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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말, 사이공에 본부를 둔 미 국방부의 합동 비정규전 부대인 조사 및 관찰단(SOG)은 2년 동안 라오스로 국경을 넘나들며 작전을 수행했다.3명의 미군과 9명의 현지 특공대원으로 구성된 12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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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클라우드 프로젝트의 장교인 "버드" 윌리엄스 대위. 왼쪽 3인방은 썬더클라우드 팀원들이며 오른쪽 1명은 썬더클라우드 팀장인 빈(Vinh)이다)
1968년 봄, SOG는 다양한 비정규전 임무에 전 월맹군 대원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러한 프로그램 중 하나인 "썬더클라우드"는 3인 1조로 구성된 팀이 라오스에 투입되어 월맹군 포로를 생포해 오는 작전이었다.
썬더클라우드 프로젝트의 선임 책임자였던 워렌 "버드" 윌리엄스 대위는 한 팀에게 모르핀 주사기를 장비시키고 월경 임무에 투입했으나, 팀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한 번은 월맹군 여군을 잡으려고 했으나, 얼굴에 끔찍한 상처를 입고 돌아온 팀도 있었다." SOG의 래리 트랩 중령이 말했다.
4개월 동안 미미한 성과를 거둔 7월 말, SOG는 썬더클라우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재검토했다.
3인조 팀으로는 포로 생포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너무 인원이 적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임무 수행 중에 미군의 직접적인 감독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대원들의 수행 능력도 떨어졌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1968년 9월, 썬더클라우드를 폐지하고 전직 월맹군 대원들은 새롭게 편성된 ST 아스프에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재건된 ST 아스프는 멜 웨스터필드 병장이 이끌었다.
(1968년 10월, ST 아스프 대원들은 호치민 트레일에 대한 기밀 작전에서 M-16A1과 CAR-15를 혼합하여 사용했다. 왼쪽에 서 있는 대원이 멜 웨스터필드 병장이다)
부팀장은 래리 트림블 병장이었는데, 트림블은 지난 두 달 동안 ST 래틀러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경험을 쌓았다.
(1968년 가을에 ST 아스프를 지휘한 래리 트림블 병장)
또한 "바비"로 알려진 프랑스 혼혈 통역사인 응우옌 반 비엣도 합류했다.
ST 아스프의 독특한 구성으로 인해 SOG는 또 다른 생포 작전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정보 보고에 따르면, 콘툼 국경 너머 마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월맹군 대령을 확인했다.
웨스터필드와 트림블, 바비와 4명의 전 월맹군 대원들은 콘툼 SOG 기지로 날아가 일주일 동안 훈련하며 대령의 사진을 조사했다.
그들은 또한 월맹군 군복, 장비, AK-47로 가득 찬 풋락커인 "썬더클라우드 박스"를 받았다.
ST 아스프는 계획대로 H-34를 타고 라오스에 투입된 후 이틀 동안 걸어서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오후 늦게 도착한 ST 아스프는 안전한 거리에서 적 캠프를 조사했다.
계획은 현장으로 몰래 들어가 모르핀으로 대령을 기절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캠프는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린 후, ST 아스프는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오두막에 도착하기 전에 경비병이 팀을 발견하여 총격전이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캠프의 나머지 병력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ST 아스프는 이제 심각한 곤경에 처했다.
대령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적군이 마을을 포위하고 있었다.
상황의 무익함을 느낀 웨스터필드는 오두막 근처에 남아 가능한 한 많은 월맹군 사상자를 내고 싶어 했다.
트림블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이후에 회상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그래서 나는 팀원들에게 근처 언덕으로 빨리 올라가 어둠 속에 숨으라고 말했다."
전략은 통했다.
월맹군은 밤새도록 경사면을 샅샅이 수색하고 간간이 자동 화기로 사격을 가하며 현장을 조사했지만 ST 아스프를 찾지 못했다.
일출 직전에 팀은 긴급 헬기 철수를 요청했다.
그리고 헬기가 상공에 도착해 정글 캐노피 사이로 일련의 로프를 떨어뜨렸다.
50분간의 비행 끝에 팀은 SOG의 닥토 발진기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생포 임무를 실패한 후, 웨스터필드는 파병을 마쳤고 트림블은 팀장으로 진급했다.
