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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말, 사이공에 본부를 둔 미 국방부의 합동 비정규전 부대인 조사 및 관찰단(SOG)은 2년 동안 라오스로 국경을 넘나들며 작전을 수행했다.


3명의 미군과 9명의 현지 특공대원으로 구성된 12명의 "스파이크 팀"은 첫해 동안 수많은 정찰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1967년 초, 호치민 트레일을 따라 월남으로 침투하던 공산군은 스파이크 팀의 존재를 파악하게 됐다.


그 결과 SOG 사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이공의 미국 기획자들에게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트레일을 따라 유입되는 공산군의 인원과 군사 장비의 양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워싱턴은 요새화, 지뢰밭, 센서의 조합으로 월남 국경을 봉쇄하기로 결정했다.


로버트 S.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이러한 전술을 통해 침투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맥나마라 장벽"은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의 대분란전에 대한 기술적 해답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구상이 널리 알려지자, SOG는 지원 역할에 참여하게 됐다.


1967년 가을, SOG는 맥나마라 장벽의 바깥층을 구성할 진동 감지 센서를 배치하기 위해 두 개의 FOB를 새로 세웠다.


이 중 첫 번째는 케산의 FOB 3이었다.


두 번째인 FOB 4는 다낭 바로 남쪽의 마블 마운틴에 세워졌다.


새로운 각 FOB에 팀을 구성하기 위해, 1967년 마지막 분기에 그린베레 증원병들이 월남에 대거 보내졌다.


FOB 4에 배치된 대원들은 모두 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새로운 정찰팀의 핵심 대원으로 편성되었다.


이들 중 ST 아스프가 두드러졌다.


1968년 초에 창설된 ST 아스프는 SOG가 12명으로 구성된 스파이크팀이 은밀한 작전을 하기에는 너무 크고 다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후 운영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SOG는 기존의 스파이크 팀 편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7~10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편제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ST 아스프는 이 새롭고 가벼운 편제를 가장 먼저 테스트한 팀 중 하나였다.


ST 아스프의 팀장은 조지 "론" 브라운 병장이었다.


그리고 ST 보아에서 이미 여러 임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앨런 보이어 병장이 찰스 휴스턴 병장과 7명의 월남 특공대원과 함께 ST 아스프에 합류했다.


ST 아스프는 또 다른 이유로 주목할 만했다.


1968년 3월, SOG는 "서커스 액트"라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새로운 도청 장비를 받았다.


이전에 SOG는 스파이크 팀이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만 일정량의 대화를 녹음할 수 있도록 하는 구형 장비를 사용하여 제한적인 도청 임무를 수행했다.


반면 서커스 액트 키트는 몇 주에 걸쳐 장시간 녹음이 가능했다.


이러한 향상된 기능을 고려하여 SOG는 첫 번째 서커스 액트 도청 장치를 트레일의 주요 환적 지점인 라오스의 체폰에서 북동쪽으로 15km 떨어진 주요 도로 구간 근처에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이 새로운 장치를 설치할 팀이 바로 ST 아스프였다.


체폰 주변에는 월맹군이 밀집해 있었기 때문에 SOG는 평소처럼 월남에서 출발하는 일반적인 항공로가 아닌 태국을 경유하여 서쪽에서 침투함으로써 ST 아스프에 추가적인 이점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태국 왕실 정부는 동남아 본토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반공 정책을 지지했음에도 미국이나 월남이 태국 영토에서 비밀 작전을 펼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해했다.


특히 당해 초에 발생한 사고 이후 태국은 SOG의 활동에 대해 불안해했다.


1월 14일, 미 공군 더글러스 EB-66 전자첩보기가 라오스 삼누아 맞은편 월맹에 추락한 사건이 있었다.


구조 헬기가 출동했으나, 대공포의 집중사격에 의해 철수했다.


그 시점에 SOG는 스파이크 팀 2개 팀을 월맹으로 헬기를 통해 투입하여 현장을 확보하고 생존자를 수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구조 임무에 필요한 대원 20여명을 침투시키는 임무를 맡은 팀은 태국 우돈 공군기지에서 시코르스키 CH-3 분견대를 운영하던 미 공군 제20 헬기 비행대대였다.


