 보일까
가끔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군 간부가 되기 싫어서 도망쳤지만 여전히 군인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밀스퍼거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만 같다

그나마 남겨둔 장비들도 다 처분해야 할까

차라리 군에서 가혹행위라도 당했다면 미련이 없었을텐데
좋은 기억이랑 사명감만 남아서 괴롭다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