이후 RT 아스프는 1969년 3분기까지 정찰과 도청, 어려운 임무를 일부 포함하여 12개의 임무를 단 한 명의 인원 손실 없이 수행했다.
부팀장이었던 진 퓨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월남 팀원들의 배경 때문에 우리는 종종 작전 지역의 가장 북쪽에서 목표를 잡았다."
1969년 가을, 전년도에 RT 아스프에서 복무했던 미군 대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잠시 동안 팀은 비워졌다.
팀장의 자리는 곧 새로 온 조지 "게리" 롭 대위가 맡게 되었다.
10월 26일, 롭 대위는 월경 구조 임무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았고 RT 아스프는 총알 세례를 받았다.
4일 전에 SOG 해칫포스 소대가 라오스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소대장을 태운 마지막 철수 헬기가 철수 도중 격추되었다.
가장 가까이 있었던 SOG 부대인 RT 아이다호가 이미 해가 진 후 출동하여 현장을 확보하고 부상자들에게 응급 처치를 했다.
RT 아스프는 일출에 RT 아이다호와 합류하여 모든 사상자를 추락 현장에서 구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구조 임무 중 롭은 부팀장과 통신병 역할을 같이 맡게 되었다.
롭 대위는 이를 쓸데없이 번거로운 일이라고 느꼈다.
"나는 키가 작고 월남어를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초기부터 팀을 나와 월남인들로만 구성하는 것을 선호했다." 롭이 말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RT 아스프에는 기존 썬더클라우드 대원 4명이 있었다.
곧 현지 대원 2명이 추가되었고 여기에는 전 월맹군 대원도 포함되었다.
"현지 팀원들은 미신을 믿었고 짝수를 좋아했기 때문에 보통 월남인 3명을 데려가서 4인 1조로 활동했다." 롭이 말했다.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팀은 여전히 월맹군 복장을 하고 공산군의 무기를 사용했다.
그 후 1년간 RT 아스프는 1명의 부상자만 내며 거듭 성공을 거두었다.
RT 아스프는 각 임무마다 평균 4일 이상 현장에 머물렀는데, 월맹군의 방공망과 대정찰 활동의 급격한 증가를 감안하면 그 시기에는 기록적인 일이었다.
이러한 큰 성과를 인정받아 RT 아스프는 1970년 9월에 미군과 현지군으로 구성된 합동 SOG 팀의 첫 라오스 낙하산 침투 임무를 수행하도록 선택되었다.
롭은 미군 대원의 추가 투입을 계속 기피했지만, 다낭 SOG 작전 부사관인 로버트 램지와 함께 낙하산 강하 임무를 수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여기에 현지 대원 2명이 합류해 총 4명의 팀으로 구성되었다.
(조지 "개리" 롭 대위(왼쪽), 로버트 램지 병장(오른쪽)과 두 명의 RT 아스프 현지 대원이 SOG의 첫 번째 미군-현지 대원 팀 낙하산 침투를 통해 라오스에 투입됐다)
9월 8일, RT 아스프는 C-130에 탑승했다.
이들의 임무는 DMZ 서쪽 지역 정찰이었는데, 이 지역은 오랫동안 적의 주둔지가 많았고 과거에 헬기 투입이 매우 위험한 것으로 판명된 지역이었다.
SOG는 저고도 낙하산 강하를 통해 팀이 기습적인 임무를 펼칠 수 있기를 바랐다.
0400시에 비행기가 목표 지역을 지나자, 팀은 예비 낙하산 없이 400피트 고도에서 강하하여 정글 캐노피에 아무런 문제 없이 착륙했다.
팀원들이 집결하여 방위를 확인하자, 곧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저고도에서 강하하여 월맹군 베이스캠프 근처에 착륙했다. 적들이 새벽녘에 우리를 수색하고 있었다."고 롭이 회상했다.
팀은 신속하게 대응하여 인근 능선을 따라 공습과 긴급 헬기 철수를 요청했다.
1000시에 꽝찌에서 온 미 육군 UH-1이 도착하여 팀을 무사히 철수시켰다.
2개월 후 롭은 다낭을 떠났다.
기존 썬더클라우드 대원 중 3명이 여전히 팀에 있었지만, 2년이 넘는 근무로 지쳐 있었다.
그들도 곧 월남을 떠났고 RT 아스프는 다시 활성 팀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그 공백은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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