CH-3 헬기 3대는 즉시 나콘파놈 태국 왕립 공군 기지로 이동하여 SOG 대원들과 합류한 후 월맹으로 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제20 비행대대는 이전에 전원 현지인들로 구성된 SOG 요원 팀을 월맹에 투입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미군 주도의 SOG 팀과 함께 침투하는 임무를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올드 크로우"라는 코드명의 구조 작전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SOG의 C-130이 나콘파놈에 착륙하자, 태국의 요구에 따라 검은색 밴이 와서 팀을 태우고 대기 중인 헬기로 재빨리 데려갔다.


누군가가 팀이 태국을 잠시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헬기는 이륙했다.


하지만 비행 30분 만에 문제가 발생했다.


파일럿 중 한 명인 카이론 홀 소령은 변속기 오일이 떨어졌다고 보고하고 비상 착륙을 위해 태국으로 돌아갔다.


임무를 계속하기 전에 대체 헬기가 필요하다고 우돈 기지에 무전으로 알린 후, 나머지 두 헬기는 홀 소령이 한적한 태국 마을 옆 들판으로 향하는 것을 따라갔다.


홀 소령의 헬기 바퀴가 땅에 닿자, 대원들을 하차시키기 위해 후방 램프가 내려갔다.


그 순간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엔진 문제에 대한 소식이 헬기 뒤쪽에 있던 현지 대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이들은 적진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대원들은 CH-3에서 달려 나와 마을을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


다른 파일럿 중 한 명인 제임스 빌로티 소령은 "태국인들 꽁무니가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 건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미군 대원들이 사격을 멈추라고 하는 데는 몇 초가 걸렸다.


다행히도 태국인 사상자는 없었고, 곧 대체 헬기가 도착했다.


임무는 계속되었으나, 결국 세 대의 CH-3 헬기 모두 대공 사격으로 인해 EB-66 추락 현장에서 철수했다.


올드 크로우 대원들이 월남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콘파놈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마을 사건에 대한 소식이 방콕에 전해진 뒤였다.


미국 대사관의 대대적인 사과에도 불구하고 태국 당국은 SOG의 "카우보이" 행동에 대한 최악의 개념을 확인시켜 주는 듯한 이 사건에 당연히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다 마지못해 3월에 서커스 액트 투입을 위해 잠시 허용하는 데 동의했다.


나콘파놈에는 이미 소수의 SOG 대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간부진들은 월맹으로의 요원 침투를 조율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고, SOG 내의 다른 부서의 대원들이었다.


그렇게 ST 아스프의 임무를 위해 두 번째 지원팀이 태국으로 파견되었다.


그중 한 명인 로니 윌하이트 병장은 이전에 SOG의 콘툼 기지에서 ST 뉴욕의 대원으로 임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다.


또 다른 대원인 조 우즈 역시 콘툼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다.


이 임무를 감독한 사람은 지난 1년간 푸바이 기지 지휘관이었던 아이라 스넬 소령이었다.


3월 27일, 스넬 소령이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ST 아스프가 C-130 블랙버드를 타고 도착했다.


올드 크로우 작전 때처럼 밴이 팀을 태우고 공군 기지 반대편에서 대기 중인 헬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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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콘파놈 공군 기지를 출발하기 전 점검을 받는 시코르스키 HH-3 졸리 그린 자이언트. 우돈에 있는 비슷한 헬기인 CH-3가 ST 아스프의 임무에 사용되었다)


출발하기 전에 론 브라운은 일반 여행 가방처럼 생긴 가방에 들어 있는 신형 도청 장비를 건네받았다.


ST 아스프는 또한 한마디 조언도 받았다.


"도청 지점에 계속 머물지 말고 계속 움직이라고 말했다." 윌하이트가 말했다.


무사히 세사모우 계곡에 투입된 ST 아스프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목표물을 찾았다.


스넬 소령은 다음 날 아침 나콘파놈에 팀이 통신선을 찾아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고 무전으로 보고한 후 월남으로 떠났다.


"내가 푸바이로 돌아왔을 때 ST 아스프는 이미 메시지를 녹음하고 있었다."라고 그는 회상했다.


서커스 액트의 성공이 확실해지자, 제20 비행대대는 팀을 철수시키기 위해 출동했다.


빌로티 소령과 제이 오버그 소령은 각각 CH-3를 타고 철수 지점으로 향했다.


오버그의 헬기 뒤에 타고 있던 윌하이트는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팀에게 우리가 내려준 곳에서 멀리 이동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조언을 따르지 않았고 투입 지점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윌하이트는 회상했다.


이 실수가 치명적이었다.


오버그의 헬기가 로프 사다리를 내리는 순간, 아래에서 월맹군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월남 대원들은 이미 흔들리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지만, 무기와 장비의 무게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를 돕기 위해 미군 대원 3명이 지상에 남아 사다리를 안정적으로 붙잡고 있었다.


몇 분 후 7명의 월남 대원 중 6명이 헬기 내부에 도착했다.


일곱 번째 대원이 거의 다다른 순간, CH-3 헬기가 총격을 받았다.


오버그 소령이 여전히 헬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동안 보이어 병장이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윌하이트는 CH-3 내부에서 이 긴박한 장면을 지켜보았다.


몇 발의 총탄이 가까이 날아오자, 오버그는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윌하이트는 "헬기가 지상에서 약 1,500피트 높이에 다다랐을 때 사다리의 가로대가 부러졌고 보이어가 땅으로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오버그와 빌로티는 주변을 선회하면서 다른 두 미군 대원들이 아직 지상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적의 사격이 심해지면서 교신을 끊고 나콘파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착륙했을 때에는 월남 대원 한 명이 여전히 멍하니 사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SOG는 즉시 구조 임무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이때 공교롭게도 미 공군이 월맹에서 잃은 제너럴 다이내믹스 F-111 폭격기의 승무원들이 격추에서 살아남았다는 징후가 발견되었다.


여전히 구형 12인 편제를 사용하던 FOB 4의 ST 보아는 나콘파놈으로 급히 출동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월맹의 기상 악화로 인해 F-111 승무원을 구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구름이 걷혔을 무렵, 미 공군 대원들은 이미 월맹에 포로로 잡혀 있었다.


그리고 이 기상 악화가 ST 아스프를 구조하려는 이전 임무를 방해했었다.


하지만 ST 보아가 아직 투입되지 않았기에 SOG는 4월 1일에 팀을 체폰으로 향하게 하여 ST 아스프의 실종 대원들을 찾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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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아스프 대원 두 명의 구출 시도 이전에 태국 나콘파놈 왕립 공군 기지에서 촬영된 찰스 펠러 병장의 사진으로, 찰스 펠러는 ST 보아를 지휘했다)


ST 보아의 1-0는 찰스 "척" 펠러 병장이었다.


그에게 이번 구조 임무에는 개인적인 측면이 있었다.


"1967년 11월에 내가 처음 배치됐을 때, 보이어는 ST 보아의 팀원으로 나와 함께 여러 임무를 수행했었다."


이제 펠러는 옛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었다.


나콘파놈에 착륙하자마자 펠러는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꼈다.


평소 월남에서 투입될 때 SOG는 건쉽 헬기의 공중 지원에 익숙했다.


이에 비해 제20 비행대대 헬기의 무장은 심한 장난처럼 보였다.


"탄창 두 개를 테이프로 붙인 M14로 무장한 두 명의 도어거너가 전부였다." 펠러는 회상했다.


또한 그 헬기 분견대에는 나무 가로대가 부러진 로프 사다리도 그대로 있었다.


펠러는 즉시 더 튼튼한 알루미늄 가로대가 달린 새 사다리로 교체했다.


그날 아침 CH-3에 탑승한 ST 보아는 체폰으로 향했다.


무사히 투입된 후 6시간 동안 수색했지만 실종된 SOG 대원들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ST 보아는 철수하는 과정에서 집중 사격을 받았고, ST 아스프 사건과 마찬가지로 사다리를 통해 철수해야 했다.


이번에는 세 명의 미군 대원이 모두 탑승에 성공했지만, 현지 대원 중 부이라는 이름의 M-79 사수가 사다리에 제대로 매달리지 못하여 6,000피트 상공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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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아스프가 시코르스키 CH-3로 구출됐을 때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다리를 탔다. 당시 사다리에 카라비너를 제대로 걸지 못한 한 팀원이 6,000피트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살아남은 ST 아스프의 현지 대원들은 다른 팀에 배치되었고, 한동안 FOB 4 팀 명단에서 ST 아스프라는 이름은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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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R. 브라운 원사 9/19/1935~3/28/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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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L. 보이어 중사 3/08/1946~3/28/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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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G. 휴스턴 하사 9/29/1945~3/28/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